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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478)]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책을 읽읍시다 (1478)]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김정선 저 | 포도밭출판사 | 200| 13,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의 작가 김정선의 첫 소설. 앞서 적은 책들의 저자이면서 스스로 소개하듯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혹은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일20년 넘게 해온 교정 교열자인 김정선이 우울감에 빠져들 때마다 펼쳐 읽은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대한 리뷰와 자신의 삶이 응축된 이야기를 뒤섞어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그래서 리뷰소설이라는 이름을 단 이 원고가 만들어졌다.

 

사실 김정선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로 이름을 얻기 한참 전부터 자신이 읽은 책들의 서평을 써왔고 그의 글을 각별히 여기는 독자가 적지 않았다. 그는 2009년부터 수년간 인터넷서점에서 운영하는 서평 블로그에서 후와라는 닉네임으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때 적은 글들을 추려 2013년에는 이모부의 서재를 임호부라는 필명으로 내기도 했다. 교정 교열자로 일한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오랜 시간 그는 많은 책을 읽었다. 간혹 건강이 나빠져 글쓰기가 힘들었던 시기를 빼면 항상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왔다. 이 책은 뛰어난 독서가이자 서평가이며 섬세한 솜씨의 문장 수리공인 김정선의 새로운 도전이다.

 

그는 일하는 시간에는 책을 만들고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책을 읽는 삶을 산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오래해온 일과가 있다. 심장 수술 이후 뇌병변 장애를 얻은 어머니의 간병이다. 10년도 훌쩍 넘는 짧지 않은 기간, 그는 여타의 일들을 뒤로 하고 홀로 어머니를 모셨다. 한편 오래 전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지병인 탈장과도 싸웠다.

 

그가 시달려야 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울감에 깊게 빠져드는 날들. 일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생활조차 어렵게 만드는 우울이 그를 덮쳤다. 여기에 더해 안구건조증마저 심해지자 결국 그는 당분간 교정 교열 일을 쉬겠다고 일터에 통보하고 거의 난생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나타나 그를 붙잡은 것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어느 날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빼 든 책의 첫 문장을 읽고 나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온몸이 굳어버리는 걸 느꼈다.

 

이렇게 시작한 셰익스피어 읽기는 꽤 오랜 시간 이어진다. 그는 햄릿』 『헨리 4』 『오셀로』 『십이야』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심벨린』 『리어 왕』 『템페스트를 차례로 읽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셰익스피어 소설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인생극장이 그의 머릿속에서 상영되기 시작한다. 그때 작가가 머문 장소는 늦은 시간까지 불을 켜는 도서관 구석 자리일 때도 있고, 밤늦은 시간에도 앉을 자리가 있는 24시간 카페 귀퉁이일 때도 있었다. 이 책은 20년 넘게 교정 교열자로 일해온 저자가 우울감에 시달리는 밤마다 도서관 구석을, 카페 귀퉁이를 찾으며 10편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어나간 오롯한 기록이다.

 

작가는 기념비적인 인생극장을 창조해 우리에게 선보인 셰익스피어이지만 정작 셰익스피어 자신은 깊이 우울해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작가는 로미오와 줄리엣42장에 나오는 캐풀릿 가문의 하인에 잠시 주목해본다. 연극을 통틀어 딱 한 번 등장하는 그는 캐풀릿에게 곧 열릴 결혼식 초청장을 받아 들고 맥없이 나가는 역을 맡았다. “아주 잠깐 등장하는데다 대사도 없어, 어떤 연구자들은 셰익스피어가 자신이 맡을 깜냥으로 집어넣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역할이다. 작가는 모두들 무대 위에서 자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걸 즐길 때, 혼자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그 하인의 존재에 대해 유심히 생각한다. 그의 존재가 꼭 셰익스피어의 분신 같고, 또한 우울한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아서다.

 

작가는 셰익스피어 리뷰와 자신의 이야기를 두 개의 부에 나누어 담았다. ‘1부 사랑’, ‘2부 가족이다. 이는 자신의 우울감의 정체를 두 개의 맥락을 통해 반추하는 것이기도 하다. , 사랑의 서사와 가족의 서사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도 이 두 가지 맥락을 발견한다. 그래서 햄릿』 『헨리 4』 『오셀로』 『십이야』 『맥베스는 사랑의 맥락으로,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심벨린』 『리어 왕』 『템페스트는 가족의 맥락으로 독해한다. 여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사랑보다 가족의 맥락에 초점을 두어 독해하는 것이다.

 

작가의 셰익스피어 독해에는 통상의 접근법 혹은 관점에 반하는 해석이 종종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암세포 같은 인간이며 불협화음의 소리를 내는 대표격이자 돈밖에 모르는 더러운 유대인샤일록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가.

 

이 소설에서 김정선 작가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지점 하나는 자주 주어, ‘술어를 언급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장을 분석하기 위해 저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읽기 위해 주어술어를 활용한다. 20년 넘게 교정 교열자로 일한 까닭일까. 그는 주어나 술어, 혹은 동사, 형용사 같은 품사를 도구로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곤 한다. 셰익스피어 작품 주인공들의 서사를 읽을 때는 물론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도 저 도구들이 사용된다. 누군가들의 문장을 오래 들여다본 생애의 주인공인 작가는 주어술어에 대한 분석을 그저 문장론이 아니라 존재론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작가 김정선 소개


단행본 교정 교열 일을 오래 해오고 있다.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혹은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일이다. 30년 정도 하면 미치거나 돌이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멀쩡하다면 일을 제대로 안 한 걸 테니까. 그러니 30년이 되기 전에 이 무간지옥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이런 고민을 제법 진지하게 할 무렵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책들을 읽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이런 책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긴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등도 다 그렇게 낸 책들이니 말해 뭐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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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