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50)] 외눈박이 원숭이
미치오 슈스케 저 | 김윤수 역 | 들녘 | 299쪽 | 10,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200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작가 랭킹 1위, 2009년 일본 오리콘 판매 1위를 차지한 미치오 슈스케. 이 작품은 데뷔 이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면서 호러서스펜스대상 특별상, 본격 미스터리 대상,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등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일본 미스터리 소설계의 대표작가의 신작 미스터리이다.
미치오 슈스케의 ‘감성 미스터리’
촘촘한 구성과 논리력을 미덕으로 삼는 미스터리 장르에서 다작하는 것도 예외적인 일이지만, 작품마다 한결 같은 순도를 유지하는 것 역시 대단한 내공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다양한 작품세계는 미스터리 소설이 한 단계 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기교만으로 독자와의 두뇌싸움에 치중하는 평면적인 추리 형식을 넘어 소설적 트릭과 장치를 적절히 활용하며 작가의 세계관을 담아내는 수준 높은 미스터리 소설을 보여준 것이다.
『외눈박이 원숭이』는 작중세계의 스펙트럼을 넓힌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이 소설은 대표작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과는 극점에 서 있다. 전작이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비틀어진 세계 속에 갇힌 고립된 자아를 그려냈다. 『외눈박이 원숭이』는 부조리하고 불친절한 현실 속에서도 자기 삶을 긍정하려는 ‘비주류들의 공존’을 모색한다. 이 소설에는 슈스케의 여느 작품보다 농도 진한 감성적인 코드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독자는 머릿속으로 작가의 퍼즐을 꿰맞춘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작가의 묵직한 메시지를 가슴으로 음미하게 된다.
강하고 쿨한 ‘루저’들의 공동체, ‘로즈플랫’
신주쿠의 뒷골목에 숨어 있는 2층짜리 고물아파트, ‘로즈플랫’. 사회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탐정 미나시의 탐정사무소 ‘팬텀’ 또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미나시는 남들과 구별될 만큼 특이한 귀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신체적인 결함은 오히려 강인한 생활력의 원동력이 된다. 귀를 감추고 싶은 마음에 커다랗고 성능 좋은 헤드폰을 거듭 만들어냈다가 도청이 가능한 단계까지 이른 것이다. 그는 도청 전문 탐정으로 업계에 차차 이름을 쌓아가고 있다.
미나시는 다니구치 악기사로부터 의뢰를 받는다. 경쟁업체인 구로이 악기사가 디자인을 도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달라는 것이다. 구로이 악기사 남자 직원들의 대화를 도청하다가 그는 후유에라는 묘령의 여인에게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남들이 자기 눈을 볼 수 없도록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후유에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그 느낌을 믿고 후유에를 찾아 팬텀의 새로운 멤버가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후유에 또한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고 로즈플랫에 발을 들이게 된다.
로즈플랫에는 개성 강한 인물들이 미나시 곁에 살고 있다. 발음이 독특한 노하라 영감님,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은 마키코 할머니, 신이 내린 카드 예언의 귀재 도헤이, 항상 붙어 다니는 초등학교 쌍둥이 자매 도우미와 마이미, 그리고 팬텀에서 접수와 사무를 담당하는 호사카.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은 소설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소품이 아니다. 로즈플랫은 강하고 쿨한 루저들의 공동체이며,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각자 로즈플랫의 주인인 까닭이다.
7년, 뫼비우스 띠처럼 되돌아온 가혹한 운명의 시간
후유에를 팬텀의 새로운 멤버로 받아들이고, 구로이 악기사의 동태를 살피던 중 미나시는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도청하다가 구로이 악기사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순간을 엿듣게 된 것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이야기줄기를 두 갈래로 나뉜다. 구로이악기 살인사건의 범인에 대한 수사가 한 줄기이고, 다른 한 줄기는 7년 전 미나시와 특별한 관계였던 아키에가 자살했던 이유를 밝혀내는 과정이다. 시간상으로도 7년이나 흐르고 인물들과의 연관성도 찾아볼 수 없는 두 사건은, 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여 있다.
구로이 악기사의 살인사건 이후 점점 행동이 수상해지는 후유에. 알리바이가 어긋나는가 하면 미나시의 거듭되는 질문에 당황해한다. 미나시는 고민 끝에 후유에의 통화를 도청하다가 그녀가 거대 탐정회사 ‘쓰요비시 에이전시’에 몸을 담고 있으며 팬텀에 발을 들여놓은 것 또한 의도적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미나시는 후유에를 만나 추궁한 끝에 그녀가 구로이 악기사의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있으며 7년 전 비열한 수사방법으로 어느 젊은 여자의 자살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밝혀내고는 경악하고 만다. 아키에의 자살 이후 모든 인간관계의 문을 닫아버린 첹나시에게 후유에는 고개를 내민 문 밖에서 처음 만난 대상이었다. 하지만 소통의 대상이었던 후유에가 실은 외부세계와 자신을 갈라놓은 가혹한 가해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미나시는 후유에의 과거와 아키에가 자살을 결심하게 된 과정을 집요하리만치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는 불편할지도 모르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과 직접 맞닥트리기로 한다. 그리고 7년 동안 미나시만이 간직해온 아키에의 비밀과 한 여자의 자살 때문에 그동안 죄책감에 시달려온 후유에의 숨겨진 내막이 밝혀진다.
작가 미치오 슈스케 소개
비평가와 관객을 모두 만족시키며 새롭게 떠오른 일본의 대표적인 젊은 작가. 독특한 세계관으로 장르를 초월한 작품은 ‘미치오 매직’으로 불리며 많은 독자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1975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2004년 『등의 눈』으로 제5회 호러서스펜스대상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했다. 그 후 2006년 제6회 본격 미스터리대상 후보(『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2007년 제7회 본격 미스터리대상 수상(『섀도우』), 2009년 제62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까마귀의 엄지』)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며 문단의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2007년 판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에 세 작품(『섀도우』『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시신의 손톱』) 모두 10위 내에 들어가는 전대미문의 쾌거를 달성했다. 2011년 『달과 게』로 144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미치오 슈스케가 사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은 많은 작품에서 크게 호평을 받았고 거침없는 필체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에 힘입어 2009년 판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는 작가별 득표수 1위, 오리콘 판매순위 1위를 차지하며 명실공히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개성 넘치는 미스터리 장르 외에도 기존의 장르를 초월한 ‘미치오 슈스케 스타일’의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제141회 나오키상 후보에 오른 『귀신의 발자국 소리』를 비롯, 『외눈박이 원숭이』, 『솔로몬의 개』, 『래트맨』, 『용신의 비』, 『구체의 뱀』 등 작품의 제목에 십이지 동물을 집어넣은 십이지 시리즈로 유명하며, 2010년 후지TV에서 방영된 「달의 연인」의 극본을 맡기도 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을 읽읍시다 (152)] 관객모독 (0) | 2012.12.17 |
---|---|
[책을 읽읍시다 (151)] 브랫 패러의 비밀 (0) | 2012.12.14 |
[책을 읽읍시다 (149)] 단 한 번의 연애 (0) | 2012.12.12 |
[책을 읽읍시다 (148)] 압살롬, 압살롬! (0) | 2012.12.11 |
[책을 읽읍시다 (146)] 정신기생체 (0) | 2012.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