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48)] 압살롬, 압살롬!
윌리엄 포크너 저 | 이태동 역 | 민음사 | 573쪽 |14,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이 작품은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부가 무너지는 과정을 악으로 점철된 서트펜가의 비극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포크너는 성(性)과 인종 문제, ‘남부’의 과거와 현재, 시간, 인간의 본성, 영원 등 자신이 끈질기게 추구했던 주제를 이 소설 속에 집약시켜 “도스토예프스키보다 도착적이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요크나파토파’를 상징하는 가장 중심적인 소설
1833년 미국 남부의 소읍인 요크나파토파에 토머스 서트펜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야만인과 다름없어 보이는 흑인 스무 명과 납치해 온 듯한 프랑스인 건축가와 함께였다. 인디언 부족에게서 넓은 땅을 구입한 그는 흑인들을 데리고 벽돌을 굽고 나무를 베어 저택을 짓기 시작한다. 오 년 후, 어디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대저택과 인근에서 가장 큰 목화 농장을 갖게 되자 그는 그에 걸맞은 신붓감을 구한다. 종교적으로 아주 경건한 콜드필드 가문의 딸 엘런이 그 상대였다.
과거를 알 수 없는 ‘악귀’ 같은 그와 눈물을 흘리며 결혼했던 엘런은 헨리와 주디스라는 남매를 낳는다. 엘런은 자신의 아이들보다 늦게 태어난 여동생 로자는 물론 친정과는 거의 왕래를 하지 않고 지내고, 로자도 서트펜을 증오하며 자라난다. 대학에 간 헨리가 사귄 찰스 본이라는 남자가 주디스와 약혼하려 한다. 서트펜이 약혼을 반대하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서트펜의 과거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사 년 후 헨리가 찰스 본을 살해하면서 새로운 비극이 닥쳐온다.
서트펜가의 흥망을 통해 그린 미국 남부의 이상과 가치관의 몰락
이 책의 제목 『압살롬, 압살롬!』은 구약성경 「사무엘 하」 18장 33절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다윗 왕의 장남 암논이 배다른 동생 압살롬의 누이동생을 사모해 범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도 다윗 왕은 그를 벌하지 않는다. 그러자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결국 다윗 왕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다윗 왕의 “O my son Absalom, my son, my son Absalom! Would I had died instead of you, O Absalom, my son, my son!”(내 아들 압살롬,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오 압살롬, 내 아들, 내 아들!)이라는 말에서 이 책의 제목이 나온 것이다.
제목뿐 아니라 이 작품의 주된 사건이 되는 서트펜-찰스 본-헨리-주디스의 관계 역시 관련이 깊다. 서트펜의 장남 찰스 본은 이복동생 주디스와 결혼하려 하고, 서트펜은 이에 대해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고 지켜보다가 상황을 악화시킨다. 헨리는 결국 찰스 본을 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곪을 대로 곪아 있던 서트펜가의 비극이 폭발한다. 그 후 40여 년 동안 이어질 불행과 서트펜가가 몰락하는 원인이 된다.
서트펜가의 일대기는 미국 남부의 성망을 상징한다. 혼자 힘으로 농장을 일구고 저택을 지어 부를 쌓아 가던 서트펜은 결국 자신의 야망과 악행(흑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아내와 아들을 버린 것)이 원인이 되어 몰락의 길을 걷는다. 새로운 꿈을 안고 남부로 왔던 개척자들은 오직 자신들만의 힘으로 우뚝 선다. 하지만 그 안에서의 도덕의 해이와 흑인 노예 착취로 인해, 결정적으로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한 북부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쇠퇴해 가는 것이다.
서트펜의 죽음과 그 후 이어지는 가문의 쇄락은 미국 남부의 이상과 꿈의 몰락인 것이다. 서트펜가에서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 백인보다는 흑인의 피가 더 많이 섞인 혼혈이자 지체아인 ‘짐 본드’라는 사실은, 서트펜에 대한 조롱이자 모순적인 남부 사람들에 대한 조롱이다.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회가 이 작품이 “최고의 남부 소설”이라 평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작가 윌리엄 포크너 소개
1897년 9월2일 미시시피주(州)의 뉴올버니에서 출생하였다. 1949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두 차례 퓰리처상을 받았다.
남부(南部)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근처인 옥스퍼드로 옮겨 그의 생애의 태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군인이자 작가, 정치가였던 증조부와 변호사로 성공한 조부 밑에서 유복한 유년기를 보내며 미국 남부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문학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의 사업차 이주한 옥스퍼드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해 고교 시절 시집(詩集)을 탐독하고 스스로 시작(詩作)을 시도하였으나 고교를 중퇴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지원해서 캐나다의 영국공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퇴역군인의 특혜로 미시시피대학교에 입학하여 교내 정기간행물에 시를 계속해서 발표했다. 1920년 대학도 중퇴하고 곧 고향으로 돌아와, 1924년 친구의 도움으로 처녀시집 『대리석의 목신상(牧神像) The Marble Faun』을 출판했다.
그후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26년 전쟁으로 폐인이 된 한 공군장교를 주인공으로 한 첫작품 『병사의 보수 Soldier’s Pay』를 발표하고, 1927년 풍자소설 『모기 Mosquitoes』, 1929년 남부귀족 사토리스 일가(一家)의 이야기를 쓴 『사토리스 Sartoris』를 발표했다. 이어 1929년 또 다른 남부귀족 출신인 콤프슨 일가의 몰락하는 모습을 그린 문제작 『음향과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를 발표하여 일부 평론가의 주목을 끌었다.
다시 1930년 가난한 백인 농부 아내의 죽음을 다룬 『임종의 자리에 누워서 As I Lay Dying』, 1931년 한 여대생이 성불구자에게 능욕당하는 사건을 둘러싸고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작품 『성역(聖域) Sanctuary』(1931)을 발표해 일반 독자에게도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그 후 『8월의 햇빛 Light in August』(1932) 『압살롬, 압살롬 Absalom, Absalom!』(1936) 『야성의 종려(棕櫚) The Wild Palms』(1939) 『마을』 『무덤의 침입자 Intrudrer in the Dust』(1948) 『우화(寓話) A Fable』(1954, 퓰리처상 수상) 『읍내(邑內) The Town』(1957) 『저택(邸宅) The Mansion』(1959), 그리고 유머를 특색으로 하는 『자동차 도둑』(1962, 퓰리처상 수상) 등 장편소설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이 밖에도 중편과 단편도 상당히 써서 『곰 The Bear』을 비롯한 몇 권의 단편집도 펴냈다.
『음향과 분노』는 포크너의 대표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포크너는 자신의 고향인 ‘요크나파토파군(Yoknapatawpha郡)’으로 불리는 독특한 소설공간을 창조했다. 포크너는 자신이 '우표만한 조그만 고향땅'으로 묘사한 이 공간을 소설무대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특수한 삶의 경험을 보편적 언어로 극화시키는 길을 발견했다. 파격적이고 현란한 언어와 다양한 형식의 실험을 통해 몰락해가는 미국 남부사회의 독특한 정서 구조를 드러낸다. 그는 그 곳을 무대로 해서 19세기 초부터 20세기의 1940년대에 걸친 시대적 변천과 남부사회를 형성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대표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켜 한결같이 배덕적(背德的)이며 부도덕한 남부 상류사회의 사회상(社會相)을 고발하였다. 이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신뢰와 휴머니즘의 역설적 표현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규명하려는 그의 의지의 발현(發現)이라 할 수 있다.
포크너는 대담한 실험적 기법과 깊은 인간통찰을 통해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했고 현대인이 안고 있는 고뇌와 그 극복의 과정을 진실하게 추구하여 세계 여러 나라 문학에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에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서구를 휩쓴 비극적 시대정신이 짙게 배어 있어 그의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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