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688)] 유전자 코드
황의진 저 | 밥북 | 288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첫 소설 『임진강에 상처를 씻다』를 통해 ‘민통선 농부 소설가’로 이름을 알린 황의진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작품과 달리 이번 작품은 자전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유전자라는 소재를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냈다. 작품은 ‘우리 몸은 숙주고 유전자는 기생체’라는 생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즉 기생체인 유전자가 후대에 우수한 인자를 전승하기 위해 코드가 맞는 이성이 나타날 경우 사람 몸을 원격 조종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작품은 이렇게 유전자에 조종당한 여러 인간군상이 등장하고, 그들 스스로 감당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상태로 다양한 에피소드를 연출한다. 각 에피소드는 작가 특유의 풍자와 재치가 더해져 다소 엉뚱하다 싶지만, 그 엉뚱함은 탄탄한 서사구조를 통해 허구만이 아닌 가능성의 세계로 다가온다.
봉 과장 마누라는 어느 날 가출하여 찾은 민박집에서 유전자의 조종 탓인지 거기 거주하는 한 남자 ‘라콤파르시타’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어 하룻밤을 보낸다. 그 후 그 남자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봉 과장 마누라는 만삭의 몸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가출하여 또 하나의 아이를 얻어온 건 다름 아닌 아들의 결혼소동 가운데 그 아들이 봉과장의 아들이 아닌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앞선 세 번의 가출에서도 아들 하나, 딸 둘을 얻어 돌아왔는데, 봉 과장은 이를 모른 체 키우고 있었다. 그 아들이 옆 동네 순임이와 결혼하겠다고 하니 아버지 봉 과장이 극렬 반대하는데 순임이는 바로 자신과 헤어진 첫사랑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기 때문이다. 한데 봉 과장 마누라가 놀라운 비밀을 터뜨리며 결혼을 허락하는데 아들이 봉 과장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 태어났다는 것. 결국 이복 남매가 아니어서 결혼이 가능한 셈인데 이를 계기로 봉 과장 마누라는 네 번째 가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 번째 아이를 배에 품은 채 아무렇지 않게 돌아오는 봉 과장 마누라. 이 허를 찌르는 설정과 함께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봉 과장 어머니 봉일순과 그 친구 팽순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어느 순간 마치 뭐에 홀린 듯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이는 또 다른 사건을 낳으며 얽히고설켜 간다.
작품은 상식과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와 함께 독자에게 이런 일이 과연 누구라도 거부할 수 없는 유전자의 속성 때문에 그런 것인지 저절로 의문을 품게 한다. 이 의문은 연속되는 에피소드와 함께 읽는 재미를 키워준다. 그러면서 작품은 보통의 인간군상 속에 문명적 인간의 품성은 품성대로 지켜내면서 자연생명으로서 인간의 이해를 돕는 인물을 내세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을 유지한다.
작가 황의진 소개
경기도 파주에서 나서 고향을 멀리 떠난 적이 없다. 전업농인 만큼 농사가 주된 일이나 글을 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동인지 『계간 사이버 문학』에 원고를 보내기 시작했고, 2011년 『월간 한국논단』에 수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시집 『임진강』(오늘의 문학사)을 펴냈다. 2014년 『계간 문학사랑』에서 인터넷 문학상을 받았다. 2017년 장편 소설 『임진강에 상처를 씻다』(북인)를 펴냈다. 오늘도 여전히 낮에는 논밭을 일구고 밤에는 소설 쓰는 재미에 빠져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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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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