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73)] 깡통나무
앤 타일러 저 | 공경희 역 | 멜론 | 391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인내하고 서로 방해하고 적응하고 포기하고, 그리고 아침에 다시 시작하는지. 미국 문단의 대표 작가 앤 타일러만의 눈부신 문체로 청순한 사랑과 지긋한 형제애, 다정한 이웃사랑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책이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주로 운명적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조직 속에서의 관계 단절, 개인이 그 속에서 느끼는 근본적 고립감과 그에 따른 정신의 성장 과정이 묘사된다.
한 편의 거대한 드라마를 보듯 생생하게 풀어간다
앤 타일러의 작품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풀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행복을 꿈꾸고, 그 행복을 찾지만 자신한테는 멀게만 느껴지는 이들에게 작가는 작품 속에서 말한다. 행복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며, 그 시작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때 비로소 자신도 행복하다고. 이 책 역시 개인의 행복이, 가족의 행복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말하고 있다.
또한 앤 타일러는 작품 안에서 주로 운명적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조직 속에서의 관계 단절, 개인이 그 속에서 느끼는 근본적 고립감과 그에 따른 정신의 성장 과정을 그린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어떤 인위적인 극적 요소도 센세이셔널리즘도 없다. 그녀의 작품 속 대부분 등장인물은 결점이 있기 때문에 더욱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모습들이다.
앤 타일러의 작품에는 소설 하면 흔히 떠오르는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그저 작은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과 등장인물들의 주어진 상황, 생각, 행동만이 잔잔히, 그러면서 깊이 있게 펼쳐질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마음을 열고 편안히 읽어야 한다. 조급함으로 읽다 보면 작가의 필력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책을 중간에 덮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세 가족의 세 가지 이야기가 조화롭게 펼쳐진다
이 책의 이야기는 여섯 살 여자아이의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세 채의 세 가족은 락스빌이라는 작은 시골 동네. 집 세 채가 하나로 길게 이어진 시골 주택에 살고 있다. 겨울이면 다닥다닥 붙은 굴뚝 세 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서로 뒤엉키듯이, 그렇게 세 가족은 서로 뒤엉켜 살아가고 있다. 세 가족은 1남 1녀를 둔 파이크 부부의 집과 미스 페이와 루시 자매의 집, 아픈 앤슬과 형 제임스의 집이다. 그리고 파이크의 집에는 파이크 씨의 조카 조앤이 같이 산다.
세 가족은 집은 너무 가깝게 붙어있다 보니 밤에 잘 때 코 고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이다. 그만큼 그들은 집만 세 채일 뿐 거의 한 가족처럼 친밀하게 모든 생활을 공유하면 살고 있는 셈이다.
비록 한 가족처럼 붙어살지만 세 가족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체 외롭고 무덤덤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던 중 파이크네 딸 제니 로즈의 죽음으로 파이크 부인은 말을 잃었다. 또한 파이크 씨는 어쩔 줄 모르며, 아들 사이먼은 부모의 애정을 받지 못해 허우적댄다. 이웃들은 파이크 부부를 위로하기 위해 많은 애를 쓰고 도와주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슬픔에 갇혀버린 파이크 부부는 그저 딸 제니가 나무에 달아놓은 깡통만 쳐다볼 뿐이다.
집 주변에는 우울만이 감돌고, 세 가족 모두 제니를 잃은 상실감과 아픔은 점점 깊어만 간다. 한 가족한테 일어난 불행은 나머지 두 가족에게도 슬픔이요 아픔이 되었다. 그들은 각자 자기만의 어두운 옷장에 갇혀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며 서로의 아픔을 다독인다.
인생은 분명하고 뜨거운 게 아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드라마 속 풍경처럼 애초부터 밀착돼 뜨거운 사랑을 나누며 살지 않는다. 누구나 나 하나라고, 사랑이 부족하다고, 꿈이 없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떤 일이 생기면 집을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친다. 자신을 붙잡는 그 무엇도 없다.
『깡통나무』속의 사람들 역시 모두 아픈 과정을 통해 서로를 얻게 된다. 처음에는 우울 속에서 따라가는 길이 고달팠지만, 저만치 가보니 어느덧 소통과 따뜻함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어떤 인위적인 극적 요소도, 센세이셔널리즘도 없지만 앤 타일러 고유의 장기인 '일상적 삶 속에서의 드라마' 를 통해 독자에게 은은하지만 가슴 속을 깊게 파고드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작가 앤 타일러 소개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미국 문단의 대표적 여류 작가다. 1941년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난 앤 타일러는 22세 때 『아침이 오면』(1964)을 발표한 이래 이제까지 10여 편의 장편과 50여 편의 단편, 수많은 서평을 발표하여 작가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1985년 미국서적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우연한 여행자』가 영화화되고, 1989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종이시계』(원제, Breathing Lessons)는 장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독자들 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출판될 때마다 빠짐없이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앤 타일러의 작품은 사물을 관찰하는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눈, 인간성에 대한 신선한 통찰력, 날카로운 유머 감각, 특히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 묘사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현재 정신과 의사인 남편과 두 딸과 함께 볼티모어에서 사는 그녀는 철저하게 유명세를 거부하며 은둔을 고집하지만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작품으로는 『종이시계』 『깡통나무』 『태엽 감는 여자』 『우연한 여행자』 『아마추어 메리지』 등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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