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800)] 어셈블리 - 21세기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제언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저, 이승준, 정유진 옮김 | 알렙 | 584쪽 | 28,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네그리와 하트는 신작 『어셈블리』에서 이 운동들이 아직까지는 오래 지속되는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진단하면서, 이제는 지도자와 다중의 역할의 전도가 필요하고 나아가 그것을 장기적 안목에서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다중이 전략을 주도하고 지도자들은 전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제국』, 『다중』, 『공통체』에 이어 전체 기획을 4부작(『선언』을 포함하여, 혹은 5부작)으로 확장시킨다. 전작보다 더 깊어지고 구체화된 현실 분석이나 개념적 정밀화가 있으며, 새로운 제안도 포함한다.
첫째, 네그리와 하트는 전통적인 중앙집중화된 ‘리더십’을 비판한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정치조직과 제도에 대한 포기 즉 ‘수평주의의 물신화’로 이어지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전략과 전술의 전도’를 제안한다. “운동에게 전략을, 리더십에게 전술을!” 지도부가 전략을 담당하고 대중이 전술을 담당하던 과거와 달리 다중이 전략을 담당하고 지도부가 전술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전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도는 지난 몇 년간의 전 지구적 투쟁 순환에서, 터키의 탁심 광장, 미국의 월가 점거시위와 블랙라이브스매터, 아랍의 봄, 스페인의 15M 운동, 브라질·칠레의 카세롤라소[냄비 두드리기 시위], 그리고 한국의 촛불집회와 홍콩의 우산혁명 등에서 나타난 시위, 봉기, 반란의 공통된 특성이며, 또한 그 잠재력을 현실에서 완전히 실현하지 못한 채 좌절하고 약화된 사회운동들의 향후 과제이기도 하다.
둘째, 네그리와 하트는 오랫동안 ‘구성권력[제헌권력](constituent power)’ 개념을 통해 ‘구성된 권력(constituted power)’이나 ‘입헌권력(constitutional power)’과 구별되는, ‘혁명적 사건’을 통해 표출되는 저항자들의 활력이나, 법과 규범, 제도를 구축해내는 법질서로부터의 예외적 힘을 지시해 왔다. 놀랍게도 그들은 『어셈블리』에서 한 절을 할애해 ‘구성권력’ 개념을 비판적으로 재평가한다. “오늘날 자본주의적 전 지구화의 몇 가지 측면”이 “구성권력 개념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비판은 개념의 폐기나 역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데리다와 아감벤의 비판을 거쳐 낡게 변색된 개념을 현실의 살아 있는 혁명적 힘들에 맞게 진화 및 갱신시키기 위함이다. 그러한 갱신을 위해, 근대를 떠나 ‘탈근대의 구성권력’을 말하기, 주권으로 흡수되고 통일성으로 환원되는 법 예외 권력으로서의 구성권력을 사회적 생산이 가진 협동적이고 복수적인 힘과 결합된 구성권력으로 대체하기, 국가폭력으로 환원되면서 소멸되는 구성권력을 연속적인 어셈블리에 따라 새로운 잠재력을 축적시키는 연속혁명의 힘으로 재기획하기 등이 제안된다.
셋째, ‘정치적인 것의 자율’을 비판한다. 『어셈블리』는 시위와 반란의 목소리가 자본이나 신자유주의의 흡수 논리를 따라 포섭되거나, 기존 권력의 반혁명으로 좌절되거나, 아니면 사회운동들을 모방하고 등장하는 보수주의의 득세로 위축될 때, 좌파의 대안으로 등장하곤 하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과 대결한다.
신자유주의가 전통적인 주권권력을 붕괴시키고, 그래서 전 지구적 자본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정치적인 것의 자율’은 묵시록적인 분위기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하나의 역설이 존재하게 된다. 즉 시위와 사회운동이 ‘정치적인 것의 자율’에 맞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수록, 일부 좌파 지식인들은 ‘정치적인 것의 귀환’을 더 강하게 요구하는 역설이 그것이다.
네그리·하트는 이러한 역설적 상황을 돌파하는 방법은 결국 저항자들의 조직화와 그들의 생산적 잠재력에게 더 많은 힘을 부여하고, 그래서 그들이 ‘권력을 잡을 수 있게’ 하지만 ‘다르게 잡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주권권력으로 흡수·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다중들이 비주권적 제도들을 발명할 수 있도록 ‘권력을 잡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자율주의의 하나의 문제의식인 ‘권력(장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는 ‘다른 방식의 권력 잡기로 세상을 바꾸자!’로 다시 제안된다.
넷째, 금융과 화폐의 문제는 이 책에서 더 상세하게 분석된다. 금융과 화폐를 자세히 분석하는 이유는 자본으로서의 측면 말고 화폐가 가진 다른 측면 즉 “사회적 관계를 제도화하는” 능력을 살려서 “공통적인 것의 화폐”를 발명하는 실천적인 목적에 있다.
다섯째, 공통적인 것과 공적인 것/사적인 것의 대립이 더 분명히, 따라서 더 간명하게 제시된다. 공적인 것이 사실은 사적인 것을 가리고 보호하는 도구로 등장했음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사유재산의 ‘주권적’ 성격을 밝힌다. 따라서 공통적인 것과 공적인 것/사적인 것의 대립은 공통적인 것과 사유재산의 대립에 다름아니다.(“공통적인 것은 재산이 아니다”) 책 전체에 걸쳐서 ‘공통적인 것’의 개념은 이전보다 더 확연하게 제시되고 있어 그만큼 개념화의 성숙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여섯째, 사회적 투쟁의 형태에 대해서는, 새로운 조직화의 유형으로 ‘사회적 연합주의(social unionism)’가 제시되고 그 무기로서 이전의 총파업의 새로운 형태―삶정치적 생산의 시대에 맞는 형태―인 ‘사회적 파업(social strike)’이 제시된다. 물론 이는 모두 출발점들이지 그 자체로 충분한 대안들이 아니다.
일곱째, 자본가들이 예전에 하던 기능―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금융의 형태로 생산과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본이 하지 않는 기능―인 생산 요소들의 결합을 이제는 생산자들 자신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음을 ‘다중의 기업가정신/활동(entrepreneurship of the multitude)’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최종적으로 네그리·하트는 새로운 군주가 대항권력을 갖게 되는 경로를 밝힌다.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 소개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정치학자이며 자율주의를 대표하는 이론가이다. 1957년에 독일 역사주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0년대 후반 파도바 대학 <정치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오페라이스모와 아우토노미아 사상을 발전시켰다. 1979년 수감되었다가, 1984년 프랑스로 망명해 가타리와 들뢰즈의 후원으로 파리 8대학에서 강의했다. 1997년 이탈리아로 돌아가 재수감되었으나 2003년에 풀려나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이클 하트와 함께 쓴 『제국』, 『다중』, 『공통체』, 『선언』 등을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으며, 마르크스, 들뢰즈, 푸코, 마키아벨리, 스피노자를 아우르는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는다. 주요 저서로 『맑스를 넘어선 맑스』, 『야만적 별종』, 『전복적 스피노자』, 『혁명의 시간』, 『혁명의 만회』, 『다중과 제국』 등이 있다.
저자 마이클 하트 소개
미국 워싱턴 대학에서 질 들뢰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듀크 대학의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탈리아의 자율주의 사상을 미국에 소개하며, 여러 자율주의 사상가들의 책을 번역했다. 네그리와 함께 『디오니소스의 노동』, 『선언』, 『제국』, 『다중』, 『공통체』 등을 썼다. 주요 저서로 『들뢰즈 사상의 진화』, 『네그리 사상의 진화』, 『토머스 제퍼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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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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