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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022)] 행성어 서점

[책을 읽읍시다 (2022)] 행성어 서점

김초엽 저 |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16 | 14,5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마음산책 열두 번째 짧은 소설은 한국 SF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소설가 김초엽의 행성어 서점. 그는 산뜻한 이야기의 마을에서 수집해온 열네 편의 이야기를 진진하게 펼쳐간다.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에서 출발하는 작품들은 장애와 혐오, 이종(異種)간의 갈등과 공존, 환경 파괴 같은 동시대적인 문제의식을 안은 채 우주적 세계로 향한다. 

 

수술 후유증으로 무엇이든 몸에 닿으면 끔찍한 고통을 느끼는 접촉 증후군 환자 파히라(선인장 끌어안기), 뇌에 통역 모듈을 심어 수만 개의 은하 언어를 알 수 있는 세상에서 시술 부적응자로 살아가는 교수(행성어 서점), 균사체 연결망이 집단 지능을 구축하고 있는 늪에 갑자기 나타난 유약한 미지의 소년(늪지의 소년), 폐허 직전의 휴게소 한 편에 위치한 기이한 식당의 의문투성이 주인(지구의 다른 거주자들)은 이 세계의 별종이자 이방인들이다. 김초엽은 나와 다른 타자, 나아가 소수자의 삶을 독자가 직접 마주 보게 함으로써 다양성에 대한 인식과 긍정을 넘어 공존을 모색하도록 도모한다.

 

그간 마음산책 짧은 소설은 글과 그림의 조화로운 결합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행성어 서점에는 한국과 뉴질랜드에서 활동하며 초현실주의 그림으로 주목받고 있는 신예 일러스트레이터 최인호(Dion Choi)가 함께했다. 동화 같은 상상력에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을 덧입힌 서정적인 그림들은 이야기의 여운을 배가시킨다.

 

김초엽은 먼저 사랑, 연민, 기쁨, 경이, 애수 등 다양한 정서를 감각하게 하는 여덟 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 안에는 각기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가상 현재 속 인물들이 등장한다. 선인장 끌어안기의 파히라는 실내의 모든 물체가 알아서 자신을 피해가는 진공의 집을 설계한 접촉 증후군 환자다. 그는 괴팍한 성미로 반년간 네 개의 보조 로봇을 파손한 것도 모자라 새로 온 보조 로봇인 까지 위협한다. 그러나 이전 로봇들과 달랐던 나는 폭력을 저지하며 파히라에게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행성어 서점은 수만 개의 은하 언어를 실시간으로 통역해주는 기술이 일상화된 시대, ‘행성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은하계 전역에 수백 명밖에 남지 않은 망해가는 시골 행성의 서점을 배경으로 한다. 서점 직원인 는 일주일 전부터 서점을 찾아오는 수상한 여자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은하계 테러 조직에 관한 뉴스를 접하고 당혹감을 느낀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찾아온 여자와 드디어 대화를 나누다 뜻밖의 사실이 밝혀진다.

 

우주 저 너머의 세계에서도 아날로그를 향한 그리움과 동경은 존재한다. 포착하지 않는 풍경의 사진작가 리키는 어느 날 여러 고객들로부터 사진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는다. 공용 촬영 드론이나 기록 로봇으로 손쉽게 직접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세상에서 큰맘 먹고 비싼 값을 치루며 고전적 사진 촬영을 선택한 사람들. 리키는 유독 행성 뮬리온-846N의 특정 구역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포착되지 않는다는 것에 놀란다.

 

다음으로 열리는 세계는 인간종과 외계종의 조우와 공생에 관해 다룬 여섯 편의 이야기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낯선 존재들과 불화하거나 거리를 두기도 하고, 포용하며 공존에 이르기도 한다. 김초엽은 섣불리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지 않으면서 독자 스스로 누가 원래 거주자이고 침투자인지 깊이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생물의 사체를 분해시켜 소화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늪. 어느 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누더기 차림의 소년이 늪을 찾아온다. 살고자 하는 욕망과 의지 대신 체념의 기운이 퍼져 나오는 소년을 늪의 균사체 네트워크는 호시탐탐 노린다. 그러나 소년은 그들의 일원이 되기를 거부하고, 다른 방식의 삶을 찾아 나서기 위해 분투한다.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세상을 그려낸 늪지의 소년 행성어 서점에 실린 작품 중에서도 긴장감이 두드러진다.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에서는 방문객이 뜸한 휴게소에서도 인적이 드문 한 미국식 다이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뛰어난 미각을 가진 초미각자 식당 주인과 맛있다는 감각을 느껴본 적 없는 다현은 맛에 관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친근감을 나눈다. 그러나 어딘가 묘하게 어긋나는 식당 주인의 표현에 어색함을 느끼던 다현은 이어지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인간과 이종(異種)의 맞닥뜨림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일의 중요함을 김초엽은 역설한다. 결국 우리는 그의 소설이 지금 여기의 우리가 현실에서 껴안고 있는 고민과 화두를 상상의 세계에 옮겨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로서의 원초적인 재미는 물론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응축된 이번 짧은 소설집은, 독자에게 보다 풍성한 독서 체험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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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