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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054)] 만들어진 유대인

[책을 읽읍시다 (2054)] 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저 | 김승완 역 |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670 | 34,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민족이란 개념은 허술하다. 혈연관계를 기반으로 오랜 세월 동안 고정된 동질 집단을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쟁과 이주를 겪으면서 타 집단과 섞이지 않고 민족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그래서 모든 민족국가는 하나의 민족임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에 대한 신화와 조작된 역사를 창조한다. 이 신화가 길고 찬란할수록 국민을 통합된 집단으로 이끌기 쉽다.

 

만들어진 유대인은 이런 신화 위에 건설된 나라 이스라엘의 역사적 진실에 깊이 다가선 책이다. “2천 년의 유랑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옛 고향땅을 되찾은 어느 뛰어난 민족이라는 서사는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신화다. 저자는 이 서사가 완전한 허구임을 밝힌다.

 

 

오늘날 민족이란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경험을 같이하는 공동체를 일컫는 말이지, 변치 않는 혈연적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대인 역시 공통된 종교문화를 가진 종교공동체이지 혈연으로 이어진 종족공동체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종족적 동질성의 신화를 국가의 기본원리로 삼고 있는 나라가 있으니,  유대인의 나라를 자임하는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저자 슐로모 산드는 유대인을 한 마디로 발명된 민족이라 정의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대 성서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직선으로 이어져왔다고 주장하는 유대 역사의 부실한 고리들을 낱낱이 해체한다. 그럼으로써 신화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온 유대 민족주의, 그 이념에 배인 배타성과 폭력성을 넘어서고자 한다.

 

만들어진 유대인은 유대인과 고난에 찬 그들의 역사에 경탄하는 이들, 구약성서의 신화를 사실로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 그리고 이런 신화에 기대어 폭력과 배제의 정치를 국가 유지 수단으로 삼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해 쓰디쓴 진실의 약을 처방하는 책이다.

 

사람들은 흔히 유대인의 역사를 오래도록 고난 받은 어떤 민족의 일관된 이야기로 여긴다. 그 이야기는 대강 이러하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떠돌이 유목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신이 약속한 땅에 유다왕국과 이스라엘왕국을 건설하고, 이후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제국의 침공을 받아 포로기를 경험한다. 포로에서 풀려난 이들은 다시 예루살렘을 건설하지만 로마의 지배 아래서 고향땅을 빼앗기고 뿔뿔이 추방된다. 이후 2천 년 동안 디아스포라(유대인 이산)로 세상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수많은 핍박에서도 근대까지 그 정체성을 지키며 살다가, 마침내 신이 약속한 땅 이스라엘에 다시 모여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한다.”

 

저자 슐로모 산드는 역사학자로서 이런 이스라엘 건국의 서사를 하나하나 해체하고자 한다. 유대교 신앙체계의 근간에는 죄로 인한 추방 성지로의 귀환이라는 관념이 있다. 현세에서 피할 수 없는 삶의 고난을 위로해주는 이 관념은 장소적 의미가 아니라 다만 구원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상황적 의미를 갖는 관념이었다.(248, 255-6

 

그러나 성서의 신화를 역사로 해석하면서 추방과 유배는 역사적 사실로 탈바꿈한다. 저자는 이렇게 창작된 역사의 허술한 고리들을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짚어냄으로써 추방 귀환의 신화를 무너뜨린다.

 

유대인으로 불리는 오랜 종교공동체가 종족공동체로 교묘하게 탈바꿈한 데는 시오니스트 민족주의자들의 정치적 이해가 숨어 있었다. 저자는 민족주의 열기가 들끓던 19세기 유럽에서 민족 개념이 발명되고 시오니즘이라는 유대 민족주의가 형성된 과정을 촘촘히 그려낸다.

 

산드는 이 모든 역사 창작이 현재 이스라엘의 정치를 지탱하는 수단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전 세계 유대인에게는 아무런 제한 없이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자국 내 비유대인에게는 심각한 차별을 가하는 나라, 세속적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면서도 이스라엘 민중의 존재를 부정하고 유대인들만의 신정 국가임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민족이란 같은 문화와 경험에 대한 공통의 감각이지 실체가 아니다. 이 책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실체가 되고 국가 이념이 될 때 자국과 이웃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극히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대인의 발명 이스라엘은 그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민족이 그 구성원에게 든든한 정체성을 제공하는 기능뿐 아니라, 동질성이라는 이름 아래 내부 불평등과 배제의 정치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준 데 있다. 이스라엘을 넘어 세계의 거대 유대인 권력에 도전하는 이 위험한 책이 출간 직후 24개국 언어로 번역되고 유명 언론과 학자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은 이유일 것이다.

 

 

작가 슐로모 산드 소개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역사학 교수. 1946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태어났다.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48 나크바’(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탈) 시기에 이스라엘 야파로 이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16세에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라디오 수리기사, 전화교환원 등으로 일하다가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6일 전쟁 시기에 군에 입대했다. 당시 군인으로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목격하고 고국을 잃었다는 느낌으로 큰 회의에 빠져 반시오니즘 급진좌파 운동에 합류했다.

 

1975년 텔아비브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했고, 1985년까지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며 프랑스사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스라엘에 돌아와 종신교수로 모교에서 유럽 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2008년 히브리어로 출간되고 2009년 영어로 번역된 만들어진 유대인(원제 유대인은 언제, 어떻게 발명되었는가’)이 세계적 명성을 얻으면서 산드는 외국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이스라엘 역사서의 저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유대인이자 이스라엘인으로서 유대국가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정체성 신화에 대해 통렬한 비판과 근본적 의문을 던진 몇 안 되는 지식인으로 각인되면서, 에릭 홉스봄, 토니 주트, 베네딕트 앤더슨 등의 민족주의 비판가들과 같은 대열의 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저서로는 만들어진 유대인의 속편 격인 이스라엘 땅의 발명, 유대인, 불쾌한 진실이 있고, 최근 프랑스 지식인의 종말: 유대인 혐오에서 이슬람 혐오까지를 출간하여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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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