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2143)] 햇빛 마중
문진영 저 | 박정은 그림 | 마음산책 | 236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이 결과가 심사위원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라는 평과 함께 2021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던 문진영 작가의 첫 짧은 소설집 『햇빛 마중』. 『담배 한 개비의 시간』 『눈속의 겨울』 이후 세 번째 책으로 오랜 시간 세공한 짧은 소설 30편이 담겨 있다.
책은 총 네 가지 장으로 나뉘는데, 그중 첫 구성 속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관계’다. 맨 처음 등장하는 소설 「토마토와 선인장」은 동네 도서관에서 열리는 시 쓰기 강좌에서 만난 두 사람을 그린다. 은퇴 후 그동안 꿈꿔왔던 시 쓰기 수업을 듣게 된 ‘나’(선인장)는 그곳에서 토마토 님을 만난다.
그는 자기소개 시간, 대부분의 중년 학생들이 각자 살아온 시간을 설명하며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데 반해 ‘그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면서 혹은 순댓국을 먹으며 동병상련의 기분을 나누어 가진다.
이후 이어지는 소설들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가 펼쳐진다. ‘너무 좋은 사람’의 무해함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모순적인 생각(「미소를 기다리며」), ‘기훈’의 전 애인인 내가 그의 또 다른 전 애인에게 느끼는 묘한 감정(「구 여친 클럽」), 오래된 연인 사이 어긋나는 타이밍(「벚꽃 엔딩」)과 서로의 ‘엄친딸’로서 살아온 두 동갑내기의 일생(「지민이와 나」)까지. 그 일련의 관계들 속에서 유독 경쾌한 시선은 ‘요가원에서’ 멈춘다.
긴 시간을 건너 한 요가원에서 다시 만난 두 친구는 서로에게 너는 ‘좀 다르게’ 살 줄 알았다고 고백한다. 대학 시절, 더러운 연못에 빠진 채로 폭소했던 둘의 장면이 그 고백 뒤로 스쳐 지나간다(「요가원에서」).
두 번째 장의 시공간은 익숙한 골목부터 바닷가, 여행지와 이국의 어느 중앙역 계단을 넘나든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들에 관해” 적어낸 이야기들이다. 그 가운데 드러나는 풍부하고도 아름다운 문장들은 우리에게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광경을 선사한다.
특히 후반부에서 연달아 이어지는 세 편을 읽고 나면 “두꺼운 구름”이 “머리 위에서부터 피어올라 마을 전체로 퍼져가고 있는” 듯한(「네미」)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물속에서 올려다보는 것처럼” 일렁이고 흩어져 희뿌옇게 흘러가는(「고래 울음」), 해 질 녘의 초원을 느릿느릿 걸어가는 코끼리 무리처럼 마치 “시간의 속도에 저항하는 듯한”(「엘리펀트」) 모든 다정한 움직임을 감지하게 된다.
세 번째, 네 번째 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문진영 작가가 이전 책들에서 보여주었던 청춘의 현실을 담고 있으면서 낭만적인 쓸쓸함 또한 엿보게 한다. 표제작 「햇빛 마중」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성언’은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 새벽마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린다. “
같은 코스를 달려, 같은 시간에 잠들고 깨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애써 무언가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다. 그러던 어느 날 근처 편의점에서 우는 남자를 마주치는데, 짧은 대화가 오간 뒤 남자가 일어나 걷기 시작하자 성언이 그 뒤를 따라 걷는다. 담배를 나눠 핀 두 사람은 대교 위 환하게 빛나고 있는 불빛을 함께 바라본다. 남자와 헤어진 성언은 다시 달린다. 흐흐흐, 하고 실없이 웃어도 본다. 마치 햇빛을 마중 나가는 중인 듯한 그의 등 뒤로 동이 터온다.
작가는 앞선 소설들에서 보여준 관계에 이어 또 다른 관계들, 특히 동식물과의 관계를 세밀하게 드러낸다. 잃어버린 길고양이를 향한 상실감과 끝나지 않을 애정(「봄의 실종」), 떠돌이 개의 시점에서 쓰인, 역경과 질병이 뒤따르는 길 생활 이야기(「어이」), 낡은 동물원에서 보았던 북극곰에 대한 기억 등, 내내 우리 곁에 있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던 순간들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한다. 이는 일상의 장면 장면을 들여다보는 그만의 고유한 시선 속 자연스러운 이동이자 포착일 것이다.
작가 문진영 소개
2009년 제3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담배 한 개비의 시간』과 소설집 『눈속의 겨울』을 펴냈다. 2021년 단편 「두 개의 방」으로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림 박정은 소개
기억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대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졸업한 뒤로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하루에 한 장씩 그린 그림을 엮은 『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와 삶 속에서 위로를 받은 순간들을 그린 『뜻밖의 위로』, 『공간의 온도』, 『내 고양이 박먼지』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여러 책에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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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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