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392)]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
하성란 저 | 마음산책 | 356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쉽게 쓰지 않는 작가’ 하성란. 올해로 등단 18년을 맞이한 그가 10여 년 동안 써온 62편의 산문집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를 내놓는다. 신문 칼럼을 모은 첫 산문집 『왈왈』 이후 햇수로 4년 만, 등단 후 1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썼던 글들, 작가의 성장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산문집이다.
이번 산문집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는 4부로 나뉘어 있다. 먼저 ‘사랑을 잃은 자, 쓰라’(제1부)는 작가로 살며 겪는 일들과 읽고 쓰는 가운데 드는 생각들을 묶었다. ‘옥상에는 볕이 한가득’(제2부)은 아내이면서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딸인 여자로서의 일상이 펼쳐져 있다. 이어서 ‘눈에서 멀어진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제3부)는 머물렀던 혹은 스쳐 지나온 장소들에 대한 기억과 마음을, ‘비에 젖은 자는 뛰지 않는다’(제4부)는 지금 여기, 우리 사회 문화와 삶을 응시하는 시선을 담았다. 요컨대 이 책을 가로지르는 단 하나의 핵심어는, ‘하성란’이다.
하성란의 소설은 서사의 씨줄과 날줄을 촘촘하게 짜 올려 소설의 결을 풍부하게 만든다. 이 정교한 구조를 떠받치는 것은 군더더기 없는 문장의 힘이다. 그의 소설은 질박하고도 단단한 문장에 힘입어 독특한 색채를 띠는 것이다. 이번 산문집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는 정갈한 하성란 문체의 정수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그의 문장의 힘은 그가 꾸려가는 현실 세계에 흔들림 없이 발 딛고 서 있음에서다. ‘작가 하성란’의 뒤에는 그가 품고 있는 여러 얼굴이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인 하성란, 두 여동생을 둔 맏언니 하성란,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인 하성란, 직장인 하성란. 부단히 글을 쓰는 가운데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여러 얼굴을 담담하게 소화해왔다. 누구에게나 때로는 버겁고 고단할 일상을 묵묵히 밀어 올리며, 읽고 쓰고 살아가는 일. 현실에서 유리되지 않은 작가의 글쓰기는, 건강히 살아 숨 쉰다.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 곳곳에는 유년 시절, 문청 시절의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난 시간 속에서 작가는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자랐고, 엄마가 되었다. 단어와 단어, 글줄과 글줄 사이에, 작가의 인생이 흐르고 있다. “연애란 그 사람의 우주를 덤으로 얻는 것”이라는 본문 속 구절을 빌려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하성란이라는 사람의 우주를 덤으로 얻는다.
2부인 ‘옥상에는 볕이 한가득’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것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엄마의 시선으로 아이들에 관해 적은 글도 있고, 작가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시부모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이 글들이 헤쳐 모인 순간, 어떤 가계도가 떠오른다. 어찌 보면 대가족을 한데 모아 찍은 가족사진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누구나 혼자 태어나 혼자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근본적 관계인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라나고 키우고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어떤 한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이 작가의 성장담이라면 더 풍요로운 세계의 눈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자라왔으며, 저마다의 관계망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되짚어주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하나씩 따라 읽다 당도하게 되는 것은 결국 ‘나’일 것이다.
이 산문집이 가장 빛나는 것은 희망에 대한 작가의 소박하고도 긍정적인 응시다. 그것은 거창한 수사, 혹은 그럴듯한 꾸밈새가 아니다. 다른 듯 닮은 하루하루를 그저 묵묵히 꾸리는 가운데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은 마치 ‘무슨 소식을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다.
작가 하성란 소개
깊은 성찰과 인간에의 따뜻한 응시를 담아낸 섬세한 문체로 주목 받아온 작가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풀」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탁월한 묘사와 미학적 구성이 묵직한 메시지와 얼버무려진 작품을 쓰며, 평소 일상과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자신의 대답을 적어 내려가는 노란 메모 노트를 늘 인터뷰 시에 지참한다. 이러한 습관을 통해 작품 속 작은 에피소드에서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아낸다.
거제도가 고향인 부친이 서울에 올라와 일군 가족의 맏딸이기도 한 그녀는, 부친의 사업 실패로 인문계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여상(女商)을 졸업한 뒤 4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청춘의 초반부를 보냈다. 뒤늦게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소설을 쓰면서 '언젠가는 그 소설의 울림이 세상의 한복판에 가 닿는다고 믿는 삶'을 꿈꿨다.
습작시절, 신춘문예 시기가 되면 열병을 앓듯 글을 쓰고 응모를 하고 좌절을 맛보는 시기를 몇 년 간 계속 겪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6년 그녀가 스물 아홉이던 해, 첫 아이를 업은 상태에서 당선 소식을 받았으며, 1990년대 후반 이후 늘 한국 단편소설의 중심부를 지키고 있다.
일상과 사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스타일로 '정밀 묘사의 여왕'이란 별칭을 얻으면서 단편 미학을 다듬어온 공로로 동인문학상(1999)·한국일보문학상(2000)·이수문학상(2004)·오영수문학상(2008)을 잇달아 받은 중견작가이다. 그녀의 소설은 지나치게 사소한 일상에 몰두하다 보니 사회에 대한 거시적 입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 심리와 사물에 대한 미시적 묘사를 전개하면서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곰팡내 나는 쓰레기 더미 속에 숨어 있는 존재의 꽃을 찾아간다'는 1999년 동인문학상 심사평은 여전히 하성란 소설의 개성과 미덕을 잘 말해준다.
대학 동문인 부군과 함께 운영하는 출판기획사에서 일하면서 창작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이 곳은 그녀에게 생긴 첫 작업실이기도 한 셈인데, 그 전에는 부엌과 거실 사이에 상을 하나 펴놓고 새벽녘 텔레비전에서 계속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썼다. 어느 대학 기숙사에 방을 얻어 한 달 동안 글 쓰겠다고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나왔다고 한다. 2009년부터 방송대학TV에서 '책을 삼킨 TV' 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얼마 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작품을 심사하기도 하였다. 현재 살아있고 같이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특히 '권여선'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저서로는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 『웨하스』『여름의 맛』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내 영화의 주인공』 『A』 사진산문집 『소망, 그 아름다운 힘』(공저) 등이 있다. 최근 동료 여성작가들과 함께 펴낸 9인 소설집 『서울, 어느날 소설이 되다』에 단편 「1968년의 만우절」을 수록하였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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