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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425)] 풍아송

[책을 읽읍시다 (425)] 풍아송

옌롄커 저 | 김태성 역 | 문학동네 | 616쪽 | 21,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국내에서 가장 뜨거운 작가, 폭발력 있는 작가, 쟁의가 가장 많은 작가로 손꼽히는 옌롄커. 그의 국내외 수상 경력과 여러 나라 대학이나 학회에서의 화려한 문학강연 활동을 보면, 이제 그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세계적 작가임에 틀림없다. 1996년 중편 『황금동』으로 제1회 루쉰문학상 수상, 1997년 『연월일』로 제2회 루쉰문학상 수상, 2005년 『레닌의 키스』로 제3회 라오서문학상 수상 등 자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휩쓴 것은 물론, 해외에서도 2012년 『딩씨 마을의 꿈』으로 타이완 ‘독서인상’ 수상, 전지구 화어華語 10대 양서 선정, 영국 ‘맨아시아문학상’ 최종후보, 『파이낸셜 타임즈』 ‘올해의 책’ 선정과 더불어 『사서』로 프랑스 ‘페미나문학상’ 최종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의 제목 ‘풍아송’은 원래 『시경』에 나오는 내용별 분류 체제를 가리킨다. 즉 ‘풍風’은 남녀의 애정을 주로 다룬 여러 제후국의 민요·민가이며, ‘아雅’는 조정의 의식에서 주로 불린 시가이고, ‘송頌’은 선조의 덕을 기리는 종묘 제의용 악시다. 옌롄커는 이 체제를 차용해 자신의 소설 형식을 변주했다. 이 소설은 돌림노래처럼 이 세 개의 악장이 돌아가며 반복된다. 『시경』의 각 시에서 빌린 제목의 낱낱의 장들은 밀도감 있는 심리 묘사와 빠른 이야기 전개로 한 편의 완결된 시적 정경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이 소설의 맨 첫 페이지에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 양커 교수가 자신의 연구 저작을 두고 한 이 묘사가 곧 옌롄커가 이 책을 쓰며 가닿고자 한 글쓰기의 지향점임을 짐작해볼 수 있게 한다.

 

『시경』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이자 중국인들의 정신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경전이다. 약 2000여 년 전, 즉 서주西周에서 춘추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공자가 민간에 떠돌던 시 삼천여 편 가운데 삼백다섯 편을 골라 채시한 시가집에서 옌롄커는 이 소설의 주요한 형식과 내용의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기존에 문화대혁명 시기의 현실 정치에 들이댔던 날선 비수를 이제 중국 문화정신의 근간을 이룬 이 경전의 고대적 시간과 무게에 들이댄 건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내용적 측면에서 보자면, 주인공 양커 교수의 행보는 아주 문제적이다. 바러우산맥의 시골 출신 그는 현재 입신양명하여 베이징 유명 대학의 교수이자 『시경』을 연구한 권위자이다. 오 년 간 공들여 쓴 오십만 자 분량의 연구서를 들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침실에는 자신의 아내이자 동료 교수 자오루핑이 훗날 총장으로 취임할 리광즈와 뒹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모래폭풍에 휩쓸려 쓰러져가는 대학건물을 지키려던 대학생들과 우연한 계기로 함께하다 정치적 교수사회의 표적이 되어 뜻밖에도 정신병원 환자로 둔갑된다.

 

대학 내에서 배척되던 그의 강연 기회는 황당하게도 정신병원 환자들과 홍등가로 변모한 고향 천당 거리의 여자들에게 베풀어진다. 또한 공자가 채록에서 빠뜨리거나 삭제된 사라진 시편을 찾으려는 그의 학문적 이상은 고향 바러우산맥에서 자신만을 사랑했고 그 사랑의 체념으로 죽어간 링쩐이라는 여인과 그녀의 딸 샤오민에 대한 일그러진 사랑의 양태로 변모한다. 그는 과연 자신의 붕괴된 학문적 이상을, 누락되어 사라진 시들을, 황폐해진 사랑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지식인으로 자부하는 이들 앞에서 양커 교수는 매번 숱한 유혹과 갈등의 시험대에 오른다. 그의 선택과 행동이 곧 지신인의 실천이자 정신의 지표인 셈이다. 그가 부딪히는 심판의 문들 앞에서 해나가는 그의 선택이 이 서사를 이끄는 동력이다. 그러나 그가 ‘마치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산 전체를 정복하려는 것처럼’ 이들에게 오히려 무릎을 꿇는 행동은, 지식인으로서의 무기력과 나약함을 반증한다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단속이자 타인의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는 기도와 같다. 이 주객이 전도된 자세란 얼마나 부조리한가.

 

자오루핑과 리광즈의 불손한 결탁 아래 펼쳐지는 교수사회의 횡포로부터 도망한 고향도 이미 예전의 고향이 아니다. 고향은 그에게 환락과 살인과 위선과 무기력과 허무의 얼굴로 뒤범벅된 또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고향에서 그는 링쩐과의 영혼혼례식에서 환상 같은 현실, 현실 같은 환상처럼 링쩐의 관에 몰려든 한겨울의 나비를 본다.

 

특히 이 소설의 기이한 마지막 결말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고향 인근 황하 유역의 시성詩城에서 공자가 누락한 이백여 편의 시가 흩어진 바위와 돌을 발견해낸 양커 교수와 여기저기서 왜곡된 현실로부터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세계를 꿈꾸며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교수들과 아가씨들이 벌이는 오줌 갈기기 시합은 이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부조리(荒誕)하고 그로테스크(怪誕)한 서사미학의 결정이다. 그리하여 옮긴이 김태성은 “리광즈와 자오루핑이 만든 지식의 권력과 그 기제를 양커(어쩌면 옌렌커 자신)가 발견한 『시경』의 진실로 극복할 수 없는 아연한 현실에 대한 좌절을, 서른 명의 교수와 스물일곱 명의 창녀들이 만드는 그로테스크한 조합과 이들이 벌이는 오줌 갈기기 시합으로 ‘시원하고 방자하게 발길질한’ 것이 이 작품인지도 모른다”라고 일갈한다.

 

중국 언론에서는 ‘가오싱젠’이 중국 부조리극의 최고봉이라면 옌롄커는 중국 부조리서사의 정상이다. 마르케스가 마술적 리얼리즘의 원형이라면 옌롄커의 이 작품은 중국 마술적 리얼리즘의 전형이다’라는 말로 상찬했다. 일례로 중국 최고의 평론가이자 상하이 푸단대학의 교수 천쓰허는 옌롄커 문학에서의 부조리한 세계상에 관한 심미적 포착을 ‘괴탄 사실주의’라는 말로 명명했다. 옌롄커 특유의 서사, ‘부조리(absurdity) 현실주의’로 규정되는 옌롄커 문학세계의 결정적 한 수가 바로 이 작품 『풍아송』이다.

 

 

작가 옌롄커 소개

1978년부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후 1985년 허난대학 정치교육학과를 거쳐 1989년 해방군예술대학 문학과에 입학하면서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지금까지 11편의 장편소설과 8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비롯한 다수의 수필과 산문을 발표했다.

 

작가의 주요 작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출간 즉시 당국으로부터 판금조치와 함께 전량 회수된 일화로 유명하다. 2005년 봄 광저우의 문예지 <화청 花城>에 게재된 이 작품은 마오쩌둥의 사상과 위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출간 되자마자 출판,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을 할 수 없는 이른바 '5금(禁)'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강압적인 탄압이 국내외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오히려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켜 자국 내에서는 온라인을 통해 몰래 돌려보는 금서로, 국외로는 미국과 일본, 대만, 네덜란드 등 전 세계 10여 개국에 소개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 『즐거움(受活)』 『풍아송(風雅頌)』『일광유년(日光流年)』 『물처럼 단단하게(堅硬如水)』등이 있다. 제1, 2회 루쉰 문학상과 제3회 라오서 문학상을 비롯한 20여 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중국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옌롄커는 중국작가협회 위원, 북경시 작가협회 전업 작가로 활동하면서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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