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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577)] 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저자
셰르스티 안네스다테르 스콤스볼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4-10-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삶은 원래 그런 거예요. 아주 별로라고요.” 전 세계 2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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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577)] 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셰르스티 안네스다테르 스콤스볼 저 | 손화수 역 | 시공사 | 188쪽 | 10,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노르웨이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나 데뷔작 하나로 전 세계를 매료시킨 셰르스티 안네스다테르 스콤스볼의 소설 『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스콤스볼은 오슬로 대학에서 수학과 컴퓨터를 전공하고 졸업 후 문학으로 전향해, 서른 살이 되던 해인 2009년 『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라는 독특한 제목의 첫 소설을 발표했다. 2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이 짧은 소설 속에 인간 존재의 피할 수 없는 고독과 소멸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유머와 재치로 풀어낸 솜씨가 단연 보석과 같다는 평을 받으며 스콤스볼은 그해 신인 작가에게 주어지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타리에이 베소스 상’을 수상하고 비평가들이 뽑은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렸다.


서른 살이라는 아직 젊은 나이에 고독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여유롭게 감싸 안을 수 있는 내공은 작가의 독특한 이력에서 기인한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가는 ‘ME', 즉 소위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알려져 있는 질병인 ‘근육통성 뇌척수염(Myalgic Encephalomyelitis)’으로 바깥 생활을 거의 하지 못하고 온종일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고 한다(이 병명의 첫글자인 ‘M'과 ’E'는 작품의 두 주인공인 ‘마테아Mathea’와 ‘엡실론Epsilon’의 이름에 각각 반영되었다). 이때 자연스럽게 작가의 눈에 들어온 것이 대자연에 속한 유한한 인간의 고독과 소멸이라는 실존적 고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의 시간들은 작가의 내면에서 오랜 숙성의 시간을 거치며 문학적 섬세함으로 승화됨은 물론 고통을 고통스럽게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는 성숙함을 갖게 했다. 독특한 유머와 재치로 시종일관 유쾌하게 책장을 넘기다가 마지막 문단을 다 읽고 나면 돌연 삶의 비애를 통찰하게 되는 놀라운 힘은 바로 이 짧은 이야기가 작가 자신의 긴 고통의 시간을 거쳐 나온 진주 같은 결정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북유럽이라는 낯선 지역에서 날아온 한 권의 소설이 전 세계 25개국 독자의 가슴을 울릴 수 있었던 것 역시 작가와 작품이 가진 이러한 진정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마테아 마르틴센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놀랍도록 작고 보잘것없어서 남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죽음을 앞둔 백 살 가까운 할머니다. 학교에서도 출석을 부를 때 호명된 적이 없고, 이웃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할 때도 자신을 찾아내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병돌리기 게임에서도 한 번도 병이 자신을 가리킨 적이 없었기에, 어느 맑은 날 번개가 자신의 이마에 두 번 내려쳤을 때는 번개가 자신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번개에 맞은 며칠 뒤, 언제나처럼 쉬는 시간에 운동장 구석에서 혼자 돌멩이 개수를 세고 있던 마테아에게 정말 기적처럼 한 남자 아이가 다가와 “운동장의 돌멩이 개수는 큰 것 작은 것 가리지 않고 세었을 때 전부 345개”라고 알려주었다. 마테아는 이 아이에게 ‘엡실론’(수학에서 가장 작은 수를 나타내는 기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둘은 학교를 졸업하자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마테아의 삶에는 오직 자신과 엡실론뿐이었다. 엡실론이 출근을 하면 늘 혼자 있었지만 마테아는 한 번도 외롭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다. 물론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엡실론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은 언제나 어색하기만 했던 그녀였기에 아침 신문을 가지고 들어올 때도 이웃이 없을 때를 골라 문을 열고, 장을 보기 위해 유일하게 집 밖으로 나갈 때도 복도에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을 때까지 예의 주시를 하곤 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그녀였지만 엡실론이 직장에서 은퇴한 후 곧바로 세상을 떠나자, 세상에 자신이 존재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문득 두려워졌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누군가처럼 자신도 죽은 지 20년 만에 잠옷 속에 뼈로만 남은 채로 발견이 되는 건 아닐까.


마테아는 마침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114에 전화를 걸어 거듭 자신의 번호를 물으며 자신의 전화번호가 전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번호 ‘베스트 10’에 꼽히는 상상을 하고, 아파트 마당에 자신의 흔적을 담은 타임캡슐을 묻는 등 엉뚱한 행동들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게시판에 주민 대청소 안내문이 붙은 것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는 동시에 엄청난 갈등에 휩싸인다.


자신이 대청소에 참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테아는 빵을 구워 모임에 나간 자신이 가장 인기 있는 주민으로 뽑혀 헹가래를 받는 공상에 빠지며 빵을 구웠다. 하지만 그것들을 들고 나갈 용기는 없었기에, 결국 창밖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날이 저물 때까지 혼자서 구운 빵을 다 먹었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인, 동네 노인회관에서 마련한 ‘만남의 시간’에 용기를 내어 참석을 하지만, 평생을 세상과 단절해 살아온 마테아에게는 결코 쉬울 리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한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세상 어느 누구도 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마테아라는 한 여인의 ‘이상한’ 삶을 통해 유쾌하고도 가슴 아프게 그려 보이고 있는 이 소설은 “사고와 행동 모두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지만 심하게 사랑스러운 주인공”을 통해 삶의 이면에 숨겨진 비애를 수준 높은 비극적 코미디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작가 세르스티 안네스다테르 스콩스볼 소개


1979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났다. 오슬로 대학에서 수학과 컴퓨터를 전공했으나 이후 문학으로 전향, 서른 살인 2009년 첫 소설 『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를 발표하며 노르웨이 문단의 혜성으로 떠올랐다. 이 소설로 신인 작가에게 주어지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타리에이 베소스 상’을 수상하고 비평가들이 뽑은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리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그해 노르웨이 서점협회 대상을 수상하고 라디오 청취자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 후보에 오르는 등 대중적인 인기도 놓치지 않았다. 인간의 고독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머와 재치를 통해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자아낼 뿐 아니라 마지막 한 문단을 통해 돌연 삶의 비애를 통찰하게 하는 솜씨가 압권인 이 소설은 2013년 데뷔작으로는 드물게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 최종 후보로 올라 국제적인 명성을 거머쥐었다.


2014년에는 연극으로 각색되어 노르웨이 전역에서 상연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25개국에 번역 소개되었다. 그 외 작품으로 장편 『괴물인간』(2012)과 시집 『작고 슬픈 수학』(2013)이 있고, 현재 여 러 매체에 단편과 시와 에세이 등을 발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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