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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799)] 목련 정전

 
 
[책을 읽읍시다 (799)] 목련 정전

최은미 저 | 문학과지성사 | 356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소설가 최은미의 두번째 소설집『목련정전』. 이번 작품에서는 지옥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아홉 편의 소설을 관통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했던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아름다운 장면들 안에 숨겨진 환한 지옥들이 펼쳐진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개인들 의 정념과 강박이 모여 아비지옥을 이루는 우리 삶의 민낯을 마주 하게 될 것이다.


마치 여름밤에 호롱불 앞에 모여 옛날이야기를 듣듯, 재미난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생각지도 못한 서늘한 결말에 닿게 된다는 점이 최은미 소설의 매력이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이 책의 해설에서 “최은미가 그려내는 세계는 전도된 마법의 세계이다. 이 작가는 동화나 설화의 형식을 즐겨 차용하되, 마법과 주술로 현실의 갈등과 모순을 상상적으로 봉합하는 대신 그것들을 원재료 삼아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알레고리로 만든다”고 강조했다. 특히 표제작 「목련정전(目連正傳)」과 「나리 이야기」에서는 직접 「목련경」과 「정토삼부경」을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동국대학교 수학 후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불학연구소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작가의 불교적 세계관이 엿보이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경전 속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극락으로 모시는 데 성공하는 데 반해 소설 속 소녀 목련은 엄마의 눈앞에서 목을 매고, 귀자모신 설화의 하리티는 속죄하여 해탈하지만 소설 속 유괴된 소년은 하리티의 속죄 전에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운명이다. 또한 동화 「라푼젤」을 연상시키는 「라라네」에서는 이가 들끓는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라라가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서 집을 나가고, 「한밤」은 2만 6천 년 만에 태양계가 은하계 중심에 정렬하는 동짓날 등장인물들이 유년기를 보낸 북문이 무너져 내리는 등 모두 동화적이고 신화적인 서사 안에 철저한 재난의 풍경이 담겼다.


최은미 소설은 온갖 강박증자들이 모인 세계다. 「창 너머 겨울」의 ‘나’와 어머니는 ‘곰팡이’로 기억되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락스와 항진균제에 빠져 있고, 「라라네」의 라라는 외로움을 피해 긴 머리카락과 자위에 집착하며, 「백일 동안」의 강상기는 잃어버린 모성의 재건을 위해 제이봉에 세울 자미재에 매달린다. 부령을 찾아 평생을 떠도는 봉산리 사내(「겨울 고원」)와 최고의 유전 능력을 가진 씨수소의 정자에 미쳐 있는 류(「어느 작은」)도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 견디기 힘든 삶의 굴곡과 결핍을 피해 피난처와 대체품을 찾으려 매진한 이들이지만 결국 이러한 강박이 인물들을 옥죄어 더욱 불행한 삶을 살도록 한다. “불완전한 모습으로 인한 고통에 천착”하여 “사람의 삶을 제약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조건”,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無明)”의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다고 일전의 한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는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섣부른 가치판단 없이 인간의 정념과 집착이 낳은 지옥 같은 삶의 모습을 섬뜩할 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일상은 이해할 수 없는 재난으로 채워지고, 개인들의 비극이 모여 세계는 아비지옥을 이룬다. 이러한 인식이 최은미 소설의 출발점이다. 세상 어디에서는 또 무너지고, 가라앉고, 터지고, 죽고 죽이는 일들이 반복된다. 최은미의 소설은 이러한 비극들을 잊어버리고 거짓 희망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보다는, 목격하고 증언하며 이유를 치열하게 묻는 것이 생을 지옥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를 묻고 있다.



작가 최은미 소개


최은미는 1978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2008년 현대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울고 간다」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4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고, 2014년과 2015년에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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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