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947)] 에펠탑만큼 커다란 구름을 삼킨 소녀

[책을 읽읍시다 (947)] 에펠탑만큼 커다란 구름을 삼킨 소녀
 

로맹 퓌에르톨라 저 | 양영란 역 | 밝은세상 | 288쪽 | 13,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프랑스 문단을 뒤집은 이단아, 로맹 퓌에르톨라의 두 번째 소설 『에펠탑만큼 커다란 구름을 삼킨 소녀』. 꽃무늬 비키니 차림으로 수통과 단돈 50유로를 몸에 지니고 화산재 덮인 하늘을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미녀 집배원의 유쾌한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액자형 구성을 선택했다. 남이 해주는 이야기, 특히나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하늘을 날겠다며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을 사람이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실제 국가적 재난이 닥치게 되었을 때, 위기에 대처하는 여러 상황과 각각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태도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소설 속 화자 레오 마샹은 오를리 공항에서 항공 관제사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이발을 하기 위해 미용실을 찾는다. 미용실에는 손님이라고는 한 명도 없고 오직 자신과 나이 든 미용사 둘뿐이다. 자리에 앉은 레오 마샹은 무거운 침묵을 깨며 미용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겠냐고 물으며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의 집에 우편물을 가져다주는 아주 어여쁜 아가씨 집배원이 있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자신이 일하는 관제 센터로 찾아와 자신의 이름은 프로비당스라고 밝히며 하늘을 나는 걸 허락해 줄 수 있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여자 집배원이 비키니 차림이라는 것.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노 미용사는 특히 이 대목에서 마샹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한다. 미용사는 모든 걸 다 알고 싶다는 표정이고, 마샹은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싶다는 표정으로.


프로비당스는 모로코에 있는 입양 딸 자헤라를 만나러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오를리 공항을 향한다. 자헤라는 태어날 때부터 점액과다증을 앓고 있다. 이 병은 마치 어린 자헤라의 폐 속에 에펠탑보다 큰 구름을 삼킨 것 같은 느낌을 주며 산소호흡기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병이다. 실제 작가는 그레고리 르마르샬(1983~2007)이라는 점액과다증으로 사망한 프랑스의 가수의 사례를 다루었다.


프로비당스는 모로코에서는 고칠 수 없는 자헤라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모로코로 향하는 길에 공항 직원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듣는다. 아이슬란스에서 발생한 화산 분화로 인해 하늘이 온통 화산재 구름으로 뒤덮여 모든 항공편이 결항됐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모로코로 갈 방법을 궁리하던 프로비당스는 우연히 중국 해적처럼 생긴 한 남자를 만나 직접 하늘을 날아 모로코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고, 하늘을 날기 위한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춘다.


첨단 과학이 발달하고 각종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프로비당스의 비행은 그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언뜻 정말로 하늘을 난다고? 하며 터무니없는 이야기일 뿐이라 여겨질지도 모른다. 사실 엄청난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이 맨몸으로 하늘을 날았다는 이야기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다. 로맹 퓌에르톨라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프랑스 소설 특유의 유머로 익살스럽게 풀어냈다.


프로비당스가 하늘을 날며 오바마와 올랑드 대통령을 만나고, 위협적인 적란운을 만나 추락하며 슐뢰족에게 붙잡혀 간신히 목숨을 구하는 등의 종횡무진 하늘과 지상을 누비고 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이야기의 긴장과 몰입감을 더하며 저절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또한 프로비당스가 죽어가는 딸을 구하기 위해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과 맞닥뜨리며 스스로 대처해 나가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유쾌한 웃음과 신선한 감동을 제공한다.


저자는 『에펠탑만큼 커다란 구름을 삼킨 소녀』를 통해 실제 국가적 재난이 닥치게 되었을 때, 위기에 대처하는 여러 상황과 각각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태도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그럼에도 프로비당스라는 여자 집배원, 한낱 개인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스스로 하늘을 나는 방법밖에는. 저자는 개인이 모든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이런 사회적 병폐 구조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국가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행복은 물론, 이런 국가적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국가적 재난 시스템 역시 재정비돼야 할 것이라 말한다.



작가 로맹 퓌에르톨라 소개


1975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서 태어났다. 스페인계 아버지와 프랑스계 어머니를 두었으며, 스페인 문학, 프랑스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언어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그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카탈루냐어,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데뷔작 『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은 2014년 프랑스 문학상인 쥘 베른상, 오디오북으로 출간된 책을 대상으로 주는 오디오립상, 프랑스 발디제르 지방에서 수여하는 비브르 리브르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 36개국에 번역 출간되었으며, 출간 6개월 만에 30만 부가 팔려 나갈 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 목각 인형 마트로시카처럼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기를 갈망했던 그는 유럽을 종횡무진 누비며 DJ, 작곡가, 어학 교사, 통·번역가, 항공기 승무원, 서커스단 소속 마술사, 슬롯머신 청소원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다.


현재는 국경 담당 경찰로 근무하며 문서 위조를 가려내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을 오가며 무려 31차례에 걸쳐 이사를 다녔을 만큼 여행과 이동은 그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은 실제 국경 담당 경찰로 근무하며 만난 밀입국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쓰여졌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