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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칼럼] 정의와 도덕을 중시하는 지도자가 있어야한다​

[칼럼] 정의와 도덕을 중시하는 지도자가 있어야한다

▲김동진 논설위원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김동진 논설위원] 해가 바뀌자마자 찾아온 극한 추위가 50년만이네 100년만이네 하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아무리 추워 봐도 며칠 지나면 또 따뜻한 날이 찾아오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게 세상살이다. 이처럼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어떤 틀이 있어 그 규격에 따라 우리는 예측하며 살고 있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컴컴한 밤길에 불빛 하나 없이 낯 설은 길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런데 지난 1년은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는 통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도무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지나갔다. 세계적 대유행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중국에서 발원했다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가뜩이나 사이가 좋지 않은 중국에서 퍼진 바이러스에 미국이 당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대통령은 평소에 호언하던 습관으로 약간 독한 감기 정도로 무시하다가 막상 자기 자신이 코로나에 감염되는 최악의 사태를 겪기도 했다.

 

영국 프랑스 브라질의 정권 수반들도 이를 비켜나지 못하고 모두 코로나 맛을 독하게 쐬었다.

 

그 와중에 트럼프는 11월 대선에서 바이든의 추격에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대부분의 평자들은 입을 모아 트럼프 재선을 예측했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오랜 의회생활로 다져진 바이든은 여러 차례 대선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다가 이번에 대어를 낚았다. 선거라는 게 원래 본인이 잘나고 똑똑해야 된다는 공식이 있긴 하지만, 상대를 잘 만나면 두엄자리에서 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바이든이 다른 사람과 대결했다면 평범한 후보로 좌절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될 가능성이 많았다. 그는 이미 80직전의 고령자로 정치인으로서 성수기는 지나고 있던 사람이다.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은 샌더즈와 공천 경쟁을 벌인 것부터 행운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를 상대하여 그의 독설과 패기를 이겨내리라고는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했다. 더구나 트럼프에게는 콘크리트 지지자들이 언제나 47% 정도 유지되어 왔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이미 한 물 간 바이든이 이를 이겨내고 승리를 쟁취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평까지 나왔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게 트럼프의 자충수였다. 그는 승세에 도취하여 마구잡이식 선거운동에 빠졌다. 세계의 경찰국가라는 미국의 위상은 형편없이 낙하했다.

 

절대적 우방국인 동맹국들을 무시하거나 깔보는 발언을 여과 없이 해냈다.

 

대통령의 품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미국제일주의 깃발만 나부꼈다. 혈맹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에 대해서도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5배 인상하라고 다그쳤으니 동맹국이 아니라 협잡꾼처럼 느껴졌다. 북한 김정은을 만나는 것도 핵 폐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뉴스로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한 쇼에만 관심을 가졌다. 이것은 김정은도 마찬가지였다. 핵을 폐기하고 경제제재를 벗어나 북한인민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원대한 비전은 아예 없었고, 오직 세계적 지도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보여주기 식 쇼 판으로 일관했다. 하노이회담을 끝으로 그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남남이 되었다.

 

이를 주선했다고 자부하는 문재인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처지로 전락하였고 이는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주도권 행사나 모든 길을 잃게 되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훈훈한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보였던 남북관계가 국제적인 동조 하에 멋지게 풀렸어야 한다는 국민의 염원만 안타까운 여운으로 남았다. 게다가 국내 정세는 조국사태와 추미애의 윤석열 찍어내기로 아까운 시간만을 낭비하고 말았다. 1년을 계속한 이 추한 싸움에서 윤석열만 값이 올랐다. 윤석열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대상으로 삼았다는 직업윤리에 충실했다가 엉뚱하게 대선주자로 부상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늘 겪는 일이지만 지도자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하늘에서 내린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올바르게 처신하고 그것이 국민의 마음과 일치하면 그는 자연스럽게 지도자로 부각되는 것이다. 필수조건은 정의와 도덕성이다. 지도자는 항상 정의 편에 서있어야 빛이 난다. 주변에 수없이 많은 지도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떤 문제점을 보는 판단력에서 부침(浮沈)이 갈린다. 정의와 도덕을 중시하는 지도자는 판단을 그르치지 않는다. 권력에 굴종하고 사익을 우선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는 불복중에 엄청난 저항을 보이는 태도를 다각도로 펼쳐 가다가 급기야 국가 전복에 버금가는 행동을 취하여 미의회 민주주의가 점령당하는 엄청난 과오가 발생되자 뒤늦게 대선 승복을 선언하는 평화적 정권이양을 발표하기도 하였지만. 미국민들의 들끓는 분노에 탄핵조차도 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드러나는 의회폭동의 참혹상등이 공개되면서 뒤늦은 아쉬움이 가득 펼쳐지고 있다.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가 촌철도 가지지 못한 야당후보가 부정선거를 했다고 뒤집어씌운다. 심지어 지지자,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트빠’들에게 의회로 전진하라고 부추겼다. 펜스에게도 선거무효를 선언하라고 압박 헀다. 이렇듯 무책임한 리더들은 나라를 좀먹는다. 금년에는 서울과 부산시장 보선이 있고 내년이면 대선이다. 우리의 리더를 약싹 빠른 쇼꾼에서 정의감이 투철한 인물로 뽑을 수 있어야 잘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글 : 김동진 논설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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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호남본사 대표 ksk36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