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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 칼럼 ] 진안고원에서 희망과 힘을 기른다

[ 칼럼 ] 진안고원에서 희망과 힘을 기른다

 

 

 

 

▲김동진 시사타임즈 호남본사 대표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칼럼 = 김동진 시사타임즈 호남본사 대표] 진안(鎭安)은 전라북도에 있는 기초단체의 이름이다. 많은 기초단체들이 군에서 시로 승격했지만 진안은 아직도 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산골이다.

 

전북에서 가장 대처(大處)로 통하는 전주에서 진안을 가려면 곰팃재라고 하는 험준한 고갯길을 통과해야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곰팃재는 이름그대로 곰들이 득시글거릴 만큼 깊은 산속이었으며 천야만야한 낭떠러지길이 굽이굽이 아흔아홉 고개를 넘어야 했다. 이 고개를 걸어서 넘으려면 하루 종일 걸려야 했으며 자칫 맹수와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공포의 고개였다. 자동차를 타고 곰팃재를 넘게 되는데 길은 좁고 구부러진 고갯길이라 속도를 낸다는 것은 죽음으로 달려가는 일이었다. 가장 느린 속도로 온 신경을 집중하여 넘어가야 했기 때문에 차에 탔던 사람들이 일부러 내려서 걸어가는 풍경도 흔했다.

 

6.25전쟁이 지루하게 3년을 끌며 진행되고 있을 때 퇴로가 끊긴 인민군 패잔병들과 일부 부역자들이 지리산을 근거지 삼아 빨치산 노릇을 했다. 그들의 본거지는 지리산이었지만 산악지대를 이용한 은폐와 신속한 행군으로 경찰지서를 습격하고 민간인을 공격하여 곡식과 의류 등을 약탈하는 일이 전국적으로 벌어질 때였다. 낮에는 경찰, 밤에는 빨치산 세상이라는 말이 퍼져나갈 만큼 빨치산의 활동은 극열했다. 곰팃재는 빨치산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고개 마루턱에 은신해 있다가 물건을 가득 실은 화물자동차가 지나가면 총을 쏘아 정지시킨 다음 모든 것을 약탈했다. 그들은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전주에서 곰팃재를 지나지 않고서는 진안과 무주, 장수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이 길은 간혹 빨치산들에게 노다지를 제공하는 훌륭한 영양의 보고가 되었다.

 

곰팃재는 지금은 이름조차 없어졌다. 직선으로 터널을 뚫었기 때문에 위험한 고갯길을 애써 찾을 사람이 없다. 험하기 이를 데 없는 대관령 고개가 이제는 한낱 관광을 위해서 일부러 찾아야하는 길이 돼버린 것과 똑같다. 곰팃재를 지나야 갈 수 있었던 진안에는 천하의 명산 마이산이 우뚝 서 있다. 그 자태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신비롭기도 하다. 해발 650미터의 높은 산은 아니지만 말의 두 귀가 쫑긋 서있는 모습으로 멀리서 보면 신비한 느낌을 준다.

 

마이산(馬耳山)에는 이갑룡 처사가 쌓은 돌탑이 있다. 이갑룡 처사는 전국을 돌며 돌을 수집해 탑을 쌓았는데 주탑의 높이는 7~8미터는 족히 된다. 일체의 접착제를 쓰지 않고 저렇게 웅장한 탑을 어떻게 쌓았는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바람이 세게 불면 꼭대기 첨탑은 좌우로 흔들리지만 바람 때문에 무너진 일은 없다고 하니 역학적 균형이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 진안에 가면 홍삼축제가 한창이다. 진안군수는 홍삼 홍보에 전문가적 식견을 가졌다.

 

마이산은 숫 봉우리와 암 봉우리로 나뉘어 있다. 암 봉우리가 몇 미터 높지만 올라가는 길이 따로 있다. 그러나 숫 봉우리는 깎아지른 절벽이 무려 18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암벽이다. 나는 처녀봉으로 알려졌던 이 봉우리를 전북대 산악회원과 함께 올랐던 일이 있지만 처녀봉은 아니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원래 전북이었던 금산이 5.16쿠데타 세력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충남에 편입된 후 진안은 인삼재배에 열을 올려 마침내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홍삼의 고장으로 태어났다. 충남편입은 쿠데타 세력의 힘에 의한 것이었지만 당시에도 전북에서는 열렬한 반대운동이 전개된 바 있다. 오늘날 같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 무지막지한 최고위원들이 길재호의 지역구를 확보하기 위해서 반대세력을 깡그리 무질러버린 것이다.

 

때마침 10월15일부터 3일간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동아리 축구대회가 진안에서 열렸다. 32개 팀이 참가한 이 대회 개막식에는 새벽같이 먼 길을 달려온 정세균 국회의장이 격려사를 하는 등 진안군민의 축제가 되었다. 이웃 무주와 남원 등지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참관했다.

 

국회와 진안군이 공동주최하고 도내언론사와 한국축구클럽연맹이 주관한 대회는 홍삼축구대회로 불릴 수도 있을 만큼 홍삼 얘기가 많이 나왔다. 실제로 홍삼을 먹고 자란 이 곳 출신 역도선수 전병관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으니 홍삼기운이 약여(躍如)함을 증명한 셈이다. 게다가 첩첩산중 조그마한 고장 진안 출신이 국회의장의 막중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홍삼을 먹고 힘을 기른 덕분 아니겠느냐 하는 웃음기 섞인 농담이 실감나게 통하기도 하는 것이다.

 

고인이 되었지만 요즘 부패청산의 대명사가 된 김영란법의 원조격인 청심(淸心)운동을 펼치며 5선을 기록한 전휴상의원도 진안출신이며, 풍자와 해학이 넘쳐흐르는 민주화운동의 첨병이었던 한승헌 전 감사원장도 이 고장 안천이 고향이다.

 

평균 해발 400미터 고원지대인 진안은 지난여름 그렇게 무더웠던 폭염도 스치고 지나갈 만큼 선선했던 곳이다. 진안의 멋진 산수와 인물들이 홍삼과 뒤섞여 희망과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글 : 김동진 시사타임즈 호남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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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