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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류성호 전 태백경찰서장 자서전 시선집중, 그 이유?…꿈을 이룬 후 또 하나의 꿈을 향해 도전하다

류성호 전 태백경찰서장 자서전 시선집중, 그 이유?…꿈을 이룬 후 또 하나의 꿈을 향해 도전하다

┃어릴 적에 품은 태백경찰서장의 꿈을 위해 공군사관학교 합격도 포기

오창학 목사, “오늘의 류성호 제자의 모습은 역경과 시련을 극복한 인내심의 열매다”

┃어릴 적 꿈을 이룬 류 전 서장, 또 하나의 꿈을 향해 도전하다

┃대형 종합병원과 전국 최대 요양시설을 유치,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드리도록 하겠다

 

 

[시사타임즈 = 엄무환 국장]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를 생각나게 하는 자서전 한 권이 장안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류성호 전 태백경찰서장의 자서전이 그러하다.

 

▲류성호 전 서장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에 600명의 인파가 몰려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c)시사타임즈


자서전 하면 으레 자기 자랑을 늘어놓은 책으로 평가되지만 류 서장의 자서전은 자기 자랑이라기보다 인생승리의 진정한 비결이 무엇인가를 담고 있어 품격을 달리하고 있다는 평이 자자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공무원의 9급에 해당하는 순경으로 출발하여 육군의 준장 계급인 경무관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생 드라마를 펼친 류 전 서장의 자서전은 꿈을 이루기 위해 그가 어떻게 시간관리 및 자기관리를 했는지, 그리고 경찰 업무를 감당하느라 휴일도 없이 지내야만 했던 바쁜 시간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섬김과 돌봄을 어떻게 했는지 등을 진솔하게 그야말로 꾸밈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7월 류성호 태백경찰서장 취임식에 참석한 황지고등공민학교 동문인 신현택 씨 (c)시사타임즈

◆ 신현택 씨, “고등공민학교 시절 경찰서장이 되겠다는 포부를 말한 친구가 인상적이었다”

 

류 전 서장과 황지고등공민학교 동문인 신현택 씨는 자서전에서 류 전 서장에 대해 “고등공민학교 학생들의 가정형편은 대부분 비슷비슷해 서로를 배려하며 헤아려 주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이었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한사람씩 일어나 장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대부분 선생님이 되고 싶다, 의사가 되고 싶다, 군인 장교가 되고 싶다 등 당찬 희망을 발표하였다. 어느 친구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했고 뒤이어 또 다른 친구는 경찰서장이 되고 싶다고 말하였다. 경찰서장이 되겠다는 포부를 말한 친구가 인상적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말한 직업에 대한 희망은 대부분 세월에 묻혀 버렸는데 의외의 포부를 밝힌 친구에 대해서는 어른이 되어서도 문득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았다”고 회고하면서 “졸업 후 태백을 떠난 친구들의 소식은 들을 수가 없었다. 자주 만날 기회도 없어 교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에 고등공민학교 시절 경찰서장이 희망이라고 말했던 친구가 꿈을 이루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날아갈 듯 기뻤다. 바로 그 친구가 2016년 태백경찰서장으로 부임한 류성호 총경이다”고 소개했다.

 

이어 신 씨는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절이 있었다. 자신이 좌우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사력을 다하면 꿈을 이룰 수 있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가난한 집 자식이 용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세태가 되어 버렸기에 더욱더 기쁨의 함성이 크게 터졌는지 모른다”며 “친구의 꿈이 이루어져서 사회적으로 덕을 본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황지고등공민학교 동창생이 어릴 때 밝혔던 그 소망이 이루어졌기에 내 자신이 꿈을 이룬 것처럼 기뻤을 뿐이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여 정상적인 고등학교 과정을 거쳤다면 경찰서장보다 사회적 직위가 더 높은 자리에 진출하였어도 덤덤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고 언급한 후 “역경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가난의 고통을 알 수가 없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척박한 땅에서 핀 들국화가 온실에서 화려하게 핀 장미보다 더 아름답고 향기가 있음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척박한 환경을 딛고 일어서서 마침내 경찰서장의 꿈을 이룬 류 전 서장의 입지전적인 삶에 대해 고등공민학교 동문으로서의 남다른 감회를 피력했다.


 

▲2016년 태백경찰서장 취임식에서 류성호 제자와 포옹하는 오창학 목사 (c)시사타임즈

◆ 오창학 목사, “오늘의 류성호 제자의 모습은 지난날의 역경과 시련을 극복한 인내심의 열매라고 평가하고 싶다”

 

황지고등공민학교 교장이었던 오창학 목사(전 황지교회 담임목사, 현 서울신촌장로교회 원로목사)도 자서전에서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태백은 탄광에 모여든 사람들이 사는 산골 동네다. 말이 좋아서 지하자원이 풍부한 대한민국 에너지의 창고라고 불렀지, 주민들의 실상은 눈물겨운 나날이었다. 어쩌면 태백은 슬픈 도시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청운의 꿈을 가지고 주경야독하는 고등공민학교 학생들이 많았다”며 “황지고등공민학교 많은 동문들 중에 제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자랑스런 학생들은 지금도 저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며 생명수처럼 걸어 온 목회의 길을 수놓고 있다. 그 중에서 저에게 큰 감동을 준 학생이 있다. 류성호 제자이다”고 소개했다.

 

오 목사는 “류성호 학생도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광부의 아들로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형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운명의 날들이었다. 불굴의 의지로 매일 신문을 돌리며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학용품을 사서 쓰며 오직 면학에 모든 것을 쏟는 열정적인 학생이었다”면서 “유심히 류성호 학생을 관찰하며 지켜보았다. 류성호 학생은 고등공민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영주 중앙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졸업하고 공군사관학교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길이 아님을 판단하고 병역의무를 마치기 위해 육군에 입대하였다. 공군사관학교를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지만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아가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 목사는 류 전 서장이 “병역을 필하고 경찰공무원 순경으로 공직에 첫 발을 들여 놓았다. 청소년 시절 꿈꾸어왔던 경찰고위간부를 향하여 고등공민학교 학창시절처럼 끊임없이 면학에 열중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경찰관으로서의 소임을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 해 나갔다”며 “나라의 치안과 민생을 위해 모든 열정을 다 해 헌신하는 류성호 제자의 모습은 직장 동료들과 상사로부터 경찰조직의 귀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류성호 제자의 지난날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관운이 좋아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고 말하지만 북극과 남극에 떠있는 큰 빙산은 바다에 잠겨있는 빙산이 더 크기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말단 순경에서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류성호 제자를 만나면 많은 말이 필요없다고 느껴진다. 오늘의 류성호 제자의 모습은 지난날의 역경과 시련을 극복한 인내심의 열매라고 평가하고 싶다”고 제자 사랑의 심경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황지교회 부설 황지고등공민학교와 교사 및 학생들의 모습 (c)시사타임즈

◆ 류 전 서장의 삶은 부드러우면서도 꿈을 꾸면 반드시 이루고야 마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류 전 서장의 삶은 광산촌인 태백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고향 태백경찰서의 서장이 되겠다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공군사관학교에 합격까지 했지만 그러나 그 길이 자신이 가야할 길이 아님을 알고 포기한 후 병역의무를 필하고 경찰공무원 순경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과 경찰에 발을 들인 후에도 끊임없는 향학열과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통해 결국 자신의 어린 시절 꿈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이 시대의 귀감이 되는 삶이라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렇기에 류 전 서장이 “천혜의 고원 산소도시 太白, 영원한 우리의 터전, 이대로 살 수는 없다”라는 제목의 자서전 머리말에서 “가난한 집안 셋째아들로 태어나 황지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황지고등공민학교를 나와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장학금으로 공부하기 위해 영주 중앙고등학교로 유학을 갔다.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공군사관학교 필기시험에 합격하였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경찰공무원에 투신하였다. 순경으로 출발하여 승진시험과 근무능력 심사로 총경에 올라 고향 태백경찰서장으로 봉직한 세월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보람찬 시간이었다”는 고백은 독자들의 가슴을 이슬처럼 촉촉하게 적시며 동시에 도전적 삶의 메시지로 들려질 것이 분명하다.

 

특히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주경야독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과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학위를 받는 등 향학열을 불태웠다. 강원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을 마지막으로 근무하다가 2017년 12월 29일 명예퇴직을 하면서 경무관으로 승진하였다”는 대목은 류 전 서장이 어린 시절 꿈꾸었던 장성경찰서장(현 태백경찰서장)이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부단히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며 시간 관리를 하고 향학열을 불태웠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와 같은 류 전 서장의 삶에 대한 평가는 마치 이웃 아저씨와 같은 부드럽고 친근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같으면서도 그러나 그의 내면은 한없이 강한, 무언가를 꿈꾸면 반드시 그 꿈을 이루고야 마는 강단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류 전 서장의 자서전을 대하는 독자들로 하여금 시선을 집중시키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그래선가 그의 자서전을 읽노라면 류 전 서장의 삶에서 풍기는 이런 매력들이 마법에 걸린 사람마냥 문장과 문장을 뚫고 솟아나와 잠시도 책에서 시선을 멈추게 만들지 않는다.

 

 

▲강원경찰청장이 퇴임하는 류성호 총경에게 경무관으로 임명한 임명장을 수여하다 (c)시사타임즈

◆ 태백시는 일본의 최대 탄광지역이었던 유바리시가 재정이 파산되었다가 관광도시로 거듭난 사례를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류 전 서장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필자의 시선을 끄는 대목이 또 하나 있었다. 신현택 씨가 언급한 다음의 내용이 그것이다.

 

“우리 태백과 비슷하게 일본의 최대 탄광지역이었던 유바리(夕張)시가 폐광된 이후 관광도시로 거듭나 새롭게 잘 사는 도시로 탈바꿈 되었다는 소식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태백도 유바리시를 배워 다시한번 잘사는 태백을 만들자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제기된 때가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이목이 몰렸던 유바리시는 시장의 독단적인 무리한 투자로 2006년 재정이 거덜 나 빚만 약 100조원을 짊어지고 파산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우리 태백의 앞날을 걱정했었습니다. 그같은 걱정이 우리 태백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만의 쓸데없는 걱정인 기우(杞憂)이기를 내심 바랐지만 피할 수 없는 비수의 칼로 꽂히고 있습니다. 이 세상엔 남이 잘 된다고 나도 잘 된다는 보장된 사업은 없습니다. 태백에 주어진 그 엄청난 정부의 지원금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내 돈이 아니니까 흥청망청 써도 되는 것입니까. 뜬구름 잡는 사업을 계획하고 집행하였던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습니까. 이제는 지난날의 뼈 아픈 교훈을 깊이 되새기며 희망의 돛을 높이 올려야 할 때입니다”라는 내용 말이다.

 

일본의 최대 탄광지역이었던 유바리시와 우리나라의 최대 탄광지역인 태백시를 비교한 신 씨의 이 글은 필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특히 태백시의 현재 상황을 유바리시 시장의 무리한 투자로 파산한 것에 비교하여 태백시의 앞날을 걱정한 대목은 단순히 넘겨버릴 일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유바리시의 지난 과거와 현재를 한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렇기에 류 전 서장이 자서전 머리말에서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전환점에서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아쉬움이 밀려오고 현재 상황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려면 망설이게 된다. 또한 앞으로 다가 올 미래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고 언급한 메시지는 태백시의 현재 분위기와 관련하여 의미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아 보인다.

 

자서전을 통해 어릴 적 마음속에 장성경찰서장(현 태백경찰서장)이 되는 꿈을 꾸었던 한 소년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했는지를 사실적으로 입증해 보인 류성호 전 태백경찰서장. 녹록치 않은 그의 인생 발자취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삶의 열기는 이 시간에도 흙수저 인생으로 시작하여 맨 땅에 헤딩하듯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줄 것이 분명하다.

 

주어진 삶의 현실이 어떠하든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피나는 노력의 땀을 흘린다면 그 인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한시도 포기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철저한 시간 관리와 자기 관리가 필수 요인임을 류 전 서장의 자서전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 또 하나의 꿈을 가슴에 품은 류성호 전 태백경찰서장, 꿈을 향해 출사표를 던지다…대형 종합병원과 전국 최대 요양시설을 유치하여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드리도록 하겠다

 

어릴 적 꿈을 마침내 이룬 류 전 서장이 또 하나의 꿈을 가슴에 품었다. 태백시를 활기찬 도시로 만드는 꿈이다.  

 

 

▲류성호 전 서장의 자서전 (c)시사타임즈

지난 2월 27일 태백시 황지동 썬타운 웨딩홀에서 류승규 전 국회의원, 송은영 태백문화원장, 박학도 태백향토장학회 이사장, 기관단체장, 은사, 옛 동료, 주민 등 600 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룬 가운데 열린 ‘영원한 우리의 터전 이대로 살 수 없다’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류 전 서장은 “제가 태어나 탯줄을 묻은 곳으로 부모와 7형제의 가족이 살고 있는 태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사심 없는 봉사의 길로 나서겠다”며 “지금 태백은 인구감소 위기도시로 전락하는 등 삶이 어렵다. 한숨만 쉴 것이 아니라 모두 떨쳐 일어나 7만 이상 활기찬 도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특히 “수도 서울에서 28년간 갈고 닦은 행정능력과 조직관리 능력 및 모든 인맥을 동원해 어떤 수술도 할 수 있는 대형 종합병원과 전국 최대 요양시설을 유치할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드리도록 하겠다”는 발언을 통해 그의 꿈이 무엇이지를 분명히 했다.

 

태백시의 부흥을 위해 또 하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출사표를 던진 류 전 서장이 자서전에서 밝힌 그의 삶을 요약하여 스케치 하면 이렇다.

 

“나는 채탄 갱도가 무너져 수많은 인명피해가 일어났던 광산지역인 태백시 황지로 254번지 지금의 동양건강원자리에서 1959년 흙수저도 아닌 탄(炭)수저로 세상의 빛을 보았다...1984년 7월 21일자로 순경에 임용되어 서울기동대에서 경호경비 업무를 맡으면서 1985년도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5년 동안(당시는 5년제) 그야말로 주경야독으로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1990년 법학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에는 과중한 업무에 아침에 출동하면 밤 10시 넘어 들어올 때가 많았다. 어떨 때는 철야 근무도 하고 토·일요일도 없이 출동을 하였고 시간외 수당도 없는 격무의 연속이었다. 월 27만원 급여로 생활하기란 너무나 힘든 생활이었다. 27만원에서 용돈 몇 만원 빼고 몽땅 태백 어머니에게 보내드렸다. 어머니는 이 돈으로 계도 들고 동생 학비, 가정살림에 유용하게 보태 쓰셨다. 나는 서울에서 집을 구할 엄두도 못 내고 사무실 단체 숙영지 반 평 남짓 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5년 세월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학업과 승진공부를 이어갔다. 출동할 때 주머니에 공부할 책을 넣고 다녔으며 가로등 불빛아래서 달빛 아래서 책을 보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집념을 불태웠다. 방송대학교 방송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타이머(시간이 되면 자동 녹음되는 기기)를 사서 라디오 녹음기에 연결시켜 놓았다가 업무 끝나고 돌아오면 두 번씩 반복해서 들으며 수업을 따라갔다...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28년 동안 종로, 영등포, 서대문, 남대문, 성동, 강남, 마포, 성북경찰서 등 8개 경찰서와 서울지방경찰청 보안부, 경찰본청 외사국, 그리고 국회 등에서 다양한 행정경험과 조직관리 능력, 인맥 등을 쌓은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재임 중 보람 있었던 것은 19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2002한일월드컵대회 때 경호경비업무를 한 치의 착오없이 완수한 것이다. 모두 국제행사에 자랑스런 자유대한민국의 국격이 한 단계 높아지는 큰 행사였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크고 잊을 수 없는 영광스런 특수근무였다고 자부하고 있다. 특히 2002한일 월드컵 행사 때 훌리건부대 운영과 안전한 응원전(평균 50만명)유공으로 사회와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다며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근정포장을 받기도 했다”

 

황지초등학교와 집안 형편으로 황지교회 부설 황지고등공민학교를 나온 뒤 고졸자격검정고시를 거쳐 영주 중앙고를 졸업하고 공군사관학교에 지원 합격하였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포기하고 병역의무를 마친 뒤 순경으로 자신의 꿈을 향한 도전을 시작했다는 류성호 전 태백경찰서장.

 

경찰생활을 하며 주경야독으로 방송통신대학교 법학사와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를 마치고 승진시험과 근무능력 심사로 총경에 올라 마침내 어릴 적 꿈을 이룬 류성호 전 서장은 새로운 꿈을 위해 지난 해 12월29일 강원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을 끝으로 33년여의 경찰 생활을 명예롭게 접었다.

 

“강원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을 마지막으로 근무하다가 2017년 12월 29일 명예퇴직을 하면서 경무관으로 승진하였다. 이렇게 명예롭게 공직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또한 업무 특성상 가정에 충실할 수 없었던 어려움을 이해하고 격려하여 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인삿말을 전한 류 전 서장은 “그동안 직장과 사회생활을 통해 체험한 노하우를 영원한 우리들의 터전인 태백을 위해 모든 열정을 바치고 싶다”며 자신의 가슴에 품어진 새로운 꿈을 향해 출사표를 던졌다.

 

류 전 서장의 자서전 표지 뒷면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태백시에 대한 그의 가슴을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서울 영등포경찰서(국회, 각 정당 중앙당사, KBS, MBC 등 주요 방송사소재) 경비과장으로 국회 경비를 맡고 있을 때 있었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2011년 태백시민 800여명이 상경하여 탄광지역 생존권 사수를 위한 집회를 국회 앞에서 강력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그 당시 시위를 총지휘하는 비상대책위원장이 메가폰이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나는 고향 태백시민들의 애끓는 시위 현장을 보고 경비과장 직책으로 가지고 있던 메가폰을 빌려 주면서 당당하게 집회를 하도록 배려한 기억이 생생하다. 고향 태백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늘 마음 한곳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향의 형제자매들이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서 절규하는 목소리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만약 공공기물인 메가폰을 시위대에 빌려 주었다는 사실을 상부에 누군가 알렸으면 나는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엔 징계도 두렵지 않았다. 고향 형제들과 마음을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구보다 고향 태백시를 사랑하는 류성호 전 서장이 폐광지역인 태백시에 대형 종합병원과 전국 최대 요양시설을 유치하여 태백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드리도록 하겠다는 그 꿈이 이뤄질지 벌써부터 시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류 전 서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가 가슴에 꿈을 품었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뤄지고야 말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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