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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명성교회, 섬김(머슴)신학으로 한국교회 섬겨 ‘찬사’

명성교회, 섬김(머슴)신학으로 한국교회 섬겨 ‘찬사’

명성의 영성, 오직주님! 오직교회 ! 오직기도! ‘머슴신학’

 

 

[시사타임즈 = 이성용 기자, 김순아 기자]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19 전염병 위기 속에서도 꾸준히 선교의 현장을 살펴온 명성교회. 코로나 19위기 가운데도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 온 교회로, 올해 사회로부터 나눔과 배려로 소외 계층을 돌아본 참 이웃으로 인정받은 교회이다. 특히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도 선교를 멈추지 않은 교회 존재 의미를 전달한 명성교회를 이성용(시사타임즈) 회장은 집중 취재해 기사화했다.

 

명성교회,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과 배려로 한국교회위상 높여

명성교회는 섬김의 리더쉽. 머슴 목회의 모델을 제시

명성교회는(김하나목사)광야 시대를 지나 비전의 새 시대 열어가고 있어

한국교회 세계 2번째 선교 대국! 선교사 파송! 명성교회가 큰 역할해

 

코로나 19로 온 국민들이 신음하고 있는 이때. 희망의 빛이 비치어 왔다.

7월 1일부터 사이판이 백신 접종자에 한 해, 여행길이 열렸다. 시사타임즈에 기사화한 바 있지만, 사이판 교민과, 김홍균 사이판 문화원 원장, 사이판 가버너. 도종환 국회의원(문화위원장)과 한국미디어그룹. 시사타임즈 이성용 회장의 역할이 있었다. 모든 의학 부문 검증을 끝내고, 코로나 19속에 백신 접종자는 첫 해외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다시 살아나야 하리!” 주님의 말씀대로 다시 살아난 것처럼, 국내외 대한민국의 국민을 통해서, 이제 세계가 막힌 항로가 열리고, 국민들이 코로나 전염병에서 다시 살아나고, 정치 경제사회 문화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역사가 이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시사타임즈 이성용 회장은 종교계를 돌아보았다. 코로나 19로 종교계에 닦친 예배 현장. 선교현장. 어려운 목회현장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선교하는 현장. 농어촌교회를 살리고 세우는 선교하는 교회. 명성교회가 걸어온 국내·외 선교 소식이 들려와 너무나 아름다워 선교특집으로 기사화하였다.​ 

 

명성의 영성, 오직주님! 오직교회 ! 오직기도! ‘머슴신학’

 

지난해 12월 27일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는 목회 50년 역사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날 김 목사는 명성교회에서 40년. 처음 사역했던 1971년을 기점으로 하면, 50년 목회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예배실황 (c)시사타임즈


명성교회는 초심으로 농어촌교회 장학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

 

▲장학관 입사생 동계수련 (c)시사타임즈

어려운 이웃과 농어촌 교회를 위한 제2 안디옥교회 만들어 놓았다. 명성교회의 선교는 주님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명성교회 성도들의 순례였다. 성도들의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현장이었고, 특히 농어촌 목회자 자녀들을 위한 장학선교는 그동안 한국교회를 세워온 근원인 농어촌 목회자의 헌신과 노력이었고, 김삼환 원로목사가 경험했던 농어촌에 대한 하나님 앞에서의 사명이었다.

 

결국 섬김과 나눔 봉사를 통한 희생의 실천이 오늘의 명성교회를 만들어 놓았고, 명성교회는 이제 제2의 선교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섬기기로 시작하고 있다. 계속해서 희생과 섬김으로 이웃사랑의 실천에 모범을 보이고 있는 명성교회는 한 명의 의인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들려오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어둠을 밝히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영성과 인성과 그리고 지성을 갖춘 글로벌 크리스천 리더를 양육하기 위해 원로목사 김삼환 목사에 의한 교회개척 초기부터 장학선교의 사명을 꾸준히 이어 진행해 가고 있다.

 

▲광주장학관 전경 (c)시사타임즈

 

어려서부터 가난을 뼈저리게 체험하며 살아온 김삼환 목사(현재 명성교회 원로목사)는 명성교회가 자립하기도 전인 1983년 개척 초기 부터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당시 김신호, 임동규, 남병식 전도사와 중고등학생 12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였으며, 가정형편으로 중등교육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성도들을 위해 고등학교 과정의 명성 야간 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85년에는 장학선교를 보다 체계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교회에 장학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하고 그해 3월에는 농어촌 목회자의 자녀들을 위해 교회 인근 주택 한 채를 매입해 10명의 농어촌 목회자 자녀들에게 숙소와 식사를, 제공했다.

 

하나님의 인재를 키우는 명성교회 장학위원회

 

명성교회 장학위원회 이종순 장로(이하 이 장로)는 “당시 김삼환 담임목사님께서 농촌가정에서 혹독한 가난을 경험하며 성장했고, 교회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신학을 공부해 목회자가 되셨기에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시작하셨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장로는 또 “평소 목사님 설교 시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인재를 키우는 수밖에 없다고 늘 말씀하셨고, 이 때문에 장학사업이 교회개척 4년 만에 실천된 것으로 안다”며 “서울에서 시작된 장학관이 현재 전국 7개 도시에 계속 세워져 지금까지 5,082명의 학생이 큰 도움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전국 7곳에 설립된 명성장학관

 

▲대구장학관 전경 (c)시사타임즈

지방장학관 1호는 전남 목포에 설립됐다. 목포 주변의 섬 출신 학생들은 서울유학은 엄두도 못 내고 목포까지 나와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사례비가 거의 없는 섬 교회 교역자들은 등록금 걱정 뿐 아니라 비싼 하숙비, 자취방, 월세를 걱정해야했다. 무료장학관은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줬다. 이어 광주, 전주, 순천에 장학관이 순차적으로 설립됐고 대구와 부산으로 확대됐다. 이렇듯 명성장학관은 현재 7개 도시에 전체 수용인원 230명 규모로 성장해 연간 3억여 원의 교회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동안 장학관에만 105억 원의 예산이 지출됐다.

 

2003년에는 총 건축비 12억 원이 든 목포장학관의 재산권과 운영권 등 권리 일체를 목포노회에 양도 하였다 .

 

장학관에서 공부한 수많은 학생들이 목회자, 교수, 외교관, 변호사, 의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장학위원회의 큰 보람이다.

 

특별히 세계로금란교회 주성민 목사는 명성교회 장학관을 잊지 못한다.

 

주 목사는 “시골교회에서 목회했던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돌아가신 뒤 서울로 올라와 신문을 돌리고, 독서실 총무로 일하며 어렵게 지낼 때, 명성교회의 배려로 장학관에서 2년 간 머물 수 있었다”면서 “힘들었을 때 이곳에서 믿음을 재충전하고 신학교에 입학해 목회자로 거듭났다”고 회고했다.

▲목포장학관 전경사 (c)시사타임즈

 

제1기 서울장학관 출신으로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우주호(52·한양대) 교수도 “성악가로 자리매김하고 활동할 수 있기까지 교회의 많은 도움을 받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01명이 생활하는 서울 명성장학관 이선희(55) 사감은 “영양사와 조리사를 두고 맛있는 식단을 짜는데 주력한다며, 전액 무료로 운영되는 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입소 2년 차인 강하은(24·한성대) 양은 “규칙적인 생활과 예배로 신앙성장에도 유익이 되고 있다”며 “또래 친구들과 토론도 많이 하고 다양한 정보도 공유할 수 있는 장학관 생활에 매우 만족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국내외 장학사업에 총 184여억 원 지원

 

명성교회 장학선교의 확장은 장학관 운영에서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장학금 규모면에서도 큰 발전을 이루어 왔다. 1987년에는 장학금 지급대상을 해외 유학생에게 까지 확대, 윤철호 전도사(가레트 신학교 박사과정)에게 연 7,000달러의 장학금 전달하였고, 이듬해 8월에는 해외 유학 장학생을 2명(한상화, 김인수) 더 추가하여 총 3명에게 각각 연 7,000달러를 전달했다.

 

1989년에는 장학위원회를 장학관 운영부, 국내장학부, 해외장학부로 확대 개편했으며, 2월 26일에는 장학위원회 헌신예배를 드리고 국내 장학생 35명에게 총 400여만 원의 장학금을, 해외 유학생에게는 1인당 7,000달러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8월에는 독일의 이승현 목사에게 해외 유학 장학금을 제공하는 등 이후 명성교회의 장학금 지원규모는 꾸준히 확대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순천장학관 전경 (c)시사타임즈

 

올해 2학기에도 2억원(연간 4억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생활이 어려운 대학생, 오지에서 헌신하는 선교사의 자녀들, 그리고 해외유학생 등 200여명의 학생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특히 글로벌 크리스천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2005년 4월부터 다윗아카데미를 설립, 이의 운영에 필요한 장학기금 25억 원을 조성하여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2010년 2월에는 그동안 김삼환 원로목사가 외부 강사 사례비와 집안의 경조사금 등 사재를 모두 모아 교회에 기부한 60억 원을 은파장학기금으로 조성하여 매년 10~20여명의 대학생들에게 1인당 300여만 원씩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도 명성교회는 장학기금을 계속 확충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며, 이 기금들이 전문적이고도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전문가들로 구성된 별도의 담당기구를 설치하여 운영하게 할 계획이다.

 

장학사업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오태호(59·사회복지학 박사) 집사는 “교회는 복음전파와 해외선교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기독교신앙을 가지고 정진해 나가는 청소년과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통해 자신감과 긍지를 심어주는 것 또한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전주장학관 전경 (c)시사타임즈

 

명성교회가 유독 장학사업에 정성을 쏟는 이유는 김삼환 원로목사가 설교할 때 자주 사용한 예화에서 찾을 수 있다. 김 목사는 안동 경안성서신학원 재학 시절, 개학에 맞춰 어머니가 싸주시는 송편을 학교에 갖고 왔다. 음식이 귀하고 항상 배고팠던 시절이라 사물함에 넣어두고 혼자 먹으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6명이 기숙사 한 방을 쓰고 있어 혼자 몰래 먹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결국 송편은 다 상하고 말았다. 이때 김 목사는 “혼자 몰래 먹는 것은 기쁨도 없고, 결국 손해만 본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고, 나눔과 섬김, 사랑의 목회를 지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웃과 고통을 나누는 목회

 

명성교회는 장학사업 외에도 1,000여 곳의 농어촌교회 및 미자립교회를 지원하기 위하여 2018년부터 ‘빛과 소금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2012년엔 서울 연남동에 거처를 마련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기증했고, 2010년 아시아 최초로 민영교도소인 소망교도소 설립을 주도했다. 또 안동성소병원과 영양병원을 운영하는 것을 비롯해 2002년에는 에디오피아에 최신 시설을 갖춘 명성기독병원(MCM : MYUNGSUNG Christian Medical center)을 설립했다.

 

한국의료선교의 새장을 열었다는 점에서‘에티오피아의 세브란스 병원“으로 불리고 있으며, 2018년 타임지 주관 세계 병원평가에서 아프리카지역 최우수병원으로 선정되었다.

 

이 장로는 “우리교회는 앞으로 장학사업은 물론 선교와 봉사, 나눔의 사역을 꾸준히 이어갈 것”이라면서 “2019년인 올해에는 탈북자를 비롯해 다문화가정과 알코올·도박 중독자를 돕는 일에도 신경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명성교회의 선교가 한국교회 부흥의 모퉁이 돌이 되었다면, 앞으로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 아름다운 성교를 통해 더 좋은 기독교의 아름다운 유산들을 후대에 남겨 주어야 할 것이다.

 

명성교회는 한국교회에 섬김의 신학. 머슴 목회 모델을 제시하였다

김삼환 원로목사의 목회는 한마디로 말하면, 섬김. 나눔의 ‘머슴 목회’였다

 

‘머슴 목회’는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다. 그는 어린 시절 무척 가난하게 성장했다. 그는 가끔 설교에서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옆집에 숟가락을 빌리러 다녔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만큼 가난했다.

 

그가 지난해, 설교에서 전했듯이 가난해서 굶었고, 첫아이가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아주 절망적 상황과 아파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어 늘 홀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고, 극심한 영양실조로 폐렴과 결핵으로 죽을 고생을 했을 정도로 가난을 겪었다. 이런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겪으면서 그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고난의 시간 속에 홀로 외롭게 지낼 때 그를 찾아와 위로하며 치유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었다.

 

김삼환 목사의 이런 가난과 외로움의 경험은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이웃을 볼 때, 그들에게 손을 펴서 돕고 섬기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와 도우시는 은혜에 대한 보답이었고, 자신과 같이 고통당하는 사람이 주변에 없도록 돌보고 섬기는 것이 목회자의 당연한 도리요 사랑의 실천이었다.

 

그는 또한 교회를 개척하면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고, 스스로 낮은 자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고, 죄인들과 식탁을 함께 나누었듯이, 목회자 역시 성도들의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스스로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눈을 치우는 ‘종의 자리’, ‘머슴의 자리 ’에 있었다.

 

김삼환 원로목사는 섬김의 목회를 실천하면서 자신의 머슴 목회의 5가지 특징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첫째 머슴은 걱정 않는다, 머슴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만 하면 된다.

둘째, 그는 주인이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완전히 순종한다.

셋째, 그는 24시간 일한다. 그는 항상 일할 준비가 돼 있다.

넷째, 그는 농사에 관한 한 전문가이다.

다섯째, 그는 자기 주인의 자녀들에게도 신실하다. 라며, 김삼환 원로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목사는 걱정하지 않아야 하고, 주님께 순종하여야 하고, 항상 일해야 하고,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복음 사역에는 전문가가 돼야 하고, 그리고 양들 중 가장 작은 자에게까지도 신실해야 한다.”

 

그는 머슴 목회를 실천키 위해 오랫동안 농어촌교회. 미자립 교회들을 섬겨왔다. 특히 최근 2년간(2019~2020) 명성교회를 통해 초교파적으로 20개 교단 약 750여 개 교회에 50억 원 규모로 지원을 했고, 코로나바이러스 초기에 코로나바이러스 1억원 물량의 마스크를 예장통합 총회를 통해 대구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 공급했다.

 

지난 12월 후반기에는 아가페문화재단과 씨채널 기독교 방송을 통해 코로나 19로 고생하는 미자립교회와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특별 프로젝트 추진한 결과 680여 개 교회와 선교사들이 신청해왔고, 수십억억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어려운 농어촌. 어려운 미자립교회를 위해 농어촌 교회를 지원하였다. 그 당시 김삼환 목사는 코로나 19로 어려움에 처한 교회를 돕기 위해 교회가 은퇴 비용으로 마련해준 자신 아파트를 헌납하는 등, 진정한 섬김 '머슴신학‘을 한국교회에 내 놓았다.

 

‘머슴 신학·머슴 목회’ 농어촌교회 장학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

 

머슴 목회의 또 다른 실천은 전국 7개 도시에 장학관을 설립 사역이다. 전남 목포를 비롯해 광주, 전주, 순천, 그리고 부산과 대구와 서울에 장학관을 설립해 도서 벽지와 농어촌의 미자립 교회 목회자 자녀들과 빈곤 가정의 자녀들에게 무료 숙식을 제공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해오고 있다. 그동안 장학관 사역에 100억 이상의 재정이 지원되었다.

 

장학관에서 기숙하며 공부한 수많은 학생이 목회자, 교수, 외교관, 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건강한 크리스천 리더로 성장해서 사회 지도층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김 목사의 머슴 목회는 차세대 크리스천 양성을 위한 국내외 장학사업에도 섬김과 나눔의 실천을 감당하고 있다. 국내 목회자 자녀들과 해외 선교사 자녀들, 그리고 해외 유학 중인 신학생 등을 대상으로 매년 4억 원 이상의 재정을 지원해 왔다.

 

특히 글로벌 차원에서의 리더 양성을 위하여 다윗아카데미를 명성교회 안에 설립해서 특별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아카데미 선발 학생들에게 매 학기 일정액의 장학금도 지급 하기도 하였다

 

머슴 목회의 꽃, 위안부 할머니 돕기·소망교도소·병원 사역

 

▲마포 쉼터 (c)시사타임즈

김삼환 원로목사의 머슴 목회의 꽃은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섬기는 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금과 빛의 삶이 반영된 섬김사역이다.

 

김 목사는 김복동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직접 찾아가 김 할머니를 만났고, 이후 몇 분이 쉴 수 있는 쉼터를 제공했다.

 

명성교회는 2012년에 약 16 억 원을 들여 연남동의 지하 1층·지상 2층의 주택을 매입해서 ‘마포 쉼터’로 이름을 지어 마련해 주었다. 당시 명성교회는 고령의 할머니들을 배려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등 내부 공사를 거쳐 쉼터를 조성한 다음 정의연에 무상으로 임대했다.

 

이 사실은 당시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실천한 김삼환 원로목사의 훈훈한 섬김의 미담이 사회에 알려졌다.

 

2010년에 김 목사는 수년간의 기도와 헌신적 노력 끝에 세계 최초로 민간 교도소인 ‘소망교도소’를 경기도 여주에 설립했다. 소망교도소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재소자에 대한 인성교육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에 따르면 60%의 수용자가 강력범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 기준 재범률이 3%로, 국영교도소의 평균인 22%보다 현저히 낮다. 명성교회는 소망교도소 운영에 필요한 예산의 상당 부분을 감당하고 있다. 김삼환 원로목사의 머슴 목회가 낳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열매가 아닐 수 없다.

 

▲소망교도소 (c)시사타임즈

 

머슴 목회의 최고의 열매는 아마도 병원 선교사역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을 실천한 병원 사역은 국내외적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목사는 1994년에 안동의 성소병원 이사장으로 취임해서 기독교 복음과 사랑으로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영주, 영양, 봉화, 청송 등 여러 지역에 첨단 의료 기술로 지역주민들을 섬기고 있다.

 

슈바이처 박사의 공로를 뛰어넘은 에디오피아 MCM 병원

 

김삼환 원로목사의 머슴 목회는 아프리카의 성자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의 업적을 뛰어넘었다.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 가봉 랑바레네에서 예수의 사랑으로 의료 봉사로 펼쳤던 아프리카의 성자다. 그는 이 업적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지금 가봉 랑바레네에 있는 슈바이처가 설립한 병원은 ‘슈바이처병원 국제재단 ’이란 이름으로 열악한 환경을 갖춘 병원에 불과하다.

 

명성교회는 2002년에 에디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설립한 명성기독병원 (MCM: MYUNGSUNG Christian Medical Center)을 설립했다. 에디오피아는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군대를 파병한 나라다.

 

김삼환 원로목사는 대한민국이 전쟁으로 공산화될 위기적 상황에서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파병한 에디오피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의료 시설이 열악한 이곳에 병원을 설립하여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섬김 사역을 시작했다.

 

지난 18년간 무려 500억 원을 들여 초현대적 의료시절을 갖춘 병원과 의과대학을 설립하여 에디오피아를 중심으로 이웃 여러 나라에까지 의료 봉사를 펼치고 있다. 

 

김삼환 원로목사의 의료선교는 세계선교의 새로운 장을 여는 획기적인 사건이자 21세기 선교의 최고의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MCM 병원은 2018년도엔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지가 평가한 세계 병원평가에서 아프리카지역 최우수병원으로 선정됐다.

 

가난으로 고통받았던 경북 산골 오지 출신의 어린 소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벽을 깨우며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 은혜를 사모하며 ‘오직 기도 ’로 새벽의 영성으로 교회를 섬기고 사역을 펼치면서 섬기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머슴으로 목회를 했던 김삼환 원로목사가 에디오피아에서 이룬 병원 선교사역은 노벨 평화상을 받기에 결코 모자람이 없는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이다. MCM 병원은 성령의 역사로 김 목사의 머슴 목회가 피운 가장 아름다운 꽃이요 빛나는 열매다.

 

대담 : 시사타임즈 이성용 회장.

정리 : 김순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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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용 기자 sylee57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