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의 무비스토리 (25)] 케빈에 대하여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린 램지 감독과 틸다 스윈튼은 모두 여성으로 살아가며 갖게 된 개인적 고민이 자신들을 <케빈에 대하여>로 이끌었다고 설명한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내 아이가 안 좋은 아이로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두려움이 나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영화를 통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린 램지 감독)
“엄마가 될 준비를 미리 완벽하게 해놓고 엄마가 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내겐 쌍둥이 남매가 있는데, 그 아이들을 낳고 처음 봤을 때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만약 아이들이 전혀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케빈에 대하여>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엄마에 대해 얘기한다.” (틸다 스윈튼)
엄마가 된다는 것,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그녀들의 오랜 고민은 사실 여자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주제임과 동시에 누구도 감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여성이 엄마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모성은 여성의 본능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속에서 <케빈에 대하여>는 그 누구도 선뜻 이야기하지 못해왔던 도발적인 주제, 그러나 이제는 꼭 다루어져야만 하는 사려 깊은 질문을 던진다.
에바는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는 여행가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신과 전혀 다른 남자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 아들 케빈을 임신하게 되고, 그 결과 넓디넓었던 그녀의 세계는 ‘집’과 ‘아이’로 축소되고 만다. 사랑으로 임신한 아이 케빈,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낳은 케빈은 에바의 삶을 근심과 불안으로 가득 채운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어르지만 정작 아이와 눈을 맞추지 못하는 엄마 에바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공사 현장의 시끄러운 소음으로 잠재우려 한다.
이렇듯 아직은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이제껏 감히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진다. 여성은 누구나 모성을 갖고 태어나는가? 엄마라면 자신의 아이가 언제나, 무조건적으로 사랑스러울까?
이렇게 애정과 증오가 엇갈린 잘못된 출발은 케빈의 마음속에 엄마로부터 사랑 받지 못함에 대한 증오의 씨앗을 심는다. 그리고 그 씨앗은 케빈이 성장할수록 점점 커나가 엄마와 아들의 관계를 숨 막히는 긴장으로 가득 채운다.
엄마의 말에는 절대 반응하지 않는 꼬마 케빈, “익숙한 거랑 좋아하는 거랑은 달라. 엄만 그냥 나한테 익숙한 거야”라고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어린 케빈. 그리고 조소 가득한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는 소년 케빈. 이러한 긴장감은 케빈이 앞으로 어떤 끔찍한 일을 행할 것인지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서스펜스로 발전한다. 이어 자신을 낳은 엄마를 향해 오직 증오만을 쏟아내던 케빈의 마음 속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섬세한 감성을 마주하는 순간 더욱 더 커지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엄마를 향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케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는 케빈 역의 이즈라 밀러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관객이 케빈에게 완벽하게 몰입하는 순간 새로운 차원의 심리적 긴장감과 서스펜스, 전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원제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WE NEED TO TALK ABOUT KEVIN)다. 정작 영화에서는 케빈이 아닌 에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은 케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질 것이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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