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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자의 무비스토리 (32)] 대학살의 신



대학살의 신 (2012)

Carnage 
7.5
감독
로만 폴란스키
출연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프 왈츠, 존 C. 라일리
정보
드라마 | 프랑스, 독일, 폴란드, 스페인 | 80 분 | 2012-08-16


[박기자의 무비스토리 (32)] 대학살의 신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로만 폴란스키는 그 누구보다 ‘거장’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감독이다. 1955년 영화연출학교를 다니며 첫 번째 영화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물속의 칼>, <혐오>, <악마의 씨>, <차이나타운>, <피아니스트>, <유령작가> 등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며 탁월하면서도 인상적인 연출 세계를 펼쳐왔다.

야스미나 레자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연극 ‘대학살의 신’을 본 후 이에 매료된 로만 폴란스키는 바로 영화화 작업에 착수한다. 80여분의 시간 동안 한 장소에서 ‘리얼 타임’으로 진행되는 원작의 매력에 빠진 그는 영화에도 이를 충실히 반영했다. 특히나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만큼 영화의 배경이 되는 거실 프로덕션 디자인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자신과 함께 <피아니스트>와 <유령작가>를 만든 최고의 스탭들을 불러모아 작업을 시작한 로만 폴란스키는 파리 변두리에 2층짜리 건물을 세우고 그 안의 거실, 침실, 복도 등의 세트는 물론 배우들의 의상까지도 작품 속 캐릭터의 성격과 배경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였다.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지극히 현실적인 <대학살의 신>의 세트는 감독 자신은 물론 배우들로 하여금 연기를 하고 있는 그 순간이 그대로 현실로 느껴지도록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결과로 현실적이면서도 관객들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볼 수 있는 리얼하면서도 웃긴 캐릭터들이 완성됐다.

이처럼 <대학살의 신>은 로만 폴란스키가 만들어온 작품 선상에서 색다르면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다. 그가 처음으로 본격 코미디 영화에 도전하면서도, 이전의 걸작들을 만들어 왔던 그 열정과 섬세함을 담아냈기에 <대학살의 신>은 그 어떤 코미디 영화보다도 높은 품격과 퀄리티, 그리고 유머를 담은 신선한 작품이다.

 

어느 날 오후, 초등학교 앞 공원 11살 재커리는 친구들과 다툼 중 막대기를 휘둘러 이턴의 앞니 두 개를 부러뜨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턴의 집 거실에 재커리의 부모인 앨런(크리스토프 왈츠), 낸시(케이트 윈슬렛) 부부와 이턴의 부모 마이클(존 C 라일리), 페넬로피(조디 포스터) 부부가 만났다.

 

예민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립스틱을 덧바르는 낸시(케이트 윈슬렛), 핸드폰을 붙들고 때와 장소를 안 가리며 일만 하는 변호사 마이클(크리스토퍼 왈츠), 끝까지 교양을 지키려 부던히 노력하면서도 집요하게 재커리의 사과를 요구하는 페넬로피(조디 포스터), 아내의 비위를 맞추며 털털하고 따뜻해 보이나 징그럽다며 햄스터를 내다버린 마이클(존C. 라일리).

 

교양있는 중산층으로 보이는 이들은 이성과 예의를 갖추며 대화하다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한다. 결국 이들은 가식과 위선을 집어던진 채 ‘배울 만큼 배운 데다 먹고살 만한 사람’의 밑바닥을 서로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대학살의 신>은 ‘고품격’을 지닌 영화다. 로만 폴란스키라는 영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거장 감독이 기나긴 세월 동안 다져진 깊은 내공으로 만들어낸 본격 코미디 작품이면서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프 왈츠, 존 C. 라일리 라는 최고의 배우들이 현실과도 같은 리얼한 연기를 선보인, 영화적으로도 너무나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렇게 고품격의 배우들이 막상 영화 속에서 열연한 캐릭터는 말 그대로 ‘막장’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의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만나 처음에는 교양 있는 미소와 우아함을 지닌 지성인의 면모를 과시하며 대화를 이어가던 이들이 점점 서로의 감정이 엇갈리고 거기에 약간의 술기운까지 더해지면서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말꼬리 잡고, 비꼬고, 했던 말 또 하고, 상대방을 향해 “당신 애는 빌어먹을 고자질쟁이야.”,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겨운 여자군.” 등의 독설을 내뱉고, 급기야 남의 집을 장식해 놓은 비싼 튤립을 패대기 치고, 토하고, 주먹다짐을 하는 등 거침없이 꼴사나운 행동을 보이는 이 부부들의 모습은 바로 ‘막장’ 그 자체다. 또한 이런 모습들을 최고의 배우들이 연기한다는 부분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큰 영화적 쾌감을 선사한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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