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떠날 때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그녀가 떠날 때(DIE FREMDE)>는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죽이는 관습인 '명예살인(名譽殺人, honor killing)'을 소재로 전통적인 관습 때문에 억압받는 터키여성의 갈등과 비극을 그린 영화다.
'명예살인'은 요르단, 이집트, 예멘 등 이슬람권에서 순결이나 정조를 잃은 여성 또는 간통한 여성들을 상대로 자행되어 온 관습으로 남편 등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해당 여성을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살해한 가족은 붙잡혀도 가벼운 처벌만 받기 때문에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공공연하게 자행되어 왔다.
영화의 시작, 한 여인이 슬픔을 가득 품은 얼굴로 카메라를 향해 몸을 돌린다. 그리고 그녀를 뒤로한 채 긴장된 얼굴로 도망치듯 달리는 한 소년. 버스에 올라타 안도의 한 숨을 막 돌리려던 순간 차창을 통해 무언가를 목격한 소년은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굳어버린다.
이렇듯 <그녀가 떠날 때>는 영화의 끝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충격적 결말을 예고하며 주인공 ‘우마이’의 통렬한 여정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이스탄불에 사는 우마이(시벨 케킬리)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빼앗긴 불행한 결혼생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들 챔과 함께 고향 독일로 떠난다. 하지만 갑작스런 그녀의 등장은 오랜 관습을 지켜온 가족들에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전통적 가치와 그녀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던 가족들은 결국 챔을 이스탄불로 돌려 보내기로 결정하지만 우마이는 또 한번 가족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언젠가는 가족들도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받아줄 것이라 굳게 믿는 우마이. 하지만 그녀는 상처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지 깨닫지 못한다.
터키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에서 태어나 서구 문화를 접하며 자란 젊은 여성 우마이는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사랑과 이해 속에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슬람 율법이 정해놓은 전통적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가족들은 그녀의 행동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영화는 두 문화의 차이가 빚어내는 문화의 충돌 그리고 그 사이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특정 인물을 비난하거나 옳고 그름, 선과 악이라는 판단의 잣대를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 인물들이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설탕 축제날 가족이 그리워 찾아온 딸과 손자를 앞에 두고 “나도 가슴이 아파. 찢어질 것만 같아”라고 말하지만 결국 문을 닫아버릴 수 밖에 없는 우마이의 아버지,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여동생을 매몰차게 내쫓지만 흐느끼는 그녀의 울음소리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큰 오빠, 늘 자신을 돌봐준 누나의 편이 되어 주고 싶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커뮤니티의 문화 속에 흡수되어 버린 남동생, 그리고 언젠가는 있는 그대로 지금의 자신을 사랑해 줄거라 굳게 믿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우마이의 모습까지.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민족, 종교, 문화적 편견을 넘어 우리네 가족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함께 공감하고 아파한다. 때문에 영화의 끝에서 마주치게 되는 비극적 결과는 모두를 경악케 하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오고 관객들은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숨조차 쉬지 못할 강력한 여운의 늪에 빠지게 된다.
영화 <그녀가 떠날 때>에서 가장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바로 천재 여배우 시벨 케킬리의 눈부신 열연이다. 그녀가 연기한 우마이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벗어나고자 이스탄불을 떠나 독일에 있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또 다시 가족의 곁을 떠날 수 밖에 없는 비극적 현실과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충격적 결과를 마주하게 되는 통렬한 여정의 주인공이다.
시벨 케킬리는 가부장적 관습의 굴레 속에서 삶의 주체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한 우마이의 절망과 고통을, 새로운 삶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한 그녀의 용기를, 문화적 편견이 빚어낸 싸늘한 시선 속에서 일과 사랑, 공부 모두를 지켜가는 굳은 의지를, 그리고 가족의 사랑과 이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희망의 메시지를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실감나게 그려냈다.
이렇듯 시벨 케킬리가 우마이의 험난한 삶의 여정과 복잡한 감정들을 실감나게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터키 가정에서 자란 자신의 삶의 경험을 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여냈기 때문이다.
한편 197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페오 알라다그 감독은 비엔나와 런던을 오가며 영화 연출과 연기를 공부하고 심리학과 저널리즘을 마스터함은 물론 철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독일의 젊은 수재로, 2005년에는 쥘리 알라다그와 함께 독립예술가영화제작사를 설립, 각본과 연출, 연기뿐만 아니라 제작자로서의 면모까지 두루 섭렵한 만능 엔터테이너다. <그녀가 떠날 때>는 페오 알라다그가 설립한 독립예술가영화제작사의 첫 장편 영화이자 그녀의 감독으로서의 데뷔작이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