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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시민단체들, ‘무후광복군 국립묘지 안장방침’에 결이 다른 소리로 환영

시민단체들, ‘무후광복군 국립묘지 안장방침’에 결이 다른 소리로 환영

“떳떳한 후손이 된 것 같아” vs “겨우 첫걸음 뗀 것일 뿐 할 일 많아”

 

 

[시사타임즈 = 탁경선 기자] 지난 7일 국가보훈처는 “광복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오는 11∼14일 수유리 한국광복군 합동묘소에 있는 무후광복군 선열 17위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설날과 추석 전후 그리고 광복군창설일 등 각각 서로 날짜를 달리해 이들 무후광복군을 자발적으로 추모해왔던 시민단체들은 이 소식에 접하고 환영하면서도 결이 다른 소리를 내는 등 온도차를 보였다.

 

▲무후광복군을 자발적으로 추모해왔던 시민단체들 (사진제공 = 대한민국 순국선열 숭모회) (c)시사타임즈

 

국가보훈처는 <다시, 대한민국! 영웅을 모십니다>라는 이름을 내걸고 추진되는 이번 이장은 11일 묘소 개장부터 임시 안치, 국민 추모·참배 기간 운영(12일~13일), 합동봉송식 및 합동안장식(14일) 순으로 진행된다고 알렸다.

 

보훈처 관계자는 “광복 직후에는 선열들을 모실 국립묘지가 없었고, 당시는 독립유공자가 아니었다. 1990년 이후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지만, 선열들 대부분이 20·30대에 순국해 후손이 없어 지난 77년간 국립묘지로 이장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이번 광복군 선열 합동 이장은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후손이 없는 광복군 선열들의 숭고함을 국민과 함께 기리고,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직접 추진한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에 지난 2009년 추석부터 올해 설날까지 지역주민들 및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매년 2회씩 총 26회에 걸쳐 추도식과 합동차례를 주최해 왔던 대한민국 순국선열 숭모회(이하 숭모회)는 크게 환영하는 뜻을 밝혔다.

 

 

전대열 숭모회 상임대표는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이고, 헌법 전문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광복군은 마땅히 우리나라 최초의 국군이다”며 “이번 보훈처의 17위 무후 광복군을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을 기쁘기 한량없다”는 소감을 말했다.

 

김선홍 숭모회 상임공동대표 겸 글로벌 에코넷 상임회장 역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런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과 풍요도 없었을 것이다”면서 “국립묘지이장을 크게 환영하고 이제야 떳떳한 후손이 된 것 같다”고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결이 다른 환영 목소리도 있었다.

 

예컨대 송운학 개혁연대민생행동 상임대표는 “무후광복군 17위 선열님들을 상대적으로 찾아뵙기 어렵고, 등산객을 제외한 인적이 드문 수유리 산골짜기 눈이 잘 녹지 않는 응달에 방치하지 않고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는 시설로 모시기로 한 것을 일단 환영한다”며 “그럼에도 국민 절반 이상이 밀집해서 거주하는 수도권에서 찾아뵙기 쉬운 동작동 국립묘지가 아니라서 유감”이라면서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송운학 상임대표는 ”보훈처 등 정부가 묘지이전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생각할까 두렵다. 이제 겨우 첫 걸음 뗀 것일 뿐 할 일이 많다. 조국독립을 위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단체들 중에서 광복군은 이념을 뛰어넘어 좌우합작을 일궈낸 유일한 조직이다”면서 “숭고한 유지를 이어받으려면, 우선 광복군이 창설된 9월 17일을 국군의 날로 기념해야 한다. 또 진영논리와 남남갈등 및 남북대결 등을 뛰어넘어 국민통합은 물론 한반도평화와 남북공존 및 상생공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채수창 (사)무후광복군기념사업회 이사장 역시 “대부분 20대 꽃다운 나이에 미처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사, 자결, 순국, 옥사 등 숭고한 길은 걸었던 무후광복군에게 후손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가족마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무후광복군 대부분은 이북출신이다. 이번 묘역 이장이 선열을 제대로 추모하는 계기가 되려면, 이북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족을 찾아 함께 추모해야 한다”며 “정부가 적극 노력해서 광복군이 전개한 독립활동을 통일로 연결시키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원래 설날과 추석 등에 수유리 무후광복군 합동묘소를 찾아 다례를 지내는 추모행사는 흥사단 단우로서 당시 통일연수원(현 통일교육원) 교수이기도 했던 故 박갑수가 가족과 함께 조촐하게 시작했다. 이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천지인 산악회(현 회장 신은선)가 제물을 마련하는 등 동참하게 되어 점점 규모가 커지고 서로 일자를 달리하는 추모행사가 각각 개최되었다. 하지만 연결고리역할을 담당했던 박갑수 교수가 별세한 이후 숭모회, 흥사단(의정부지부 및 강북분회 중심), 무후광복군기념사업회 등이 각각 주도한 이들 추모행사가 끝내 하나로 통합되지 못한 채 대전국립현충원에 모시게 되었다.

 

참고로, 가족이 나타나서 국립묘지에 이미 이장한 선열도 몇 분 있어 현재 봉분 1기로 구성된 한국광복군 합동묘소(서울 강북구 수유4동 산127-1)에는 현재 17위가 함께 모셔져있다. 안장된 광복군 선열 17명 중 13명은 1943~45년경 중국 각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전사, 처형, 자결 등)했다. 나머지 4명은 광복 후 국내 등에서 작고했다.

 

해외순국자의 경우 유골을 독립투사동료들이 해방 이후 귀국하면서 모시고 와서 조계사 등에 임시 안치했다가 1957년 작고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옛 수유리 묘소(1994년 서울현충원 이장) 아래에 1961년부터 한국광복군 동지회가 합동묘소를 조성하기 시작하여 1981년까지 안장이 이루어졌고, 1985년 국가보훈처에서 단장했다. 특히, 무후광복군 17위 비석(묘비명) 뒷면에는 짧지만 읽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추모시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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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경선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