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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19)] 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저 | 김미영 역 | 창해(새우와 고래) 416쪽 | 12,000원

 

『13번째 인격』은 1996년에 발표된 기시 유스케의 소설 데뷔작으로 제3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장편부 가작에 선정됐다. 2000년에 <ISOLA 다중인격 소녀>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이 소설은 1995년 1월17일 6,0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한신 대지진 때문에 집과 가족을 잃고 대피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 치료를 돕기 위해 사건 현장에 찾아온 자원봉사자 유카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사고와 감정을 읽을 줄 아는 초능력(엠파시)을 지닌 이른바 ‘엠파스’다.

 

유카리는 자원봉사 중 16살 소녀 치히로를 만나게 되는데 엠파시를 통해 치히로에게 몇 가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간파해낸다. 치히로는 5살 때 눈앞에서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유체이탈과 임사체험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 이후 숙부 내외와 함께 살면서 학대를 받아왔다. 결국 치히로는 생에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 상황을 견뎌내고자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내면서 다중인격자가 되고 말았다. 유카리는 그런 치히로의 삶에 깊이 감정이입하면서 치히로의 여러 인격을 하나로 통합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중 유난히 이질적인 인격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어느 인격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분노와 원망에 차 있는 13번째 인격인 바로 ‘이소라’다.

 

저 이소라라는 인격 안에는 막 둥지를 파괴당한 말벌과 같은 흉포한 분노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유카리는 그 위험한 날개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인간적인 따뜻한 감정이라고는 아예 결여돼 있었다. 그것은 마치 파충류처럼 냉혹한 분노였고 유카리는 엠파시를 통해 그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의 오래된 괴담소설집에 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한 이소라. <기비쓰의 가마>에 나오는 이소라는 방탕한 남편과 결혼했지만 남편은 계속 바람을 피우다 결국 기녀와 함께 이소라를 피해 도망가고 만다. 끝까지 남편을 쫓아간 이소라는 생령生靈이 돼 기녀를 죽이고 다시 사령死靈이 돼 남편마저 죽이고 마는 원혼에 찬 귀신이 됐다. 그러나 치히로의 13번째 인격인 이소라 이름의 영문 표기는 ISORA가 아닌 ISOLA. 그녀의 이름에 담긴 비밀은…….

 

평범한 인상의 옆집 아저씨 같은 외모의 기시 유스케, 일반적인 작가들과 달리 보험 회사 직원이었던 특이한 이력을 가졌지만 그의 소설은 특별한 힘을 가졌다. 대부분 두꺼운 분량에도 손을 떼지 못하고 결말까지 읽어나가게 만드는 힘, 기시 유스케의 작품에는 그런 강력한 흡인력이 숨어 있다. 생생하고도 세심한 심리 묘사와 뛰어난 주제의식으로 기시 유스케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특히 이 작품은 실제 작가가 1995년 고베대지진 당시의 충격을 소설로 옮긴 것이다. 멀쩡하던 건물들이 무너지고 무수한 사람들이 한순간에 죽어 없어지는 광경을 바로 근처에서 목격하면서 머리에 둔기를 얻어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그 같은 위기 상황이 닥치면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게 너무도 적고, 결국 개인들끼리 서로 구출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보면서 국가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고, 기시 유스케 자신이 소설가로 전향하는 데도 특별한 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한다. 결국 그때 경험을 토대로 『13번째 인격』이라는 작품이 나왔다.

 

그런 이유로 『13번째 인격』은 그저 흥미진진한 무서운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그 이상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회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 흥미로운 소재들을 모아 하나의 잘 짜여진 이야기로 만들면서 섬뜩하리만치 선명한 교훈 하나를 남겨준다. 현대인의 욕심과 현대인의 현실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작가 기시 유스케 소개

 

인간의 욕망과 광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모던 호러’ 대표 작가. 『검은 집』을 비롯하여 『천사의 속삭임』, 『푸른 불꽃』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이미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기시 유스케는 1959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교토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였다. 아사히 생명보험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프리랜서로 독립, 이후 『열세 번째의 인격-ISOLA-』이라는 제목으로 가도카와 호러 문고로 간행된 그의 작품은 1996년 제3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장편부 가작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1년 뒤, 1997년 『검은집』으로 제4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역량을 검증 받았다.

 

이후 기시 유스케는 모던 호러를 대표하는 작가로 불릴 정도로 인간의 욕망과 광기를 세밀하게 그린 작품을 많이 발표하고 있다. 『푸른 불꽃』에서는 청춘 미스터리, 『유리망치』(2005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에서는 본격 미스터리, 『신세계에서』(2008년 제29회 일본 SF대상 수상)로 SF에 도전하며 매번 전혀 다른 작풍과 작품관을 선보였다. 또한 작품을 많이 쓰지 않는 그로서는 2008년도에 『신세계에서』 외에도 첫 단편집 『도깨비불의 집狐火の家』을 연이어 출간하며 최근 들어 더욱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대표작 『검은집』은 '인간의 마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시종 분위기를 압도하는 섬뜩한 캐릭터 설정, 절묘한 구성력과 복선의 묘미는 숨가쁘게 페이지를 넘겨가는 가운데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최근작 『신세계에서』는 기시 유스케가 1986년 제12회 ‘하야카와 SF 콘테스트’에서 가작으로 입선한 단편 「얼어붙은 입凍った嘴」을 모태로 쓴 작품이다. 대학생 때부터 30년 가까이 구상해온 아이디어를 장편으로 개작한 이 작품은 2008년 SF대상 수상, 2009년 서점대상 후보에 오르며 작가 인생 최고의 결실을 맺었다.

 

출처=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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