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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20)] 살인증후군(전 2권)

누쿠이 도쿠로 저/노재명 역 | 다산책방 | 420쪽 | 각권 12,000원

 

사회 곳곳에서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보이스피싱’과 같은 신종범죄가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무차별살인’이라 할 만큼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사건도 일어나고 있다. 또한 범죄연령도 낮아지고 갈수록 범죄의 강도가 상상 이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이를 탁월한 솜씨로 풀어낸 미스터리 소설이 출간됐다. 현실적 소재, 독특한 캐릭터와 설정, 그리고 리얼한 상황묘사, 가슴이 절절할 만큼 정교한 심리묘사가 압권인 일명 ‘증후군 시리즈’가 바로 그것이다.

 

‘증후군 시리즈’의 작가는 25세 때 집필한 『통곡』으로 이미 아유카와 데츠야상 최종후보에 오른 누쿠이 도쿠로. 누쿠이 도쿠로는 사회현상과 피해자의 심리를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묘사하는 능력을 지닌 작가라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소설의 오락성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메시지, 작가의 역할까지도 함께 고민하는 작가로서, 일본 내에서는 이미 장기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중견작가로 굳건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살인증후군』은 『실종증후군』, 『유괴증후군』으로 이어졌던 ‘증후군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사회현상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실종-유괴-살인의 순으로 범죄의 강도를 높여갔던 이 시리즈는 『살인증후군』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강점이 ‘현실성’에 있다면 마지막 작품인 『살인증후군』은 그 정점에 서 있다.

 

소설의 중심소재는 청소년 범죄다. 전에도 청소년 범죄를 소재로 한 소설은 많이 있었다. 특히 일본소설에서 청소년 범죄는 꽤 비중 높은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 이 소설 속에서도 ‘청소년 범죄’는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 이외에도 ‘복수’나 ‘사이코패스’, ‘정신이상자’, ‘장기이식을 노리는 살인’ 등등 다양한 살인사건을 얽어내며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소설의 ‘리얼리티’는 우리의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들의 범죄행각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폭력, 강도, 강간, 심지어는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연일 기사화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도 양심의 가책이나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소설 속 범죄소년들도 그렇다. 소위 ‘소년법’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고 사회로 복귀한 청소년들은 범죄를 반성하기보다는 자신을 합리화하고 만다. 피해자 가족들은 사건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는 반면 범죄자들은 아무 일도 없이 일상을 이어나가는 모순.

 

이런 현실의 불합리함에 분노한 사람들이 복수를 실행하고 있다고 판단한 다마키는 비밀수사팀을 가동한다. 그리고 숨 막히는 추격전과 함께, ‘복수를 위한 살인은 용납될 수 있는가?’, ‘범죄자는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하는가?’ 등등의 묵직한 질문이 제기된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과연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도 우리들과 다름없이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심하게 휘어지고 다시는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정신이상자에게 처자식을 무참하게 잃은 남자, 청소년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약혼자를 잃어버린 여자, 동급생들에게 린치를 당해 목숨을 잃은 아들의 아버지, 그들의 인생은 이 사건을 계기로 심하게 요동친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 불시에 일어난 이 비일상적인 사건은 그들의 마음에 지옥을 만들어내고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겨놓는다. 그리고 그들은 복수를 선택한다.

 

문제는 이 ‘복수’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복수를 실행하면서도 ‘살인은 그저 살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와타루,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이 자신이 하는 행동이 ‘정의’라고 믿는 교코의 극적 대조는 독자들의 마음에도 파장을 일으킨다. 이 둘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고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 얽히고설키면서 과연 ‘범죄’와 ‘단죄’는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은 ‘사건의 발생과 해결’과 함께 ‘그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 커다란 축을 차지한다. 『실종증후군』과 『유괴증후군』에서도 하라다나 무토를 통해 ‘가족의 정’이나 ‘인간에 대한 의리’ 등이 그려졌듯, 연속해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속에서도 ‘인간다움’은 『살인증후군』의 큰 축을 담당한다.

 

자신의 죄를 반성하지도 않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범죄자들, 타인의 감정이나 아픔은 어찌되었든 자신의 쾌락을 위해 타인을 괴롭히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한 사람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도 등장한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살인을 하는 엄마,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하는 남자, 이 두 사람의 행동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만 분명 전자의 살인과는 차별성을 지닌다. 그리고 그들의 내면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갈등과 절규를 통해 독자들은 다시 한 번 ‘인간다움’과 ‘생명’에 대한 가치관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 누쿠이 도쿠로 소개

 

1968년 일본 도쿄 출생. 와세다 대학 상학부商學部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 아르센 뤼팽의 창시자인 모리스 르블랑의 소설을 읽고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 후 고등학교 3학년 때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미스터리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대학 졸업 후 부동산 회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도 그 결심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부동산 회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며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쌓은 누쿠이 도쿠로는 대학 시절부터 오랫동안 준비해온 소설을 드디어 세상에 내놓는다. 그 소설이 바로 1989년 일본을 경악시킨 희대의 범죄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을 모티브로 한 『통곡』이다. 『통곡』은 1993년 제4회 아유카와 데쓰야상 최종 후보작에 올라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이다가 아쉽게도 대상 수상을 놓치게 된다. 하지만 이때 심사위원을 맡았던 작가 기타무라 가오루가 누쿠이 도쿠로의 천재성에 감탄해 그의 작가 데뷔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거장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출간된 『통곡』은 신인답지 않은 절제된 문장력과 독자의 혼을 빼놓는 뛰어난 트릭으로 일본 문단과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또 ‘본격추리소설 100선’에 선정되는 등 일본 추리소설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신본격 미스터리의 젊은 기수로 화려하게 등단한 누쿠이 도쿠로는 『우행록』, 『프리즘』, 『살인 증후군』, 『실종 증후군』, 『야상』 등의 작품을 연속적으로 출간했으며, 이중 평온했던 일가족이 살해당한 이유를 철저하게 파헤친 『우행록』으로 제135회 나오키상 후보에, 한 아이의 죽음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폭로한 『난반사』로 제141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다.

 

아내는 제3회 아유카와 데쓰야상을 수상한 미스터리 작가 가노 도모코加納朋子. 누쿠이 도쿠로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철저하게 파헤치는 무거운 작풍으로 유명한 반면, 아내인 가노 도모코는 그와 반대로 가벼운 일상의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출처=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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