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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5)] 우행록



누쿠이 도쿠로 저 | 이기웅 역 | 비채 | 328쪽 | 10,000원

 

충격적인 반전으로 일본 미스터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통곡』(2008년, 비채 출간)의 저자, 누쿠이 도쿠로가 돌아왔다. 더욱 정교해지고 빈틈없어진 『우행록』은 도쿄의 고급 주택가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르포 형식의 소설이다.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다니는 엘리트 남편, 미인이며 곱게 자란 아내, 그리고 귀엽기만 한 두 자녀. 그림에 그린 듯 주변의 부러움을 사던 일가족이 식칼로 난자당한 채 발견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그로부터 1년 후, 이웃 아주머니, 부인과 요리를 배우던 수강생, 대학 동창, 회사 동료 등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인간이 지닌 어리석은 본성을 철저하게 파헤친 이 작품은 미스터리 소설 이상의 문학적 깊이와 가치를 인정받으며, 평론가와 독자들의 압도적인 찬사 속에 2006년 제135회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누쿠이 도쿠로의 정교한 덫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우행록愚行錄』은 말 그대로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대체 참혹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쫓는 이야기에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지인들의 증언이 계속됨에 따라 처음에는 완벽하게 보였던 피해자 부부가 사실은 철없는 행각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이 밝혀지고 독자들은 첫 번째 ‘우행’을 깨닫는다. 증인들의 목소리에 동조해 부부를 어느 정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성급한 독자라면 어쩌면 ‘결국 그 부부는 죽어도 안타까울 것 없는 인물들이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전의 달인 누쿠이 도쿠로가 단지 피해자를 단죄하기 위해 이처럼 번거로운 방법을 선택했을까?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피해자 부부의 인간성은 딱히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대부분의 지인들은 ‘그렇지만 그 사람은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었다’라는 식으로 최종 평가를 내리고 있다. 게다가 마지막에 밝혀지는 살인범의 정체와 범행 의도가 너무나 의외롭기에, 독자는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후에도 쉽게 책을 덮지 못한 채, 작가의 의중을 다시 처음부터 헤아려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자신의 잣대로 재고,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며 살아간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그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평가를 공론화하는 것이 과연 가당한 일일까? ‘남 말’을 한다는 것은 즉, ‘나는 그렇지 않잖아?’라는 상대적 우월감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누쿠이 도쿠로가 파헤치는 ‘우행’은 피해자 부부의 우행, 그들을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시시덕거리는 지인들의 우행,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을 평가하고 재단하며 ‘바보 같다’고 생각하고 마는 독자들의 우행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독자 모두는 작가의 정교한 덫에서 벗어날 수 없고, 잔인한 범죄의 공범이 되고 만다.

 

그의 천재성과 탁월한 문학성을 주목하라!

 

누쿠이 도쿠로는 미스터리 작가이면서도 트릭이나 기교에 치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게감 있는 진정성을 무기로, 인간 심리의 본질적인 면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단순히 흥미로 사건의 흔적을 쫓는 대신, 하나의 사건에 복잡하게 얽힌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와 상황의 추이를 쫓게 된다. 고뇌하는 작가 누쿠이 도쿠로의 진정성이야말로 어떤 기교보다 뛰어난 현실감과 짜릿한 스릴을 독자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이번에는 자신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향했다. 사실, 인간의 극단적 일면인 범죄를 소재로 하는 미스터리 작품을 읽으며 독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우행록』은 독자들의 가장 예민한 심리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무척 불쾌하다. 그렇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고, 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행록』은 미스터리로서의 완성도는 물론, 그 탁월한 문학성을 인정받아 일본 최고의 문학상으로 일컬어지는 제135회 나오키상 수상 후보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출처=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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