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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아라우의 후예15> 죽음의 잔해

<아라우의 후예15> 죽음의 잔해

 

[시사타임즈 = 이철원 시사타임즈 회장] 엄청난 재난 뒤에 살아남은 자들이 무엇보다 극복하기 힘든 것은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었다.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주민들이 1년 내내 길가나 마을 공터에 가매장한 가족의 무덤 앞을 맴돌고 있다. 그들 중에는 술과 수면제로 버티다가 하이옌 태풍 1주기가되면서 자살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동생의 모래무덤에서 피리부는 형 (c)시사타임즈

태풍이 지나고 한 달 뒤인 12월 초에 이곳에 정찰 왔을 때 폐허의 잔해 더미와 함께 눈에 들어 온 것은 병원 주변에 쌓여 있는 시체를 싼 검은색 비닐과 도로변, 공터 곳곳에 크고 작은 십자가가 꽂혀있는 돌무덤들이었다. 12월 말 부대원들과 함께 현지에 도착했을 때도 그 모습 그대로였는데, 지방정부도 너무나 많은 시신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특히 필리핀은 지주들이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시체를 매장할 곳이 없어서 가족의 시신을 집주변, 마을 공터, 도로주변, 성당에 매장하였다. 밤낮으로 무덤가에 앉아 있는 주민들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시청의 게시판에는 확인된 사망자와 실종자 명단이 붙어 있었고, 여기저기 늪지대와 건물 잔해, 해안가 등에서 막대기를 가지고 시체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도 여러 구의 시신을 봤는데 익사한 시신들로 손과 발이 구부러진 상태였으며 어린이 시신이 많았다.

 

▲메몰된 가족 (c)시사타임즈

아라우부대 캠프 건설 중에도 세 개의 임시 무덤과 한 구의 시체를 처리하였는데 현지인들은 우리 중장비가 움직일 때마다 ‘혹시 가족의 시신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에 지켜보았다. 또한 레이테 주립병원, 성 호아킨 병원 등에서 포크레인으로 잔해물을 치우다가 여러 구의 시신을 발견하여 처리하였다. 시신 발견시 시청에 신고하면 시신처리반이 출동하여 검은 비닐 주머니에 시신을 수거해 갔으며, 수거해간 시신은 한 곳에 모아 놨다가 일괄적으로 매장을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신원 확인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너무나 시신이 많아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웠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처럼 DNA 확인 체계가 없기 때문이었다. 주 정부도 시신 확인이안 되고 공동묘지도 제한되어 시신처리와 매장이 큰 이슈가 되고 있었다. 그나마 신원이 확인된 시신은 십자가에다 이름을 써서 매장이라도 했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대다수의 시신들은 2개월 동안 노상에 방치되어 있었다.

 

▲집단매장 (c)시사타임즈
▲집단매장전에 장례미사 (c)시사타임즈

 

1월 초, 타클로반 시장의 요청에 따라 포크레인을 지원하여 시립공동묘지에 1,000여구의 시신을 집단 매장하였다. 넓은 공터에 폭 3미터, 길이 50내지 100미터 도랑을 파서 바닥에 시신을 눕힌 후에 흙으로 덮었으며 묘비도 없이 평평하게 다진 후에 잔디를 심었다. 태풍 후 10개월이 지난 2014년 9월, 민방위 사무국은 태풍 하이옌으로 인한 사망 및 실종자는 12,000명이고 그 중 레이테주 일대에서 5,380명 타클로반에서 2,589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하였다. 당시에도 마을 곳곳에서 시신이 발견되고 있었고 실종된 시신의 대부분은 바닷물과 함께 쓸려 나갔다고 보고 있으며, 종종 어부들이 훼손된 시신을 발견하고 있어서 해안마을 주민들은 한동안 생선을 먹지 않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많은 주검을 대해 왔고 죽음에 대해 초연하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어떤 이유로,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어야만 하는지, 종교적으로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지 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저 내게 이러한 재난이 닥치지 않은 것이, 이런 재해의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감사했고 다행스러웠다.

 

글 : 이철원 시사타임즈 회장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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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원 시사타임즈 회장 wangco123@timesi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