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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엄무환 칼럼] 최악의 인생에서 최상의 인생으로

[엄무환 칼럼] 최악의 인생에서 최상의 인생으로
 

 

 

 

▲엄무환 국장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엄무환 국장]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실험 참가자 376명에게 인생에서 최고와 최악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꼽도록 하는 연구를 했습니다.

 

연구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개인 목표인 일, 취미, 학업 등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땀을 흘리지만, 많은 사람들이 꼽은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순간이나, 최악의 순간은 모두 다른 이들과 교감하고 얽히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라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즉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서의 ‘최고의 순간’을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독보적인 상을 탄다든지 하는 혼자서 이루어낸 성과보다는 누군가와의 멋진 만남과 사랑을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헤어진 일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지독한 말 또는 시련 같은 일을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순간’으로 꼽았습니다.

 

이 연구는 인생의 최고와 최악의 순간은 개인적으로 이룬 성취나 업적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인연이나 만남에서 비롯된 추억인 것으로 나타났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큰 업적을 이루거나 혼자서 크게 다치는 등 자기에게만 해당되는 어떤 사건보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거나, 어떤 일로 나쁘게 얽혀버린 사람과의 관계,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같은 것이 최고 또는 최악의 순간으로 꼽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구약성경 룻기의 주인공인 룻이라는 한 여인은 최상의 삶을 산 사람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외견적으로 볼 때 룻이라는 여인이 선택한 인생은 최상의 삶이 아니라 최악의 삶입니다.

 

룻의 인생이 최악의 삶, 또는 최악의 인생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녀가 남편이 없는 과부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됩니다. 지금이야 남편없이 여자 혼자 산다고 해도 어떤 면에선 훨씬 더 자유롭고 경제적으로도 별 문제가 없는 경우들이 많지만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남편을 잃은 과부는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았습니다. 상속 문제라든지 보호 장치가 남편의 유고로 상실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엔 과부들이 재혼을 하지 않는 한 살아갈 길이 매우 막막했습니다. 그녀를 돌봐줄 남자가 나타나야 비로소 정상적인 인간의 기본적인 삶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회는 기업무르기, 즉 고엘 제도를 통해 과부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고엘제도란 미망인의 형제나 가까운 친척 중에서 남편이 되어 후사문제와 경제문제를 해결해주는 제도입니다.

 

룻이라는 한 여인이 이스라엘의 한 남자와 결혼했지만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과부가 된 것은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 때 최악의 인생으로 전락했음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그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탐탁찮게 생각하는 모압 출신으로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인 베들레헴에 와서 살게 되었고 시어머니까지 부양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기에 자신의 삶도 추스르기 힘든데 이래저래 더 무거운 삶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최악의 삶입니다.

 

그런데 바보처럼 그녀는 이 삶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얼마든지 최악의 인생을 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말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며느리인 룻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다른 남자를 만나 새 출발을 하라고 강력하게 권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룻은 시어머니의 권면을 단칼에 거절하고 자기와 마찬가지로 과부요 경제적인 능력도 없는 시어머니와 함께 죽을 때까지 살겠다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누가봐도 이런 그녀의 결정은 선뜻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바보처럼 스스로 최악의 인생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처지였던 동서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제안을 듣고 즉시 보따리를 싸서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룻은 바보처럼 시어머니와 함께 살겠다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머리 셈법이 빠른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그녀의 선택은 바보처럼 보일 법도 합니다. 그녀의 친정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그녀의 선택에 찬성표를 던졌을까요? 아니 그녀의 선택이 이해가 됐을까요? 그녀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녀가 선택한 길은 양탄자가 깔린 인생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최악의 삶이 너무나 분명한 그 길을 자청한 그녀는 정말 바보 같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정 식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서 “야, 이 바보 천치 멍텅구리야”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을 법한 그녀의 선택. 도대체 그녀로 하여금 최악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최악의 삶을 선택하게 했을까요. 그것은 그녀가 시어머니에게 한 말 속에 있습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기 1:16~17).

 

그녀의 이 고백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녀가 왜 외견적으로 볼 때 틀림없이 최악의 삶일 수밖에 없는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의 불가분의 관계가 그 이유입니다.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룻에게만큼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습니다. 룻의 고백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룻이 마치 찰거머리처럼 시어머니 나오미와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도대체 나오미가 며느리를 어떻게 했기에 이 정도입니까. 이건 시어머니 나오미가 며느리 룻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저는 룻기서가 시어머니들이나 며느리들이 꼭 연구해야할 시어머니 교과서 또는 며느리 교과서라고 봅니다. 모든 이 땅의 시어머니들은 반드시 룻기를 정독하셔야 합니다. 동시에 이 땅의 모든 며느리들 역시 룻기를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가정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고부갈등으로 부부관계나 가정에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합니까. 그런 점에서 룻기는 고부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는 너무나 소중한 스토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시어머니 나오미가 어떻게 했기에 며느리 룻으로 하여금 이런 고백을 하게 했을까요. 사랑입니다. 며느리의 행복을 위해 과감하게 친정으로 돌아가서 새 출발을 하라고까지 말하는 나오미의 처방은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이는 당시 시대 상황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삶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룻이 시어머니를 통해 받은 그 사랑에 감격한 나머지 시어머니와 함께 살겠노라고,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그 삶이 비록 최악의 인생일지라도 마다치 않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사실 나오미는 룻이 없으면 먹고 살기조차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아스가 기업무를 자라는 사실이 인식되었을 때 즉시 룻과의 결혼을 추진합니다. 며느리에 대한 사랑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입니다. 시어머니의 사랑이 룻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사랑은 위대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위한 그 어떤 희생도 마다치 않게 합니다. 그것이 사랑이 갖는 놀라운 힘입니다. 시어머니의 백성, 시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백성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는 그녀의 고백, 시어머니가 어디를 가든 자기도 갈 것이며, 시어머니가 머무는 그곳에 자기도 머물겠노라는 그녀의 단호한 의지는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니고선 설명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최악의 삶으로 이끈 결정적인 요인은 시어머니를 사랑한 사랑입니다.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은 자기를 사랑한 시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면 으레 남녀 간의 사랑이나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떠올리지만 룻기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진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시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최악의 삶을 선택한 한 여인의 인생을 말입니다.

 

그녀는 결국 시어머니와 함께 생면부지의 땅인 베들레헴에 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봉양합니다. 이는 과부들이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둘 다 과부인 최악의 인생. 앞날이 캄캄한 그녀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룻의 인생에 반전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녀가 이삭을 주우러 들어갔던 밭이 베들레헴의 유력자인 보아스라는 사람의 밭이었는데, 그곳에서 보아스와의 만남이 이뤄진 것입니다. 보아스는 룻에 대한 좋은 소문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며 친절을 베풉니다. 다른 밭에 가지 말고 자기 밭에서 이삭을 주우라, 일하는 사람들에게 룻을 건드리거나 하지 말라, 식사를 할 때 와서 같이 먹게 하고 시어머니에게 줄 음식도 챙기게 하는 등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룻으로부터 보아스가 베푼 친절을 듣자 머리에 섬광처럼 떠오른 게 있었습니다. 기업 무를 자라는 사실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모종의 작전을 지시합니다. 며느리에게 목욕재계하고 새 옷을 갈아입은 다음 보아스가 타작을 하고 밭에서 잠을 잘 때 조용히 가서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들고 그곳에 누우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지시에 100% 순종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어쩌면 이렇게도 쿵짝이 맞을 수 있을까요.

 

보아스가 잠을 자는데 발에 뭔가가 걸립니다. 그래서 자다 말고 깜짝 놀라서 벌떡 앉아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룻이 “당신의 여종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당신이 기업 무를 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룻이 보아스에게 “나와 결혼해 주세요” 라고 청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한 말의 의미를 충분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룻에게 말합니다. “알았다. 네 말대로 내가 기업 무를 자가 맞다. 그런데 나보다 순위가 앞서는 사람이 있다. 아침에 그 분에게 물어보고 그분이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 그분이 할 것이고 그분이 하지 않겠다고 하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건대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감당하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룻을 돌려보냅니다.

 

아침에 보아스가 말한 대로 기업 무를 자를 불러 룻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그랬더니 순위가 앞선 그 사람이 자기는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보아스가 룻에 대한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감당하게 됩니다. 보아스와 룻의 결혼이 성사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 대목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이는 룻의 인생이 최악의 인생에서 최상의 인생으로 반전되었음을 말합니다.

 

▶시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최악의 인생을 선택했던 며느리 룻,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놀랍게도 그녀의 인생을 최상의 인생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의도한 일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한 일은 오직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온 것과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이삭을 주운 일, 그리고 시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100% 순종한 일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힘든 일이었을지라도, 그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었을지라도 그녀는 시어머니를 위한 일이라면, 그리고 시어머니의 말이라면 묵묵히 그 모든 것을 감당했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사랑.

 

시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최악의 인생을 선택한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 그러나 그 사랑은 그녀의 인생을 최상의 인생으로 이끄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룻기의 짧은 스토리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강렬한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룻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단지 시어머니와 며느리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만은 아닙니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것입니다. 그 사랑은 보이지 않는 역사 속에서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은밀하게 진행시키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룻기의 마지막 대목이 이 부분을 비추고 있습니다.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왜 룻기의 저자인 룻이 룻기의 마지막 부분에 이 내용을 소개하였을까요. 이는 룻이 처음엔 알지 못했지만 그러나 그녀와 시어머니와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전개된 인생의 여정 속에서 놀랍게도 죄인인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단순히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인간적인 러브스토리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개입하고 있는 인생입니다.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 말입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이 이를 선명하게 밝혀줍니다.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1: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1: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룻이라는 한 여인의 인생이 최상의 인생이 되었다는 것은 단지 부자인 보아스와 결혼하여 잘먹고 잘살았기 때문에 최상의 인생이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인생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해 쓰임받은 인생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최상의 인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낳은 아들이 오벳입니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그 후손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려는 메시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 부모 자녀간의 사랑, 그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랑을 총동원하여서라도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 구원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증명하려 하신 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아는 사람은 이 사랑에 포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 땅에서 최악의 인생을 선택한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바로 그 증인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결코 최악의 인생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최상의 인생으로 마침표를 찍은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삶의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사도 등이 대표적인 증인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사랑에 감격한 적이 있습니까. 그 사랑이 내 삶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그 사랑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 사랑 때문에 어떤 희생의 대가를 지불할지라도 그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 사랑의 포로가 되십시오. 하지만 그 사랑이 단지 인간적인 사랑의 관계로 마침표를 찍어선 곤란합니다. 그 사랑이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포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인생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위해 쓰임 받는 인생이 된다면 룻처럼 최상의 인생을 산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이는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인생입니다. 이 삶의 자리로 하나님이 지금 나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최악의 인생일지라도 반드시 최상의 인생으로 마침표를 찍을 것입니다. 이것이 룻이라는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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