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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58)] 30. 타지키스탄(Tajikistan)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58)] 30. 타지키스탄(Tajikistan)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이성희 사장 박사 학위 수여식, 이종호 교수, 타직대 총장, 양태규 전 대사, 2004.4 (c)시사타임즈
▲< 국기 > 왕관은 타지크민족을, 적색은 민족의 단결, 태양, 승리를, 백색은 순수와 면화를 의미 녹색은 이슬람의 상징색. < 국장 > 국기와 동일한 왕관이 중앙에, 좌우에는 면화와 밀, 중앙부에는 타미르산맥이 위치 (c)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타지키스탄공화국은 중앙아시아에 있으며 중국,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과 국경을 접하며 수도는 듀산베, 공용어는 타직어이다. 13세기에 몽골, 15세기에 우즈베크인의 지배를 받았다. 1880년 러시아에 점령됐으며, 1929.10월 정식 소련의 공화국이 되었다. 1992년 소련 붕괴 후 CIS에 가입했다. 동부에는 파미르고원이 있다. 북부는 낮고, 사막 기후이며, 높은 산에 둘러싸인 남서부는 덥다. 민족은 타지크인 65%, 우즈벡인 25%, 러시아인 2%이고 이슬람교(수니 85%, 시아 5%)가 대부분이다. 주요 산물로는 면화·밀·야채이다. 석탄과 석유를 산출하며 바프시강에 건설된 수력발전소는 출력 270만 ㎾이다. 고려인이 2000명 우리 동포가 70여명 살고 있다.

 

The Republic of Tajikistan is a mountainous landlocked country in Central Asia. Most of Tajikistan's population belongs to the Persian-speaking Tajik ethnic group of Afghanistan and Iran. Once part of the Samanid Empire, Tajikistan became a constituent republic of the Soviet Union in the 20th century. After independence, it suffered from a civil war for 1992-1997. After the war, newly established stability and foreign aid allowed the country to grow.

1. 국명(Country) : 타지키스탄

(Republic of Tajikistan)

2. 수도(Capital) : 두샨베 (Dushanbe)

3. 면적(Territory) : 143,100㎢

4. 인구(Population) : 9,600,000명

5. 국민소득(GNI) : US$880불

6. 언어(Language) : 타지크어 (Tajik)

7. 독립일(Independence) : 1991.12.25

 

 

파밀고원의 땅, 타지키스탄

 

파미르 고원 끝자락에

태초의 고요함

그대로 간직한 땅이여!

 

BC 6 페르시아, BC 4 알렉산더,

7 C 투르크, 8 C 아랍, 13 C 몽골,

15 C 티무르, 그리고 19 C 러시아

그러나 1991년 독립을 이루었네

 

후잔드에서 두샨베 칠백리길

2500m 고개 넘는 굽이굽이 산길

이름 모를 산꽃들이 반기네

 

두샨베 월요 도시

20세기 초 천여 명 옹기종기

한때는 스탈린나바드로 창씨개명

이제 60만 도시되어

제 이름 두샨베 다시 찾네

 

바르조프강 예같이 흐르고

기사르 계곡 지키며

두샨베 미래를 꿈꾸네

 

파미르 전초기지, 호로그

이쉬카심 지나 얌천 온천

고도 3200m 뜨거운 물

온몸 피로 풀어준다

 

백두 청정봉 가르며

무르갑을 스치며

파미르 하이웨이

시원스레 달린다

 

타직인 밝은 내일 향해 달린다!

 

 

Land of the Pamirs, Tajikistan

 

At the foot of the Pamirs Heights

The tranquility of the world beginning

They still keep it just as it was

 

Persians in BC 6C, Alexander the Great in BC4

Turks in 7C, Arabs in 8C, Monglians in 13C

Timur in 15C n Russia in 19C

But They got independence in 1991, at last

 

280km between Huzand to Dushanbe

The winding lane over many ridges of altitude 2500m

But never alone, coz there're so many nameless flowers along

 

Dushanbe, the City of Monday

Only 1000 persons lived there in the early 20th century

Being once forced to change as Stalinabad in 1929

Having now grown a big city of 600000 persons

They found their original name, Dushanbe!

 

River Barjof still flows as before

Keeping Gisar Valley

Dushanbe is dreaming of its bright future

 

Horg, the base village to the Pamirs Heights

Yamchon Hot Spring after Ishkasim

Hot springs of 3200m-altitude

How fresh in that water after a long journey.

 

Thru white-covered peaks along

Passing by Murgap village and others

How merrily my car is running

On the Pamirs Highway

 

So are Tajiks for bright tomorrow!

 

 

1. 타지키스탄 약사

 

타직인의 조상은 고대 동부 이란족을 구성하는 박트리아인과 소그드인으로서, 2,500년 전 중앙아시아에 거주하기 시작,이후 투르크족과 몽골족이 중앙아시아에 진입하여 동부 이란족과 동화되었으나, 주로 동부 이란족이 타직인의 조상을 구성되었다.

 

BC 6세기에 페르시아 제국에 병합되었고, BC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함에 따라 마케도니아 왕국이 타직을 지배하였고, BC 4세기부터 BC 1세기 동안 타직 지역은 인도 쿠샨 왕조의 일부분으로 편입되었다.

 

타지키스탄 지역은 7세기에는 투르크, 8세기에는 아랍인에 의해 정복되었으며, 그 후 봉건적 체제가 확립되면서 타직이라는 명칭이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하였다.

 

이슬람 정복 이후 타직인들의 정체성 확립에서 사마니드 왕조(874~999)가 가장 큰 역할하였고, 사마니드 왕조의 짧은 지배 기간에 타직의 예술과 과학이 융성하고, 이 시대의 학자들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오늘날 타직인들은 타직이라는 이름과 정체성이 사마니드 왕조에서부터 기원한다고 생각한다.

 

13세기에는 다른 중앙아시아와 마찬가지로 몽골의 칭기스칸이 점령하고, 14세기에는 티무르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갔으며, 이 시기에 성립된 우즈벡의 칸에 의해 19세기 후반까지 복속하였다. 19세기 후반 제정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진출이 시작되어 먼저 부하라 칸국이 멸망(1866) 했고, 그 후 격렬한 저항이 있었으나 결국 타지키스탄 지역도 1895년 제정러시아가 점령하고, 1929년 우즈베키스탄공화국에서 분리되어 타지키스탄공화국 성립되었다.

 

1991. 9월 독립을 선언하고, 같은 해 12월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하였다.

 

우리나라와는 1992. 4.27 외교 관계 수립하고 2008. 2월 주타지키스탄 한국대사관(두샨베 분관) 개설하고 김흥수 초대 대사대리가 부임하였다. 2018년 양국 간 교역 규모는 2,382만 달러이며, 2010년 1억 3,378만 달러로 최대치를 기록한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타지키스탄에는 수도인 두샨베시를 중심으로 약 120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로 NGO 종사자 들이다.

 

2. 타지크스탄에서

 

(두샨베)

 

타지키스탄의 수도인 ‘두샨베’는 ‘월요일’이라는 뜻이다. 매주 월요일에 시장이 열리던 마을이 시장 중심으로 라람이 모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도 타지키스탄의 물류, 교통의 중심지이며, 발전하고 있는 타지키스탄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눈으로 뒤덮인 지붕, 파미르 고원과는 달리, 갓 피어난 꽃망울로 가득찬 두샨베를 통해 타지키스탄의 활기찬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넓은 공원이 많고 동상 등 조각품도 많다. 성대하게 치루어지는 타지키스탄의 전통 결혼식을 볼 수 있으면 행운이다. 그 곳을 찾아가 험준한 산맥을 살아가는 타지키스탄 사람들의 일생일대의 축제를 함께 해보면 평생의 추억이 된다.

 

또한 한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한국 땅을 고향이라고 생각하여 반갑게 맞아 주는 고려인 할머니들을 조우할 수도 있다. 서툰 솜씨로 한글 공부에 매진하는 고려인들을 보면 진한 동포애를 느끼게 된다.

 

(파미르 고원)

 

파미르(Pamir)란 페르시아의 고어로 ‘평평한 지붕’이라는 뜻으로, ‘세계의 지 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타지키스탄의 고원지대이다. 파미르는 타지키 스탄에서 가장 높은 산인 7,495m의 소모니봉을 중심으로 5,000~7,000m의 고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길이 약 800km, 면적 8,400 평방km에 달하는 지역에 걸쳐 있고, 천산산맥, 곤륜산맥, 히말라야산맥, 힌두쿠시산맥과 카라코룸산맥 등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파미르의 기후는 건조한 대륙성 기후로, 강수량이 적고 눈에 덮여 있으며, 기 온차가 매우 크다. 최근 유럽 등지에서 험준한 산악과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파미르를 찾는 여행객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오지를 즐기는 자전거 및 오 토바이 여행객이 많다. 파미르 지역 여행을 위해서는 별도의 방문허가증 발급 이 필요하다.

 

타지키스탄의 ‘M41’ 도로인 ‘파미르 하이웨이’는 키르기스스탄 오시(Osh)에서부터 파미르 고원의 주요도시인 무르갑, 호루그를 지나는 도로이다. 구간의 높이는 4655미터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이곳은 천국의 경관을 자랑하지만

 

고장난 트럭이 길을 막아 도로 전체가 마비되기도 하고, 눈이 쌓여 낭떠러지를 옆에 두고 고립되는 신세가 되기도 하는 지옥의 루트이기도 하다.

 

양동이로 차에 기름을 넣어주는 주유소와 기상 악화로 자주 정체되는 도로위에서 곶감을 파는 소년 등 파미르 하이웨이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색풍경들로 가득 찬 곳이다. 이 길을 달려 이스코심에 도착하면, 강 하나를 두고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이 나뉘어지고 이곳에서 매주 토요일 국경 시장이 열린다.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두 나라의 문화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조금 더 가면 ‘새들의 강’이라는 의미를 지닌 마을 무르갑에 도착한다. 해발 3655미터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타지키스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자 파미르 고원의 동쪽 관문이다. 이곳의 명물은 컨테이너 상점이다. 작은 규모이지만 방문객이 유일하게 생활필수품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해발 3655미터의 마을에서 소박한 삶을 꾸려가는 무르갑 사람들과 파미르 유목민을 만나 동물의 먹이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의 일상을 지켜 볼 수 있다.

 

3. 나의 업무

 

타지키스탄에는 우리 상주공관이나 KOICA 사무소가 없고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사무소가 타지키스탄 협력업무를 관할한다. 신임 김성환 대사가 타지키스탄 대통령께 신임제정하는 출장에 동행하여 처음으로 두산베를 방문하였다. 김대사는 타직 외무장관에게 신임장 사본을 제출하면서 나를 소개하고 앞으로 양국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언급하였다.

 

신임장 제정 때 에모말리 라흐몬(Emomali Rahmon) 대통령은 한국의 발전상황을 먼저 이야기하면서 한-타 우호관계를 강화해 줄 것을 김성환 대사에게 요구했다. 김대사도 KOICA를 통해 개발협력을 강화하고 한-타 회교관계를 격상 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하였다.

 

그후 타측에서는 우선 우즈베키스탄처럼 타지키스탄에도 봉사단원을 파견하여 주고, 병원건립을 원했지만 그 때는 IMF로 협력단 예산이 많이 삭감되어 적극적으로 협력사업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우리 사무소는 우선 예산이 크게 들지 않는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고 있던 타지키스탄 국립대학교와 러시아사범대학에 한국어 교재를 공여하였다. 나는 사적으로 그곳에서 자원봉사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던 이종호 교수와 원우연 교수를 응원하고 지원했다.

 

타지크 러시아사범대학에서 나에게 박사학위를 제의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하였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성공적인 이성희 사업가를 소개했더니, 그에게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수여하였다.

그리고 타지키스탄 국립방송사에 컴퓨터 등 사무장비와 차량을 공여하는 한편 동 방송사에 한국어 교육방송을 1주일에 1시간 씩 방영토록 섭외 하였다. 물론, 방송 테이프와 교재는 우리 협력단이 만들어 방송국에 제공했다.

 

4. 내가 만난 사람

 

(이종호 교수와 원우연 교수)

 

▲이종호 원우연 교수 가족과, 타쉬켄트, 2002.12 (c)시사타임즈

내가 2002년 7월, 처음으로 타지키스탄을 방문했을 때 이종호(1963년생) 교수와 원우연(1967년생)교수는 1997년도에 타지키스탄에 진출하여 타지키스탄 국립대학교와 러시아사범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두 교수는 타지키스탄어를 능숙히 구사하였다. 내가 타지키스탄 인사와 면담할 때는 물론 대학교에서 특강을 실시할 때도 항상 통역을 자임했다.

 

타지키스탄 국립방송사에 한국어교육 방송을 방영토록 섭외하는데도 두 교수는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또한 원우연 교수는 부인과 두 자녀와 같이 진출했기 때문에 나를 집에 초대하여 귀한 김치가 있는 식탁으로 나를 초대했다.

 

한국과 타지키스탄은 직항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서울 오가는 길에 타쉬켄트를 들렸고 우리 사무소를 꼭 방문하여, 타지키스탄 협력사업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도 그들을 타쉬켄트 우리 집에 초대하여 불모지에서 자원봉사하는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내가 타쉬켄트를 떠난 이후 나는 이종호 교수는 2005년 4월에 한 번 서울 우리 사무소를 찾아와 반가이 재회한 적이 있다. 그는 사석에서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나를 무척이나 따랐다. 그 뒤로 나는 잦은 해외근무 때문에 이종호 교수나 원우연 두 교수를 만나거나 소식을 들은 바가 없다. 다만, 지금도 타지키스탄에 남아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리라고 막연히 확신만 하고 있다. 워낙 타지키스탄에 애정을 갖고 있는 두 교수이기에…….

 

한국어를 보급하고 한국문화를 전파하며 우리 대사관이나 KOICA가 진출하지 않은 한국의 불모지에 한국을 홍보하는 이들은 참으로 민간 외교관이다.

 

 

(31번째 나라 키르키즈스탄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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