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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09)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09)

황허, 불그스름한 황금빛 강물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황허가 하늘로부터 떨어져 동해로 가나니, 만 리 강물은 가슴 한복판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黃河落盡走東海, 萬里寫入襟懷間)”는 이백(李白)의 ‘증배십사(贈裴十四)’를 읊조린다. 이백이 이 시를 황허의 어디쯤에서 보고 지었는지 모르지만 오늘 내가 닝샤후이족 자치구 사파토우의 절벽 위에서 바라본 모습과 비슷한 곳에서 바라보고 이 시상이 떠올랐을지 싶다. 지금 내게도 이 시상이 머리에 떨어졌는데 한발 늦었다. 한 발이 아니라 늦어도 너무 늦었다. ‘만 리 황룡이 가슴 한복판으로 날아 들어온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아, 황허다!” 가슴 속에서 탄성이 새어 나온다. 아시아 문화의 요람 황허를 이런 절벽 위에서 처음 마주하다니! 메마른 황토고원을 맴돌아 가는 황허는 누렇다기보다 오히려 불그스름한 황금빛의 강물은 아직 상류라 거대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 날카로운 협곡을 빠르게 달려간다. 14억 중국인을 낳아서 키우고 먹여 살리는 웅혼한 기상이 피부로 스며든다. 빠른 속도로 흐르는 강의 모습에서 승천하려는 한 마리의 웅혼한 황룡이 보인다. 이 강이 중국의 역사를 일구어 왔고 문명을 잉태하였고 예술혼을 키워왔던 강이다. 삶이든 역사든 결국 흘러간다. 붉은 토사를 품에 안은 고달픈 황허는 수없이 꺾어지고 부서지고 휘돌지만 점점 더 넓어져서 바다로 흘러간다.

 

‘중국의 탯줄’, ‘중국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중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황허이다. 저 아득한 세월로부터 중원지방을 관통하며 동북아시아의 문명 중심, 중원문명을 낳은 강 황허, 시인들에게는 영감의 젖줄을 대어 시가 넘실대는 강 황허! 내로라하는 시의 물결을 내 가슴에 넘실대게 하며 이 길을 달리지 않으면 지금껏 지나온 황량한 사막과 다를 것이 없겠다. 이백은 다시 장진주에서 항허의 근원에 대하여 읊는다.

 

그대는 보지 못 했는가

황허가 하늘에서 흘러와

바다로 내달아서는 되돌아오지 못하네!

 

백거이의 소울메이트로 알려진 유우석의 ‘랑도사’도 황허를 아름답게 묘사한 시이다.

 

만 리 모래를 훑어 굽이쳐 흐르는 황허여

바람 물결을 뒤집으며 하늘 끝에서 오는구나!

이제 곧장 황허를 타고 올라가 은하까지 가리니

우리 함께 견우와 직녀의 집까지 이르러보세!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도 황허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상류에는 용문(龍門)이라는 협곡이 있다. 이곳은 장구처럼 가운데는 폭이 좁고 양쪽은 폭이 넓어 병목 현상이 생기므로 물살이 거세다. 잉어가 급류 아래 많이 모이는데 이 급류를 거슬러 오르는 잉어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잉어가 이 급류를 거슬러 오르기만 하면 용이 된다는 전설이 생겼다. 여기서 입신출세나 벼슬길에 오르는 관문을 통과한 것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사마천은 이지역 출신이다. 그가 36세에서 56세까지 20년간 쓴 사기(史記)에는 중국 고대 신화부터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 진시황제, 그가 살던 한무제까지의 인물들을 기술하였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만 권의 책을 읽고 만릿길을 여행했다고 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오르기 전에 길거리에 수박을 파는 행상이 보인다. 어제 사파토우란 황허 강변의 민박 마을에서 숙박을 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을 볶음밥을 싸달라고 했는데 바쁘다고 저녁 9시까지 해준다더니 안 해주어서 우리가 5시 40분쯤에는 나가야 하니 아침 일찍 해달라고 했는데 아침에도 안 해놓았다. 결국 아침은 컵라면으로 해결하고 출발하였는데 중간에 식당이 없어서 굶을 처지였다. 다행히 우유와 빵 소시지가 있어서 점심도 그걸로 때웠다.

 

수박을 잘라서 파는 것이 있으면 사려고 했는데 잘라서는 안 판다고 한다.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혼자서 큰 수박 한 통을 잘라서 다 먹을 수는 없어서 발길을 돌리려는데 내 행색을 보고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더니 작은 수박 한 통을 먹으라고 건네준다. 수박으로 목의 갈증과 인정의 갈증을 해결한 덕분에 36도의 날씨에 가파른 언덕을 거뜬히 달려 올라간다. 한국은 요즘 39도 40도를 오간다니 이곳의 36도의 온도는 피서 온 것쯤으로 여겨진다.

 

중국은 지정학적 이유로 늘 우리의 역사와 함께 때로 피 터지게 싸우며 때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공존해 왔다. 그래서 비슷한 것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친숙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한편 밉기도 하고 정겹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 국경에 들어서부터 두 달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호기심의 문은 닫히질 않는다. 다 알 것 같으면서도 낯선 나라가 중국이다. 황허가 펼쳐져 나간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중국의 모습을 보일 테니 이제 제대로 중국을 탐험할 것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더 알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사람들은 멍하니 아무 표정 없이 쳐다보기만 한다. 속마음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달려서 스쳐 지나가는 내게는 그들이 참 무뚝뚝하고 정이 없어 보인다. 16개국을 지나오면서 많은 사람과 만나서 짧은 시간이지만 정을 나누어왔지만 여기서는 기회를 만들 수가 없는 것이 아쉽고 답답하다. 멋지게 꾸미고 프롬파티에 나가서 춤 신청을 한 번도 못 받은 졸업반 여고생 느낌이랄까, 삼각관계에 있던 여인을 연적에게 빼앗긴 당대의 풍운아 장쉐량의 심정이랄까. 20세기 최고의 삼각관계라면 아마도 쏭메이링을 가운데 두고 장제스와 장쉐링의 삼각관계일 것이다.

 

송메이링과 당시 중국 최고의 귀공자로 알려진 장쉐량이 처음 만나 건 1925년 상하이 주재 미국 영사관 칵테일 파티에서였다. 장쉐량은 자신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망신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그녀는 배꼽을 잡고 웃어주었다. 이어지는 춤판에서 그녀는 그의 손을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둘은 누가 보아도 오랜 연인 같았다. 그들은 상하이에서 8일간 같이 다녔다. 그녀는 아직 미혼이었지만 그는 결혼한 몸이었다. 3년 후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장제스의 부인이 돼 있었다. 장제스도 결혼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본처와 이혼하고 일본까지 따라와 구애했다.

 

하지만 장쉐량과 쏭메이링은 20대에 만나 80년 가까이 사랑과 우정을 나누었다. 2001년 장쉐량이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뉴욕에서 들은 104세 쏭메이링은 가슴을 치며 흐느꼈다. 그 세 사람은 중국 현대사를 몇 번이나 뒤엎은 사람들이다. 장쉐량과 장제스는 한때 중국을 남북으로 양분했고 쑹메이링은 태평양전쟁 동안 가장 맹렬히 활동한 여성 정치가였다. 그녀는 시안사변으로 장쉐량이 장제스를 연금 했을 때 장제스를 구했고, 그 후 장제스가 장쉐량을 51년간 연금하는 동안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훗날 장쉐량은 그녀가 과부가 되는 것을 볼 수 없어서 장제스를 살려주었다고 회고했다. 사랑의 대가는 그가 51년간 연금 생활을 하는 것으로 톡톡히 치렀고 죽으면서 “한평생 유감은 없다. 한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세상에 숨길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는데 하나는 무식이요, 둘은 가난이라, 셋은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장쉐량을 바라보는 쑹메이링의 눈빛은 장제스가 옆에 있어도 언제나 영롱했다고 한다. 둘이 산책할 때면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지 않아도 다정한 분위기가 옆에 느껴졌다. 중국의 2인자 장쉐량이 최고 통치권자 장체스를 연금했다는 소리를 듣고 시안으로 남편을 구하러 날아간 쏭메이링의 얼굴은 사지에 빠진 남편을 걱정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를 오랜만에 만나는 여인의 얼굴이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내가 중국어라도 더 배워왔으면 나을 것을 그러질 못했다. 거리에서 자동차의 경적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낭자했다. 모든 차의 운전자는 차 갖은 게 뭐 자랑이라도 되는 듯 경적을 울려댔다. 버스운전자들은 자기가 먼저 가야 할 권리가 있다는 듯 동네 주먹처럼 경적을 요란하게 울려댔다.

 

중국 문명의 요람이자 중국에서 2번째 긴 강, 황허의 길이는 5,464km에 이르며 서로는 칭하이성(靑海省) 바엔카라산맥 야허라다쩌산에서 양수를 터트려 쓰촨을 지나고 간쑤성에 접어들어 황토를 만나면 코발트빛을 잃어버리고 누런 탁류로 변한다. 닝샤자치구 등을 돌아 내몽고, 산시, 샨시, 허난, 산동을 거치는 그야말로 대장정을 마치고 황해로 흘러든다. 그 황허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물에 진흙의 함유량이 많다고 한다. 오죽하면 강이 흘러드는 바다의 이름을 강에서 이름을 따 황해가 되었을까. 황허는 흘러내리는 토사에 의해서 화베이평야의 대부분을 형성한 만큼, ‘물 1말에 진흙 6되’라고 할 정도이다.

 

황허는 중국인들에게 삶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난폭한 폭군이 되기도 한다. 비옥한 곡창지대인 화베이 평원을 제공하지만 물에 황토가 유입돼 퇴적물이 쌓여 강바닥이 평지보다 높은 천정천(天井川)을 형성하여 홍수의 피해가 크고 유로가 자주 변경된다. 평균 27년에 한 번씩 물길이 바뀐다고 한다. 상류부터 하류까지 경사도가 심해 배가 다니기에 부적합하다.

 

우임금이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권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황허의 치수에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흙이 수천만 년에 걸쳐 퇴적되었기에 토양이 부드럽고 영양분이 많아 힘들이지 않고 농사를 지어서 풍성한 수확을 얻으니 중국인들은 범람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재난과 싸우며 자자손손 이어온 것이다.

 

나는 이태백의 시에 한 구절 더 보탠다. 황하가 하늘로부터 떨어져 동해로 가나니, 만 리 강물은 가슴 한복판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그 강물은 내 가슴에서 황금빛 평화의 물결로 일렁인다. 어려움과 7월의 무더위를 뚫고 이제 간쑤성을 지나 닝샤후이족자치구로 들어왔다.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문명을 낳고 역사와 문화를 꽃피운 중국의 어머니 강 황허와 격한 만남을 가졌다. 이제부터 모친하(母親河)가 중국인들에게 선물한 풍요로움을 만나볼 수 있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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