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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11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11

문화 정체성과 이름에 대한 단상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중국인들은 웬만해서 중국말에 외래어를 섞어 쓰지 않는다. 중국에 들어와서 가장 큰 문제가 소통이었다. 섞어 쓰지 않으니 기본적으로 만국 공용어쯤으로 여겨지는 단어도 못 알아들어 아예 소통을 포기해버리다시피 했다. 내 여정을 설명하려고 네덜란드에서 출발하여 독일 체코를 거쳐.... 이렇게 이야기해봐야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네덜란드는 하란(荷蘭), 독일은 덕국(德國), 오스트리아는 오지리(奧地利) 등으로 표기하니 처음부터 소통 불가이다. 중국에서 화장실을 찾을 때마다 마임으로 연기하는 일은 여간 난감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번 우루무치를 지날 때 잠시 우렁각시 노릇을 해주었던 휘족 영어 선생님 도도를 만나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한 이후에 중국을 달리기 시작해서 3달 동안 현지인들하고 대화할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힘들게 달리는 중에도 가끔 현지인들과 차를 마시든지 식사를 같이하면서 대화를 하는 시간은 넓은 바다에서 반짝이는 진주 같은 영롱한 시간들이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이제 닝샤후이자치구도 지나고 산시성의 딩티엔에 들어왔다. 중국에 산시성으로 발음되는 성이 두 곳이 있다. 산시성(山西省)은 앞으로 더 가서 만날 동부에 있고 내가 지금 막 들어선 곳은 산시성(陝西省)이다. 이곳의 주도가 우리가 전통적인 실크로드의 출발지라고 부르는 시안이다. 시안은 중국 최초로 통일왕국을 이룩한 진나라뿐만이 아니다. 13개 왕조를 거치는 1,180여 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다. 당나라 때 인구 100만을 자랑하던 시안은 세계 정치, 경제, 종교, 문화의 중심지였다. 중국에서 이슬람과 기독교가 가장 먼저 전파된 곳도 시안이다.

 

 시안은 처음 내가 일정을 짤 때 가장 중요하고 꼭 지나갈 도시로 표기하였는데 이제 이 일에 간여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 나의 여정이 변경되어서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당나라 때 오래도록 평안하라는 뜻의 ‘장안(長安)’으로 불렸다가 수도를 비롯해 국가 정치, 경제, 문화, 중심이 동부 베이징으로 이동한 이후 서쪽이 편안하라는 의미에서 ‘시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산시성(陝西省)으로 들어오기 전 어제 닝샤후이족자치구의 작은 마을에서 숙소를 정하고 짐을 푸르고 샤워까지 했는데 무장한 공안이 또 들이닥쳐 더 큰 도시로 이동하여 숙박하라며 짐을 싸라고 해서 짐을 다시 싸서 나왔다. 중국에 들어와서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외국인들이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준이 어디에 근거를 둔 건지 알 수가 없다. 별 세 개 이상의 호텔에서만 숙박할 수 있다는데 별 세 개라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왜 이렇게 불합리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법을 만들어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내게 큰 고통을 주는 커다란 장애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는 지역마다 공안에 가서 등록해야 하는 것은 거주이전이 자유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이런 일들이 힘든 내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웃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을 안고 온 내게 폭력과 같은 못된 짓이었다. 기분 좋게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에 짐을 다시 꾸려 70km 이상 차로 달려 산시성(陝西省)의 첫 도시 딩티엔으로 들어왔다.

 

 저녁 식사를 하러 호텔 옆 식당을 찾아갔는데 이 식당 주인의 딸 빙칭이 마카오에서 대학을 다니다 방학 때 집에 와서 부모님을 도와주고 있다. 오랜만에 영어로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피곤한 줄 모르고 이야기하다가 올라와 침대에 눕자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말이 통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기가 좋았고 오랜만에 말을 많이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미역국이 서비스로 나와서 좋았다. 말이 통해서 잠시 마음을 나누다가 정으로 미역국을 서비스라고 내미는 손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수도자들의 수행 중에 묵언수행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이렇게 홀로 떨어져 1년 가까이 있어 보면 알게 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딩티엔에서 안비안으로 향하는 길에는 하미과와 수박 행상들이 길거리에 늘어서 있었다. 그중에 한 아주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을 달려 올라가는 내 모습을 보더니 오라고 손짓을 한다. 손에는 잘 익은 하미과 한 조각이 들려있다. 그 과일을 내미는 아주머니의 손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몸짓이었다. 내미는 팔에 솜털이 사막의 한여름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받아든 아이처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더니 아예 그 큰 과일 한 덩어리를 통째로 내놓는다. 나는 한 조각만 더 먹고 그 아름다운 손을 잡아 최고의 감사를 표했다.

 

 달리면서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질문한다. 성찰적 사고의 윤리적이고 지적인 힘은 내게 주체성을 찾고 정체성을 찾도록 인도해준다.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만의 이유로 살아가도록 하는 힘이 그 안에서 솟아 나온다.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은 단지 내가 누구인가를 보여주지 않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 성장하게 하며, 무기력에서 활기찬 생활로, 맹목적에서 뚜렷한 목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변화는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된다.

 

 문화는 늘 같은 모양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단절과 축적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변화하고 발전한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정신없이 빠른 걸음으로 따라왔다. 우주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와 문화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기 마련이다. 자신도 모르게 주체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고 있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삶은 겉은 푸르고 속은 대나무처럼 텅 빈 것처럼 허황되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을 동아시아 문화권으로 분류한다. 한자문화권이라고도 하고 불교, 유교문화를 공유하기도 한다. 크게 보면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독특한 모습을 나타낸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함께 보인다. 불상도 서로 다르고 도자기도 서로 다르다. 중국의 도자기는 형태미를 갖췄고 일본의 도자기는 색채 미가 배어난다. 우리 것은 선이 아름답고 색이 은은하다. 고조선까지 우리는 중국과 역사의 맥을 달리했지만 그 후 우리 문화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대로 모방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받아들여 우리의 정서 안에서 녹여 담았다.

 

이곳에서는 기본적인 한자 실력으로도 어림짐작할 수 있는 간판들은 많다. 예를 들어 중심(中心)은 센터(center)라는 의미이다. 초시(超市)는 슈퍼마켓(super market), 컴퓨터는 전뇌(電腦)라고 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일상 대화에 영어를 무차별적으로 섞어 쓰는데 심히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심지어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이름마저도 영어식 이름 하나씩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미국에 살면서 내 이름 석 자 지키고 사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명구’라는 발음이 어려우니 영어로 바꾸라는 것이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이름 석 자 받아 들면서 처음으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북에서 일찍 돌아가셔서 온 가족의 축복 속에 장손으로 태어난 나의 이름을 건강하고 아버지가 복되게 살기를 축원하면서 장고를 거듭하면서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세계화 시대에 살게 될 아이의 운명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이름을 지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외국 사람이 나를 부르는 것이 어려운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이름은 곧 그 사람이다. 자신을 나타내고 소개하고 알리는데 필요한 수단이자 목적이다. 누구나 이름을 날리고 명예를 얻고자 열심히 살아간다. 그 이름이 기억하기도 좋고 자기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면 좋겠다. 사람이 살면서 어떤 이름을 가지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불리느냐는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름 이외에 호나 자를 쓰기도 했고 글을 쓰는 사람은 필명도 있고 연예인은 예명도 있다. 그리고 종교인들에게는 법명이 있고 또 세례명이 있다. 나는 내 본명인 명구(命求)도 좋고 법명인 진성(眞星)도 좋다. 생명을 구한다는 뜻이니 이름값만 제대로 하면 가문의 영광이겠고 참다운 별이 된다면 일신의 광영이겠다. 나는 미국에 살면서 굳이 한국 이름을 고집하고 살았는데 사실 불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꼭 지키고 싶은 자존심과 정체성은 있었다. 그 이름으로 내가 살아온 시간들의 소중함이 이름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영화 ‘쉬리’로 스타덤에 오르고 다시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드라마 ‘로스트’로 월드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녀는 뉴욕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에게 물었다. “연기자로 활동하려면 친근한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니 킴’은 어때요?” 선생님은 정색하며 “연기나 잘해! 그러면 사람들은 네가 아무리 어려운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발음 연습을 해서라도 네게 올 거야!” 그녀의 이름은 김윤진이다. 그녀는 결코 부르기 쉽지 않은 ‘윤진김’으로 불리면서 아시아의 신비스러운 이미지까지 얹어져서 왕성하게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찬호박의 성공과 세리박, 신수추, 현진류 등의 성공을 한국 이름으로 들으면서 지켜봐 왔다. 발음이 약간 이상하지만 물건이 좋으니 ‘샘성(SamSung)’ 이라는 상표의 성공도 지켜보고 있다. 무엇보다 압권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었다. 사람들은 기문반이 아니라 반기문이라고 정확하게 발음한다. 아무리 거만한 미국인도 재인문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부른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그를 정은김이라 부르지 않는다.

 

 우리의 이름은 성이 앞에 가고 이름이 뒤에 붙어야 제대로이다. 성이 앞에 나오고 이름이 뒤에 따르는 것도 문화 정체성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면 세계인들도 따라온다. 우리가 미치도록 아끼고 사랑했지만 사실 외국인들에게 내놓기는 맛으로나 냄새로 부끄러웠던 김치 맛을 이제는 세계인들도 알게 되었다. 우리말 노래가사를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이제는 저렇게 많은데 이름 석 자 못 따라 부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배려는 나의 모습을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내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내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고 그 분명한 정체성을 남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을 때 민족을 넘어 인류 보편적인 시민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것이 유라시아 평화시대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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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