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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15)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15)

‘연탄 길’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내가 진정 두려운 것은 느리게 가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서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제자리에 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내 자신에 분노해왔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 대한 분노가 나를 길 위에 나서게 하였다. 길 위를 달리는 시간, 오직 심장 박동 소리만 들리는 이 순간 내 안의 연탄불 같은 뜨거움이 밖으로 분출되고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진정한 피와 살이 있는 시간을 성찰하게 된다. 푸르붉은 뜨거움이 나의 하루하루를 온전히 지배한다는 일은 경이로운 일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뒤뚱뒤뚱 그렇게 느리게 멈추지 않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내 발자국이 찍어낸 그 점들이 나를 놀라게 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느림이 가져다준 선물은 많다. 무엇보다도 뜨거운 가슴을 내게 선사했고 나는 그 가슴으로 자연의 모든 생령들과 뜨겁게 교류를 할 줄 알게 되었다. 자동차로도 이 거리를 달려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밖이 어디든 이제는 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오래 알 속에 갇혀있었다. 사람들은 나보고 더 준비해서 떠나라고 했지만 나는 박차고 길 위로 나섰다. 알 속에 안주할 때가 있고 알을 깨고 나올 때가 있다. 알 속이 편하기는 하지만 알 속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나는 50년을 알을 깨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알 속에서 움츠리고 있었다.

 

이제 한국이 그럴 때이다. 껍질 안에서 숙성할 때가 있고 그 껍데기를 깨고 나올 때가 있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껍질 안에서 너무 오래 아무 생각 없이 움츠리고 있었다. 이제는 두꺼운 알껍데기를 스스로 깨고 나올 때이다. 제때 껍데기를 깨고 나오지 못한 알은 썩어버린다. 껍질 속에 머물러 있는 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미국은 도무지 우리가 알에서 부화해 훨훨 하늘을 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게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지금 지나는 타이항산맥 서쪽은 황투고원 지대이다. 비가 조금만 와도 곱고 가벼운 황토가 패여서 협곡은 깊고 아슬아슬하다. 사람들은 어디에고 그곳의 기후와 환경에 맞춰 적응하며 살았다. 이곳에는 계단식 밭이 많이 있고, 낮은 산간지역에는 전통적인 동굴식 주거인 야오둥을 많이 볼 수 있다. 야오둥이란 간단히 말해 이 지역에 흔한 토굴식 주거이다. 이곳의 황토는 굴을 파기 쉽고 반면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특성이 있어서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것 같았다.

 

야오둥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토굴식 주거이다. 그 야오둥들은 지금은 많이 비었지만 아직도 몇천만의 사람들이 이런 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중국 인민들이 농공민으로 도시로 다 빠져나가 시골 지역이 동공화가 되기 전까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이 야오둥이 밖에서 치장하는 것이 한계가 있어 가장 신경 써서 단장하는 곳이 입구이다. 대부분 입구는 돌로 아치형으로 쌓아서 장식을 하여 아주 원시인들의 거주지 같지 않고 현대적인 감각까지 보인다. 자세히 보면 굴뚝도 한쪽으로 보인다. 이 야오둥에도 빈부격차는 있어 가난한 집은 그저 입구를 거적때기로 가려 바람을 막은 흔적이 있다.

 

이곳 산시성(陕西省) 션무에서 푸구 그리고 강을 건너면 성이 바뀌어서 산시성(山西省) 바우더시가 되는데 이 지역은 중국에서도 매장량이 가장 많은 석탄광산 지역이다. 기찻길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기차가 석탄을 실어 나르고 찻길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퀴 22개가 달린 괴물 같은 트럭들이 석탄을 싣고 달려간다. 이 지역의 바닥은 황사로 덮여있는데 황사는 분가루보다 더 곱고 가벼워서 콧바람으로도 한국까지 날아갈까 봐 숨 쉬는 것마저 조심스러울 지경이다.

 

달리는 트럭에서 떨어져 뒹구는 석탄은 뒤에 따르는 트럭에 밟혀 가루가 되고 이것이 황사와 섞여 다시 그 뒤를 따르는 바퀴 22개 달린 괴물이 지나가면 검은 먼지 버섯구름이 일어나 내 몸에 뒤집어씌우기를 반복한다. 흐르는 땀을 휴지로 닦아내면 휴지는 검정 숯으로 변해버린다. 이 트럭들은 14억 중국 인민들의 겨울을 따뜻하게 지켜주기 위해서 쌩쌩 부지런히 달려간다. 이 길 위에는 위험과 더위와 죽음의 매연과 연탄 가루와 황사가 일시에 안시성을 공격하는 당 태종의 군대처럼 내게 달려들어 나를 괴롭힌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 트럭들이 베이징까지 이렇게 간다니 내 기관지와 폐는 그때까지 괜찮을까? 길가에 피어난 접시꽃의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내 모습도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접시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검뎅이 되었다. 저만치 바퀴 22개 달린 괴물이 공룡의 사체처럼 담벼락을 밀고 들어가 반을 뒤집힌 채 자빠져 있었다.

 

석탄회사 안에는 저탄장이 웬만한 야산과 같이 크게 서 있다. 그 위로 그물이 덮여있었지만 날아다니는 검은 분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가 자랄 때 왕십리에도 대성연탄 공장이 있어 그곳에서 날아오는 분진 때문에 하얀 옷이나 이불보를 밖에 내다 널지 못했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동치미 국물을 마시고 깨어나기도 했었다. 또 교복의 하얀 옷깃은 금방 검게 되고 말았다. 그 시절에는 아무도 국가나 회사에 민원을 넣지 못했다. 그저 감수하고 인내할 뿐이었다.

 

사실 현대 문명은 석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에너지 이용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인간의 노동력이나 가축의 힘을 대신하여 기계의 동력을 이용하였다. 1780년대 제임스 와트는 석탄을 이용한 동력기관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의 단초가 되었다. 이후 증기기관이 다른 기계의 동력원으로 널리 사용하면서 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저 앞에 초라한 식당이 보인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점심이다. 이렇게 달리다 보면 제때 식당을 만나 점심을 먹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늘은 그래도 이렇게 트럭들이 많이 다니니 뜨문뜨문 식당들이 보인다. 식당 앞에 아직 30이 넘지 않았을 젊은 아낙이 목장갑을 낀 손으로 원석의 석탄을 바구니에 담고 있다. 창백한 아낙의 지친듯한 얼굴에는 검뎅이 묻어있다. 주방에서 쓸 석탄인 모양이다. 식당에 들어서니 나이는 좀 들은 것 같은데 어울리지 않게 화장을 진하게 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메뉴를 들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엉덩이를 흔들며 다가온다.

 

식당 안에도 검정 먼지는 여기저기 내려앉아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그걸 깨끗이 치우기란 역부족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불결함에 얼굴이 찡그려졌다. 한지만 끼니를 거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곳에서 불결함이란 일상이라 여겨야 한다. 잔디나 나무와 꽃보다 석탄이 굴러다니며 차에 밟혀 깨져 날아다니는 풍경이 여기서는 그럴싸하다. 이런 곳에서 화사한 것이라고 햇살뿐이었다. 이런 곳에서도 발정 난 고양이의 야릇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사진이 있는 메뉴라 나는 망설임 없이 하나를 골랐다. 같이 있는 운전도우미 장용씨가 당나귀고기인데 괜찮으냐고 물어본다. 인적이 드문 곳의 식당에 개고기도 있고 염소고기, 토끼고기, 등 메뉴가 다양하다. 나는 개고기는 안 먹지만 일부러 당나귀고기를 시켜 먹을 의향이나 호기심은 없지만 이왕 주문한 것이니 그대로 먹기로 했다. 나는 갱도 깊은 곳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광부처럼 먼저 물로 입을 헹구어 목과 콧구멍의 석탄 먼지를 씻어냈다. 맛은 소고기와 별로 차이가 없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비탈길을 검은 먼지를 뒤집어쓰며 천천히 걸어 내려오자니 발길에 석탄 부스러기가 계속해서 차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란 싯구절을 중얼거려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이미 지나버린 어린 시절 연탄불 위에다 고구마를 구워 뜨거워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껍질을 벗기며 먹던 기억이 난다. 가래떡도 그 위에 구워 설탕이나 조청을 찍어 먹으면 그 왕성하던 식욕도 더 이상은 요구하지 않았다. 라면은 구공탄에 끊여야 제맛이었다. 거기에 파 송송 썰어 넣고 달걀 한 알 깨어 넣으면 금상첨화였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아버지 월급날 하루 정도는 온 식구가 모여앉아 돼지고기를 구공탄에 구워 먹으면 다른 게 평화가 아니었다.

 

광부들이나 막노동하던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 삼겹살이다. 기름진 고기를 먹으면 하루 종일 일을 하며 기관지를 통해서 목구멍까지 내려간 먼지와 탄가루가 부드럽게 씻겨 내려간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뭐 과학적 근거까지 있을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건 핑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없는 살림이지만 고기 한 점 먹어야 또 내일 그 거친 일을 다시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기에 막걸리 한잔을 곁들이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셨으리다.

 

눈이 와서 미끄러운 길에는 타고 남은 연탄재를 뿌리면 출퇴근 길 사람들이 안전하게 지나다니곤 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의 길은 아직도 눈이 와 미끄러운 비탈길과 같다. 지금 가슴에 푸르붉은 싱싱한 불꽃을 피우면서 달리는 이유는 나도 한 번쯤은 한겨울 아랫목처럼 주위를 뜨겁게 달구고 싶었다. 그렇게 다 태우고 나면 연탄재처럼 아직도 미끄러운 평화의 비탈길에 뿌려져 사람들이 안전하게 다녔으면 좋겠다.

 

지금 한국의 역할은, 짧은 역사에 한 번도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미국이라는 손님이 가자는 대로 운전만하는 택시운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라는 손님을 평화의 세계, 평화의 파라다이스, 평화의 무릉도원으로 안내해서 평화의 가치가 자국 이기주의에 비할 바 없는 최고의 가치라는 것을 보여주는 운전자가 되어야겠다. 이 미끄러운 평화의 길 위에 연탄재를 뿌려 미끄러지지 않고 세계 사람들이 평화의 길을 잘 다닐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려면 이제는 스스로 알을 깨고 부화하여야 하겠다. 검은 먼지 뒤집어쓰고 연탄 길을 달리며 불꽃 같은 결의를 다져본다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의 ‘고향’ 중에서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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