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13)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13)

‘집으로 가는 길’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길은 기억할 수 없는 과거의 추억으로 이어지듯 아득했다. 사막은 나를 받아들이며 꽉 조이는 관능이, 초원은 격정이 지나간 후의 아득함이 있었다. 나는 고집스럽게 내 갈 길을 달리는 것이 창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길은 내게 시련과 고통을 가져다주었지만 기우뚱한 생의 벼랑 끝에서 무언가에 쫓기듯 도망치는 일상보다는 나았다. 나는 길 위를 달리면서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있다. 길은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시인, 연주자, 철학자를 깨웠다. 나는 이제 나를 벌벌 떨게 했던 눈보라도 폭풍우와 몸을 밀랍처럼 녹여버릴 듯했던 더위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나를 더 선연히 비춰주었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었지만 그 길을 따라 달리며 나의 발자취를 남기는 멋진 여정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아직도 무더운 한낮 뜨거운 열기 속에 도둑처럼 간혹 스며드는 찬바람이 살갗에 닿는다. 헤르만 헤세의 싯구처럼 ‘이제 여름은 늙고 병들었다.’ 육칠팔월 사막의 폭염에 맞불처럼 마주 서서 묵묵히 달렸다. 내 안에 붉은 용암처럼 솟구쳐서 뜨거움으로 더위를 녹여내는 응어리가 있다. 젊은 날 태우지 못한 응어리 같은 덩어리가 있다. 그때 나는 그것을 태울 만큼 발화열이 높지 않았다. 그때 태우지 못한 첫사랑이 내 안에서 농축되고 압축되어서 핵보다도 더 폭발적이고 태양보다도 더 안전한 연료가 되어서 유라시아를 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스팔트에 박힌 나사못에 걸려 넘어져 하루를 쉬고 아침에 일어났지만 다친 부위인 무릎이 부어올랐고 통증이 으르렁거리며 나를 압박했다. 잠시 나약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하루 더 쉴까 했지만 하루 더 쉰다고 바로 좋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일단 길 위에 나서서 뛰지 못하면 걷고 정 그것도 못 하겠으면 그때 다시 숙소를 찾아 들어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절뚝거리며 한 5km쯤 걸으니 몸이 더워지고 모공이 열리며 하늘의 정기가 그리로 들어온다. 이제 아주 조심스럽게 뛰기 시작한다.

 

처음 연애를 시작하는 소년처럼 떨리는 가슴은 안고 무릎에 아주 세심한 배려를 한다. 대지 위에 새색시의 발걸음처럼 사뿐사뿐 옮겨놓는다. 처음에는 많이 아프더니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더니 아드레날린이 샘솟으면서 발걸음은 정상적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잠깐 쉬었다 다시 시작하려면 다시 무릎에 통증이 온다. 그럴 때면 살살 걷다가 다시 모공이 열리면 달리기 시작한다.

 

운동에는 과부하의 법칙이 있다. 몸에 약간씩 과부하를 걸어주고 그것을 넘어서면 운동능력이 향상되며 신체 능력이 발달하는 것이다. 우리 몸의 세포 내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극을 이해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세포 내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일상보다 조금 다른 자극이면 된다. 이제 거의 1년을 몸에 과부하를 걸면서 나는 나의 한계를 넘어 연약하고 찌질한 내가 아니라 새로운 내가 되어 그리운 집으로 향하여 달리고 있다.

 

토굴집, 토담집, 기와집, 등 서로 다른 집들을 지나간다. 앞마당에 버드나무 휘휘 늘어진 집, 재잘거리는 도랑이 앞으로 흐는는 집, 언덕 위에 서있는 집이 있다. 가족들이 도란도란 툇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집, 아이들이 뛰어노는 집, 병과 금전 문제로 고통받고 걱정거리가 끊이지 않는 집, 또 다른 집에서는 사랑을 속삭이는 집도 있으리라! 집은 안락과 휴식과 몸과 마음의 평화를 제공한다. 집에서 가족과 살을 비비고 나눈 추억이 친밀감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때로 집을 벗어나기를 갈망하지만 그런 것들이 집으로 다시 회귀하게 이끄는 마력이 된다. 나의 집은 통일이 된 터전 위에 앞으로는 평화의 강이 흐르고 뒤로는 평등의 산이 바람을 막아 주는 곳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곳 산시성의 위린으로 향하여 달리는 길은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배경이 된 삼합둔과 비슷한 두메산골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영화를 보지 않았다. 시간과 비용대비 거의 매번 실망하고 나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장이머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갓 스물이 된 장쯔이의 화장발 없는 생얼굴이 유난히 청순하게 나오는 ‘집으로 가는 길’은 감동의 여운이 길게 남은 보기 드문 작품이었다. 시골 소녀의 순박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장이머우 특유의 서정성을 화면에 담아낸 작품은 아련한 애수를 자아내면서 영화에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있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에 들어가서 연기자들과 함께 호흡했었다.

 

중국의 전통 장례는 상여를 이고 고인이 살아생전에 다니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죽은 자가 집으로 오는 길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작품에서 길은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고, 그에 대한 끝없는 연정을 쌓아가던 길이다. 사랑하는 이의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추억과 사랑이 담긴 그 ‘길’을 걷고자 하는 여인의 소망은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시골 선생님의 장례를 위해 도시에서 생업을 멈추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수많은 제자는 선생님이 오셨던 그 길을 함께 다시 걷는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도시에 나가 살던 뤄성은 한걸음에 고향을 찾는다. 어머니는 상여를 들고 고인이 다녔던 길을 돌아보는 전통방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어머니에게 뤄성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다 나가 있어 상여를 들 사람도 없거니와 날씨도 추우니 간단하게 현대식으로 하자고 대답한다. 자신의 방에 들어온 뤄성은 책상에서 젊은 시절 부모님 사진을 발견한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온 동네 사람이 다 아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오지에 젊은 총각 선생님이 발령을 받아 온다. 마을 사람들은 도시에서 온 그를 보러 마을 전체가 웅성웅성한다. 새로 지을 학교가 준공할 때 나무에 두르는 천을 마을에서 제일 예쁜 처녀가 짜기로 했는데 눈먼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자오디가 뽑혔다. 선생님을 처음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버린 자오디는 더욱더 열심히 촘촘히 정성 들여 천을 짠다. 신축공사에 동원된 인력들을 위해 마을 사람들은 매일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데 자오디는 선생님이 행여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게 될까 봐 온갖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든다.

 

마을에 우물이 두 개가 있는데 선생님의 책 읽는 소리를 듣기 위해 자오디는 일부러 먼 우물에서 물을 길어온다. 그러다 선생님도 자오디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머리핀을 선물하며 마음을 전한다. 두 사람이 사랑을 이루어진 후에는 40년 동안 떨어진 적이 없다. 뤄성은 부모님들의 이런 숭고하고 애절한 사랑을 떠올리며 아버지의 장례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전통방식으로 치르기로 결정한다.’ 처음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에 잠 못 이루던 수많은 밤이 계속된다. 오지 마을에 부임해온 도시의 총각 선생님과 우연이라도 마주치고픈 바램으로 그의 주위를 맴돌던 자오디가 그의 어머니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복숭아꽃 고운 빛이 화면에 깔리고 아름답고 고혹적인 장쯔이의 환한 미소가 호흡을 멈추게 하고, 시선을 흡입하고 만다.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장만하고 그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보석 같은 눈망울로 바라보고, 눈보라 몰아치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망부석처럼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러브스토리이다. 거기에 옛 스승의 장례를 위해 도시에 나갔던 제자들이 고향으로 몰려와 모진 추위 속에서 잃어가는 전통의 장례의식을 하며 행진하는 모습은 심장의 끝부분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을 택해 아버지의 고향 집으로 가는 길에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가 다시 되새김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한이 갈라진 기형적인 구조 아래서 여지없이 짓밟혀버린 우리의 전통적 가치와 헤어져 살아야 했던 수많은 숭고한 사랑들을 떠오른다. 전통 가치와 의미가 철저하게 유린당하였던 문화혁명을 겪은 중국인들에게 장이모우 감독은 옛 전통의 가치, 숭고한 사랑의 의미, 참교육의 고귀함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감동을 주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중국에서 영화는 두 번 검열을 받는다고 한다. 제작 전에 대본을 검열받고, 제작 후에 완성본으로 검열을 받는다. 중국에는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말할 자유, 자유롭게 표현할 자유가 없다. 검열 문제로 2010년 구글은 중국에서 철수했다. 대신 중국에는 바이두가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심지어 우리나라의 카카오톡마저 차단되었다. 대신 웨이보와 위쳇이 있다. 중국의 감시 카메라의 성능은 과히 세계 최고이다. 운전자의 안면인식이 가능하고 운전석과 조수석의 안전벨트 착용 여부가 카메라에 찍혀 티켓이 집으로 날아온다고 한다. 그런 통제, 감시 사회에서 장이머우 감독 같은 거장이 나온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 기적은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 한 번 더 현실화되었다.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영예를 안게 된 중국에 대한 부러움과, 같은 문화권의 자부심이 묘하게 뒤엉켰다. 사실 중국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였다면 오랜 문학적 전통으로 따진다면 뒤늦은 감도 없지 않다. 한국인들에게 중국 현대문학은 그리 친숙한 장르가 아니다. 중국의 고전 문학에는 웬만큼 조예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수상자 모옌의 본명은 관어우예라고 한다. ’모옌‘은 작품을 통해서만 말한다는 의미로 지은 필명이다.

 

장이머우 감독이 모옌의 대표적 소설 ‘붉은 수수밭’을 원작으로 영화화하며 성공한 것이 평단과 대중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 영화는 198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영화의 화면은 타오르는 붉은 수수밭의 모습이 압도한다. 그 안에 고통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는 소시민의 원초적 생명력이 관객을 작품 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모옌은 중국의 설화와 역사, 현대사를 뒤섞은 작품들로 환각적인 현실주의를 선보여 문학상 수상 작가로 선정됐다.” 노벨상위원의의 선정 이유였다.

 

 

나는 아버지가 첫사랑을 느끼고 가슴 졸이며 걸었던 그 길 위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소년의 꿈을 키워가던 길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그 길 위에 소주를 부어가며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아버지와 나의 못 이룬 첫사랑을 같이 놓아주는 의식을 치르고 싶다. 내 못 이룬 첫사랑의 꿈을 보상받으려 내 아버지를 평생 짓눌렀던 아버지의 첫사랑 흔적을 찾아 4만 리 길을 나선 것은 오이디푸스 적 콤플렉스에서 시작된 무의식의 발로였을 모른다.

 

“내 꿈은 이 모래 언덕보다, 저 달보다, 이 존재들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아! 집이 소중한 것은 그 집이 당신을 감싸주고 따뜻하게 해주기 때문도 아니고, 우리 소유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 집으로 인해 아늑함을 주는 것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그 흐릿한 덩어리를 만들어 놓아 그 속에서 샘물처럼 꿈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 생떽쥐베리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