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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

두고 온 강, 대동강 / 유라시아횡단 마라톤을 떠나며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내 아버지는 시인이었다. 두고 온 강 대동강 변 송림(松林)을 노래하는 시인이었다. 아버지는 같이 못 온 누이와 아름다운 대동강과 그 강가 송림 숲과 수양버들 그늘과 그곳의 명물 황주사과를 그리다가 미국에서 돌아가셨다. 잠시 피난 내려왔다가 살아서는 다시 못 밟은 땅, 육신의 무게를 벗어 던지고서야 비로소 고향으로 갔을 피안의 땅. 아버지의 시 ‘두고 온 강’이다.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내 고향은 송림(松林)

38선을 넘고서 반백년이 지냈어도

내 고향은 못 가는 곳

 

이역만리

미국에 와 있어도

미국보다 먼 곳

 

날개를 달까

통곡을 할.

 

어렸을 적 친구들 지금은 남남이 되었어도

두고 온 강 대동강은

내 핏줄에 흐르고 있다.

 

고향이란 나하고는

핏줄을 나눈 사이

눈물이 있어.

 

두고 온 강, 내 선창에서는

지금도 뱃고동 소리

목이 메인다.

피 맺힌 소리.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어깨가 쳐져있었고 길을 걸을 때도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걸어서 늘 지나가는 사람을 먼저 알아보지 못해 핀잔을 듣곤 하였다. 지독한 그리움은 시인에게는 훌륭한 양식이었겠지만 나와 어머니에겐 애정결핍으로 다가왔다. 분단(分斷)은 아버지와 자식 사이로 흐르는, 부부지간에 흐르는 애정의 강물마저도 막아서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금까지도 아버지와의 화해를 하지 못했다.

 

내가 두렵고 고통스럽기까지 할 유라시아대륙횡단 평화마라톤에 나서는 것은 아버지와 화해를 하는 엄숙한 시간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핏줄이란 것이 무서운 것이어서 아버지의 핏줄에 흐르던 대동강의 푸른 일렁임이 내 핏줄에서 이렇게 요동(搖動)을 치고 있다. 아버지의 귓가에 환청으로 들리며 늘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던 대동강의 뱃고동 소리가 내게 이제는 희망의 행진곡이 되어 들려오는 것 같다.

 

나의 달리기의 시원(始原)이, 내가 평범한 체력을 가지고 이리도 미친 듯이 달리는 이유가 아버지와의 화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버지의 그 퀭한 눈동자가 미치도록 싫었다. 어릴 때는 태산 같은 존재였지만 곧 고집이 세고 정이 없고 병약한 사람이었다. 많은 시간 아버지는 어색한 존재였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허공에 띄우지 못하고, 또 그를 쏙 빼 닮은 나도 “사랑합니다.”란 말 한마디 입 안에 우물거리질 못했다. 이제 내 머리에 흰 머리가 생기면서 아버지는 가슴 먹먹하게 그리워지는 존재로 환생했다.

 

“하필이면 우리 시대냐./ 왜 우리들이냐./ 바람결에 빨래는 말라도/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고 또 다른 시에서 아버지는 한탄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나는 아버지의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버지의 절규 속에는 대동강 변 송림의 어느 골목집에 살았을 어느 소녀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평생 가슴앓이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나의 오이디푸스적 콤플렉스는 어머니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첫사랑의 소녀에게 향해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게 무의식 속에서 치명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내가 늦게까지 결혼을 못한 원인이 됐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흐느껴 살다간 할머니와 아버지. 할머니는 시집간 딸을 못내 아쉬움 속에 잠시의 이별이라고 여기고 올망졸망한 다섯 아들의 고사리 손을 번갈아 잡고 야음(夜陰)을 틈타 3·8선을 내려와서 돌아가실 때까지 북한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할머니가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한반도에 있는 모든 용하다는 종교의 신령님들께 기도를 드렸을까. 어린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교회도 가봤고 천주교, 그리고 절에도 따라다녔다. 어린 나는 할머니가 아침이면 정화수 떠놓고 북녘 하늘을 향해서 기도하는 모습도 보았고, 신주단지 모셔놓은 것도 보았고, 심지어 일본식 종교인 남묘호렌게쿄까지 섭렵(涉獵)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랐다.

 

나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살아서는 도저히 가지 못한 머나먼 길을 가기 위하여 세상사람 아무도 달려보지 않은 16,000km를 달려서 간다. 그곳은 아버지의 영혼이 늘 머무르던 곳이고 내 오이디푸스적 콤플렉스의 원향(原鄕)이다. 아버지의 핏줄에 흐르다가 내 핏줄 속에서 거칠게 일렁이는 대동강에 발을 담그고 아버지 살아서는 이루지 못한 아버지와의 화해를 하고 내려올 것이다. 그곳에서 영혼으로 머무를 아버지를 만나 “사랑합니다. 아버지!” 소리 높여 외치고 눈물 한 무더기 대동 강물에 섞고 오겠다.

 

아버지의 화해의 손길이 내 발걸음을 거칠고 험한 평화의 발걸음, 소통의 발걸음으로 나를 이끈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나선 동화 속 아이들처럼 나는 아버지가 늘 환청으로 듣던 대동강의 뱃고동 소리를 따라 먼 유혹의 길을 떠나려한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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