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1)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1)

가슴에 온갖 치유의 해법이 다 있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베오그라드를 떠나 랄자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서 가는 길은 이미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고 차들도 잘 다니지 않고 한적했다. 한적한 오솔길 같은 길 저 앞에 어떤 소녀가 걸어가고 있다. 지도에 표기된 호텔은 아무 건물도 없고 주유소만 있는 곳이라서 잘못 표기된 것같은 불안감을 안고 달리고 있었다. 소녀에게 가까이 달려가자 한적한 곳에서 왠 낯선 남자가 다가오는 것이 불안한 소녀의 발거음이 빨라진다. 소녀의 길고 멋진 파마머리가 바람에 휘날린다. 내가 더 빨리달려가 옆에 서자 소녀는 큰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경계심을 풀어주려 나는 최대한 조용한 목소리로 예의를 갖춰 호텔을 물어보니 소녀의 경색한 크고 갈색 눈동자의 표정이 금방 풀어지며 원래 아름다웠을 미소가 얼굴에 번지면서 자기도 거기에 가는 중이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시간은 즐거웠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그녀의 어머니는 그 주유소와 식당과 호텔을 겸한 장소에서 케셔를 보고있었다. 둘은 만나자 오래 전에 헤어졌다 만난 사이처럼 부등켜안고 껑충껑충 뛴다. 모녀사이가 참 각별해 보였다. 그녀는 나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소개를 하며 이분이 오늘 이곳에 묵을 분이라고 통역을 해준다. 그녀는 베오글라드에서 대학교에서 항공기술을 배우는데 어머니가 교대시간이 다 되어서 함께 집에 가려고 나온 것이었다. 케셔를 보며 딸 대학 공부시키는 어머니도 아름다웠다. 일이 끝나면 내가 금방 샤워를 하고 내려올테니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였더니 좋다고 하여 같이 식사를 했다. 여행 중에 모르는 사람을 만나 좋은 감정을 가지고 같이 식사하는 시간은 즐거운 시간이다.

 

11월 2일, 길 떠나온 지 3달이 넘었다. 내 마음은 지금 헬륨을 채운 풍선처럼 높은 가을 하늘을 두둥실 떠오른다. 고단한 여정(旅程) 속에서도 감격을 먹은 육신은 중력을 잃고 높이 떠오른다. 내가 세르비아 사람들과 사랑에 빠져 세르비아의 들판을 달리고 있는데 김수임씨 어머니를 포함하여 아이들까지 가족 8명이 불가리아의 소피아에서 6시간을 운전해서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또뽈라까지 찾아왔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위로받은 절망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갈채 받은 고단한 육신은 다시 생기를 얻을 수 있다. 길거리에서 매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 악수하고 사진 찍고 인사를 나누지만 사람이 그리웠다. 한국 사람이 그리웠다. 까끔 때를 놓치는 경우는 잇었지만, 오늘 점심은 통돼지 바베큐를 먹었고, 매일 배불리 먹고 다니지만 하얀 쌀밥에 고추장찌개가 그리웠다. 마침 묵는 호텔은 주방시설이 갖추어진 호텔이었고 금방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이 되었고 상에는 고추장찌개, 배춧속, 소고기 장조림, 고추, 오이지 등 한 상 잘 차려졌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감격을 먹었고 깊은 책임감을 먹었다.

 

사실 불가리아를 지나면서 한인을 만나지 못하고 지나칠 줄 알았는데 며칠 전에 김수임 씨한테 연락이 왔다. 불가리아 통과할 때 국경까지 마중 나와서 불가리아 통과하는 내내 차량 지원을 해 주겠다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심 불가리아가 산악지형(山岳地形)이 많아서 무거운 손수레를 밀며 홀로 험한 산을 오르내릴 생각에 두려웠는데 너무 잘 됐다 싶었다. 그런데 맘이 급해서 그때까지 못 기다리고 오늘 나를 만나러 이곳까지 온다는 것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마음을 움직이는 동력은 바로 이야기에 있다. 그들은 나의 달리기에 담아가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에 감동했고 나는 더 멋지고 힘차고 환희에 찬 이야기를 더하고 싶다. 내가 장동건처럼 멋지고 잘나서가 아니다. 내가 고통과 두려움을 안고 길 위에 뛰어들어 수만 년 동안 인류가 자기가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채워주는 평화이야기를 하면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위로를 절망한 사람에게 희망을, 젊은이게 꿈을, 우리 민족에게 통일의 염원을, 세계인들에게 평화의 끈을 잡게 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야기는 가공할 힘을 발휘한다. 나는 마라톤에 이야기를 장착하려고 테마가 있는 달리기를 한다. 이야기에는 혼이 담겨있다.

 

안데르센의 이야기나 디즈니랜드의 영화가 전 세계 어린이들이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지금은 우리의 이야기인 한류 드라마나 영화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달리기가 신선한 식재료라면 이야기는 식재료를 맛있게 조리하여 영양뿐 아니라 맛의 감동까지 잡는 것이다. 나는 전국을, 전 세계를 무대로 달리는 행위예술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불꽃같이 피어나는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다. 사랑을 이야기하며 모험을 말하고 평화를 노래하고 통일을 외친다. 이야기가 통하면 핵무기가 파괴할 열 곱절, 백 곱절의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평화를 위협하는 강고(强固)한 마음을 움직이는 나의 천일야화는 두 다리를 붓으로 삼아 쓰일 것이고 나의 심장이 확성기가 되어 세상을 향해 이야기할 것이다. 정보와 기술로 가득한 디지털 시대에 이야기가 가치를 만들어 내고 이야기로 자신을 표현하는 소통의 방식은 더욱 더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내 앞으로 마차가 하나 지나간다. 지금까지 서유럽에서는 못 보던 전경이었다. 천천히 그리고 경쾌하게 달리는 말발굽 소리에서 왈츠의 경쾌한 음이 연상되듯이 나의 달리는 발자국 소리에 가슴을 울리는 진한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보겠다.

 

달리면서 보이는 세상을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을 바라보는 아이의 순진한 눈으로 보고 아이의 천진한 입으로 묘사를 할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이나 학자나 종교인이 아닌 한 사람, 서구인이 아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한 아시아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적어볼 것이다. 동서양을 끊임없이 오고간 실크로드를 역사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혹은 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고 추종하는 맹신적인 세상을 김삿갓처럼 맘껏 조롱(嘲弄)하며 다닐 것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우리는 아침 7시 반에 호텔에서 힘차고 신나게 출발하였다. 이 가족이 하얀 티셔쓰 등 뒤에 ‘One Korea“라고 크게 새겨진 옷을 같이 입고 뛰기 시작하였다. 여러 사람이 함께 출발하며 내가 “평화”하면 아이들이 “통일”하고 구호를 외치며 신이 나서 달렸다. 너무 흥분했는지 나는 그만 코스를 점검하지 않고 어제 진행했던 방형으로 그대로 나아갔다. 약 2km쯤 간 뒤에야 그래도 다시 확인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지도를 확인하니 이 길은 내가 가는 길이 아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 길을 할 수 없이 다시 돌아가야 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 차도 있고 동반자들도 있다. 한혈마와 함께 차를 타고 출발한 호텔까지 가서 다시 출발하였다.

 

수레의 짐을 차에 실었으므로 빈 수레를 밀며, 멀리서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과 어깨를 맞추고 마음을 모아 뛰는 발걸음은 한결 경쾌하다. 나의 한혈마도 오랜만에 짐을 차에 내려놓고 달리니 하루에 천 리를 달릴 듯이 가볍게 달린다. 마침 오랜만에 날씨도 화창해서 가을하늘은 드높고 풀을 뜯는 양 떼들은 살이 토실토실 올랐다. 가끔 양 떼들이 길을 가면 차들이 막혔다. 천하에 바쁜 것이 없는 목동은 양이 옆으로 빠지지 않는 일에만 신경을 썼다. 가진이 가은이가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잘 달렸지만 오빠 가진이는 금방 차에 올라타고 가은이는 쌕쌕거리며 잘도 달린다. 옆에서 달리는 가은이의 발갛게 달아오른 볼이 푸른 가을하늘과 멋진 대비를 이룬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우리가 신이 나서 달리니 가진이 할머니도 천천히 걷자며 구호를 외치며 걷다가 언덕이 나타났다. 가진이 할머니가 기운이 빠졌는데 뒤에 차가 따리오지 않았다. 가진이 할머니를 남겨놓고 가기도 안 되겠고, 차를 기다리는 것도 좋은 생각 같지 않았다. 가진이 할머니를 빈 한혈마에 태우고 내가 밀며 언덕을 올랐다. 가진이 할머니 색가른 경험을 하는 게 다시 기운이 돌아오는지 다시 “평화”하고 구호를 외친다. 가은이와 내가 목소리를 높여 “통일”하면서 언덕을 올랐다. 오늘 가은이는 거의 30km나 콧노래를 부르며 달리는 슈퍼어린이의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럿이 함께 달리며 구호를 외치니 세르비아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생겼다. 특이 어린아이들이 함께 뛰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손을 흔들어주고 차들은 경적을 올려주고 악수를 청하고 음료수를 주는 사람들이 많다. 편의점 앞의 테이블에서 한 무리가 맥주를 마시다 손을 흔들어 한잔하고 가라고 한다. 술에 취해서 무슨 얘기든 재미있게 듣는 것인지 그중 한 사람이 넉살 좋은 사람이 있는지 큰소리로 웃으며 떠들던 사람들이 내가 자리에 합석하자 찬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술기운에 초점을 잃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눈동자의 초점을 모으려면 잠시의 시간은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의 모습은 그들이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그런 모습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맥주잔을 채워주었고 내가 벌컥벌컥 마시자 그들은 다시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워낙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하는 사람이 있어서 웃은 건 아닌 것 같았다. 대부분 그들의 이마에는 깊은 골이 파였고 이빨은 듬성듬성했다. 악수하는 손이 수세미처럼 거칠었지만 웃음만은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다시 어느 작업 터에서 쉬는 시간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우리를 세운다. 다가가서 서로 해맑은 미소를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니 누가 한 사람 안으로 들어가더니 음료수를 나누어주더니 한사람이 슬그머니 들어가서 세르비아의 술 라키야를 집에서 담근 것이라며 가져와서는 러브샷을 하자고 한다. 오늘은 즐거운 시간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햇빛과 바람과 섞이고, 하늘과 구름과 섞이고 사람과 섞이어서 하나가 된다. 라키야가 뱃속을 따뜻하게 한다. 영혼을 따뜻하게 데운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사람들의 가슴은 뜨겁게 뛴다. 라키야는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낮이고 밤이고 한잔 같이 나누는 것으로 서로의 정을 나누는 예식이다. 상대가 우리를 귀하게 대접하는데 달리는 일이 아무리 중요한들 피할 도리는 없었다. 한 잔 쭈욱 원샷을 했다. 그러자 재미있다는 듯이 이번엔 한 아주머니가 한 잔 더하라고 술잔을 채운다. 우리 아홉 명 세르비아 일고여덟 명, 순식간에 거리에서 한, 세르비아 콜라, 라키야 우호축제(友好祝祭)가 벌어졌다.

 

조금 더 가다 아늑하고 한적한 곳에 돗자리를 펴고 가진이네 식구가 준비해 온 음식을 차렸다. 유난히 하늘이 맑고 바람이 시원한 한적한 마을의 들판이었다. 가스버너에 곰국을 데우고 소고기 장조림과 김치, 야채를 곁들인 점심은 잊었던 입맛을 돌게 하였다. 포크 대신 젓가락질하는 손도 경쾌하고 익숙하다. 가을 소풍을 나온 상쾌한 기분이다. 보온병의 뜨끈한 물로 믹스커피까지 한잔하니 세상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감이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한국 음식을 먹는 기분 좋은 날은 아마도 며칠 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아왔다. 이렇게 두 다리도 달려서 갈 수도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 자동차, 기차, 비행기가 잘 발달해 있는 시대에도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았다. 마음이 너무 멀리 떨어져서 서로 상관없는 사람들인 줄 알고 신경 안 쓰고 살아왔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여기가 밤일 때 그곳은 낮인 곳, 여기가 낮일 때 거기는 밤인 곳을 ‘낙원’이라고 부르며 꿈꾸며 상상하며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그런 꿈조차 사라지고 무관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가니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끝내고 버스정거장에서 차를 기다리다가 우리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든다. 그러나 다가오는 것은 망설이더니 어느 개구쟁이 녀석이 먼저 달려와 친구들에게 오라고 소리를 지르며 손을 마구 흔든다. 멋쩍게 바라만 보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30여 명이 우리 주위를 둘러쌌다. 우리는 일일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악수하고 준비해간 유라시아대륙횡단 평화마라톤 영자 홍보물을 나누어주니 너도나도 달라고 야단법석이 났다. 별다른 놀이나 구경거리가 없는 아이들은 신이 나서 소리지른다. 홍보물을 받아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하늘에서 굴러떨어지는 구슬처럼 맑고 투명하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카메라와 비데오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이렇게 거리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목적지인 크라구예츠까지 왔을 때는 오후 3시가 안 된 시간이었다. 호텔을 찾는데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큰 문제가 된 건 아니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었다. 나는 멀리서 찾아와서 위로해주고 알뜰살뜰 살펴주며 이틀을 같이해준 가족들이 너무 고마워 꼭 껴안아 주었다. 며칠 후면 다시 만날 것이지만 헤어지는 마음이 섭섭하지만 헬륨을 채운 풍선처럼 가볍다. 가슴에 온갖 치유(治癒)의 해법이 다 있다. 심장이 터질 때까지 서로의 가슴을 비벼보자! 다가갈수록 증폭되는 뜨거운 울림!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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