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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5)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5)

평화를 위해 백만 송이 장미를 평양으로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불가리아는 우리에게 아련한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킬 뿐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만큼 신비로운 것도 많다. 신비의 장막을 걷으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장미의 요정이 무도회에서 나를 선택할 것 같은 멋진 상상을 하며 불가리아에 달리면서 계속 ‘백만 송이 장미’라는 러시아 민요가 머리에 떠오르다가 오늘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소피아 시내에는 작은 꽃집들이 참 많다. 꽃은 한 송이만으로도 예쁘고 같이 모여 있으면 더 예쁘다! 향기를 뿜어내는 예쁜 꽃들이 솜씨 좋은 주인의 손길을 타면 예술이 되어 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꽃집은 그야말로 장미 요정들이 사는 장미 궁전이다. 꽃을 파는 사람의 손은 바쁘고 꽃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넘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발칸의 붉은 장미 불가리아는 세계 최대 장미 산지이다. 최고의 장미 오일의 산지이기도 하다. 장미 오일의 1킬로그램이 황금 1.5 킬로그램에 맞먹는 가격으로 거래가 된다고 하니 놀랍다. 전 세계적으로 향수와 에센스에 쓰이는 장미의 80%가 불가리아에서 생산된다. 장미는 푸르른 6월 하늘 아래 붉은 꽃망울을 피워내며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이 바람에 날리는 향기마저 천상의 냄새이다. 곱고 부드러운 살결은 슬그머니 피부에 가져다 대고 싶기도 하다. 교태가 넘치는 것이 우아하기까지 해서 스스로는 꽃 중에 여왕이 되었고 많은 예술가의 혼을 자극하여 장미를 찬양하게 한다. 비 맞고 바람맞으며 뜨거운 태양 견디며, 외로움을 이겨내며 끝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그런 것이 여자의 마음을 흔드는 데 최고의 수완을 보이기도 한다. 장미로 인해 말주변 없는 남자도 마음을 표시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인류는 더 많은 사랑을 나누어왔고 그래서 더 자손이 번성했는지도 모르겠다. 장미의 선홍의 색은 17살의 나이에 사랑에 뛰어들어 두근두근 뛰던 나의 심장의 색과 같고 그 향기는 완행열차를 타고 경춘선을 타고 갈 때 스쳐오던 그녀의 체취처럼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다. 겹겹이 싸인 많은 꽃잎 속에 삶과 사랑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고, 뾰족한 가시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처럼 아프다. 나는 지금도 달리는 순간순간 6월의 푸른 청춘의 어느 날 장미꽃다발을 내밀던 떨리는 손길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누군가 가슴 깊이 심고 간 것은 사랑이 아닌 고통이다. 서로가 엉퀴어 아팠으니까. 그리고 고통 너머의 예술혼이다.

 

장미를 말하면서 장미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이야기하지 않는 건 낭만과객의 자격을 포기하는 일이다. 백혈병을 앓고 있던 그는 면역력이 약해져 있었고 요양원을 찾아온 독자에게 장미를 꺾어주려다 가시에 손가락을 찔렸다. 장미 가시를 통해 세균이 침투해 51세의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주옥같은 장미의 시를 남긴 그는 22살에 시대를 앞서간 개방된 연상의 여인 루 살로메와 사랑을 하며 시인의 토양을 다졌고 27세 때 조각가 로뎅의 비서를 하면서 사고의 지평을 넓혔다. 그리고 러시아 여행을 통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나 화가 파스테르나크 등을 만나면서 정신적 토양에 양질의 양분을 공급받는다. 여기서는 릴케의 시보다 용혜원의 시 한 수 음미해보자!

 

장미 한 송이 (용혜원)

 

장미 한송이 드릴

님이 있으면 행복하겠습니다.

화원 가득한 꽃

수많은 사람이 무심코 오가지만

내 마음은 꽃 가까이

그리운 사람을 찾습니다.

무심한 사람들 속에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장미 한 다발이 아닐지라도

장미 한 송이 사 들고

찾아갈 사람이 있는 이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꽃을 받는 이는

사랑하는 님이 있어 더욱 행복하겠습니다.

 

장미 오일 한 방울 만드는데 1000장의 장미 잎이 필요하고 장미 오일 1kg 추출하려면 장미 송이 3천 톤이 사용된다니 한반도에 작은 평화를 추출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촛불의 촛농이 필요한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1만6천km를 달리는 나의 발자국 수만큼 필요하다면 참 좋겠다.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붉은 장미 백만 육천 송이를 더하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석”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달려갈 발자국을 선으로 이으면 유라시아대륙에 목걸이를 건 형상이 된다. “평화의 진주목걸이” 그렇다 그 길이 평화의 진주목걸이가 되어준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카잔루크에 ‘장미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이곳은 불가리아 중부 툰자강 상류에 있는 도시로 트라키아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이 계곡은 불가리아를 동서로 130km에 걸쳐 펼쳐져 있다. 해발 30~710m에 분포하며 북쪽은 1,600m 이상 높이의 발칸 산맥이 겨울에 남하하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고, 남쪽 산지에는 출구가 있어서 지중해의 온화한 공기가 계곡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온화하고 강우량이 적당하다고 한다. 장미는 차갑고 밝은 것을 좋아하는 성질을 가졌다. 땅이 비옥하고 수분이 충분해야 한다. 카잔루크 계곡에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장미가 가득 피어나고 코끝을 간질이는 싱그럽고 은은한 장미 향기가 가득 퍼져나가는 6월에 ‘장미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축제 때는 거리 전체가 장미로 뒤덮이고 민속 의상을 입은 아가씨들이 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그게리(Kukeri)라는 춤을 추면 시민들이 꽃을 던지며 장미 풍년을 기원한다.

 

이곳의 장미는 독특한 지리적 요인과 기후 조건 덕분에 꽃잎이 얇다. 불가리아는 1270년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장미를 도입해서 알맞은 기후 덕분에 16세기에 좋은 장미수를 얻는 데 성공했다. 1680년 이후부터 불가리아의 장미는 대부분 장미 오일을 만드는 데 이용되고 있다. 18세기 중엽부터 장미 오일은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의 해운을 통하거나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오스트리아의 빈을 거쳐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

 

조금 전에는 안보이더니 다가가니 보이는 꽃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웃고 있는 꽃이 있다. 꽃 하나를 보고 다가갔더니 만나는 꽃 무리가 있다. 꽃 무리를 만나니 시시한 사람 몇 명 만난 것보다 더 반갑다. 적어도 1년 동안은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나그네에게 꽃을 꺾어 들 생각일랑 애당초 없으니 훨씬 여유롭게 꽃의 본질을 볼 수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소유하려 욕심을 부리는 순간 고통이 생긴다. 은은히 숨결에 스며드는 꽃향기가 좋다.

 

장미는 보통 5, 6월이 계절이지만 이렇게 늦게까지 피어나는 종류가 있다. 나는 이곳 불가리아에서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불가리아에 들어오기 전 세르비아에서부터였다. 장미보다도 더 붉은 통일의 열정을 가진 가족들이다. 이 통일 가족을 총지휘하는 마에스트로는 가진이 할머니다. 가진이 할머니의 조부 때부터 독립운동을 한 독립군가 족이다. 증조부는 만석지기였는데 대대로 종으로 있던 사람들에게 땅을 10마지기씩 나누어주고 면천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내가 이 가족의 불가리아 집을 방문했을 때 마당 한쪽 벽에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무효’라는 큰 구호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역사가 진구렁으로 빠지기 시작한 해이다. 이 집을 살 때 토지대장에 1905년 지어진 집임을 확인하고 가격 묻지도 않고 흥정도 하지 않고 바로 샀다고 한다. 창문에는 ‘평화’라는 글자가 들어간 액자가 세워져 있다. 독립군 후예의 기상을 불가리아에 와서 만나는 기쁨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걸 보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장미를 평화의 마음을 담아 평양에 보내는 것은 어떨까, 소피아 분지를 달리는 내내 ‘백만 송이 장미’를 흥얼거리며 생각해본다.

 

대문을 들어서자 땔감용 장작이 엄청나게 가지런히 쌓여있었다. 이 대(大)가족이 한겨울을 날 땔감이라고 한다. 소피아 같은 대도시의 집에서도 아직 나무로 연료를 쓰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도 소피아의 숲이 우거진 것도 놀랐다. 여기는 정말 믿어지지 않을 만큼 대가족이 살고 있다. 어진이 가진이 가족뿐만 아니라 이곳에 유학온 먼 친적과 친지들이 함께 살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아무 문제가 없이 살아가는 데는 보이지 않는 어떤 법칙이 있다. 예를 들어 식사나 빨래 청소 같은 것이 그 법칙에 의해서 무난하게 진행되는 느낌이 든다. 어차피 가족이 다 모여 식사하는 것도 어려우니 식사 당번이 밥을 준비하면 기다릴 필요도 없이 준비된 사람들 먼저 먹고 설거지하고 끝난다. 다만 1주일에 한 번 가족 예배는 모든 구성원이 다 참여하는 것으로 한다!

 

내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불을 피워서 방 안의 한기는 가셨다. 난로 안에서 불꽃이 가볍게 춤을 추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어진이 가족의 안내로 그동안 한번도 깍지 못한 머리를 깎으러 밖으로 나갔다. 집 앞에 터키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 인사를 하니 처음 보는 사람인데 오랜 친구처럼 따뜻하게 맞아준다. 김나라씨가 그에게 내가 한국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부터 달려서 이곳까지 왔으며 한국까지 달려서 갈 것이라고 설명을 하자 놀라는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그는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케밥과 음료수를 내오며 먹으라 했다. 나는 조금 전에 점심을 먹어서 더 이상 먹을 수 없다고 사양하자 그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나는 그의 우울을 해소시켜야 하는 의무감이 생겼다. 그의 우울을 해소하는 대신 내 위장에 과부하가 걸렸다.

 

소피아에는 알 수 없는 우울이 감돈다. 외세의 수 없는 침략과 지배의 역사가 조개의 상처처럼 오늘의 아름다운 불가리아의 문화유산이 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 중 하나인 바냐바시모스크, 네오비잔틴 양식으로 황금빛 돔이 위용을 자랑하는 발칸반도 최대 동방정교 성당인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은 러시아 알렉산드르 2세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불가리아 독립의 계기가 된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전사한 20만 명의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거기다 플로브디프의 로마 유적 원형극장, 세계문화유산 릴라 수도원 등이 서로 다른 문화의 찬란한 흉터로 불가리아 전역에 남아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옛적에 한 화가가 살았네… 집과 캔버스를 가지고 있었네… 어느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녀는 꽃을 좋아했지. 그녈 위해 집을 팔고 그림과 모든 것을 팔았지. 그 돈으로 샀다네… 꽃의 바다를, 수백만 수백만 빨간 장미…” 모든 걸 다 팔지 않아도 무기를 살 돈의 극히 일부만 가지고도 수백만 수천만의 빨간 장미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전하면 어떨까, 안타까운 마음에 자꾸 생각해본다.

 

남북통일은 지나간 옛사랑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저녁 달빛 창가에서 목이 터져라 세레나데를 부르고 백만 송이 장미로 꽃의 바다를 만들어서라도 이루고야 말 운명적인 사랑이다. 남북통일은 오랜 기간 분단된 이질적인 것들을 한군데 버무려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담대한 도전이요 이 시대의 최고의 과제이기도 하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화합하고 때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은 덮어가면서 따뜻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 운명적인 사랑을 위하여 휴전선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수백만 수백만 빨간 장미를 장식하며 평화를 구애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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