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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43)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43)

터키의 봉이 김선달 캘올란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호텔의 아침 뷔페는 별것 없었지만 밀랍이 들어간 꿀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이것을 먹으면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고 한다. 식빵에 밀랍이 들어간 꿀을 듬뿍 바르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아침에 코줄루에서 출발할 때는 맑은 날씨였지만 일기예보로는 오후에 비가 내리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맑은 날씨에 어떻게 비가 오나 싶을 정도로 시리도록 푸른 맑은 하늘이였다. 흑해에 면한 산비탈을 70km가 되는 유모차를 밀며 낑낑대며 오르는 모습을 보며 근처 찻집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구엘 차이!” 차 한잔하고 쉬었다 가라고 손짓을 한다. 따뜻한 아침 햇살이 흑해의 바닷속으로 쌍화차의 메추리 알처럼 퐁당 빠져든다. 내 뜨거워진 마음에도 터키 형제들의 우정이 쌍화차의 메추리 알처럼 빠져들어 마음속에서 반숙이 되어간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곳 사람들은 손님이 자기 집을 방문하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부르는 쪽으로 다가갔더니 그 중 비교적 젊은이가 내게 다가와 유모차 미는 것을 도와준다. 그는 유모차가 신기한 듯 요리조리 훑어본다. 난로 옆에 앉아 있던 수염이 더부룩하고 이빨이 다 빠진, 이마에는 깊은 고랑이 패인 노인이 나이 든 사람 특유의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서툰 영어로 “젊은이! 어디로 가는가? 이곳에서 잠깐 쉬면서 차나 한잔하고 가시게!” 하며 내 어깨를 두드린다. 나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노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며 “실례지만 당신은 몇 살이에요?” 물었다. 그는 “57살입니다.” “저는 60입니다.” 그가 놀라며 사람들에게 통역했다. 그의 통역은 잘 되었나 보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놀란 표정을 짓더니 다 같이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웃으며 실로 오랜만에 웃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젊은 시절 미국에서 일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찻집은 경로당 같은 곳이었다. 하릴없는 노인들이 모여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아라베스크 음악을 들으며 카드놀이나 체스를 즐긴다. 이곳에서 마을이나 심지어 나라 안의 모든 소문이 한데 모이고, 그중 말솜씨 있는 사람에 의해서 해설되고 평가되어 다시 퍼져나가는 중심지이기도 하다. 내가 찻집에 들어서자 특별한 구경거리가 없는 시골 노인들이 다가서며 말을 걸기도 하고 유모차를 돌려가며 밀어보기도 하고 훑어본다.

 

주인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홍차와 함께 찻잔 받침에 각설탕 세 조각을 담아온다. 이런 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깊이도 없는 정치 이야기나 연애담을 즐기는 두 부류로 나뉜다. 이런 곳에 처음 나타난 나 같은 사람이 처신을 잘하려면 정치인의 연애담을 하면 백발백중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좋아할 한국 정치인의 연애담을 알면서도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언어의 장벽은 이럴 때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이곳은 산길이었고 계절은 겨울이었다. 오후가 되니 비바람이 몰아치고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기온도 뚝 떨어진다. 뒤에서 몰려오는 비구름을 피해서 달아나는 형국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내 발걸음은 쫓아오는 비구름의 속도를 당해내지 못했다. 결국 목적지인 글루찌를 13km 남겨놓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세차게 몰아치는 비를 맞으며 유모차를 밀며 유라시아를 달리는 내 모습이 죽장에 삿갓 쓰고 삼천리를 유랑하는 김삿갓의 모습과 겹쳐진다. 파도의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비 내리는 흑해의 해안 길을 달리면서 김민기의 ‘친구’를 흥얼거린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 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홀로 길 위에 나선지 100일이 어제로 지났다. 친구들도 보고 싶고 가족도 그리워진다. 노래 가사가 다 끝나기 전에 책갈피 속에 꽂아둔 은행잎 같은 첫사랑도 스쳐 지나간다.

 

추억들은 비구름처럼 내 발걸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스치고 지나간다. 뒤돌아보면 먼 길을 왔지만 앞으로 갈 길은 더 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백은 완전 숫자이다. 아기도 100일이 지나야 비로소 잔치를 벌이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키며 가족으로 인정한다. 기도도 100일은 해야 정성이 하늘을 감읍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 100일이 지났으므로 대책 없이 나선 길 같았던 나의 여정도 안정된 궤도에 올라섰다고 말할 수 있다. 하늘과 산, 흑해를 배경으로 완벽하게 자리 잡은 붉은 동백꽃을 발견했다. 비 맞아 검붉은 꽃 속에 노란 꽃술이 처량하게 숨어있었다. 생명의 숨결이 충만한 흑해에서 만나는 동백꽃 붉은빛이 빗속에서도 활활 타오르며 추억의 모닥불을 태운다. 꽃피기 어려운 계절에도 쉽게 꽃망울 톡톡 터지는 걸 보면 왠지 눈물로 톡톡 터질 것 같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운 좋게 언덕 중간에 허름한 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식당에는 손님이라고 없고 난로 위에서 뽀글뽀글 수증기를 뿜어대는 찻주전자와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들 며느리, 금방 학교수업을 마치고 왔는지 가방을 멘 채 손주 손녀가 난로 주위에 앉아있었다. 일가족은 반가움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비를 쪼르르 맞은 나그네를 맞으며 난롯가 자리를 비켜준다. 천장 네 귀퉁이에서 어디서 많이 본듯한 마른 고추와 마늘이 정겹게 걸려있다. 비에 젖은 티셔츠와 양말과 신발을 갈아신고 따라주는 뜨거운 차를 한잔 마시니 몸이 따뜻해지고 머리도 맑아졌다. 메뉴는 몇 가지 되지도 않았는데 그나마 안되는 게 많았다. 배고픔과 추위가 영혼까지 갉아먹을 지경인 나는 아무거나 있는 걸 달라고 했다. 터키식 녹두 초르바 이외에는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배고픔을 면한 것만도 다행이었고 추위를 달랜 것도 다행이었다.

 

다시 우비를 입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느덧 터키에서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터키를 사랑하는 마음도 더 깊어지고, 터키를 더 알고 싶은 갈증은 더해간다. 할 수만 있다면 이슬람 신비주의 구도자의 문하에 들어가 얼마간이라도 그들이 재산이나 재물, 심지어 죽음까지도 연연하지 않고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을 엿보고 싶다. 어느덧 비도 그쳤다. 마을 입구에 있는 사원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딱히 기도할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궁금증에 이끌려 사원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흉내를 내서 절을 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종교적인 행위를 신비주의나 신앙적인 것이 아니라 합리주의나 공리주의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금식은 의지를 강하게 할 뿐만 아니라 몸 안의 모든 노폐물을 제거하고 세포를 젊게 하여 건강에 좋다고 말한다. 절을 하는 행위나 두 손을 마주 잡는 기도는 혈액순환에 좋고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내면서 정신적인 번뇌를 밀어내고 인내하는 자학적인 면에서 종교의 수도자들이나 나의 달리는 행위는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달리면서 나는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을 실행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을 불태우며 달리고 있는데 나는 영적인 삶에서 심오해지지 않는 공허감에 휩싸인다. 나는 기계적으로 달리고 있고 어떤 운명 같은 것이 나를 밀고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이제 평화의 시대에 국경의 의미가 나날이 퇴색되어 서로의 문화와 삶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한 민족의 문화에서 민담이 갖는 중요성은 대단히 크다. 민담 속에는 한 민족이 겪어 온 삶의 다양한 체험과 사상, 신앙, 문화, 가치관이 모두 녹아있어 이를 통하여 그들을 잘 이해하고 더 사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터키 민족의 배경과 터키 민담에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중동지역으로 먼 거리를 이동해온 튀르크족의 유목 생활을 통하여 축적된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다. 민담이야말로 영화나 TV가없던 시절에 지금의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더 영향력이 컸을 것이다. 그런 시절에도 슈퍼스타는 있어서 우리나라에 봉이 김선달이 있었다면 터키에는 켈올란이라는 슈퍼스타가 있었다.

 

그는 재치와 꾀를 겸비한 교묘한 행동으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을 속이고 골탕을 먹여서 억눌리고 탄압받는 사람들의 탄성을 지르게 하는 슈퍼스타이었다. 경직된 사회일수록 이런 이들이 가져다주는 해학과 유모는 생활에 활력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켈올란은 터키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어느 날 공주가 정원에서 바람을 쐬는데 아름다운 비둘기가 날아오더니 황금 가위를 물고 갔다. 다음에는 황금바늘을 다음에는 진주 통을 물고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이 공주는 비둘기에게 반해 연정을 품게 되었다. 비둘기를 찾기 위하여 크고 화려한 목욕탕을 지어서 온 국민이 무료로 목욕을 하게 하고 그 값으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게 한다. 켈올란이 우물에서 만난 닭을 쫒아가다 어느 산자락에 이르게 되자 비둘기 두 마리가 각각 남녀로 변하여 희롱하다 다시 비둘기가 되어 날아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켈올란은 이 이야기를 공주에게 해 주었고 공주는 그 대가로 목욕탕 운영권을 켈올란에게 주었다. 공주는 비둘기 왕자를 찾아서 왕자는 마법이 풀리고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고, 켈올란도 목욕탕을 잘 운영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터키 사람들은 신체적인 특징을 따서 별명처럼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켈올란은 대머리라는 뜻이고 쾨제는 턱수염이 없다는 뜻이다. 성과 이름을 함께 사용하는 법을 만든 사람은 터키의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이다. 터키 사람들은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와 터키 사람이라는 뜻의 '튀르크'를 합해서 대통령을 아타튀르크라고 부른다. 터키에서 발행되는 모든 돈에는 아타튀르크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무스타파 케말은 외세 침략에 분연히 일어선 독립전쟁의 영웅이었고 현재의 터키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는 터키의 국부이며 그의 인생은 곧 터키의 현대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한때의 영광도, 유럽 쪽의 영토도 대부분을 잃은 데다 이집트와 아라비아, 쿠르드 등 여러 민족이 분리 독립운동에 시달리는 죽어가는 거인에 불과했다. 이때 케말 파샤가 이끄는 청년 튀르크당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는 패기만만한 혁명가에서, 제국의 수호자로, 그리고 새로운 나라와 체제의 건설자로 변해갔다. 터키는 그를 건국의 아버지라 부른다.

 

1920년대 케말 파샤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과 권력을 이용해 터키의 서구화나 유럽화를 전면적으로 추진했다. 이슬람 국가, 아시아 국가라는 한계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는 우리나라의 대원군과는 정반대의 사람이고 일본의 메이지왕과 비슷한 사람이다. 터키는 지리적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3대륙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 늘 어느 길을 선택할지 고민하였다. 터키는 이때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이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터키는 철저히 변화를 시도했다. 정치제도, 종교, 사상, 관념, 생활방식 등 모든 면에서 철저히 변했다. 남성들이 쓰던 터번과 여성들이 외출할 때 쓰는 히잡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바꾸었다. 아름다움을 가리지 말고 드러내라는 것이었다. 미스 터키 선발대회가 개최되었다. 심지어 아랍 문자마저도 없애고 서양의 문자를 쓰게 하였다.

 

그러나 터키는 끝내 서구가 되지 못했고 이제 비로소 아시아의 정체성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것 같다. 죽장에 삿갓 쓴 김삿갓만 괴이한 모습이 아니라 운동모에 타이즈를 입고 유모차를 밀며 달리는 이방인 나그네의 모습도 이들에게는 괴이한 모습이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양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동공이 크게 벌어지고 친근감을 표시하려 손을 흔들어준다. 말만 통하면 내가 지나온 이야기를 해학과 유모는 섞지 못해도 약간의 뻥을 섞어서 이들에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는 봉이 김선달이나 켈올란이 가지지 못했던 마술의 스마트폰이 있다. 아이들이 내게 달려들어 이야기를 보채면 나는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며 결정적인 부분은 통역앱을 통하여 설명해준다. 그러면 입에서는 저절로 탄성이 터진다. 나도 봉이 김선달이나 캘올란에 못지않은 스타가 된 것 같다. 나는 지금 왠만한 한류스타 부럽지 않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유목민들에게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차 한 잔 대접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차 대접을 받는다. 세르비아부터 불가리아, 터키까지 오기까지 떠돌이 개들의 천국이다. 간혹 개들은 꼬리를 흔드는 대신 으르렁거리고 달려든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다행히 큰일 안 치르고 잘 넘어와서 나도 약간 경계심을 잃어버렸는데 드디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여긴 아예 지나다니는 차도 별로 없으니 차 다니는 아스팔트 한가운데 누워서 쉬는 놈들도 많다. 이놈도 그랬다. 내가 지나가려 다가가자 낮잠을 방해받은 으르신같이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일어나서 내 뒤로 가는 척하며 으르렁거릴 때는 바로 한 발짝 뒤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래 알았어!” 하며 손을 내밀며 달래려는 순간 벌써 놈의 늑대 같은 거대한 이빨은 나의 타이츠 바지를 찢었고 살갗이 살짝 이빨에 할퀴었다.

 

0.1초 사이에 본 놈의 이빨과 그 너머 검은 동굴 사이의 목젖은 정말 공포스러웠다. 그런 이빨로 악의적으로 물었다면 살점이 뚝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다행히 놈이 그런 의도는 없었는지 바지만 찢어진 것 같았고 통증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무 일 없겠지 하는 안도감 뒤에도 혹시 하는 마음에 길거리에서 하의를 내리고 보니 이빨에 긁힌 붉은 상처가 났다. 그 순간 바로 앞에 찻집에 검정 희잡을 가지런히 쓴 아주머니가 나와서 보길래 깜짝 놀라 바지춤을 다시 올렸다. 그녀는 집으로 들어가서 소독약과 밴드를 가지고 나와서 치료를 해주겠다고 하의를 다시 내리라고 했다. 이슬람 여자 앞에서 하의를 내려야 할지 어쩔지 몰라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그녀의 표정은 똥을 싼 아이를 대하 듯 엄중하였다.

 

그리하여 좌충우돌 나의 마라톤 여행에서 외간남자와의 접촉을 금기시하는 이슬람 여자 앞에서 하의를 내리는 대형사고까지 치르고 말았다. 그것도 백주대로였다. 일단 응급조치를 하고 광견병의 위험 때문에 병원이 어디냐고 물으니 자기도 같이 가서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녀의 차에 타고 병원에 오고 나니 같이 오기를 천만다행이었다. 의사들조차도 영어가 안되 언어소통도 안 되어서 애를 먹을 뻔했다. 현지인의 친절한 안내가 있어서 일사천리로 주사를 맞고 끝났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하루 종일 여기저기 판토마임을 하며 옮겨다니다가 끝났을 수도 있었겠다. 외국인에게도 병원비 청구서가 없이 그냥 가라고 하는 걸 보니 터키의 의료 시스템이 선진국 수준인 것 같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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