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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47)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47)

햇빛을 가리지 말고 다만 비키시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다 버리고 다 잊고 떠나왔지만 또 버리고 잊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산비탈을 매일 오르내리는 곳에 젖은 눈이 흩뿌린다. 70kg나 되는 손수레를 밀고 오르다 미끄러워서 더 이상 오도가도 못하고 멈추어서고 말았다. 어디선가 아이들이 내 모습을 보고 몰려들었다. 미끄러운 비탈길을 오르기 위해 짐을 줄여야 했다. 여름옷을 꺼내 제일 지저분한 옷을 입은 아이에게 주었다. 다른 아이들이 달려들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더니 버리려고 하니 이것저것 버릴 것이 꽤 되었다. 그다음엔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통조림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햄이나 꽁치 통조림, 과일 통조림도 있었다. 하나씩 꺼내 나누어주다 보니 저쪽 구석에 해먹이 보였다. 어느 경치좋은 곳, 나뭇가지에 걸어서 낭만적인 오수를 즐겨보고 싶어서 고집스럽게 가지고 다니던 것인데 지금껏 한번도 쓰지 않는 것을 4개월째 무겁게 가지고 다녔다. 해먹을 받아든 녀석은 뒤도 안돌아보고 달아나 버렸다. 아마 그녀석은 흑해의 조그만 마을에서 어랄적 낭만적인 오수를 평생 추억으로 간직할지도 모른다. 이제 제법 무게가 가벼워졌다. 버리니 눈쌓인 비탈길도 올라갈 여력이 생겼다. 꼬불꼬불 고갯길을 오르노라니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내리던 눈도 멈추었고 금방 녹아내렸다. 아득한 벼랑 위에서 바다에 홀로 떠있는 배가 보인다.

 

이 달리기는 명상과 사색, 관능과 쾌락, 자연 그대로의 비루함과 불편함이 함께 어우러져 다니는 묘한 모험이다. 자연의 오묘한 관능뿐만 아니라 여러 도시의 다른 여인들과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쾌락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 바람처럼 파도처럼 찾아오는 로멘스를 꿈꾸기도 한다. 가끔은 그런 구구절절한 감정의 벼랑 끝에 서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연애는 감정과 시간의 엄청난 소모를 요구하고 배타적이기 때문에 선뜻 연애의 감정에 빠져들 수가 없다. 그러니 낯선 여자와 말만 섞고 눈빛만 나누어도 관능적 쾌감을 얻는 것은 편리하기까지 하다. 나는 언제라도 남자이고 싶다. 열병 같은 사랑을 하고, 그런 사랑을 받는 남자이고 싶다. 사막의 끝없는 황량한 길을 끝없이 달릴 줄 알고, 깊은 산기슭의 아침이슬처럼 사랑이 지나간 후에 빈털터리가 되어도 아낌없는 사랑할 줄 아는 그런 남자이고 싶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나는 이미 빈털터리의 마음으로 유라시아와 사랑을 나누며 이 길을 달려가고 있다. 이 여정이 끝나면 난 진짜로 디오게네스처럼 빈털터리가 되겠지만 아낌없이 사랑을 한 풍성한 추억만은 남을 것이다.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이며 셀주크조 후예인 잔다르(Jandar) 공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시노페’를 향해서 ‘아얀칙’이라는 마을을 지나갈 때는 12월 21일 헤이그를 출발해서 4,000km를 돌파하는 날이다. 그리스의 철학자라고 알려진 디오게네스의 고향은 ‘시노페’이다.

 

그날 거의 4달 만에 드디어 서울에서 지원군이 왔다. 사람이 그리웠던 나는 님 만나듯이 반가워서 공항까지 달려가고 싶었다. 마음이 그렇게 쏠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김창준씨는 1년 전부터 이 평화마라톤을 함께 준비하고 제일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최선의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송인엽 교수는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처음 이 계획을 듣는 순간부터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고 있다. 이제부터는 홀로 유모차를 밀며 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불가리아 교민 김수임씨 차를 시민들은 작은 후원금을 모아 마련하여 당분간 송 교수님이 차량지원해주기 위해서 온 것이다. 이제부터는 70kg나 되는 유모차를 밀지 않고 달리기만 할 수 있겠다.

 

인도를 정벌하러 가는 도중에 알렉산드로스대왕이 디오게네스에게 찾아왔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12월의 바람이 차가운 아침이었나 보다. 디오게네스는 강둑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시대의 영웅은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그를 찾았다. 그 만남은 가장 많이 가진 자와 가장 적게 가진 두 걸출한 인물의 특이한 만남이었다. 많이 가졌지만 자기에게 없는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열등감을 느낀 알렉산드로스대왕은 그에게 다가가 공손하게 ‘선생’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표현은 공손하였지만 내면은 우월감에 찬 말이었다.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다만 햇빛을 가리지 말고 한 발짝만 비키시오!”라는 의외의 대답이 날아왔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은 지금 자기가 도와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어서 “대왕깨서는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묻는다. “세계를 정복하러 인도로 가는 길이요.” “그런 다음에 뭘 하시겠습니까?” 알렉산드로스대왕이 답하기를 “그야 편히 쉬어야지요.” 디오게네스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어리석으십니다. 나는 이미 쉬고 있습니다. 나는 세계를 정복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성도 못 느껴서 지금 아주 편히 쉬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편히 쉬고 싶다면 지금 당장 쉬시면 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돌아가면서 중얼거렸다. “만일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으면 틀림없이 디오게네스였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인도 원정 중에 죽었다. 그는 이승에서 쉼을 얻지 못했다. 죽음으로 영원한 쉼을 얻기는 하였지만.

 

재미있는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이곳 출신이다. 그래서 그를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개에 물리는 사고가 일어난 이후부터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는데 그는 “개처럼 살자.”고 부르짖은 견유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것도 재미있다. 그는 가짜 돈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고향인 시노페에서 쫓겨나 아테네로 가서 안티스테네스의 제자가 된다. 그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커다란 항아리를 집으로 삼아 개처럼 살면서 사람들에게 개처럼 살라고, 그러면 행복해진다고 설파하였다. 개처럼 욕심 없이, 이 순간에 만족하며 아무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어떤 고통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본능을 짓누르는 문화나 풍습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자연은 우리를 아무것도 없이 살 수 있도록 창조했으므로 단순하고 순수하게 살아야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니 무술년 황금 개띠의 해에 개처럼 살아보자!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디오게네스는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에 “나는 세계시민이다.”라고 말했다. 그 시절 자신이 세계시민이라고 언급한 그는 과히 선구자적인 철학자였다. 그러나 세계시민 의식은 국수주의에 묻혀 오랫동안 잊혀졌다. 그러다 20세기 말 2차 세계대전을 치루고 또 한 사람의 선구자가 나타나 유엔총회에서 “우리는 세계 정부만이 줄 수 있는 평화를 원한다. 당신들이 대표하는 주권 국가들은 우리를 나눠놓고 온통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뿐이다.”라고 설파한다. 그가 바로 개리 데이비스이다. 그의 예언은 불행히도 적중했다. 유엔의 5개 상임이사국이 주도하는 세계는 전쟁이 그치질 않았다.

 

미국이 주도하는 5개 상임이사국은 평화와 세계질서란 이름으로 무수히 많은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미 국적을 포기하고 세계시민임을 자처하며 살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징집되어 B-17 폭격기를 타고 족일 브란덴부르크 폭격에 참여한 조종사였다. 그는 민족국가가 없으면 전쟁도 없다며 세계시민 1호가 되었다. 그는 ‘세계시민 정부’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여권, 신분증 결혼증명서를 자체 발급하기 시작하였고 알베르 까뮈, 샤르트르 등 지식인들의 호응을 받았다.

 

세계시민주의는 국적보다는 인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그것은 문명과 문화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국적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더 크고 아름다우며 풍요로운 세상, 포괄적인 인류에 속한다고 자신을 규정한다. 우리는 어떤 측정한 나라에 속할 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속한다는 의식은 인류공영에 중요한 인식이다. 우리는 어쩌면 선천적으로 세계시민의 지위를 얻었는데 국가 이기주의가 그것을 볼모로 잡았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오늘 아침에도 개들 때문에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다리는 후덜덜 떨리는 일이 세 번 정도 있었다. 처음엔 초원에서 양 떼들과 함께 있다가 지나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저 언덕부터 전투기에서 쏜 미사일처럼 나를 향해 달려왔다. 커다란 녀석이 달려오는 발소리가 칭기즈칸의 말발굽처럼 공포스럽게 들렸다. 북의 미사일이나 핵보다 저녀석이 내겐 더 현실적인 위협이었다. 나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고 내 소리에 놀란 목동이 휘파람으로 개를 멈춰 세웠다. 그놈은 캉칼이라는 어마무시한 목양견이었다.

 

두 번째는 마을을 지날 때 한 놈이 나를 보고 짖어대기 시작하자 온 동네 개들이 민방공훈련하듯이 다 몰려들어 달라붙었다. 마을의 이장쯤 되어 보이는 분이 놈들을 다스려주었다. 세 번째는 또 다른 마을을 지날 때 이 캉갈의 순종처럼 큰놈들은 아니지만 어마무시한 등치의 개 다섯 마리가 순식간에 나를 에워싸고 보기도 끔찍한 이빨을 드러내며 짖어대는데 녀석들의 이빨은 일주문을 넘어설 때 사천왕의 모습보다 더 중생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질타하는 듯 무시무시하고 목젖까지 보일 정도였다. 다행히 무릎을 꿇고 적의가 없다는 것을 보이자 흥분한 개들이 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렸지만 더 이상 거리를 좁히지는 않았다. 이때도 운이 좋게 앞에 가겟집 젊은이가 나와 나를 구해주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이 개들과 실랑이를 했지만 오늘의 위험 같은 정도의 공포를 느껴보지는 못했다. 캉갈이라는 종류의 개는 터키의 고유종으로 양치기 개이며 덩치가 늑대보다 커서 늑대를 덩치로 덮쳐서 제압하여 잡는다고 하여 늑대 잡는 개로 알려진 터키인들의 자부심을 대변하는 개이다. 원산지가 터키로 알려졌지만 우리와 이웃하며 살 때부터 지금껏 튀르크족들과 함께 이동해왔다고 하니 우리의 풍산개와 사촌일지도 모른다. 이 맹견은 덩치가 크고 활동량이 많아서 애완견으로는 부적합하다고 한다. 털이 촘촘하여 아나톨리아의 혹독한 겨울과 강한 햇볕을 막아주고 눈이나 비로부터 방수역할도 해주어서 가혹한 환경에서도 적응하며 시속 50km로 달릴 수 있는 민첩함과 마차를 끌기도 할 만큼 힘이 세다.

 

쇠파이프로는 해결이 안 되고 어떤 사람의 조언처럼 곰 스프레이로도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이 개들의 천국 터키 구간의 난제를 송인엽 교수가 와서 해결되었다. 지원차량을 내 뒤에 바싹 붙이고 따라와서 만약의 경우에는 차에 올라타서 위급한 상황을 피하면 되었다. 나는 이제 개처럼 욕심 없이, 이 순간을 만족하며, 아무 부끄러움 없이 그저 개처럼 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개처럼 달리기만 하여서 행복했다.

 

남북이 함께 손을 잡고, 동북아가 평화공존의 시대에 들어선다면 바로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공동체에 버금가는 경제 성장축을 이룰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때 한반도는 용의 입에 물린 여의주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언제부턴가 생겼다. 그런 희망이 나의 마라톤을 평화마라톤으로 미화하려고 하는 나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한반도에는 지금 상서로운 기운이 몰려오고 있다. 극과 극의 모순을 극복하고 모든 이질적인 것들이 손을 잡는 강강수월래의 융합된 최고의 가치를 창출하는 희망의 빛이 한반도로부터 뻗어 나오고 있다. 그러니 동맹의 이름으로 상서로운 기운을 막는 사드 배치나 군사훈련을 중단하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다만 햇빛을 가리지 말고 한 발짝만 비키시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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