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48)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48)

터키의 크리스마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안에는 수양(修養)되지 않는 무엇이 있어 늘 일을 망가트리고 말지만 그것은 바로 사랑에 대한 갈망이다. 그 주체할 수 없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나를 달리게 한다. 돌쇠처럼 우직해서 한번 마음먹은 길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쉼 없이 달려가지만 잘못된 길인 것을 알고는 냉정하게 돌아서 나오는 남자이다. 자존심을 굽히고 비굴하느니 고행의 길을 선택하는 남자가 걸어가야 하는 길은 멀고 험한 고독의 길이다. 예정된 편안하지만 무미건조한 삶보다는 자유와 미래를 더 사랑하는 남자가 기꺼이 선택하는 길이다. 연말연시는 늘 더 그리운 것이 많았지만 올해도 이렇게 지나고 있다. 어느 상점에서 ‘날 울게하소서!’가 첼로 연주곡으로 흘러나왔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터키에는 크리스마스가 있을까, 없을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며 불빛을 휘황찬란하게 꾸며 송구영신을 하고픈 마음이야 우리네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의 의미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행복을 나누는 시간은 어디를 가나 다르지 않다. 송교수님과 나는 흑해 연안 도시 야카켄트에 숙소를 정하고 식당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조용히 보내고 있었다. 식당에서 아이란을 시켜서 마시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역시 아이란을 마시는 사내의 긴 수염에 아이란이 묻어 꼭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하얀 수염처럼 되었다. 조금 전에 지나온 가게의 쇼윈도에서 본 그 산타클로스와 모습이 닮아서 웃음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이슬람에서도 예수는 하나님의 총애를 받은 예언자라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꾸란에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에게 권능을 주어 성령으로 그를 보호케 하였노라!”라는 표현되고 있다. 예수의 기적적 탄생이나 계시와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한 것은 이슬람에서도 인정한다. 다만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부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도로 산채로 승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슬람에서는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터키의 국교가 아니다. 공식적으로 이곳에서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

 

산속에 난 길은 한편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서 손을 뻗으면 금방 닿을 것 같았다. 그 봉우리 너머로 봉우리가 층층이 겹쳐져서 봉우리 끝이 아득했다. 한쪽은 또 다른 봉우리 너머로 혹은 벼랑 밑으로 검푸른 바다가 아련히 펼쳐진 인적 없는 산길이다. 산길을 달리는 데 문득 앞에서 ‘히히힝’ 하는 말 울음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왔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콧등에서 김을 푹 뿜더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이쪽을 보더니 말이 앞장서서 뛰어간다. 아스팔트를 달리는 말밥굽소리가 경쾌하다. 나와 거리가 멀어지면 잠시 기다리다 가까워지면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듯 앞장서 간다. 말의 역동성과 상서로운 기운이 내게 전해지며 기분이 상쾌해진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언덕을 내려오자 도시가 도이면서 대학이 보였다. 날씨도 추웠고, 조금 쉴 때도 되었다. 우리는 카페가 보여서 들어갔더니 대학생들이 십여 명 모여서 열띤 토론을 벌이더니 문을 들어서는 우리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보통의 찻집에는 중년이상의 남자들만 있었는데 이곳에는 대학 앞이라 그런지 남녀가 같이 모여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송교수님이 이들에게 다가가 내 팜플렛을 나눠주며 내 평화여행을 소개하였더니 학생들이 환호를 지르며 내게 다가왔다. 젊은이들은 어디를 가나 궁금한 것이많았다. 이곳에서 내가 지나온 세계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내가 자란 이들에게는 미지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내가 꿈꾸는 통일된 한국, 평화로운 세계를 들려주었다. 젊은이들과 함께하면 늘 그렇듯이 마음이 붕 뜬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제 인구 70만의 도시 ‘삼순’에서 하루 쉬어가기로 했다. 몸도 쉬어가야 했지만 자동차 브레이크 패드를 교체하라는 사인이 계속 뜨니 브레이크 패드도 갈아야 했다. 12월 말이지만 지중해성 기후로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광장엔 누군가를 초조한 눈빛으로 서성이며 기다리는 청년도 보였고, 히잡을 쓰고 커피를 마시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 여자가 보이는 카페도 있었다.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가 건설한 오래된 도시의 무너진 성곽이 보수공사를 위해 차단막을 두르고 있었다.

 

이제 터키를 달린 지도 한 달 열흘이 가까워지니 내가 아는 터키를 사랑하는 한편 내가 모르는 터키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깊어진다. 대부분의 찻집은 다 남자들의 공간이고 그 많은 이발소에 비해 미장원은 눈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으니 여자들의 공간이 무척 궁금해진다. 그레이스 켈리도 심프슨 부인도 마리 앙투와네트도 머리는 만져야 한다. 터키 여자들의 머리는 누가 만지며 수다의 본능을 어디 가서 풀까? 독재 정권에 찍힌 남자는 빠져나올 구멍이 있지만 미장원에 찍힌 남자는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 건 미장원은 초 헌법기관이고 고객들은 대법원 판사와 같다. 터키에는 미장원이 없어서 남자들은 구원받았을까?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은 실핏줄처럼 뻗어 나갔고 그 좁은 공간은 사람과 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치열한 땀 냄새가 진동한다.

 

이곳에서 수없이 많은 터널을 지나야 했다. 이곳의 터널은 비교적 새로 뚫은 것이기 때문에 덜 우중충하고, 덜 음습하고, 덜 어두웠지만 오래된 차에서 내뿜는 매연은 독가스실에 들어온 것 같이 질식할 정도였다. 터널 안에 들어서면 지옥의 소음처럼, 아니면 납량특집 영화의 사운드트랙 같은 공포의 소음이 기를 죽인다. 눈은 맵고, 짧은 호흡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터널을 벗어나려고 달려보지만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은 인도가 아니라 하수구나 전선을 깔아놓고 덮개를 덮은 곳이다. 발을 디딜 때마다 덜컹거린다. 위험은 감지했지만 이곳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약해진 무릎에 타격을 받아서 잠시 정신이 혼미해서 바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아즈라엘(이슬람에서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키는 죽음의 천사)이 내 손을 잡는 것 같아 정신을 번쩍 차리고 일어섰다. 자칫 자동차 길로 떨어지면 상상하기도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2km나 3km의 이런 터널이 대여섯 개씩 연이어 있다. 마침내 터널에서 빠져나오자 끓어오르는 가래침을 뱉었다. 검은 가래가 뱉어졌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곧 깊은 협곡을 잇는 아슬아슬하고 긴 다리를 지나야 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가는 마을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이 딸린 모스크가 있는 이슬람의 땅 터키에는 공교롭게도 기독교 성지가 많다. 전 국민의 99%가 이슬람 신자인 이슬람의 땅 터키는 유럽 세계의 정신과 문화의 근간이 되는 기독교가 가장 먼저 뿌리를 내렸던 곳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뒤 아나톨리아 반도, 그리스, 마케도니아 등 로마 제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다.

 

에게해 연안에 있는 초대 일곱 교회는 대표적인 기독교 순례 장소이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의 교회 안디옥교회는 로마시대 때에는 시리아의 수도로 안티오크로 불렸고 지금은 안타키아라 불리는 터키의 도시이다. 안디옥은 사도 바울의 전도 근거지로 이방인 선교를 위한 기지였다. 안티오크는 신약성서 시대에 로마 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고 인구도 5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에페스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요한과 루가의 무덤과 성모마리아의 집과 성요한 교회가 있다.

 

터키 여행하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카파도키아이다. 살다가 가끔 할 말을 잃어 입을 다물고 경이로운 눈으로만 자연을 바라보고 싶을 때 찾는 곳이다. 사랑을 얻고 싶은 사람하고 함께 한다며 그가 당신의 눈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당신의 반짝이는 눈만으로도 금방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곳에는 지하교회와 동굴교회가 남아있다. 수백만 년 전 ‘에르시예스’산이 화산 폭발을 한 후 화산재가 쌓여 굳어서 사람들의 혼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기암괴석들이 생겨났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개구장이 스머프의 배경이 될 정도로 초현실적인 곳 괴레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곳에 로마시대 초기 기독교인들이 ‘데린쿠유’라는 굴을 파고 종교탄압을 피해 집단으로 살았던 지하도시가 있다. 화산재가 굳어진 응회암은 인간이 힘들이지 않아도 굴을 팔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웠다. 그들은 암벽과 바위 사이를 파고 깎아 끝없는 미로를 연결시켜 생활공간을 만들었다. 모여서 예배를 볼 수 있는 교회와 침실, 식당, 부엌, 창고, 우물, 화장실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신앙을 지키며 숨어 살았다. 무려 깊이가 85m까지 내려가는 지하 8층 규모라고 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스머프들처럼 어떤 인간도 가 본 적 없는 저주받은 땅에서 동굴을 파서 버섯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스머프는 작은 몸집에 파란 피부, 그리고 독특한 언어를 가지고 말할 때마다 ‘스머프’란 말을 섞어 쓴다. 예를 들면 ‘오늘은 슬쩍 스머프해서 잠깐 스머프나 해야겠다’와 같은 식인데,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아멘’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스머프가 요술사 가가멜과 아즈라엘로부터 위협을 받듯 로마 병사로 부터 고통을 받았다. 스머프는 하며 소유와 자본의 개념이 없는 평화의 공동체 생활을 한다.

 

모스크에 딸린 미나레트(첨탑)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이라는 방송을 한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에 모스크를 찾는다.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뜨기 전에 아침을 간단히 먹고 해가 지고 나면 다시 저녁을 먹을 수 있다. 해가 떠 있는 긴 낮 시간에 배가 고프지만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고행을 생각하며 배고픔을 참는다. 그들이 얼마나 철저히 라마단을 지키는지 난 무수히 보아왔다.

 

기독교 유럽과 이슬람권이 ‘문명의 충돌’이라는 대립과 분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중해는 다종교 다문화의 통합된 역사 공간이며 하나의 무대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뒤섞여 살았다. 베네치아 제노바 같은 서구 도시들은 동방의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와 공간과 문화를 공유했다. 그들은 때로는 ‘십자가 초승달’ 동맹으로 하나의 깃발 아래 전쟁을 치르기도 했고 사돈을 맺기도 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오늘날 서구 중심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세계인구의 25%에 달하는 무슬림들은 신앙 때문에 보이게 안 보이게 억압을 받아왔다. 특히 9.11 사건 이후 아랍이나 중앙아시아인의 외모만으로도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배척받아왔고 비행기 입출국 수속을 받을 때 더욱 그렇다. 이런 구도는 서방언론에 의해서 확대재생산 되었고 우리의 언론은 그대로 받아쓰는 일만 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마약처럼 중독성을 가지고 우리의 머리를 지배한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거둘 때이다.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찾아 단결과 협력을 끌어내는 노력을 기울일 때다.

 

내가 충분한 휴식을 위해 늦잠을 즐기는 사이 끈기와 배짱 두둑한 송인엽교수님은 주청사에 찾아가 주지사를 면담하고 내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달리는 이야기를 소개한 모양이다. 한참 꿀잠을 즐기고 있는데 방으로 와서 얼른 세수만 하고 옷 입고 호텔 로비로 나오라는 것이다. 로비에는 삼순 문화관광국장이 통역을 대동하고 직접 찾아와서 바로 방송사에 인터뷰하러 가자고 한다. 나는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방송국으로 가 한반도 통일이 세계평화에 꼭 필요한 것임을 역설하고 터키 시민의 친절에 감사한다고 전하고 왔다.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를 터키에서 지내며 기독교와 이슬람의 화해와 이해도 세계평화를 위해서 한반도의 평화통일만큼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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