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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2)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2)

신의 불, 인간의 불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그루지야의 국경이 가까워져 오자 저 멀리 동북쪽 바다 건너 흰머리 독수리처럼 곱고 아련한 하얀빛깔의 코카서스 산맥이 펼쳐져 보인다. 영어로는 코카서스, 러시아어로는 캅카스라 불리며 동양과 서양을 가르며 흑해에서 카스피해까지 뻗어 나가는 장대한 산맥이다. 나도 이 지역에는 소위 코카서스 3국으로 불리는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자리한다. 이 흑해의 끝에서 코카서스산맥을 넘어 다시 카스피해까지 넘어갈 예정이다. 지정학적 특성으로 예로부터 다채로운 문화가 교류를 하고 여러 민족의 격전지가 되었던 유라시아 역사의 주 무대가 되었던 곳이지만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한 곳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계를 떠받쳤던 기둥이라고 믿었던 코카서스, 다만 우리는 이곳을 세상을 창조한 신들이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예비해둔 땅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 어려서부터 코카서스의 신비로운 풍광을 연모해왔을 뿐 막상 짐을 꾸려 여행하기에는 아직도 먼 나라이기만 했고, 나의 이번 일정에도 원래 들어있지 않은, 어찌 보면 신들의 선물처럼 내게 자신들만의 거주지에 특별 초청한 것처럼 주어진 일정이 되어버렸다.

 

터키 국경을 넘어와서 서에서 동으로 달린 지 51일 만에 그루지야로 들어왔다. 1월 10일이다. 연상의 여인에게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나는 그곳의 매력에 푹 빠지고 압도당했다. 진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터키의 마지막 도시 사르프에서 송교수님과 헤어졌다. 지난 경험으로 보아 사람만 출입국 수속을 밟는 것보다 차량 출입국절차가 더 까다로워 차를 먼저 출발시키고 나는 뒤따라가기로 하였다.

 

나는 수속을 간단히 마치고 국경을 넘어오니 택시와 미니버스로 북적거리는 것이 지금까지 국경을 넘은 풍경하고는 사뭇 달랐다. 수많은 환전상은 보였으나 변변한 식당이나 호텔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으로는 관광객보다는 많은 보따리장수가 넘나드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발 상황이 벌어진 것을 알았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는데 미리 약속한 곳에 송교수님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전화기를 보니 다행히 터키에서 산 심카드가 아직은 작동을 한다. 터키를 넘어올 때는 국경을 넘자마자 전화가 불통이 되었었다. 이 전화가 터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는지 몰라 애를 태울 뻔했다.

 

카톡전화를 거니 터키 국경을 넘어 들어올 때와 나갈 때 운전자가 같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운전하여 문제가 생긴 것이다. 터키에 들어올 때는 다른 사람이 몰고 들어왔었다. 관세청에서는 일단 사무적으로 차량 절도로 간주하고 차량 통과를 시켜주지 않는 것이다. 송교수님은 우선 한국영사관과 얼마 전에 면담했던 악차아밧 시장실과. 트라브존 시장 등에게 연락을 했지만 오늘 중으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내 모든 짐이 차에 실려 있었지만 헤어질 때 혹시 몰라서 윈드브레이커를 챙겼고, 나는 항상 핸드폰은 들고 허리 주머니에 여권과 약간의 돈을 차고 뛰었다. 그것이 이 돌발 상황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국경 마을에는 이렇다 할 식당은 없었다. 나는 일단 빵 몇 조각을 사고 숙소를 수소문하여 찾았다. 송교수님은 한참 후에 차를 놓아두고 내 짐이 들은 배낭을 가지고 국경을 넘어와 자고 아침에 다시 차를 찾으러 다시 국경을 넘어갔다. 나는 미국의 샌디에이고에서 지원 차량 운전을 위해 오는 박호진씨를 만나러 배낭을 메고 바투미 센트럴 역까지 걸어갔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비행기를 타고도 30여 시간이 걸리는 머나먼 길을 평화마라톤에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찾아와 준 것이다. 그의 가방 속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정성껏 담근 김치와 고추장, 열흘을 푹 고았다는 도가니에 삼겹살까지 있었다. 평화통일의 절절한 염원이 녹아 있는 음식을 호텔 주방을 잠시 빌려 요리해서 오랜만에 배불리 맛있게 먹었다. 사실 터키와 사랑에 빠졌다고 하였지만 그 음식에까지 정을 주지 못했었다.

 

모든 결핍은 사람에게 큰 고통을 준다. 한국 음식에 대한 결핍 그리고 51일 동안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 것도 고통이었다. 후라이펜에서 익혀진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그리운 맛, 삼겹살의 육즙이 입안에서 툭 터졌다. 그 맛은 부드러움과 성깔을 함께 갖춘 여인처럼 혀를 휘휘 감았다. 음식에 관한 한 내 사랑은 오직 한국 음식이다.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송교수님이 차를 몰고 국경을 넘었다. 마침내 우리 셋은 조우를 할 수 있었다.

 

그루지아, 영어식으로는 조지아라고 불리는 나라이다. 흑해에 연해있어 문화적으로 유럽으로 분리하지만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기준점은 우랄산맥이다. 오랜 세월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우며 자신들만의 전통문화를 지켜온 억세고 순박한 삶이 있는 곳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은 “조지아 음식은 하나하나가 시와 같다.”라고 극찬한 맛있는 음식이 있고, 그것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그러나 나그네 입장에서는 무엇을 먹어야 할지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여전히 쉽지 않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약 8000년 전부터 와인을 제조했다고 그루지야인들은 최초의 와인 생산국이 여기라고 믿고 있다. 그 옛날 폭풍이 심하게 부는 날 나무끼리 부딪쳐 산에 불이 났다. 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속에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동물의 사체가 널렸다. 한 번 불에 익은 통 바베큐의 맛을 본 인간은 그 맛을 잊지 못했다. 모든 포유동물은 불을 사용한 요리된 음식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고에너지 음식물을 직감적으로 인식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물은 보통 요리를 하면 쓴맛이나 떪은 맛이 줄어들고 단맛이 늘어나고 부드러워진다. 요리된 음식은 소화하기 좋아져서 소화의 중노동에서 해방시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다.

 

불은 인간의 삶의 중심이 되었다 포커스(중심)라는 말은 원래 ‘화로’라는 뜻이다. 캠핑 가서 타오르는 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쾌적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괴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불꽃을 보고 있으면 편안하고 몽상을 불러일으킨다. 화로에 갇힌 불은 휴식의 상징이며 휴식으로 초대이다. 원시 부족들은 불을 중심으로 집단 의지의 결속을 강화하고 소통하는 장으로 활용하였다.

 

일류의 문명은 불을 지배하면서 시작되었다. 불을 다룰 줄 알게 된 인류는 쌀을 밥으로 변화시키고 밀로 빵을 만드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로써 인간의 위는 더 없는 평화를 누리게 된다. 불로 증류주를 만들어내면서 삶은 더 즐겁게 바뀌었다. 불로 돌을 녹여 청동을 얻었고 철을 얻었다. 처음 부싯돌을 부벼 불씨를 얻었고 물의 낙차를 이용하여, 바람과 태양광으로 불씨를 얻었지만 원자로에서 불씨를 얻으면서 자연을 정복했다고 오만방자해졌다. 인류는 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원자로는 한꺼번에 막대한 불을 인간에게 공급해주지만 한 번의 사고로 그동안 인류가 이룩한 모든 업적과 생명을 한꺼번에 앗아갈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그 경고이다.

 

유라시아의 숨겨진 보물 그루지야는 불이 만들어낸 인간의 문명이 시작된 곳이다. 적어도 신화적으로는 그렇다.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의 기원지이며,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대가로 코카서스 산맥의 카즈베기의 설산에 쇠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았던 곳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미리 아는 자’의 뜻으로 신을 공경할 인간과 짐승을 창조하였다. 그는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신의 모습을 본떠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 신을 가장 많이 닮은 인간들은 나약해서 굶주리고 추위에 떨었다.

 

그런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 아파하던 그가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와 회향나무에 불을 숨겨 인간에게 선사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불의 사용으로 인간의 삶은 더 윤택해졌지만 제우스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 신의 권위였다. 카즈베기 설산에서 하루 종일 파 먹힌 간은 밤새 다시 돋아나 이튿날 다시 독수리의 먹이가 되었다. 신화는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이 3천 년이나 계속되었다고 전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제우스는 그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끝없이 회유와 협박을 가하지만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그는 불의와 억압에 굴하지 않는 저항정신의 아이콘이 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헤라클라스가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는 독수리를 물리치고 사슬을 풀어준다. 그의 변변치 않은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나중에 아는 자‘의 뜻으로 두 형제의 이름이 프롤로그 에필로그의 어원이 되었다.

 

조로아스터교는 유일신을 믿는 가장 오래되고 진화적인 종교이다. 조로아스터 신자들에게 불은 빛이자 생명이고 희망이다. 그들은 어둠을 몰아내고 더러운 것을 정화시키는 불을 숭배한다. 그들에게 불이란 내면의 깨달음이고 신이 인간에게 준 지혜와 용기이다. 이 종교는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 종교의식에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는 것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난 겨울 수많은 촛불이 더러운 정치세력을 몰아낸 사실이 문득 떠오른다.

 

조로아스터에서는 영혼은 영원하지만 육체는 죽으면 불결한 것이어서 흙이나 물, 불과 접촉할 수 없다. 그러므로 토장이나 화장은 할 수 없고 주검은 땅과 분리된 높은 곳에 올려져 독수리에게 뜯어 먹히게 했다. 백골만이 아래로 떨어져 탑처럼 쌓이니 그들은 이 조장(鳥葬)의 장지를 ‘침묵의 탑’이라 부른다. 새는 인간의 영혼을 하늘로 운반하는 매개체이며 영물이다. 인간의 영혼을 하늘로 운반하는 매개체들이 여기저기서 지저귄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과 영웅 중에 인간들에게 가장 많이 오래도록 사랑받고 칭송받는 진정한 신이며 영웅이다. 인간의 문명은 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날카로운 독수리의 부리에 쪼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버텼다. 그는 인간의 문명과 자유의 다른 이름이고 부당한 세력에 대항하는 고결한 정신이며, 억압에 당당히 맞서는 투쟁의 상징이 되었다.

 

고대 올림픽 경기는 신을 위한 행사였다. 그리스인들은 프로메테우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경기장에 불을 피웠다. 성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올림픽 성화는 엄숙하고 평화로운 불이다. 성화는 신이 선사한 불이지만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니 인간의 불이기도 하다. 평창올림픽의 성화가 봉송되는 동안 얼어붙었던 남북의 관계를 녹이는 뜨거운 소식들이 희망처럼 들려온다.

 

수만 년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유라시아를 뒤덮는 평화가 진정 신들만의 소유라면, 1만6천km를 달려서라도 평화의 횃불을 훔쳐오고 싶었다. 노아의 방주에 날아드는 비둘기처럼 작은 평화의 횃불 입에 물고 한반도를 가로지르며 날아들고 싶다. 나는 진정 어둠을 몰아내고 더러운 것을 정화시키며 평화를 불러오는 불을 숭배한다. 그것이 우리의 빛이자 생명이요 희망이기 때문이다. 나는 올림픽 성화를 봉송하는 마음으로 가슴 속에 평화의 불씨를 안고 세상에 온갖 폭력이 종식되고 평화와 화합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달리고 있다. 불씨가 일어날 때까지 발바닥을 대지에 끝없이 부벼댄다. 지금 내 발걸음은 작은 불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니!”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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