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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4)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4)

곰탕 같은 평화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독수리

 

바람이 분다.

바람 앞에

낙엽은 몸서리를 치고

혈육 같은 이파리 다 떨구어낸

나뭇가지는 울부짖는다.

 

바람 앞에

당당하게 웅장한 날개를 펼친다.

폭풍 속으로 달려들어 상승기류를 탄다.

구름 위를 날며 저 밑에 쥐구멍까지 꿰뚫어 본다.

 

절벽을 절망이라 하지 않으면

최고의 활주로가 된다.

바람을 역경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의연히 꿈의 날개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하늘을 솟구쳐 날 수 있다.

 

거친 바람 위에서

바람에 초연이 몸을 맡기는 일, 날갯짓의 정지,

바로 그거다. 그곳에 여유가 존재한다.

바람을 타는 묘수가 보인다.

 

코카서스 산맥의 두꺼운 산 주름 속을 맨몸으로 달릴 때 낯선 나그네의 발길이 탐탁지 않은 듯 바람은 거셌다. 바람에 초록의 물결이 일렁였다. 바람은 한껏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했다. 그것만 놓으면 나는 화살처럼 어딘가로 날아가 꽂힐 것 같다. 그러지 않아도 그 장엄하고 경이로운 자태 앞에 무릎이 절로 꺾이고 고개가 숙어지는데 내 작고 가녀린 몸은 코카서스의 바람 앞에서 몸서리를 치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하지만 나만 이 대지 위에서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니다. 산자락의 풀들도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고 그 풀을 뜯는 소와 말과 양 떼가 모두 고개를 숙였다. 신의 사자인 양 독수리 한 마리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바람을 통치하며 유유하게 날고 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몇 년 전, 마라톤을 뛰기 전에 나는 한때 패더글라이딩에 빠져있던 적이 있었다. 패러글라이딩을 바람이 불어야 즐길 수 있는 레저스포츠이다. 바람을 품어 스스로 부풀어 바람 속으로 뛰어들면 바람 위로 두둥실 뜬다. 바람을 다스릴 줄 알아 상승풍이나 열기류를 이용하면 하늘 높이 올라 유유히 장시간 여유있게 비행할 수 있게 된다. 바람으로 날개를 펴고 산 위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몸은 두둥실 떠오른다. 위의 시는 거친 바람 위에서 바람에 초연히 몸을 맡기며 하늘에 두둥실 떠서 올려만 보던 모든 것들을 내려다보면서 읊은 시이다.

 

1월의 길은 어디를 가도 황량하겠지만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트빌리시로 가는 이 길은 세상을 등지고 구도의 길을 떠나는 구도자의 길처럼 황량하다. 바람기 가득 찬 내 마음에 그루지야 국경을 넘기 전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코카서스를 보는 순간부터 바람이 더 들어 흥분이 터질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그 심연 깊숙이 들어갈수록 들려오는 대자연의 거친 숨소리에 내 숨소리가 멎을 만큼 정신이 몽롱해졌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바람을 헤쳐나갔다. 앞으로 내게 어떤 삶이 주어지든 다 품어 안고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리라! 설령 그리움뿐인 삶이라도 그리움 위에 떠서 유유이 평화를 누리리라!

 

길은 리오나강 하류에서 시작했고 강물은 마음 가득 하늘을 싣고, 설산의 전설을 품고 묵묵히 제 갈길로 흘러간다. 저 멀리 보이는 설산까지 그 물길을 따라 길이 나 있다. 물은 스스로 나아갈 길을 만들어 뻗어 나갔다. 강물은 도도히 흐르고 인간의 길은 강물을 따라 생겨났다. 그저 낮고 무른 곳을 찾아 융통성 있게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의 길들은 물길을 따라 생겨났고 물길에 배가 다니면서 지금의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런 길들이 이어져 비단길이 되었고, 문명이 오고가던 길이 되었다.

 

나는 그 비단길 위에 나의 영롱한 땀방울을 흘리며 평화의 수를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놓아가며 달리고 있다. 이 산맥만 넘으면 광활한 유라시아의 동쪽 대륙이 펼쳐질 것이다. 거기서 동물과 새들은 물길을 따라 이동하였고 사람들은 동물을 따라 이동하였다. 우기가 되면 풀이 돋아나고 동물들은 그 풀이 돋아나는 길을 따라 수백에서 수천 킬로를 이동하였고 사람들은 동물을 따라 이동하였다. 그 길을 따라 구름도 흐르고 바람도 흐르고 비단도 흐르고 사랑도 흐르고 문명도 흘렀다. 그 길을 따라다니며 인간들은 허기진 배를 채웠다. 물길을 따라 계속 달려 올라가니 상류를 꼭짓점으로 하는 역삼각형 초록들판이 펼쳐진다. 그곳에 소나 말들은 좀 더 큰 점으로 염소나 양들은 작은 점으로 보일 뿐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흑해의 해안 길을 벗어나서는 숙소 찾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철 지난 바닷가에는 그래도 가끔 찾는 손님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내륙의 호텔은 거의 영업을 하지 않는다. 샘트레시아에서 몇 번의 헛걸음 끝에 어렵사리 찾은 호스텔은 방 하나에 침대는 여섯 개가 놓여 있었지만 대학생들 MT 가면 40명도 더 잘 수 있는 넓은 방이었다. 그 넓은 방에 달랑 전기스토브 하나 놓여 있었다. 주인아주머니한테 너무 추우니 전기스토브 하나 더 갖다 달라고 사정을 하였지만 소용없었다. 10리라를 더 준다고 하니 마지못해 하나 더 가져왔다.

 

셋이 자는 침대 한가운데 전기스토브 두 개를 놓으니 조금 온도가 올라갔지만, 옷은 있는 대로 다 껴입었다. 따뜻한 아궁이를 찾는 고양이처럼 전기스토브 옆으로 간이침대를 바싹 붙이고 잠자리에 들었다. 박호진씨는 저녁 식사 후에 바로 눕더니 잠들어버리고 나는 깊은 잠을 자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송교수님은 12시까지 현지 신문사와 정부관청에 평화마라톤 홍보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는 걸 알았다. 사달이 일어난 것은 한 2시쯤 되어서였던 것 같다. 방안에 폭탄이 터지는 굉음이 나서 나와 박호진씨는 깜짝 놀라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전기가 누전되어 불이 타고 있었다. 불은 순식간에 전선을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짧은 순간 겁이 나고 당황했지만 수건을 휘둘러 화재를 진압했다.

 

방 안에는 순식간에 전선이 탄 냄새가 자욱했다. 창문을 열고 연기를 빼야 했지만 추위에 떨며 밤을 지새워야 하는 걱정에 선뜻 문을 못 열고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송교수님은 그 매운 연기 속에서 야단법석을 피웠는데 샘나도록 꿀잠을 잔다.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매운 연기 때문에 잘 수가 없다. 창문을 열고 추위에 떨면서 밤을 지새웠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워 피로가 가시지 않았지만 다시 기지개를 켜고 달리기 시작하니 몸은 어느새 가뿐해졌다. 바람은 날카롭게 날을 벼렸고 아침 기온은 쌀쌀하다. 겨울의 한가운데 있었고 코카서스의 한가운데를 넘고 있었다.

 

강 위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내 입에서도 용의 입에서 구름이 뿜어져 나오듯 안개가 새어 나온다. 뽀얀 안개 너울이 승무를 추듯 춤을 춘다. 강 건넛마을에서 아침안개를 타고 들려오는 소 울음소리가 우렁차다. 산과 강에 메아리쳐 울려오는 새 목청 고르는 소리도 경쾌하고 달아오르기 시작한 내 몸, 내 발자국 소리도 경쾌하다. 코카서스 산맥을 오르는 내 마음은 더할 수 없이 평화롭다. 잠을 설치고도 다음 날 쿠타이시까지 42km를 잘 달렸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날은 다행히 달리기를 마치고 금방 공원 안에 있는 호텔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감마르조바(안녕하세요!)!”하고 웃으며 인사를 하고 들어간다. 여행할 때 많은 단어나 문장을 외우려고 머리에 쥐 나게 할 필요는 없다. 인사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웃는 낯에 그 나라 언어로 인사를 하면 70점을 깔고 들어간다. 데스크에는 여대생이 앉아있었는데 그녀에게 비수기라 사용하지 않는 호텔 주방을 빌려서 있는 김치와 햄, 돼지고기에 라면 사리까지 넣고 부대찌개를 끓였다. 이 아가씨에게 그냥 인사치레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함께한다. 아마 교대시간이 되어서 마음이 편했던지 자리에 앉더니 밥에다 송교수님 하는 걸 보고는 부대찌개를 말아서 늘 먹던 음식을 먹듯 맛있다며 한 그릇 뚝딱 비운다. 우리의 음식 맛있게 먹어주면 내 아이 예쁘다고 해주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노을이 지는 저 언덕의 침엽수 가지의 떨림 사이로 코카서스의 설경이 한눈에 보인다. 그루지야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그 좋다는 그루지야 와인까지 반주로 한잔하니 코카서스의 밤은 아름다웠다. 코카서스의 겨울밤이 노루꼬리보다도 짧았다. 밤하늘의 별들이 하나둘 돋아나더니 금방이라도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별빛이 저토록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그리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형벌 같은 그리움이 있을 때 더욱 그렇다. 가슴이 더욱 뜨거워졌다. 이 가슴으로는 거친 길도 충분히 헤쳐나가겠다.

 

와인으로 따스하게 데워진 나의 가슴이 멎어버리고 말았다. 코카서스가 내게 준 선물은 경외심에 가득 찬 떨림이었다. 떨리는 눈길 너머 보이는 설산의 떨림이 지금껏 내가 만나지 못한 신비한 떨림이 되어서 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의 숨소리마저 힘겨운, 눈 내리는 코카서스산맥을 넘어가네! 운동화가 젖어오면서 발이 시려온다. 벚꽃 흐드러져 쏟아져 내리 듯한 눈발에 가는 길 그리운 이조차도 잊고, 추위도 잊네. 날만 새면 새로 태어나는 나는 제우스 신의 허락을 받고 내려온 어떤 신인지 싶다. 가슴 벅찬 떨림이 눈발처럼 휘날린다. 그것은 먼 옛날 해수욕장에서 흘깃흘깃 나를 보는 그 여학생의 눈 떨림 같은 것이었다. 그때도 나의 가슴은 멈춰버렸었네. 지금 이름도 얼굴조차도 기억할 수 없지만 그때의 떨림은 아직도 가끔씩 전해져 온다. 사실 청춘의 그 떨림은 평생을 우려먹는 곰탕과 같은 것이다. 삶이 허기질 때마다 우려먹을 곰탕 같은 추억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한반도의 자주적이고 평화로운 통일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세세토록 우려먹을 곰탕 같은 것이다. 나의 발걸음은 그 곰탕을 끓이는 군불 때기 같은 것이다. 곰탕은 오래오래 고아야 제맛을 내기 때문에 내 발걸음의 길이가 1만6천km가 되었고, 14개월을 고아서라도 꼭 진한 국물을 우려내고 싶었다. 누구라도 삶이 허기질 때 한 그릇 간단하게 먹고 배를 채울 수 있는 곰탕 같은 평화!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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