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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유라시아 대륙 항해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임남히씨가 프랑스교민들에게 모아 전달해준 후원금이면 충분히 좋은 유모차를 새로 구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대도시에 가야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임시방편으로 끈으로 묶어서 어제 일정을 끝마쳤는데 아침에 조임쇠로 묶어서 쓰면 훨씬 나을 것 같아서 물어물어 철물점을 알아놓고 다음날 철물점 문 여는 시간에 맞추어 가려고 아침에 좀 늦장을 부렸다. 그런데 9시에 문을 여는 가게가 9시 반이 되어도 문을 열지 않는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그냥 시원치 않은 유모차를 밀며 달리기 시작했다. 비가 예보되었지만 날씨는 쾌청하여 하늘은 맑고 뭉게구름은 내 걸음 보다 천천히 흘러간다. ‘하우다’라고 읽기도 하고 영어식으로 ‘고우다’라고 읽기도 하는 ‘고우다(Gouda)는 우리에게 고우다 치즈로 잘 알려진 곳이다. 네덜란드 남부의 농부들이 이곳에 모여 치즈를 팔았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치즈가 식탁의 꽃이라고 불린다. 치즈는 생산지역과 재료, 제조방식과 지방 함량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

 

하우다에서 위트레흐트로 연결된 자전거 길은 유럽에서 가장 멋지고 기분 좋은 정원 속의 길이라고 한다.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고 홍수를 막기 위해 곳곳에 물길을 낸 운하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이런 아름다운 길을 맘껏 달리는 것은 축복이다. 네덜란드의 풍차와 운하 그리고 아담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집들을 배경으로 한 가을색은 내 슬픈 첫사랑의 웃음처럼 아무 때나 찾아오면 반갑게 맞는 헤픈 색이 아니다.

 



 

네덜란드의 창은 크고 화려하다. 우중충하고 비 내리는 날이 많으니 실내에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들이기 위해서이다. 그 창문은 보통의 경우 활짝 열어젖혀져 있다. 열린 창속으로 그들이 삶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삶은 어느 곳에서도 비슷해서 가족이 함께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칼뱅주의의 전통이 강해 남에게 숨길 것 없는 삶을 살고자 한다. 큰 창문 밖 아래쪽에는 보통 선반이 달려있어 화분이나 인형들을 올려놓아 창문을 화려하게 꾸몄다. 이들은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기분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가끔씩 운하를 가르며 지나는 배들과 경주를 하듯이 달리기도 하면서 운하를 따라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데 벨기에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여행한다며 짐을 양 옆에 가득 싣고 힘차게 지나가다가 자전거에서 내려 내가 어디까지 손수레를 밀며 달려가는지 물었다. 그는 나의 믿기지 않는 여정을 듣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이거저것 물어보더니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사람들은 운하를 따라 집을 짓고 살고, 운하를 따라 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 오고가며 그 물에 자신들의 삶을 반추하면서 삶을 이어간다. 운하가 얼기설기 거미줄처럼 있는 오래된 도시에서 나그네가 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운하를 따라 가며 변하는 길은 여간해서 찾기가 쉽지 않다. 나는 길을 물으며 사람들과 소통한다. 나는 단순히 오늘밤 묵을 숙소를 찾아가는 길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함께 오래오래 묵을 지구촌 시대를 여는 길, 어울려 사는 상생의 길, 평화의 길을 물어보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남자에게 길을 물어보니 열심히 설명하더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아예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더니 한참 동안을 앞장서서 길을 안내해주고 간다. 혹시 내가 자신을 쫒아가지 못 할까 뒤를 흘끗흘끗 돌아보며 앞장서 간다. 내가 길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큰 길에 들어서자 거기서 다시 설명해주며 나를 떠나보내고 자신은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한스는 꼭 내 마라톤이 성공하기를 바란다며 손을 내밀어 굳게 악수를 나눈다. 그와 헤어져서 이제 오늘의 목적지 위트레흐트에 다다랐는데 도시에서는 더욱 길 찾기가 쉽지 않다. 런닝복을 입고 강가를 경쾌하게 달리던 청년을 세워 길을 물었더니 자기하고 같이 가자고 한다. 내가 손수레를 밀며 가니 나를 배려하느라 걷어서 간다. 뛰어도 된다고 하니 망설이다가 천천히 뛴다. 내가 손수레를 밀며 앞서 나가니 놀라는 표정으로 달려간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다. 그의 안내로 오던 길을 되돌아서 달려갔다. 위트레흐트는 아름다운 도시이며 대학의 도시이다.

 

운하를 타라 길을 달리며 나는 이 세상을 처음 본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느라 바뻤다. 운하와 풍차와 자전거가 잘 어우러진 위트레흐트는 아름답고 오색찬란했으며 신비하기가지 했다. 달리면서 그는 이곳저곳을 설명해준다. 다음 달에 결혼한다는 토마스와 함께 도심 한복판을 기분 좋게 한동안 달리다가 숙소까지 안내해주었다. 나는 고마워서 맥주라도 한잔하자고 하니 여자 친구가 기다리고 있고 집에 돌아가려면 시간이 걸려 아쉽지만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유스호스텔 방문을 여니 여학생 하나, 남학생 하나가 있다. 남녀가 같은 방을 쓴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지만 그러려니 하니 별 일도 아니었다. 나는 그들 틈에서 곤한 잠을 달콤하게 잘 잤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다시 레이넨을 향해서 달려간다. 네덜란드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이를 만나기 힘들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보여주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세계화는 세계화대로 자연은 자연대로 그대로 잘 보존하면서고 발전하는 모습이 내가 네덜란드에서 가장 보고 싶은 모습이다. 이곳에서 사회주의적인 복지시스템과 자본주의적인 경제 논리가 서로 충돌하지 않다는 것은 눈여겨볼 일이다. 노동자들이 살기도 좋으면서 기업가들이 기업하기도 좋은 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이다. 네덜란드가 그렇다.

 

네덜란드의 국운이 상승할 때 범선을 타고 전 세계를 누비던 두 네덜란드인이 1653년 조선 효종 때 제주도에서 극적인 조우를 하게 되었다. 바로 20여 년 전 이미 조선에 귀화해 살고 있던 박연(벨테브레이)과 그 얼마 전 난파된 배에서 표류하다가 제주도에 닿은 하멜 일행이었다. 이역만리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박연과 하멜은 옷깃을 적실 때까지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처음 이들이 만났을 때 박연은 오랜 타향살이 끝에 고국어를 다 잊어버려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박연은 중국 상선을 나포한 후 일본에 설치된 동인도회사에 넘기려고 제주도 앞바다를 지나던 길이였다. 식수가 떨어지자 선원 두명과 잠깐 제주도에 내렸다가 중국인들이 배를 다시 탈취하여 도망가는 바람에 제주도 관원들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그는 조선에 화포제작법을 가르쳐주고 무과에도 급제를 하며 잘 적응해 살았지만 하멜 일행은 달랐다. 그들은 청나라 사신들을 만났을 때 “돌아가게 해달라!”고 시위도 벌였다. 이 일은 북벌을 은밀하게 계획하던 효종 임금의 야심이 들통 나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하멜 일행은 7년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하늘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일본으로 갔다가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된다.

 

동인도 회사 소속이었던 하멜은 조국에 돌아가 소송을 통해 조선에 억류되었던 13년간 받지 못한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 빠짐없이 기록한 일종의 업무보고서를 쓰게 된다. 돈을 타내는 일이어서 정성을 다해서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기억력을 살려서 썼다. 그것이 그 유명한 ’하멜 표류기‘이다. 네덜란드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재에 밝다.

 

하멜과 36명도 다른 동인도회사의 선원이 나가사키로 가던 중 조난을 당해서 난파되었다. 이들도 한양으로 압송되어 당시 북벌을 준비 중이던 효종에 의해 훈련도감에 배치되었다가 청나라 사신들 앞에서 고국으로 보내 달라고 시위를 벌인 후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떠났다가 가까스로 13년 만에 탈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16명밖에 안 되었다. 하멜 표류기는 그렇게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것이 신비한 동방의 아침의 나라 조선을 네덜란드인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서세동점을 청산할 시기에 내가 극서의 네덜란드를 출발하여 극동의 한국으로 달려가는 일은 상징적이다. 그 시절 유럽은 탐험가가 먼저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로 떠났고 곧이어 선교사가 들어갔으며 상인이 들어가기 위하여 군대가 들어갔다. 이제 나는 유라시아대륙을 달리며 탐험하면서 동아시아의 시대, 평화의 시대, ‘정신 개벽’의를 활짝 열어젖힐 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유럽은 이제 어떻게 아시아와 다시 만나 평화로운 세상을 열어갈까? 언제나 봄이 오기 전에 이미 땅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기운이 전해져온다. 나는 마치 예언가처럼 그 기운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끼면서 평화의 전령사 역할을 하려고 이 길을 나섰다. 세기를 뒤흔드는 봄바람 같은 평화의 기운이 극동의 땅에서 불어오고 있다!

 

산이 보이지 않는 서유럽의 벌판은 끝없이 펼쳐졌고, 꿀벌은 윙윙거리며 코끝을 스치며 날아다녔다. 어느덧 나의 그림자가 비현실적으로 앞으로 길게 뻗어나갔다. 육신의 피로도 그림자만큼 길게 앞으로 드리워졌다.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되는 긴 여정의 동행자인 불안의 그림자도 구도의 불길도 그만큼 길게 앞으로 드리워졌다.

 

한때 몽골인들은 사막을 말을 타고 건너 세계를 제패하고 한때 네덜란드인들은 배를 타고 물의 사막을 건너 세계를 제패했다. 그리고 오늘 한국인 하나가 두 다리로 평화의 사막, 통일의 대양을 두 다리로 건너며 제국주의적 사고의 종말을 외치며 달려가고 있다. 21세기 지구촌은 힘을 모아 상극분쟁(相剋紛爭)의 시대를 마감하고 화합상생(和合相生)의 새 시대를 열어나갈 시대적 소명을 지녔다.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유라시아 대륙 항해

 

가슴 속에서 펑펑

샘솟는 사랑으로 바다를 이루자.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가슴 설렘으로

넘실넘실 파도를 치게 하고

날카로운 이성으로 나무를 베어

범선을 만들어 띄우는 거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돛을 달고

이해와 배려로 번갈아 삿대를 저으며

꺼지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터빈을 돌리고

터질 것 같은 가슴으로 함포 사격하면서

한 권의 경전으로 밤하늘의 반짝이는

북극성 삼아

평화의 길로 항해를 하면

세상은 나의 순풍이 되리라!

 

혹여 끝없이 길고 외롭고 거친 항해 중에

라일락 꽃 향기 가득 담은 꽃잎 보면

그건 나의 이웃과 친지들의 따스함이 가까이 있음이라.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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