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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 이야기 (4)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 이야기 (4)

분단의 상처를 안고 출발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출발선에 서니 이제 1만6천여km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정도면 좀 힘들겠지만 해볼 만한 거리이다 싶다. 처음 두어 주일은 신체의 각 기관이 이런 터무니없는 육체적 고통에 적응하느라 몹시 힘들어하겠지만, 육신은 생명을 위해 잘 적응할 것이다. 몸이 이 고통을 잘 적응할 때까지 최대한 부드럽고 예의 바르게 몸을 사용하여야 한다. 지금부터 얼마간은 몸의 조그마한 응석도 다 받아주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꾀를 부리던 육신도 이 최고의 움직임을 즐기게 될 것이다.

 

 

첫발을 내딛자 내 속 깊은 곳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억압된 것들이 소리 없는 외침으로 솟구쳐 오르며 환호한다. 첫발자국이 대지에 닿자 그 소리가 대기를 미세하게 흔들었다. 대지의 반사 탄력이 발끝에 전해지며 전율이 온몸을 훑었다. 관절이 이완되고 수축했다. 두 발이 번갈아 대지를 차고 하늘로 가볍게 솟구치는 기분은 황홀했다. 내 안에서 생겨나서 스스로 뜨거워지고 폭발할 것처럼 팽창(膨脹)해서 나를 망가뜨리고야 말 기세로 덤벼들던 것들이 징징대고 떼를 쓰던 어린아이가 사탕을 받아 들었을 때처럼 고요히 잠들고 말았다.

 

어쩌면 이 일은 아주 오래전, 내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 일은 운명적으로 마련되어 있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한겨울에 나무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봄이 되어 떠져 버리는 꽃망울같이 말이다. 나는 이제 비로소 인생의 봄을 맞는지도 모르겠다.

 

첫발자국은 첫사랑처럼 조심스럽게 놓여지고,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첫 고백 뒤에 마른 침을 꾹 삼키며 찾아오는 침묵의 시간이 첫발자국을 뛰자 거룩하게 찾아왔다. 다만 그 성스러운 침묵의 시간에 모든 사랑하는 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달콤한 환상에 빠질 수 없는 것이 탈이었다. 나는 그 여백(餘白)의 시간에 앞으로 다가올 아주 위험한 순간과 시시때때로 다가올 고통과 난처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단호한 결의를 다져야 했다.

 

돌베개를 베고 풍찬노숙을 하며 어떤 미스터리한 지점을 헤매다 버뮤다의 삼각지점 같은 곳을 만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금지된 사랑에 뛰어든 여인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이제 막 활주로를 이륙한 비행기처럼 나는 미지의 세상을 향해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달려갈 것이다. 매일매일 뜨개질하듯이 한 발 한 발 정성을 다할 것이다.

 

서쪽 끝에 서서 태양이 솟아오르는 동쪽 끝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방향이 아니었다. 다만 부조리의 끝을 향해 달리고 싶을 뿐이다. 지구의 끝을 향해 달리며 전쟁의 끝, 분쟁과 대립의 끝 인류의 오랜 수치(羞恥)와 오욕(汚辱)의 끝으로 달리고 싶었다. 부조리한 세계의 끝까지 달려가서 전환의 시대에 앞장 서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곳에 평화가 있으리란 믿음이었다. 그곳은 내가 온 곳이다. 아마도 인류의 원형이 그러했으리라! 인류의 시작이 그러했으리라! 그러니 끝을 행해 달리면서 시작점으로 다시 달려가고픈 염원을 발걸음에 고스란히 담았다.

 

나의 첫 발걸음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서울에서 동창생 민형성 부부와 이은수 부부가 와서 함께 해주었다. 그리고 파리에서 생면부지의 임남희씨가 나의 유라시아횡단 평화마라톤 소식을 듣고 7시간이나 넘게 기차를 타고 와주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힘이 나고 과분한데 이준열사 기념관 관장님이 네덜란드 경찰을 불러 의전까지 갖추게 하여주시니 고마워해야 할지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끌끌! 이준열사 기념관 앞에서 출발하는 것이 이준열사의 숭고한 정신에 어긋난다고 허가를 안 해준다는 것이다.

 

안에서 간단한 행사를 하고 출발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해서 길거리에서 사진만 찍고 가려고 했는데 10시 반에 문을 열 사람이 8시 반부터 나와서 지키고 있다가 길거리에서 사진만 찍는 것도 안 된다고 난리를 쳐서 첫 출발부터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아 저만치 떨어진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경찰들이 출동했다. 기동진압대가 출동하여 작전을 펼치듯 신속하게 차에서 내렸지만 그들이 사태파악을 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곧 그들은 숨을 고르며 우리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우리가 왜 여기에 모여 있는지 물었다.

 

 

경찰들은 내가 유라시아대륙을 달려서 횡단할 사람이라고 하자 놀라워하며 기념사진까지 같이 찍고 오히려 출정식을 멋지게 장식해주었다. 제복 입은 사람이 함께하니 사진이 멋지게 구색이 맞는다. 그들은 혹시 모를 충돌을 염려하여 어느 정도 에스코트까지 해주니 유라시아횡단 마라톤은 네덜란드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는 최고의 행사로 품격을 갖춘 모양새가 되었다.

 

우리는 함께 헤이그 거리에서 평화의 행진을 하는 것으로 뜻깊은 출발을 하였다. 학창시절 악동들이 40년 후 함께 세계의 평화와 조국의 통일을 위해 행진하는 모습이 새삼 속으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악동들일수록 추억은 많다. 천천히 헤이그의 시내를 걸으며 지난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앞으로 길 위에서 만날 어려움을 걱정해주었다. 시내를 벗어나자 민형성과 이은수 부부는 1시간 같이 행진을 하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친구들과 친구들 부인들까지도 먼 길 떠나는 나를 포옹해주었다.

 

공교롭게도 9월 1일은 1939년 독일의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제 2차 대전 발발 80년째 되는 날이다. 독일군은 이듬해인 1940년 4월 전격적으로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침공했고 5월에는 벨기에, 네덜란드, 점령했다. 6월 14일에는 파리를 점령하여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며 유럽을 석권했다. 이렇게 시작한 전쟁은 1945년 8월 15일 일본마저 항복하면서 끝났지만 엉뚱하게도 독일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나라에 아직도 2차 대전의 유산인 휴전선이 남아있으면서 사실상 2차 대전은 끝나지 아직도 않았다. 이 비극적이며 터무니없는 2차 대전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탱크 대신 유모차를 밀며 진격의 평화마라톤을 시작한다.

 

임남희씨와 둘이 남자 이제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 시작하자 곧 유모차의 골격이 부러졌다. 미국횡단을 하고 곧 대한민국 일주를 하고 부산에서 광화문까지 달려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유모차이지만 사실 임무를 마칠 때도 되었다. 그런 줄 알면서도 빠듯한 예산으로 그걸 그냥 가지고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려고 나섰으니 처음부터 사단이 난 것이 오히려 천만다행이다. 사막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사단이 났으면 큰 곤욕을 치를 뻔했다. 급한 대로 끈을 찾아서 묶어서 밀며 갔다,

 

곧 하늘에 구름이 끼더니 비가 올 것 같다. 운하 옆으로 펼쳐진 자전거 길을 따라 가는 길은 아름다웠지만 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어보고 또 물어보며 방향을 잡았다. 시작부터 이렇게 길을 찾는 것이 어려운데 앞으로 이 길을 어떻게 찾아 내가 떠나온 지구의 반대편까지 무사히 달려갈 수 있을까? 평화의 길 통일의 길은 또 얼마나 미궁처럼 찾기 힘들까?

 

중간에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고 나니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임남희씨는 비를 맞으며 약 20km 정도를 같이해주었다. 그녀는 다시 7시간을 기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갔다. 그녀와 헤어지고 홀로되어 운하를 따라 자리 잡은 예쁜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네덜란드의 집들은 아담하고 예쁘다. 그런 집들에서 탐욕의 흔적들은 볼 수가 없다. 그저 한 가족 아늑하게 살만한 적당한 공간을 잡아서 집주인 스스로가 예쁘게 집을 꾸미고 살고 있다. 이곳에서 게으른 집주인의 너저분한 집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집이든 마당과 창가에 잘 가꾼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집 안에는 얀 베르메르의 또 다른 작품 속에 나오는 ‘우유를 따르는 여인’에서 나오는 풍만한 여인이 가족을 위해서 빵과 우유로 저녁상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다.

 

구도시인 하우다에 들어서니 빈티지 시장이 오래된 뾰족한 첨탑이 수도 없이 있는 고딕양식의 시청청사 주위에 열렸다. 붉은 창문 덮개가 인상적으로 열려있는 오래된 고성의 청사가 매혹적인 자태로 광장 한복판에 서 있다. 그 주위에는 악대들의 연주가 전통복장을 갖춘 연주자들의 연주가 길거리에 울려 퍼졌고 노천 식당에는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붐볐다.

 

어제 예약한 숙소를 네비게이션을 따라 찾아갔지만 미로 같아서 고성 주위를 몇 번 왔다 갔다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수도 없이 길을 물으며 마침내 찾아서 모텔을 찾아 여장(旅裝)을 풀었다. 땀을 씻어내고 간단하게 손빨래를 하고 다시 그 고성의 시청 앞 광장의 식당으로 나와 저녁과 함께 시원한 암스테르담 비어도 한 병 주문했다.

 

자리에 누워 오늘 하루 여정을 생각해보니 분단의 모순은 시작부터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평화마라톤을 응원해주러 서울에서, 파리에서 찾아와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준열사의 업적을 기리는 일에 평생을 바치다시피 한 사람은 평양을 거쳐서 서울로 들어온다는 소리에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는 세력과 무슨 통일을 하냐고 혈압을 높이고 있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분단이 가져다 준 깊은 상처이며 모순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준열사의 드라마틱한 여정을 내가 이어받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정이 녹록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북은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에 성공했다. 미국이 트럼프대통령은 어제든지 책상서랍에 잇는 핵단추를 누를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전쟁의 공포는 모든 것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러나 꽁꽁 언 얼음장 밑에서도 새싹이 움트듯 지금 희망의 빛이 한반도로부터 떠오르고 있는 것이 그때와 다르다.

 

1905년 일제의 강압으로 을사늑약이 맺어졌고, 아 조약으로 일체의 외교권이 박탈되었고 통감부를 설치해 왕권과 정부를 무력화시켰다. 이 터무니없는 조약을 무력화시키려는 고종의 노력은 좌절되었고 마지막 수단으로 대한제국 1호 검사였던 이준, 마지막 과거급제자 이상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던 서기관 이위종에서 밀ㄹ서를 주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가서 직접 세계인들에게 호소하도록 하였다.

 

이준은 고종의 밀서를 가슴 깊이 품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만국회의가 열리던 헤이그로 와서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세계인들에게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나는 우리 시민들이 보내준 평화통일의 밀서를 가슴깊이 품고 민형성, 이은수, 임남희와 함께 세계인들에게 2차 세계대전의 잘못된 결과물인 휴전선의 부당함을 알리고 평화통일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1907년 7월 14일 이준은 헤이그의 초라한 호텔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죽음을 확인한 의사는 단독(丹毒)에 의한 사망이라고 적고 있을 뿐이다. 그 후 1945년 일본으로부터는 해방이 되었지만 해방이 된 후 72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자주통일독립국가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상태에 머물고 있다. 그의 사후 110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또 다른 이준이 필요했고 나는 그의 분신이 되고자 한다. 이준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110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준 기념관을 찾는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이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그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또다시 110년이 지나도 자주 독립 평화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누군가가 다시 나의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다.

 

나는 이 여행의 주제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영화에 걸맞은 테마음악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내가 정한 주제곡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이다. 그 음악은 페르시아 왕자가 양탄자를 타고 신라 공주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나는 듯한 환희를 묘사한다. 누에에서 가늘고 빛나는 실을 뽑아내듯 다소 절제한 듯 빛나는 저음으로 시작하여 어둠과 같은 고요 속에서 듣는 이들의 감각을 실로 간지른 뒤 순간 폭발적인 음으로 순간 모든 감각을 한꺼번에 휘어잡는다.

 

고통과 고뇌를 넘어서 희망찬 평화의 세계로 들어서는 힘찬 행진곡의 리듬이 어려운 고비마다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폭풍구름 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을 내달리는 한혈마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강강수월래, 열정적인 사랑, 온 세상이 형제가 되어 하늘을 향해 팔을 뻗치고 평화의 함성을 지른다. 온 세상이 함께 환희에 젖어 새 세계를 향해 힘껏 뛰어오른다. “백만 인이여 서로 포옹하라! 전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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