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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8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8

말들의 우정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셀랙을 지났다. 어제 비가 와서 하늘이 깨끗해졌다. 희미하게 보이던 오른쪽에 병풍처럼 펼쳐진 설산이 선명하게 보이고 하늘 위로 새털구름이 초원을 힘차게 달리고 있다. 산뜻하고 청아해진 공기에 무엇을 해도 기분 좋게 할 것 같은 날이다. 나는 매일 42km만큼 평양과 서울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이처럼 보람된 일이 또 있을까? 거친 초원을 달리지만 허투루 발걸음을 옮길 수는 없다. 오늘 내가 밟아간 길은 내일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나그네는 길 끝에서 바람으로 충만하고 성숙해진다.

 

내가 고개를 숙이는 것은 바람 때문이라 하지 마라! 겸손한 푸른 대지 위에 서니 나 또한 저절로 머리가 숙어진다. 나는 인간인가, 자연인가 구분 말라! 나비 한 마리 꽃잎 위에 앉아 풀줄기 흔들리고, 내 영혼에 사뿐히 앉아 내 삶을 흔드는 것은 눈 덮인 설봉과 그곳을 향해 날아오르는 가난한 새의 날갯짓뿐! 이곳에서 달리기 좋은 것은 말뿐만이 아니다. 오래된 추억이 질주를 한다. 그렇게 한참 추억이 달리고 나면 마치 고속열차가 달리듯 미래의 꿈이 터널을 빠져 나와 달려간다. 평화는 이곳에서 질펀하게 달린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나는 내가 지나온 모든 길을 사랑했다. 길가의 어떤 꽃도 꺾지 않았고 만났던 거의 모든 사람에게 존경과 사랑의 눈길을 보냈다. 모든 나무가 팔 들어 경배하는 파란 하늘에 나도 팔 들어 경배했다. 내 가슴 속에 가득 품어 안고 가는 비단이 깃발이 되어 바람에 날린다. 내 마음에 이는 바람은 달래어 가라앉혀도 달랠 수 없는 초원의 바람은 그대로 내 뼈 마디마디에 스며든다. 카라쿰사막의 절망적인 고독도, 메르브의 스산한 폐허도, 레기스탄 광장의 지나간 옛 영화도, 칭기스칸의 지워진 발자국도 위대한 새벽을 기다릴 뿐이다. 스치고 지나가는 꽃바람에 그간 피로가 확 날아간다. 여인의 부드러운 손길이 내 몸을 어루만져주는 기분 좋은 느낌이다.

 

 

 

 

이마에서 앞머리가 단정히 휘날리며. 명주 같은 갈기에서 부드러운 바람을 일으키며 봄 풀 뜯어 살이 오르고 털에 윤기가 도는 말 네 마리가 앞에서 달려간다. 엄마 말일까, 아빠 말일까? 아니면 대장 말일까? 한 마리는 두 발이 묶여 뒤뚱뒤뚱 달린다. 나머지 말들은 묶인 말이 안쓰러운지 뒤를 돌아보며 보조를 맞춰 달려간다. 생명을 가진 두 존재 사이에 가장 고귀한 관계가 우정이다. 동물들도 이런 우정이 있다. 사자나 늑대를 비롯한 다른 생물들도 궁지에 처한 동족을 구해주고 서로 돕는다. 카자흐스탄 개양귀비 꽃으로 군데군데 빨간 무늬의 광활한 초원을 맘껏 질주할 수 있는 나머지 말들이 발이 묶인 한 마리와 보조를 맞춘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주인은 한 마리 발을 묶어놓으면 네 마리 모두 멀리 도망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발이 묶인 말이 애처롭기도 하고, 함께 하는 동료애가 뭉클하기도 하다. 말들도 함께해서 오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며 함께 한다. 초원에서 보조를 맞춰 달리는 건 말뿐이 아니다. 강석준 교무와 나는 벌써 며칠째 발을 맞춰 달리고 있다. 갑자기 초원의 강렬한 햇살에 노출돼 피부에 화상을 입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 발걸음을 맞추어 거친 호흡을 내뿜으며 달린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다. 누구도 내 발걸음을 대신해줄 수 없지만 함께 달리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요즘 성직자 지망생이 줄어들어 교무가 모자라는 상황에서 원불교에서 강석준 교무를 보내주었다. 나의 연원인 그를 가장 험한 코스인 톈산산맥을 넘고 타클라마칸사막을 함께 달리며 힘든 고비를 넘기라고 특별히 배려해 보내주었다. 혜초스님도 눈물을 흘리며 넘었다는 톈산산맥이다. 들어가는 자 살아서 나오는 자 없다는 타클라마칸사막이다. 뒤에 가는 사람은 앞에 간 사람의 해골을 보며 이정표 삼아 길을 찾았다는 곳이다. 지금이야 길이 잘 깔렸고 여건이 훨씬 좋아져 내 해골이 다음에 길을 나선 사람의 이정표가 될 리는 없겠지만 두려운 건 매한가지다.

    

 

저 멀리 수백 마리의 소들이 점점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말 잔등에 올라탄 유목민의 모습이 켄타로우스(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말인 신화적인 동물)와 같이 아련하게 보인다. 내가 말의 하체를 지녔다면 지금 이 길을 신나게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을 거란 상상을 해본다.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던 소몰이 개는 소 몇 마리가 대오에서 이탈하자 쏜살같이 쫓아가 다시 무리 속으로 몰아온다. 소들이 제자리에 돌아가자 다시 주인 곁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지금껏 동경하던 목가적인 모습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나는 저런 모습을 보면 그대로 이곳에 눌러살고픈 욕망이 회오리바람처럼 가슴에서 일어난다. 내가 이곳에 눌러살고픈 것은 어디든 떠나고싶은 다른 표현이다. 아직도 찾지 못한 내 자신이 있기에 더 절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달리면서 잃었던 많은 부분의 나를 찾았다. 하지만 유목은 유랑이 아니다. 움직이면서 머무르는 것이고, 떠돌면서 한군데 살아가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 적응하고 친숙감을 느끼지만 집착하지 않기에 미련도 없고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집을 짓기는 한다.

 

저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켄타로우스처럼 보이던 라하라는 목동이 늠름한 말 조나를 타고 우리에게 인사하러 왔다. 라하는 옛날 서부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눈이 크고 잘생긴 청년이었다. 한군데 정착해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바람의 자유를 담은 눈이다. 손을 마주 잡자 범접할 수 없는 거친 바람이 만져진다. 오랜 시간 초원에서 침묵하던 단어들이 꿈틀거리며 만져진다. 지금은 주류에서 벗어난 소수자의 삶이지만 오랫동안 인류 원형의 삶이다. 당당함과 자존심이 만져진다. 한 번도 세파에 시달려보지 않고 사랑의 실연을 경험하지 못한 순진무구한 표정에 금방 빨려 들어갈 지경이다.

 

그가 타고 온 조나는 짙은 갈색의 짧은 털이 비단처럼 곱게 빛난다. 톈산 산줄기처럼 강한 척추, 딱 벌어진 잘 발달한 가슴 근육, 펑퍼진 엉덩이 근육과 쭉 뻗은 종아리를 가진 아할 테케이다. 중국인들인 이 말을 한혈마라 부르고 천리마라 부른다. 붉은 땀방울을 피처럼 쏟아내며 천 개의 고원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했다. 사람들은 이 말을 텐산의 혈통이라 칭송했다. 제국의 지도를 새롭게 그리고 싶은 자 아할 테케에 올라 타 창검을 휘둘렀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디나는 검정과 다갈색이 잘 어울려진 늘씬한 몸매의 세퍼트 소몰이 개이다. 주인을 잠시도 놓치지 않고 따라다니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주인 라하에게 보내는 눈초리는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그리고 소에게는 매섭게 응시한다. 이빨은 단번에 늑대를 제압할 것 같은 힘이 느껴진다. 충성심과 애정과 카리스마를 저렇게 한 번에 보여주기도 쉽지 않겠다. 녀석에게서는 이인자의 힘이 느껴진다. 라하와 조나와 디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선으로 연결된 하나의 운명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드넓은 초원에서 이들은 동업자이며 친구 이상의 운명공동체로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것이다.

 

라하는 우리에게 다가와 통하지 않는 말로 살갑게 인사를 한다. 디나의 어색한 꼬리 흔들기에 나도 손을 내밀어 머리를 만져준다. 라하가 말에서 내려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고삐를 내게 주며 한번 올라타 보라고 한다. 아마 그는 지나가는 길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호의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가장 귀한 것을 선물 받은 기쁨으로 말고삐를 넘겨받았다. 말고삐를 넘겨받는 순간 여행자와 유목민의 경계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인간애만 남았다.

 

나는 올라타기 전 조나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긁어주며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말 머리를 잠시 끌어안아 주고 나의 체취를 맡게 하여 나와 교감을 이루게 하였다. 말은 후각이 예민하므로 체취로 나와 먼저 교감을 할 것이다. 말이 거부감을 가지고 신경질을 부리며 앞발을 쳐들고 올라타는 나를 떨어뜨려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왼쪽 등자에 왼쪽 발을 올린 다음 힘을 주고 올라탔다. 오른쪽 등자에 오른발을 끼고 말의 허리를 무릎으로 꽉 조인다. 이제 조나도 나를 친구로 받아들였는지 순순히 자신의 등을 내어준다. 잘 길든 말이었다. 말은 내가 조심스럽게 올라타는 줄 알고 아이를 업은 여자처럼 의연했다. 등에 올라타서 다시 몸을 숙여 조나의 갈기와 등을 보듬어주었다. 말은 내 손길에 미세한 반응을 보인다. 내가 명령만 하면 언제든지 초원을 쌩쌩 달릴 것 같았다. 이 말을 몰고 진동하는 대지가 전해주는 전율을 맛보며 그대로 평양을 거쳐 서울로 달려 들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 차올랐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어가는 환경을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만 보다가, 텅 빈 듯 충만한 초원에 서니 과연 삶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한다. 두 세기 전 제정 러시아는 낯선 문명을 가지고 카자흐 유목전통을 통제하려 했다. 그때부터 사회적 혼란과 모순은 격심해지기 시작했다. 러시아인들의 초원 진출은 카자흐인들에게 새로운 도전이고 희망과 두려움의 시작이었다.

 

황제펭귄은 핸디캡이 많은 동물이다. 짧은 털은 추위를 피하기에 부족하고 짧은 다리는 천적을 피해 달아날 수도 없다. 날개도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들은 함께 모여 따뜻하게 체온을 유지하며 교대로 바깥쪽을 지키며 무리를 보호한다. 황제펭귄이 다 같이 생존하기 위해 배우는 최고 가치는 동료애이다. 동물들은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덕목은 인류애이다.

 

강석준 교무가 며칠 사이에 피부에 화상을 입어가며 내 옆에서 달린다. 우리는 두 발이 묶인 말과 동행하듯 서로의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이 드넓은 초원을 달린다. 내 발걸음의 무게를 덜어주려 거친 호흡을 내뱉어가며 고통을 감수하고 달리는 모습이 안타깝고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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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