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9)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9)

밴드왜건 달리기 Bandwagon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어떤 경우에는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진로를 바꿔 가는 국지적인 모래 폭풍과 비슷하지. 너는 그 폭풍을 피하려고 도망치는 방향을 바꾼다. 그러면 폭풍도 네 도주로에 맞추듯 방향을 바꾸지. 너는 다시 또 모래 폭풍을 피하려고 네 도주로의 방향을 바꾸어 버리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마치 날이 새기 전에 죽음의 신과 얼싸안고 불길한 춤을 추듯 그런 일이 되풀이되는 거야. (중략) 그 폭풍은 그러니까 너 자신인 거야. 네 안에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서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눈과 귀를 꽉 틀어막고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가는 일뿐이야. (중략)

 

그리고 그 모래 폭풍이 그쳤을 때, 어떻게 자기가 무사히 빠져 나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너는 잘 이해할 수 없게 되어있어. 아니, 정말로 모래 폭풍이 사라져버렸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게 되어있어. 그러나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해. 그 폭풍을 빠져나온 너는 폭풍 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네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그래, 그것이 바로 모래 폭풍의 의미인 거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의 도입부에 나오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이야기를 모래 폭풍에 빗대 암시하는 글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모래 폭풍이 일어났고 저쪽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폭풍 구름 몰려오듯 순식간에 연기처럼 하늘을 덮어서 어두워지더니 회오리가 몰아쳤다. 모래 기둥은 맹렬한 기세로 휘돌아 치며 모든 것을 뽑아버리고 날려버릴 기세였다. 연약한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래바람을 타고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순식간에 시계가 제로는 되고 작은 모래가 얼굴과 살갗을 따갑게 때린다.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들판의 양들은 본능적으로 납작 엎드린다. 놀란 아기 양들은 어미의 배 밑으로 파고든다. 길옆에 개양귀비 꽃대가 부러져 날아간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혼돈 속에서 검은 용이 나타나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하였나? 두려움에 치가 떨린다. 사막에서 멋진 춤을 꿈꾸었던 나는 무도회에 초청을 받고 주인의 무례함에 심통이 난 꼴이 되었다.

 

바람은 순식간에 불어와 모든 걸 삼켜버릴 듯 온 세상을 먼지로 뒤집어씌우고 순식간에 다시 사라졌다. 바람이 잠잠해지자 다시 세상은 평온을 되찾는다. 두려움이 지나간 자리에 그리움이 들어 눈을 감아본다. 험한 길 나선 이에게 그리움도 사치스러워 바람에 날아갈까봐 꼬깃꼬깃 접어 가슴 한구석에 집어넣고 황망히 눈을 뜬다. 황량한 사막 가운데 노거수나무 한그루 풍요롭고 당당하게 서있다. 빛나는 햇살과 이슬만 먹고 살았는지 거칠은 삶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맑고 고귀하다. 먼 길 떠나는 새 한 마리 품어안는다.

 

자르켄트는 중국 국경에서 약 40km 떨어진 한적한 도시이다. 오늘은 국경까지 뛰어가서 차로 이동하여 다시 자르켄트로 돌아와 하루 자고 내일 이른 아침 중국 국경을 넘을 예정이다. 일요일이라 일정을 소화하고 국경을 통과하려다 자칫 시간이 많이 걸려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조언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부터 페이스북 친구가 된 오사마 라지칸씨가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나의 역사적인 마라톤에 동참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누군가가 와서 나의 마라톤에 동참하는 일은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현지인이 나의 평화통일 마라톤을 마음으로 지지하며 함께해주는 일은 멋지고 힘이 나는 일이다. 그러나 알마티에서 버스를 타고 와서 시간을 정해놓고 익숙지 않은 어떤 지점에서 만나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반은 기대감과 호기심이 발동하고 반은 귀찮니즘이 작동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얼마 전 카자흐스탄에서 키르기스스탄으로 넘어가기 전 길을 달리고 있는데 승합차 한 대가 저 앞에 서더니 한 남자가 내게 달려와서 작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몇 km 페이스북 생방송 인터뷰를 하며 나와 같이 뛴 적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8명의 젊은 남녀가 나를 박수로 맞아주었다. 그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내 소식을 알고 있었고 알마티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지나가다 달리는 나를 발견하고는 차를 되돌려 따라온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러시아 사람들이라고 했고 페이스북에 만 명의 팔로워가 있다고 했었다. 오사마씨 친구가 거기를 통해서 나를 알게 되었고 인터넷 검색을 해서 더 자세한 정보를 얻었다. 그는 친구에게서 내 소식을 듣고 페이스북에서 나를 검색하여 친구신청을 하였다.

 

그는 첫 버스를 타고 오면 아침 8시 반에 터미널에 도착하니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달리다가 시간 맞춰 그곳에서 기다릴 수 없으니 택시를 타고 와서 어느 지점에서 만나자고 했다. 마침 그 버스터미널을 지날 무렵 지금 자르켄트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그는 생각보다 이른 새벽 시간에 알마티에서 300km나 되는 자르켄트까지 나와 같이 달리고픈 일념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는 세 명의 친구와 함께 이곳에 왔다.

 

오늘은 그동안 접어서 차에 싣고 다니던 나의 애마 유모차를 다시 밀며 국경을 향했다. 터키부터 지금까지 나의 후방에서 그림자처럼 따라오며 지원군 역할을 하던 차는 이제 이별을 고할 시간이다. 중국 국경을 차를 가지고 넘을 수가 없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나의 한혈마는 바퀴에 바람이 조금 빠졌을 뿐 훌륭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으로 현재 태국주재 UN 직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에는 임무를 수행하러 왔다가 내가 이곳을 통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함께 달리고 싶어 급히 수소문해서 연락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와서 한국의 외국인 학교를 4년간 다녀서 한국친구도 많고 한국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특히 한국의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아 UN이 더 적극적으로 한국의 평화통일 노력에 지원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방콕에서도 남한과 북한 외교관 모두와 친분이 있어 나의 북한 통과를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한다.

 

그는 나의 유라시아 평화마라톤을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로 표현한다. 곡예단이나 퍼레이드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악대차가 선두에서 요란한 연주를 하며 사람을 끌어모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발자국 소리가 이제는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서 증폭되면서 현란한 연주가 되어가는가 보다 하는 보람된 생각도 든다. 밴드왜건이 지나가면 온 동네 사람들 다 모여들어 긴 행렬이 이어지듯 통일을 염원하는 긴 행렬이 이어지기를 고대해 본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오사마 씨는 풀코스 마라톤을 4시간 정도에 뛰고 약 40여 회 완주했다고 한다. 산악자전거도 즐기는 그는 머리가 거의 없지만 힘이 넘쳐 보이고 눈이 누구보다도 빛났다. 나와 강석준 교무, 오사마 씨가 교대로 한혈마를 밀며 달려가는데 맞은편에서 한 청년이 피곤한 기색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데 행색이 자전거 여행자였다. 프란시스는 벨기에 출신의 청년으로 작년 10월 오스트리아를 시작으로 태국 등 동남아시아를 돌고 중국의 상하이에서부터 지금 이 방향으로 가서 벨기에까지 갈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서로의 여행에 경의를 표하고 위로를 하며 나는 내가 지나온 곳의 정보를 나누고 그는 그가 지나온 신장위구르 지역의 간단치 않은 상황을 설명하여주었다.

 

그는 거의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는 행색이어서 오늘 어디까지 갈 것이냐고 내가 물었다. 특별한 목표는 없다고 해서 오늘 자르켄트의 우리 호텔로 와서 내 방의 침대가 두 개이니 나와 함께 자자고 하니 금방 얼굴에 화색이 돈다. 오늘 오사마 씨가 나에게 선한 사마리탄이 되어주었다면 나는 프란시스에게 선한 사마리탄이 되어준 셈이었다. 선한 사라리탄은 또 있었다.

 

다음 마을로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우리를 보고 박수 쳐주는 사람이 있으며 어떤 이는 성금까지 내 손에 쥐여주었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이 사람 차림새도 그리 여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사양해도 극구 내 손에 돈을 쥐여준다. 그리고 얼마 더 가 식당이 보여서 들어가 주문을 하고 식사를 하고 있는데 조금 전에 악수하고 사진을 같이 찍었던 맥스라는 사람이 물병을 들고 들어와 전해주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며 식대를 내고는 우리 자리에 합석했다. 자기는 이슬람의 라마단 기간이라 밥과 물을 마시지 않지만 맘껏 먹으라고 한다.

 

숙소로 돌아오니 도미니크라는 프랑스 여자가 반갑게 맞으며 엄지손가락을 올린다. 무슨 일인가 나도 깜짝 놀랐는데 우리 차량에 붙은 스티커를 보고 인터넷 검색을 하여 나의 정보를 보니 내가 대단한 여행을 하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녀는 바로 블로그에 올렸더니 에바유라는 자기 한국인 친구가 기자인데 나에 관한 기사를 쓰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중년의 나이에 도미니크는 영국인 남편 브라운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중국 상하이에서 출발해서 세계 여행을 하고 있다.

 

대단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가끔 만나는 일도 큰 기쁨을 안겨준다. 그녀는 내게 자기가 지나온 신장위그루 지역의 치안상태와 갑자기 공안이 와서 경찰차에 태워 도시 밖에 내려준 이야기를 귀띔해주며 행운을 빌어준다. 호텔 로비에서 간단한 맥주파티가 벌어졌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세계는 점점 좁아져 가고 있다. 이제 세계지도에서 국경의 색깔이 점점 흐린 색으로 변하면서 지워진다면 우리는 전에 누리지 못한 평화를 맘껏 누릴 것 같다. 제일 먼저 휴전선의 철조망을 사람들의 열정을 모아 녹여버리기까지 나의 밴드왜건 달리기는 이어질 것이다. 모래 폭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와 나왔을 때 다른 사람이 돼 있을 거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나는 분명 이 마라톤이 끝나면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다르게 변해 있을 내게 자못 궁금하고 기대도 된다. 먼 길에서 짧은 만남 긴 여운을 남기는 하루였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