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 성명서 전문
[시사타임즈 보도팀]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됐다. 6월 1일 법무부, 여가부, 복지부 등이 발표한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없는 범죄 종합대책’은 폐기해야 한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과 부산 길거리 폭행사건을 ‘조현증 환자에 의한 “동기없는 범죄”’로 간주한 데서부터 이 대책은 틀렸다. 문제의 진단조차 못하면서 무슨 수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것인가?
첫째. 강남 ‘여성살해’ 사건은 동기 없는 ‘화장실 살인사건’이 아니라 ‘여성표적살인’이다. 결코 성별분리화장실은 대책이 아니다. 사회적소수자를 향하는 혐오를 막지 못하는 한, 성별에 따른 공간의 분리는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 간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비난이며 혐오폭력의 정당화다. 핵심은 ‘우범지역’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공간을 잠식한 여성혐오다. 이를 막지 못하는 한, 정부가 공언하는 ‘안전지대’는 없다.
둘째. 여성대상 범죄의 ‘최고형 구형’은 문제의 본질과 동떨어진 보여주기식 대책이다. 성폭력범죄만 봐도 대다수 여성 피해자들은 ‘구형’ 근처에도 접근할 수 없다. 기소조차 되지 않는 범죄, 아니 그 이전에 수사사법체계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신고조차 엄두를 낼 수 없는 범죄에 ‘최고형 구형’은 비현실적이다. 필요한 건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남성 가해자를 감싸는 수사사법체계의 환골탈퇴와 가해자 처벌의 확실성이다.
셋째. 보호수용제 도입은 ‘안전’을 명목으로 내세우면 누구든 잡아가둘 수 있는 국가횡포의 시작이다. 형기를 마쳐도 구금할 수 있는 보호수용제는 이중처벌과 인권침해 논란으로 지난 국회에서 폐기된 바 있다. 정부는 그간 극악한 범죄자 일부를 사회에서 격리하면 여성안전이 보장되는 듯이 호도하며 엄벌정책을 추진해왔지만, 그 효과는 무엇인가? 여성안전의 해법은 사회전체에 뿌리박힌 성차별을 시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넷째. 정부야말로 정신장애인을 예비범죄자로 낙인찍고 차별과 적대를 부추기는 ‘혐오폭력의 가해자’다. 경찰의 자의적 판단으로 정신장애인을 ‘강제’ 행정입원 조치하면서, 단지 인신보호관 제도 도입으로 ‘반인권’ 비판을 입막음할 수 있다고 여기는가? 정부는 ‘정신질환’ 조기발견과 전수조사를 포함한, 정신장애인에 대한 모든 반인권적 조치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우리는 분노하고 또 분노한다. 시민들이 일상에 깊이 스민 여성혐오를 문제로 제기하자 정부는 정신장애인 격리와 감금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혐오표현이 아무 거리낌 없이 공공연하게 사회적소수자를 향하는데 정부는 이를 규제하기는커녕 우리의 ‘위험’이 정신장애인을 사회에서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혐오를 조장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여성표적살인’ 앞에서 ‘대한민국에 혐오범죄는 없다’고 단언한 경찰과, 이 ‘대책’을 합동으로 내놓기까지 일언반구 없이 침묵한 정부부처들에 과연 우리의 평등과 존엄의 보장을 기대할 수 있는가?
여성, 정신장애인, 사회적소수자들을 차별하고 혐오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정부의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없는 범죄 종합대책’부터 철회시켜야 한다. 이 대책에 동의하지 않는 우리의 목소리를 법무부, 여가부, 복지부, 경찰청, 사회 전체에 알려야 한다.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변화는 가능하지 않다.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 한국성폭력상담소도 함께하겠다.
2016.6.2.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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