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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종교 ] 설교 :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라

[ 종교 ] 설교 :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라


 

[시사타임즈 = 고형진 강남동산교회 담임목사]

 

성경 본문: 누가복음 19:1-10

설  교  자: 고형진 목사(강남동산교회 담임)

 


올바른 진단


제가 운전을 좋아하고 또 종종 과속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아시는 어떤 분이 메일로 이런 내용을 보내주셨습니다.

 

《운전속도에 맞는 찬송가》

 

80 Km          하나님이 너를 보호하시리니

120 Km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130 Km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140 Km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150 Km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160 Km          저 요단강 건너편에 화려하게 뵈는 집

170 Km이상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운전을 하는 중에 가끔씩 차에서 아주 불쾌한 굉음이 들리기에 차를 한 쪽에 세워놓고 내려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한참을 살펴보았지만 아무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카센터에 가서 물어보니 “아, 그 소리요? 마후라가 나간 겁니다.” 라며 정비기사는 아주 간단한 듯 대답했습니다. 마후라가 뭔지는 다 아시지요? 머플러를 마후라로 잘못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는 마후라라고 해야 더 잘 알아듣지 않나요? 아무튼 카센터에서 마후라를 고쳤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차를 몰고 오는 도중에도 그 굉음은 소리가 조금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나는 것이었습니다.

 

다 음 날, 지방에 갈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탈 수 밖에 없었는데 그 굉음 때문에 가는 길 오는 길에 신경이 많이 거슬렸습니다. 지방에서 돌아오자마자 카센터에 가서 다시 살펴보니 베어링이 터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베어링을 교체하고 나서야 굉음은 사라졌습니다. 베어링이 터져 잘못되면 타이어가 분리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고속도로에서 큰 일이 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100km 이상을 주행하는 중에 타이어가 빠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니 끔찍했습니다.

 

동 시에 저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이게 자동차였으니 망정이지 만일 우리 몸의 이상을 오진했더라면 어땠을까?’ 소화불량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다가 계속 나아지지 않아 나중에 다시 진단을 받아보니 위암이었다는 것과 같은 상황을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그 땐 암이 번져서 이미 위험한 상황까지 가지 않았겠습니까?

 

사 랑하는 성도님, 우리가 내는 병원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치료비, 수술비, 입원실비, 약값, 검사료… 그 중 제일 비싼 건 검사료입니다. 물론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간단한 검사도 있지만 무슨 병인지 알아내기 위한 검사료가 대체로 가장 비쌉니다. 그리고 다른 병원으로 옮기게 되면 검사는 다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입니다.

 

제 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병원에 있는 제자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서 가장 비싼 기계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X-ray, CT, MRI, 내시경, 골밀도 측정기 등 검사하는 기계랍니다. 이런 기계는 치료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단지 진단하기 위한 기계입니다. 그런데 가장 비싸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올바른 진단이 올바른 치료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진 단이 올바르면 치료는 가능합니다. 가장 무서운 병은 암, 혈압, 당뇨 등의 병이 아닙니다. 원인 모를 병, 의학계에서 ‘unknown'이라고 결론내린 병이 무서운 병입니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방법도 모릅니다. 그저 상태를 호전시키는 게, 아니, 악화시키지 않는 게 할 수 있는 방법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생명을 잃게 되기 때문에 무서운 병인 것입니다.

 

일 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안 어디선가 물이 새어나오는데 근원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주 답답합니다. 그 때 누구를 불러야 합니까? 바로 누수탐지기를 가진 수도기사입니다. 그 기계를 대고 이리저리 찾다보면 물이 새는 근원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누수탐지기를 가지고도 찾아지기 않는 경우가 있어 우리를 암담하게 합니다. 방법은 집을 허무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그냥 새는 대로 살든지…. 문제를 정확히 알게 되면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힘든 이유는 문제자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본질

 

사 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많은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른 채 살아가기도 하고 때론 문제가 놓여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또한 그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하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여전히 우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노력이 헛발질이 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창의력 분야의 유명한 저술가 로저 본 외흐(Roger von Oech)가 쓴 ‘생각의 혁명’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 느 클럽의 피아노 반주자가 사장에게 피아노 소리가 너무 엉망이니까 수리를 해달라면서 “피아노가 수리될 때까지 저는 이 피아노를 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나가버렸습니다. 며칠 후 클럽의 사장은 피아노를 다 수리했으니 이제 출근하라고 피아노 반주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피아노 반주자가 와서 피아노를 쳐보니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고 여전히 소리가 엉망이었습니다. 피아노 반주자는 “수리를 했다더니 소리가 여전히 엉망이잖아요?”라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클럽의 사장이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에요? 수리를 했는데…. 봐요, 페인트를 다시 칠했잖아요.”

 

여러분, 우습지요?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피아노를 수리해야 하는데 칠만 다시 하는 것,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우 리는 삶 속에서 수많은 문제를 끊임없이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지요? 우리가 과연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본질을 해결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 노력의 대부분은 아마도 본질에 맞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방편으로 땜질하는 데 기울여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 임시적인 해결, 그래서 나중엔 땜질로는 불가능한 지경까지 가게 되고 그제야 문제의 본질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소리가 엉망이 된 피아노를 수리한다면서 페인트를 다시 칠하는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이는 아빠와 함께 놀자고 조릅니다. 그런데 아빠는 어떻게 합니까? 돈을 주면서 사고 싶은 것을 사라고 합니다. 아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닌데, 아빠는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입니다.

 

부 부싸움을 할 때 남편과 아내가 동일하게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나 같은 남편이 어디 있어, 나 같은 아내가 어디 있어?” 아이들을 야단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 아빠가 못해준 게 뭐니? 너희는 나중에 엄마 아빠만큼 할 수 있을 거 같아?”

 

이 게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피아노를 다시 조율해달라는 것인데 페인트를 다시 칠해놓고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를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오셨습니까? 조율이 필요한 피아노를 칠만 다시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병 원에서 정신이 온전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서 하는 실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돗물을 흘러넘치게 틀어놓고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는 것이랍니다. 걸레를 가지고 흘러넘치는 물을 계속 닦는 사람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고, 수도꼭지를 잠그는 사람은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답니다.

 

여 러분, 어떻습니까? 혹시 바닥에 있는 물을 닦기에 급급해 하시지는 않으셨습니까?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수도꼭지를 잠그는 일입니다. 바닥을 닦아서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습니다. 수도꼭지를 잠근 후에 바닥을 닦으세요. 본질을 파악해야만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삭개오

 

오 늘 본문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삭개오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대할 때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만 주로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삭개오의 삶은 어땠는지, 그리고 삭개오는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성 경은 삭개오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지 않지만 키가 아주 작았다는 표현은 작은 키로 인해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다는 사실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중 고등학생들에게 기도제목을 보면 키가 크게 해달라는 내용이 아주 많습니다. 키가 작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감에 손상을 주는 것인가 봅니다. 삭개오에게 있어서도 키가 작다는 사실은 그를 위축시키는 약점이었을 것입니다.

 

그 래서 삭개오는 그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방법을 찾아냈는데 그것은 바로 ‘돈’이었습니다. 외모로 인해 잃게 된 자신감과 자아정체감을 돈으로 해결하려 했고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한 가장 적합한 직업인 세리를 선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로마 편에 서서 민족을 배반하고 민족의 피를 빨아먹어야 하는 직업이었지만 세리라는 직업은 그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직업임에는 틀림없었던 것입니다.

 

사 람들은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자신에게 최대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생을 통해 그 문제로 인해 열등감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 러분의 자녀 가운데 외모 때문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서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고 있다면 성형수술이라도 해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열등감이 모두 해소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문제점을 덮어두고 다른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일을 성취함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을 극복하는 긍정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하간 우리는 삶 속에서 긍정적 방법으로든 부정적 방법으로든 열등감을 해결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성 경에서는 삭개오를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리 중에서 최고의 부자라는 말입니다. 삭개오는 성공했습니다. 키가 작다고 그 누구도 놀릴 수 없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를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삭개오는 열등감을 극복했겠지요? 그랬어야 되겠지요?

 

그 러나 삭개오가 깨닫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삭개오가 한 일은 피아노를 수리하지 않고 페인트를 다시 칠한 것이요,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바닥을 닦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리 막강한 부를 가졌더라도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이상 열등감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삭개오가 가진 부는 흐르는 열등감을 막아주지는 못했습니다.

 

사 람들이 삭개오를 놀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삭개오와 가까워지지는 않았습니다. 삭개오가 가진 돈에는 굽실거리지만 삭개오를 존경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삭개오와 인간적인 만남을 맺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삭개오는 걸어 다니는 돈이었을지 모릅니다.

 

따 라서 삭개오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감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공허감으로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삭개오는 자기가 살고 있는 여리고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삭개오에게 있어서 이 소문은 고민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3 절 말씀,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를 보세요. 지금까지 삭개오는 예수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조차 몰랐습니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돈을 향해서만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그의 목적을 이루고 나서도 공허한 자신을 발견한 삭개오는 돈이 다가 아님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돈이 문제의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드디어 삭개오는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게 된 것입니다.

 

사 랑하는 동산교회 성도님, 여러분 앞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방법이 보이지 않습니까? 방법을 바꿔 보세요. 리차드 포스터는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잘 나도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깊이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면 본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 가 이리로 이사하면서 전에 살던 집의 현관 자물쇠를 교체해야 했습니다. 쉽게 되려니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공업고등학교 출신인데 자물쇠 하나 못 달아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으로 힘과 머리를 다 동원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참을 씨름했지만 잘 안 맞는 것입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잠시 쉬려고 앉아 있다가 ‘위치를 바꿔서 달아볼까?’하는 생각을 하고 자물쇠의 위치를 바꿨더니 아주 수월하게 설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잘못된 방법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봤자 헛수고일 뿐입니다.

 

성 도님들이 가끔 저를 찾아와 “목사님, 사방이 모두 막혀 있어요. 방법이 없어요.”라며 막막해 하시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래요, 사방이 막혀 있지요? 그러나 하늘은 열려 있잖아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두 다 막혀 있어도 하늘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깊 은 산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아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곡 밑으로 내려갑니다. 그래야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간 길을 가고 또 가고 그러면서 산 속에서 계속 헤매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산꼭대기로 올라가세요. 산꼭대기에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가 가야할 길이 어느 방향인지 내려다보고 나서 다시 내려와야 하는 것입니다.

 

지 금 여러분도 문제로 사방이 막혀 있어 캄캄하십니까? 이리 가도 저리 가도 막혀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늘을 보십시오. 그 길은 열려 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문제를 내놓으십시오. 여러분의 문제를 하나님의 눈으로 다시 보세요. 그러면 길이 보일 것입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하나님이 보여 주실 것입니다.

막강한 부로도 열등감을 극복할 수 없었던 삭개오는 오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한 사람을 찾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는 삭개오

 

삭 개오는 문제해결을 위한 한 사람을 만나러 밖으로 달려 나갑니다. 그 사람을 만나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기 때문에 그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가 엄청난 결단과 용기로 달려 나갔을 때 사람들이 어서 오라고 환영하고 어서 가서 예수님을 만나라고 길을 비켜줬을까요?

 

삭 개오가 나갔을 때의 상황을 성경은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삭개오의 열등감이었던 신체적 결함이 예수님을 만나는 데 있어서 장벽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키가 작다는 말은 우리가 가진 본래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데 나의 신체적 결함이 장애가 되어 만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가진 게 없어서 헌금을 넉넉히 내지 못하고, 배운 게 없어서 교사로 섬기지도 못하고, 목소리가 좋지 못해서 찬양 봉사도 하지 못하고…. 물질, 학력, 능력의 부족함, 이런 것들이 모두 신체적 열등감입니다. 새신자들 중에는 이런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고 갈등하다가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밖 으로 달려 나온 삭개오도 그 순간 갈등했을지 모릅니다. 문제해결에 대한 소망을 품고 달려 나오면 곧바로 기대했던 일이 벌어지리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체적 결함이 그를 다시 위축시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지?’ 삭개오는 갈등했을 것입니다.

 

우 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망을 품고 교회에 나왔는데 어떤 한계를 느끼게 될 때 우리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문제는 여전히 문제로 남을 것입니다. 수도꼭지를 잠글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삭 개오에게 있어서 장애는 그의 작은 키만이 아니었습니다.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 또한 그에게는 예수님을 만나는 데 있어서 장애였습니다. 예수님께로 다가가고 싶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었을 것입니다.

 

여 러분,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막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나 사단의 세력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주변사람들 때문에 삭개오는 지금 예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교회에서 여러분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목사입니다. 교회의 중직자입니다. 여러분을 하나님께 인도해야 할 목사가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는 말입니다.

 

교 회를 옮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서 상담을 요청하면 저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교회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고 해서 교회를 옮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목회자로부터 상처를 받았다면 옮기셔야 합니다.” 다른 상처는 말씀을 들으면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지만 목회자로부처 받은 상처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로부터 상처를 받았다면 말씀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그 말씀을 통해 영혼이 치유받기는 어렵습니다.

 

지 금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삭개오는 난감합니다. 키가 작아서 예수님이 보이지도 않고 사람들이 많아서 다가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줄 예수님을 발견한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집니다. 자존심 따위는 상관없습니다. 이 길이 자신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 방이 막힌 상황에서 삭개오는 위를 바라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성경에 뽕나무라고 표현되어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야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삭개오야 이리 내려와라 내가 너희 집에 유하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순간, 삭개오의 인생은 완전히 바뀝니다. 삭개오가 가진 문제는 해결됩니다.

 

사랑하는 동산 가족 여러분, 여러분 앞에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가 있다는 말은 해결방법도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와 씨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려 있는 위를 바라보고 문제를 내려놓으세요.

 

문제를 지나가려고 하지 말고 문제를 뛰어넘으세요. 그 문제를 덮을 수 있는 큰 은혜를 사모하세요. 은혜는 모든 것을 다 덮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에게 해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도

 

하 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수많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문제의 본질을 발견하게 하시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올바른 안목과 정확한 통찰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바뀐 것처럼 우리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해답을 발견하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나약함을 알고 계시오니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더하여 주시고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문제를 덮을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 늘도 문제를 가지고 나온 우리 동산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도와주시고 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묵상하는 시간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 안에 주님을 모시고 돌아가게 하시옵소서. 이제 또다시 새로운 주를 살아갈 때, 연약한 자가 아니라 강한 자로, 문제를 가진 자가 아니라 해답을 가진 자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프로필

 

고형진 목사

 

무학교회 교육전담목사

소망교회 부목사 및 청년부 담당

현) 강남동산교회 담임목사

 

저서

N세대 로마서(강해설교학교출판부)

짱 아니면 땅(낮은 울타리)

좋음에서 위대함으로(그루터기)

청년이여 부흥을 경험하라(그루터기)

1%의 변화를 꿈꾸며(그루터기)

1%의 열매를 기다리며(그루터기)

존재의 축복(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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