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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30)] 모옌 중단편선

[책을 읽읍시다 (1030)] 모옌 중단편선

모옌 저/심규호·유소영 공역 | 민음사 | 384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중국 전통의 민담과 설화를 세계적인 이야깃거리로 탄생시키며 “야성과 광기의 이야기꾼”이라는 평가를 받은 현대 중국 문학의 거장 모옌. 그의 대표 중ㆍ단편을 엮은 『모옌 중ㆍ단편선』. “중국 전통 문학 안에서 포크너, 마르케스와 비견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냈다.”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모옌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유이다. 포크너의 요크나파토파 카운티, 마르케스의 마콘도에 비견되면서도 그러나 완전히 다른 그곳, ‘가오미 둥베이 향’은 모옌이 스스로 창조한 문학적 고향이다. 중국의 대약진 운동, 반우파 투쟁, 문화 대혁명으로 이어지는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로 배경을 소묘하고 민담과 습속의 화려한 색채를 입은 ‘가오미 둥베이 향’의 이야기들은 중국적인 ‘환각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 준다.

 

한 편의 소설을 쓰는 동안 다른 몇 편의 소설이 떠오른다는 천부적인 이야기꾼 모옌, 그의 입심이 낳은 열두 편의 작품에는 그 작가가 모옌임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아니 작가가 없는 야화라 하더라도 듣는 이를 곧바로 매혹시킬 ‘이야기의 힘’이 있다.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반드시 그곳이어야만 했던 모옌의 문학적 본향 ‘가오미 둥베이 향’. 인간 존재의 속됨과 위엄, 세계의 참혹과 아름다움을 망라하는 그곳의 이야기가 미답의 세계.

 

설화(說話)란 고대 전설이나 신화 등과 같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서로 들려주던 것으로 대표적인 구비 전승물이다. 설화는 특히 중국 송대에 남방 항구 도시가 발전하면서 도시로 몰려든 비지식인들에게 영웅 서사나 사랑 이야기를 구연하던 설화인(說話人)통해 크게 발전했다. 구연의 특성상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따라서 내용이 추가되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하며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모옌은 중국의 전통이라는 씨줄과 창작이라는 날줄을 엮어 그 매듭의 지점에서 ‘가오미 둥베이 향’을 발견했다. 이와 같이 오랜 탐색과 모방을 거쳐 고유한 시공을 창조한 그의 문학 세계는 중국에도 처음이요, 전 세계에도 처음인 독특한 환상의 지평을 열어 줄 것이다.

 

「영아 유기」에는 한 가장이 등장한다. 그는 ‘인성’이란 종이 한 장만도 못한 얇은 존재라고 말하면서도, 주운 아이를 내버리지도 와락 안지도 못한 채 흔들리며 서 있다. 중국의 산아 제한 정책상 단 한 명의 아이만을 호적에 올릴 수 있던 시기, 자신의 딸조차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 현실은 주운 아이를 외면하라고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이 작은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연민이 솟구친다. 여자아이라서, 장애를 가져서 버려지는 아이들의 끔찍한 현실과 중국 산아 제한 정책의 검은 그림자는 ‘인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랑 이야기」에는 소년의 순수함을 지켜 주는 점잖은 어른 따위 없다. 소년이 남몰래,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좋아하는 ‘허리핑’은 나이가 열 살이나 많은 여성 지식 청년이다. 불리한 출신 성분으로 인해 꿈을 접어야만 하는 그녀의 아픔을 소년은 누구보다 순수한 사랑으로 위로한다. 하지만 그런 소년의 마음을 간파한 어른들은 얄궂은 말로 부추기고, 몸이 잔뜩 달은 소년은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바로 사랑하는 그녀 앞에서.

 

「메뚜기 괴담」속 1927년 그 해 여름, 지독한 가뭄이 마을을 덮쳤다. 흉작으로 말라비틀어진 들판을 가로지르며 그 시작을 알린 메뚜기 떼의 습격은 이 작은 마을의 농작물과 담벼락, 심지어 아기의 귀를 갉아 먹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마을 사람들은 향을 피우고 공연을 하며 메뚜기 떼가 물러가길 간절히 기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메뚜기가 사라지고 역겨운 비린내가 걷힌 하늘은 청명하기만 한데……. 과연 인간과 자연은 통했을까? 대재앙 속 그 뜻을 알 수 없는 자연의 흐름과 하늘에 닿길 기원하는 인간들의 바람이 비극적으로 교차한다.

 

「백구와 그네」속 ‘나’는 고향에 들어서자마자 한 마리 백구에 이끌려 ‘놘’을 다시 만난다. 그녀는 어릴 적 ‘나’가 밀던 그네에서 떨어져 한쪽 눈을 잃었다. 그리고 어른이 된 ‘나’는 놘의 초대를 받아 들어간 집에서, 그녀의 남편과 세 아이가 모두 벙어리이며 남편의 의심 속에서 그녀가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단박에 알아챈다. 그녀의 남편이 시험하듯 건네는 술잔들을 죄책감과 그리움 그리고 무력감이 뒤섞여 전부 받아 마신 ‘나’는 다음날 아침 그곳을 떠나는데……. 무거운 마음을 애써 떨치며 걷는 ‘나’에게 벼랑 끝의 그녀가 한 마지막 부탁은 무엇일까? 처연하도록 간절하고, ‘사랑’보다 아름다운 ‘인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투명한 빨간 무」에는 가족에게 외면받고, 배고픔을 덜기 위해 홍수 방지용 댐 공사 현장에서 고된 노동을 견디는 ‘아이’가 등장한다. 철공을 따라 일에만 매진할 뿐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에게 자못 무심해 보이던 아이가 단숨에 매료된 것은 다름 아닌 ‘무’. 아이에게 무는 영롱히 빛나고 주린 배를 채울 수도 있지만 그러나 가질 수 없는 것, 바로 ‘아름다움’이다. 배고픔에서 아름다움으로 연결되는 아이의 시선은, 현실의 냉정과 참혹을 드러내는 놀라운 ‘환상의 힘’을 보여 준다.

 

이외에도, 『철의 아이』, 『첫사랑』, 『한밤의 게잡이』, 『창안대로 위의 나귀타는 미인』, 『후미족』, 『큰바람』, 『짚신 토굴』 등 모옌 문학을 대표하는 총 열두 편의 작품이 실렸으며 이 중 열한 편은 국내 초역이다.

 

 

작가 모옌 소개

 

쟝이모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소설 『홍까오량 가족』의 작가. 그는 산둥성(山東省) 까오미(高密) 따란향(大欄鄕) 핑안춘(平安村)의 빈한한 가정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관모예(管謨業)이나, 글로만 뜻을 표할 뿐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모옌(莫言)'이란 필명을 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학업을 포기하고 수년 간 농촌 생활을 하다가 소학교를 중퇴한 뒤 18세 되던 해 면화 가공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했다.

 

1976년 20세 나이로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 문학에 눈을 돌려 1978년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해방군 예술학원에 입학, 1986년에 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베이징 사범대학과 루쉰 문학창작원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81년부터 창작 활동을 시작하여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소속 1급 작가로 일하다가 1997년 사직하고, '검찰일보'에 재직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1981년 격월간지 『연지(蓮池)』에 단편소설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春夜雨)」를 발표한 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며, 1984년 발표한 「황금색 홍당무(金色的紅蘿蔔)」(1985년 「투명한 홍당무(透明的紅蘿蔔)」로 개작)가 좋은 평가를 얻게 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87년 대표적인 장편소설 『홍까오량 가족』을 발표해 반향을 일으켰고, 그 작품의 일부를 쟝이모 감독이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제작해 1988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이는 모옌의 작품이 전세계 20여 개국으로 번역 출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장편소설 『티엔탕 마늘종 노래(天堂蒜之歌)』(1988), 『열세 걸음(十三步)』, 『술의 나라(酒國)』(1993), 『풀을 먹는 가족(食草家族)』(1993), 『풍유비둔(豊乳肥臀)』(1995), 『탄샹싱(檀香刑)』(2001), 『사십일포』(2003), 『생사피로(生死疲勞)』(2006) 등을 발표하였고, 「환락」, 「생화를 품은 여인」, 「폭발」,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등의 중편소설과 「그네 틀의 흰둥이」, 「메마른 강」, 「엄지수갑」, 「눈얼음 미녀」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는 장이모 감독에 의해 영화 '행복한 날들(幸福時光, Happy Time, 2000)'로 제작된 바 있다.

 

『풍유비둔』은 그의 창작상 최고조에 오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1,2』는 1980년대 중국의 개혁 · 개방의 전성기를 배경으로 농촌 마을과 관료 사회의 부패 양상을 탁월한 주제의식과 기교로 그려낸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희곡과 텔레비전 드라마 극본을 썼는데, 1997년 창작한 희곡 「패왕별희(覇王別姬)」는 무대에 올려져 중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두 달간 연속 공연되면서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93년에 출간된 『술의 나라』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소개되어 큰 호평을 받았고, 그는 데뷔 후 중국 최고의 문학상인 따자(大家)문학상을 비롯, 프랑스 루얼 파타이아 문학상, 이탈리아 노니로 문학상,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상, 홍콩 아시아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대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모옌은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중국의 첫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영예까지 얻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모옌이 현실과 환상을 역사적, 사회적 관점에서 절묘하게 융합한 문학 세계를 창조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의 고향인 산동성 까오미현 둥베이(東北)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2002년 10월부터는 고향의 산둥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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