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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87)] 그레이엄 그린

[책을 읽읍시다 (1087)] 그레이엄 그린

그레이엄 그린 저 | 서창렬 역 | 현대문학 | 964쪽 | 20,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인물로 꼽히는 영국의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거의 모든 단편을 수록한 단편 전집이다. 순수문학과 오락물 등 장르의 경계를 초월하며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20세기 스토리텔링의 패러다임을 바꾼 그레이엄 그린의 67년에 걸친 작품 활동 기간 중 네 시점에서 출간한 단편집을 한데 모은 것으로, 여기에 기존에 단행본의 형태로 발표되지 않았던 4편을 추가하여 53편의 단편을 한 권으로 엮었다.

 

사랑, 강박, 열정, 환상, 환멸, 꿈, 공포, 연민, 폭력 등 인간인 경험하는 온갖 극한의 감정들을 조망하는 53편의 작품들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저자의 단편소설들을 한자리에서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시기에 따른 작품 경향의 미묘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때로는 냉소적이면서 기지 넘치게, 때로는 탐색적이고 철학적으로 저자의 모습을 포착하여 보여주는 작품들을 통해 스토리텔링의 대가로서의 면모를 만나볼 수 있다.

 

매일 꾸준히 500단어씩 써 내려가며 분량을 채우면 그날의 글쓰기를 그만두었다는 그린은 장편소설과 달리 열린 결말이 필요한 단편소설의 기법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여러 차례 고백했다. 하지만 그가 장편뿐만 아니라 단편에서도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 수준의 거장이라는 것이 세계 문단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흔히 그를 ‘양가적인 도덕 방정식을 지닌’ ‘역설의’ 인간이라 일컫는데 여기 실린 작품들은 그 어떤 장편소설에서보다 그러한 작가의 모습을 더 잘 포착하여 보여 준다.

 

『그레이엄 그린』의 테마는 순수이다. 정원 안에 있는 순수한 사람들은 모험과 위험과 탈출을 열망하고, 반면에 담장 밖에 있는 사람들은 다시 정원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린은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것과 새로운 것을 갈망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뒤에 두고 온 것들과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서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서 각 단편에서 이 두 정서가 대위적으로 작용하여 어느 한쪽이 더 강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서로 절제된 소리를 내면서 하나로 합쳐진다.

 

그린은 한 인터뷰에서 가장 잘 쓴 단편으로 「파괴자들」「레버 씨의 기회」「정원 아래서」「8월에는 저렴하다」를 꼽았다. 그는 이들 작품의 어떤 요소가 마음에 드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가독성”이라고 답하면서 그 점을 지적하는 평론가는 많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기에는 상징이나 모호성을 높이 사고, 재미있게 읽히는 직선적인 글을 얕잡아 보는 문학적 스노비즘을 향한 은근한 비판이 담겨 있다. 그는 묘사를 가능한 한 제거하고 외부 세계를 낭비 없이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을 글쓰기의 목표로 삼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글이 꼭 쉽게 읽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문학적인 기교는 덜 중시한 반면에 인간의 내면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가열하기 이를 데 없어서, 그가 이야기하는 바를 다 알아들었다고 생각할 때면 다시 한 꺼풀 더 벗겨 내어 반전의 재미를 선사하거나 인간성의 심연을 드러내곤 한다. 묵직한 작품은 묵직한 대로, 가벼운 소품처럼 여겨지는 작품은 또 그 나름으로 한껏 매력을 발산한다.

 

타계하기 얼마 전에 그린은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을 받고 “몇 권의 좋은 책들”이라고 대답했다. 이 단편선은 그 ‘좋은 책들’의 하나이면서 출발점이자, 그린의 ‘스토리텔링의 대가’로서의 면모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작가 그레이엄 그린 소개

 

격변의 20세기 거의 대부분을 살면서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로 시대와 인간을 기록했던 영국의 문인 그레이엄 그린은 세계문학사에서 20세기의 가장 중요하고 복합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한때 공산주의에 공명하고, 세계대전 중에 MI6(비밀정보부)에서 첩보원으로 활동했으며, 국교회가 지배적인 나라에서 가톨릭교로 개종하고, 아프리카와 같은 야생의 장소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등 독특한 이력을 소유한 그의 글쓰기의 출발점은 극심한 우울증이었다. 그는 청소년기에 몇 차례 자살을 기도했는데 정신과 의사는 치료의 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권했다. 그린에게 있어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자기 구원의 방식이자 실존의 문제였던 글쓰기는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폭발적인 대중의 인기와 문단의 찬사를 동시에 누린 희귀한 작가로 만들었다.

 

예리한 통찰과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인간성의 심연, 양가兩價적인 도덕, 현대사회의 모호성을 가열하게 파고들었던 그는 정치, 성性, 범죄, 종교, 경제, 세계정세, 언론과 같은 20세기의 주요 화두를 쟁점화한 작품들을 통해, ‘소설이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또한 ‘스릴러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순수문학과 ‘고도로 윤리적이고 심미적인’ 오락물 등 장르의 경계를 초월하면서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20세기 스토리텔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를 팽팽하게 오가며 실존의 진리를 드러내려 했던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하나의 문학적 양식으로 남아 있다. 긴장감, 간결성, 극도로 편집된 대화, 속도감 있는 전개는 독자를 매료시키는 영화적 특성이 있어, 여러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권력과 영광』『사건의 핵심』『사랑의 종말』『제3의 사나이』『조용한 미국인』 등 25편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에세이와 문학평론 등 60권 이상의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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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