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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12)] 칠레의 밤


칠레의 밤

저자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0-02-0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죽음을 앞둔 노인의 뼈아픈 고백이 시작된다!마르케스 이후 라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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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112)] 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저 | 우석균 역 | 열린책들 | 176쪽 | 9,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거장이자, 칠레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대표작. 작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짧은 소설 가운데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꼽은 이 작품은 무수한 인용, 불분명한 문학적 언급, 지적 은유, 독특한 작가들에 대한 남다른 성찰 등 작가의 독특한 문학적 특질이 잘 드러나는 수작이다.

 

『칠레의 밤』은 한 사제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가톨릭 사제이자 문학도이며, 시인이면서 문학 비평가인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가 침대에서 임종을 기다리는 가운데 지난날을 회상하는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생 탈을 뒤집어쓴 채 살았던 삶을 되돌아보는 한 사제의 마지막 밤은 〈어둠〉으로 점철돼 있다. 평생 암담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얽매여 살았던 저자는 칠레에 남아 피노체트 정권을 지지했던 허구의 지식인이 돼 이 작품을 썼다. 작품 전체가 단 두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는 독특한 구조도 주목할만하다. 맨 마지막 한 줄이 한 문장인 것을 감안하면 작품전체가 한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는 '시'와 같다.

 

 

현실과 악(惡)의 경계에 서다

 

볼라뇨는 암담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평생 얽매여 산 작가다. 그는 1953년 칠레에서 태어나 15세 때 가족을 따라 멕시코로 이주했다가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의 정당 인민 연합을 지지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간다. 쿠데타가 일어난 후에는 멕시코로 떠났다가 스페인에 정착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칠레의 밤』 속에서 이 〈어둠〉은 당시의 정치적 실화와 맞물려 극대화된다. 1973년 쿠데타가 일어나고 얼마 후, 우루티아 사제에게 정체불명의 두 남자가 접근한다. 그러고는 피노체트와 몇몇 장군들에게 마르크스주의를 강의해 달라고 요청한다. 10주에 걸친 비밀스런 강의를 마친 후 이 사제 겸 문학 평론가는 이제 마리아 카날레스의 문학 살롱에 발을 담근다. 미모의 부유한 작가 지망생인 마리아 카날레스는 칠레의 갈 곳 없는 문인들을 집으로 끌어들여 파티를 연다. 그러나 손님들이 위층에서 그녀와 더불어 포도주를 걸치는 동안, 그녀의 미국인 남편은 지하에서 정치범들을 고문하고 있다. 이곳은 피노체트 체제 하의 고문실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작중 인물을 향한 볼라뇨의 〈공감〉은 여느 감정 이입과는 다르다. 볼라뇨는 온전히 사라짐으로써, 즉 엄격하고 빈틈없는 자기 몰입을 통해 악의 축에 선 극중 인물들을 직시한다. 볼라뇨는 인간에 대한 범죄, 특정한 인간들에 대한 범죄를 절대 외면하지 않는다. 결국 그것이 그의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의 마음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똑같이 관찰하는 허구적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설사 그 다른 사람들이 살인자, 위선자, 미치광이, 문학 비평가라 해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궁극적으로 뒤에 남겨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범주로서 부적절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문학을 위한 문학을 하다

 

단 두 단락으로 이루어진 소설. 『칠레의 밤』의 구성은 단순한 독특함을 넘어선다. 150쪽 내외에 걸친 문장들이 죄다 한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긴 호흡 뒤를 단 하나의 문장이 숨 가쁘게 잇는다. 차라리 한 편의 〈시〉라 불러도 좋을, 치명적인 유혹의 글쓰기다.

 

〈문학에 뿌리를 내린 자〉. 로베르토 볼라뇨를 가리키는 이 말에서 우리는 그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볼라뇨는 자신의 작품 가운데 실로 수많은 문학과 문학가들의 명단을 나열하며 자신의 남다른 문학 애호 성향, 독보적인 박식함, 뛰어난 취향을 드러낸다.

『칠레의 밤』 또한 예외가 아니다. 볼라뇨는 극중 사제이자 시인, 문학 비평가인 우루티아와 한때 그가 우러러보던 비평가 페어웰을 통해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니카노르 파라와 파블로 데 로카, 칠레의 초현실주의 시인 그룹 만드라고라와 1950세대 소설가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13세기 이탈리아 시인 소르델로와 구이도 등 문학사에 길이 남을 이름들을 끝없이 언급한다. 문학적 취향을 감지할 수 있는 이 특별한 리스트는 오직 볼라뇨만의 것이다.

 

또한 볼라뇨의 소설은 단순한 한 가지 주제를 넘어선다. 볼라뇨는 정치적 상황, 범죄, 어둠, 죽음, 역사, 기억, 인간관계, 성, 광기 등 인간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기운들을 한데 모아 이야기를 직조한 끝에 독자인 우리의 심장을 꿰뚫는다. 이 가운데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구별하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자연히 이야기의 매듭을 풀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그러나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문득 볼라뇨의 해박하고 방대한 지식과 이를 토대로 한 고도의 씁쓸한 유머와 우스꽝스러운 풍자를 마주한 순간, 비로소 우리는 〈볼라뇨 세계〉의 압도적인 흡인력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특징들은 볼라뇨 특유의 문체를 입고서 한 차원 높이 거듭난다. 평생 시를 숭배해 마지않았던 시인답게 볼라뇨는 『칠레의 밤』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특유의 리듬감을 잃지 않고 호흡을 조절하며 독자를 현혹한다. 그리고 결국, 대책 없이 무너뜨린다.

 

이제 남은 과제는 볼라뇨의 글을 〈살아 내는〉 일이다. 볼라뇨의 글은 눈으로 읽기에 결코 만만치 않다. 삶으로 쓴 글이기에, 그 글을 살아 내야 비로소 읽힌다. 문학에 평생을 바친 한 작가의 위대한 정수, 그 경이로운 순간이 바로 여기 있다.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 소개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 스페인어권 세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소설가, 라틴 아메리카 최후의 작가. 지금은 이 땅에 없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시한폭탄〉, 로베르토 볼라뇨에게 바치는 찬사들이다. 볼라뇨는 1953년 칠레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멕시코로 이주해 청년기를 보냈다. 항상 스스로를 시인으로 여겼던 그는 15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20대 초반에는 〈인프라레알리스모〉라는 반항적 시 문학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이어 20대 중반 유럽으로 이주, 30대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투신한다.

 

볼라뇨는 첫 장편 『아이스링크』(1993)를 필두로 거의 매년 소설을 펴냈고,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볼라뇨 전염병〉을 퍼뜨렸다. 특히 1998년 발표한 방대한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로 〈라틴 아메리카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리는 로물로 가예고스상을 수상하면서 더 이상 수식이 필요 없는 위대한 문학가로 우뚝 섰다. 그리고 2003년 스페인의 블라네스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매달린 『2666』은 볼라뇨 필생의 역작이자 전례 없는 〈메가 소설〉로서 스페인과 칠레, 미국의 문학상을 휩쓸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범죄, 죽음, 창녀의 삶과 같은 어둠의 세계와 볼라뇨 삶의 본령이었던 문학 또는 문학가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암담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관한 통렬한 성찰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의 글은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중첩되고 혼재하며, 깊은 철학적 사고가 위트 넘치는 풍자와 결합항여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작품으로는 대표작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2666』을 비롯해 장편소설 『먼 별』(1996), 『부적』(1999), 『칠레의 밤』(2000), 단편집인 『전화 통화』(1997), 『살인 창녀들』(2001), 『참을 수 없는 가우초』(2003), 시집 『낭만적인 개들』(1995) 등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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