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16)] 잃어버린 낙원
세스 노터봄 저 | 유정화 역 | 뮤진트리 | 12,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잃어버린 낙원』은 브라질과 호주,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라는, 얼핏 무관해 보이는 네 나라를 배경으로 한, 네덜란드의 대표 작가 세스 노터봄의 소설이다.
소설의 앞부분은 브라질의 두 여성이 전설로 내려오는 호주 선주민의 본향 ‘시크니스 드리밍 플레이스’에 닿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오스트레일리아를 헤매 다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누비는 모험에 찬 그녀들의 여정은 ‘엔젤 프로젝트’를 만나면서 그 방향이 바뀌어 진다. 엔젤 프로젝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서부 퍼스의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는 참여 예술 프로젝트이다. 한편 소설의 뒷부분에서는 네덜란드의 문에 비평가 에릭 존타크가 알프스의 스파에 머물며 알코올에 찌든 육체를 정화하고 있다. 이 스파에서 자신을 마사지 해주는 여성을 본 순간 그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챈다.
여행길에서 스치듯 지나친 작은 만남이 우리 삶에 새기는 뚜렷한 흔적들을 탐색하고 추적해가는『잃어버린 낙원』에서 세스 노터봄은 얼핏 무관해 보이는 두 이방인을 이어 보려 한다. 언젠가 우연히 스쳤던, 그러나 서로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간직한 두 이방인이 인생의 어느 여정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경험이란 얼마나 기이한 우연인가. 많은 여행을 통해 얻은 영감을 기초로 글을 쓰는 세스 노터봄의 작품은 공간의 스펙트럼이 자유분방할 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서 끌어내는 이야기 또한 매우 독창적인 것이 특징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의 영혼의 고향,
그 곳을 향해 먼 길을 떠난 알마와 알무트
어느 날 무드mood 때문이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 순간의 끌림을 따라 상파울루의 낯선 동네로 차를 몰고 갔다가 불량배들에게 윤간을 당한 브라질 여성 알마, 어려서부터 단짝 친구로 알무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챙겨주는 알무트. 이 두 사람은 악령을 떨쳐내고 둘만의 오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을 향해 떠난다. 혼란과 혼돈의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분명 한없이 아름답게 보이는 호주 선주민들의 땅, 이방인에게는 그들이 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낙원은 이미 거기에도 없는 것. 그 또한 파괴되었기에, 또는 거의 파괴되었기에, 어쩌면 모든 이가 항상 찾아다니는 ‘잃어버린 낙원’인 그 곳, 호주 선주민의 영혼의 땅인 ‘시크니스 드리밍 플레이스’를 찾아서. 그녀들은 여행지에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물리치료사 자격증을 딴다.
서로 엇갈리는 여정, 영혼의 만남에 대한 갈망
작가는 여기서 다시 장면을 바꾸어 번민에 찬 중년의 문예 비평가 에릭 존타크를 소개한다. 에릭은 그와의 관계에 진저리를 치는 여자 친구에 의해 암스테르담의 집에서 내쫓겨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한 스파로 보내진다. 거기서 알코올 중독의 금단요법 치료를 받고 달라진 사람이 되라는 여자 친구의 기대에 따른 것이다. 스파의 프로그램은 매우 잘 짜여 있고 과학적이기까지 하다. 에릭은 스파의 금욕적인 생활을 형벌처럼 견뎌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 마사지사 대신 자신을 마사지 해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여성을 본 순간, 그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챈다.
이 책 『잃어버린 낙원』에서 두 사람, 즉 브라질의 우울한 처녀 알마와 성적 무능을 겪는 중년의 네덜란드 문예 비평가 에릭이 오스트레일리아의 퍼스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일도 영혼의 만남에 대한 갈망을 탐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 닿아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행자들이 서로 만나고 엇갈리는 여정과, 그들이 여행길에 나선 이유들은 인생과 문학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의 차이도 이 소설이 탐구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세스 노터봄은 여행길에서 마주치는 삶을 통해 구원의 문제를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인생과 문학의 오해에 얽힌 성찰을 거장다운 능란한 구성으로 엮어낸 세스 노터봄의 이 짧은 작품은 섬세하고 정교하다. 정지된 시간과 공간을 마치 꿈결같이 그려내고 있다.
작가 세스 노터봄 소개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리는 네덜란드의 대표 작가다. 1933년 7월3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태어났다. 가출한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 중 헤이그 시내에 집중 투하된 폭탄에 맞아 사망한 후 독실한 가톨릭 신자와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의붓아버지에 의해 가톨릭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 학교로 보내졌으나 오래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가출을 일삼는 등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이때부터 문학적 기질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파리로 건너간 이후 이 년 동안 유럽 전역을 정처 없이 방랑하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필립과 다른 사람들』(1955)을 출간했다.
이 작품의 발표 직후 안네 프랑크 상을 수상하면서 세스 노터봄은 스물둘의 젊은 나이에 일약 문단의 스타가 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체험한 색다른 경험은 작품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고, 죽음, 세계와 자아의 내면 성찰, 현실과 이상과의 관계 탐구 등 뚜렷한 작품 주제를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부루아에서의 어느 오후』(1963), 『베를린 수기』(1990), 『산티아고로 가는 길』(1992) 등 여러 편의 여행기를 출간했다.
시와 소설, 에세이와 여행기, 희곡과 시사평론, 샹송의 작사와 번역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의 글을 두루 써 온 노터봄은 1982년 미국의 페가수스 상을 비롯하여 유럽 문학상(1993), 독일의 괴테 상(1992), 네덜란드의 페이 세이 호프트 상(2004) 등을 수상했으며,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1991), 문학예술훈장(2003) 등을 수여받았다. 또한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 미국 현대 어문협회의 회원으로 임명되었는가 하면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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